연성

Liar

하릴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어서

개인서고 by 새얀
7
0
0

22주차 주제 : ㅎㄹ(홀로, 혼란)

목표 글자수 : 7617/5000

COC 시나리오 VOID에 대한 스포성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나머지는 날조~


눈을 떠보니 폐기장 안이었다.

 

깜빡, 깜빡.

시로는 눈을 두 번 깜빡이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장된 데이터 베이스와 인터넷이 돌아가며 해당 장소의 정보를 알린다. 이곳은 안드로이드의 폐기장입니다. 그런 건조한 기계음.

 

하! 문득 헛웃음이 터졌다. 안드로이드 폐기장? 정보를 얻은 시로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푸르도록 맑은. 그리고 주변을 굴러다니는 성치않은, 혹은 낡은 안드로이드들. 사람을 닮은 그것들은 기이하게 꺾인 자세로, 또 어떤 것들은 부품만 널브러져 굴러다녔다. 마치 시체가 썩지 않고 쌓인 것처럼 보이는 기괴한 광경……. 렌이 보았더라면 아주 많은 것들을 자문했을 광경이다. 그래, 폐기장…….

 

“렌이 나를 여기 버렸다고?”

“시로군, 전부 처리 됐습니다. 당신은 저의 전前파트너이자 이제는 제 소유 안드로이드이므로, 파트너인 제가 은퇴한다고 해서 폐기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이런저런 설정값을 변경하고 정보 이전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잠시 전원을 끌 테니, 제 집에서 다시 보도록 하죠.”

 

그 재회를 기약하는 다정한 투의 인사가 문득 귓가를 스치우는 것 같은 착각. 경시청 소속 안드로이드들이 가질 수 있던 스택이 달각, 돌아가며 전원을 끄기 전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생했다.

그 애정이 가득했던 시선을 착각할 수는 없다. 언젠가의 감정적이고 미숙했던 스물둘의 렌은 마흔둘의 나이가 되면서 어느 정도의 가식을 떨 줄도 알게 되었으나, 그 애정만큼은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였으므로. 그런 감정을 꾸며낼 수 있었다면 렌은 이렇듯 위험한 현장직을 전전하다가 부상을 입어 ‘명예롭게’ 은퇴하는 대신, 인정받은 인재답게 승승장구 했을테다. 그의 아버지가 걸었던 길처럼 말이다.

 

……아니! 설령, 만에 하나 그 애정이 진심이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거짓을 입에 담고는 안드로이드를 폐기장에 버렸다고? 네가? 시로는 스물 둘, 제시되었던 목적성의 진실을 깨닫고 혼란해하는 자신에게 렌이 방향을 제시했던 어느 날을, 그리고 그 이후 이십여 년간 보아온 그를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어느 누구도 스무해 동안 거짓만을 말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시로는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시로는 너덜거리는 몸을 보고 오늘의 날짜를 확인했다. 2년. 그래, 벌써 2년이나 지났다고……. 절로 흘러나오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래도 수십 년이나 지난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시로는 2년 동안 관리받지 않아 누전되고 내부의 일부는 녹이 슬어버린,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를 점검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아직 너도 날 찾고 있겠지. 찾아가서 재회하면, 놀란 얼굴에 두고 놀리며 웃어줘야겠다.

 

**

 

 

“수고하십시오, 선배님.”

“예, 반장님도 수고하십시오.”

 

그날은 지나치게 화창해 햇빛이 따갑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선배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여전히 엄청나게 더워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계시네요. 더우실까 봐 음료수 좀 사왔습니다!” 그런 이야기와 함께 만면에 웃음을 띄고 다가온 형사 한 명이 렌의 손에 음료수를 쥐여주고는, 자식 문제에 대한 가벼운 고민 상담을 나누고는 헤어진 날. 손에 들린 차가운 음료수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 캔 음료수를 손으로 굴려보는 렌을 시로는 툭 하고 쳤다.

 

“인기 많네요, 파트너.”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소리를. 옛선배이니 편하게 대하는 거겠죠. 혹은 계급이 낮아서이거나.”

“파트너가 직속 선배였던 과거나, 계급이 낮다는 이유만 가지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심지어 후자의 이유로 막대하기엔 파트너는 말마따나 직속 선배였던 적이 있잖아요.”

 

그날 하루만 해도 별안간 말을 건 후배가 처음은 아니라, 시로는 렌을 두고 그렇게 놀렸다. 렌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들마저도 현장직에서 지휘 쪽으로 승진하는 와중에 연차가 높은 렌은 아직도 현장을 전전하고 있었다.

 

경찰학교 수석 입학, 수석 졸업, 경찰로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대에 경시청에 들어와 경찰로 근무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감에도 윗선에 밉보인 탓에 아직 지휘권 같은 걸 얻지 못한 현장직의 경찰.

그런 환경적 이유와 맞물려서, 어쨌거나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렌은 사사로운 이유로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시원함을 넘어 손끝이 조금 시릴 정도로 차게 느껴지는 음료수. 렌은 멍하니 음료수 표면에 적힌 이름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물었다.

 

“시로군. 제가 이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파트너, 드디어 본인의 행동을 반성하고 이 지긋지긋한 현장을 떠나 계장직을 쟁취할 마음이 생겼나요?”

“딱히 저는 반성할 만한 잘못이란 걸 저지르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말하는 것은 직업적 소명입니다.”

“아하.”

 

네게도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좀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렌. 시로는 그렇게 깐죽이려다 렌의 표정을 보고 멈췄다. 지친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평상시 형사로서 사건을 해결해야 할 공적인 때에 저 정도의 지친 감정을 드러낸 것은 또 처음이라, 시로는 말을 골랐다. 말마따나 렌은 딱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고, 스무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공과 사를 분리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했을텐데…….

 

“……너 경찰 그만 두려고?”

“고민 중입니다. 딱히 경찰을 할 이유가 없어서요.”

“츠무기는?”

“아이를 키우고 대학을 보내줄 정도의 돈은 됩니다.”

“나는?”

“…….”

 

그 말에 캔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멈춘다. 붉은 눈이 천천히 시로를 향하고, 그는 그때 조금 직감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새삼 다시 깨달았다는 사실이 옳을 것이다. 처음부터 렌은 경찰 따위와 적성이 맞지 못했고, 이곳에 있는 자신이 아니었다면 동경하던 대상이 사라진, 그리고 이미 부패한 지도 오래인 경시청의 경찰 따위는 금방 그만두었으리라는 사실을…….

“렌, 나는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괜찮아. 나야 새로운 파트너 구하면 되지.”

……사실은, 그 또한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로는 태연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돌아보았다. 렌은 어느새 시선을 마주 보지 않고 있었다. 햇빛이 쨍하니 내리쬐는 경시청 앞 나무 그늘, 그 아래.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그늘 아래서 표정을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목적의식 잃은 한 형사가 있다.

 

“그 말은 내가 당신 때문에 아직 관두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음, 뭐…….”

 

시로는 거기에 대놓고 그렇다 대답하지 못하고 간만에 답을 어물거린다. 그 반응에서 이미 답을 들은 렌이 캔을 따 내용물을 들이키고는, 신경질적으로 캔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쓰레기통 안의 비늘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텅―쟁그랑! 듣기 싫은 쇳소리.

 

“멍청하긴.”

“……어라, 렌. 너 오늘따라 말이 좀 심한데.”

“멍청하니 멍청하다고 하는 거지, 그럼 뭐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짜증스러움 숨,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번지고, 친구이자 파트너를 뒤로한 형사 하나가 있었다. 잠시간 제 머리를 쓸어내린 렌이 물기로 찝찝한 손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여전히 시선은 마주보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여기 있는 겁니다. 당신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제 선택이란 말입니다.”

“그렇지만 렌, 너는…….”

“듣기 싫습니다. 동경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아직까지도 그 동경뿐인 줄 알고 있나 보지? 누가 보면 내가 당신을 위해서 희생이라도 한 줄 알겠군. ”

 

그는 그렇게 짜증스럽게 내뱉고는, 더 대화를 잇지 않고 실내로 들어가 버렸다. 시로가 아마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고 했더라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더운 햇살 탓에 땅에서부터 올라온 아지랑이로 렌의 형상이 약간 일그러지는 것을 시로는 무심코 오래 응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뒤, 사건을 해결하던 도중 부상을 입은 렌이 은퇴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략 10월 달.

언젠가처럼 늦은 비가 쏟아질 때 쯤의 일.

 

 

**

 

 

“음.”

 

시로는 거리 한가운데에 서서 통신기기를 툭툭 건드렸다. 연락을 안 받네. 나 없다고 설마 정말 전국시대로 회귀해 버린 건 아니겠지. 서찰을 써서 보내야 받는다거나? 시로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렌이 봤다면 저런 게 내 파트너 안드로이드라니, 하며 굳이 딴지를 걸만한 생각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안타깝게도 시로는 돈이 없었다. 그러므로 교통수단을 타고 렌이 지낼 곳까지 이동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이 몸 상태로 렌의 집까지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없지는 않지만, 중간에 신고라도 당하면……. 시로는 언젠가의 대화를 생각했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고작 몇 달 전, 그리고 렌의 입장에서는 이미 2년이 훌쩍 넘었을 일.

 

“…….”

 

……그야, 소명 의식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쿠로다 렌. 너도, 나도, 그저 휘말렸을 뿐인걸. 어떠한 직업적 목표나 의식 없이 타인이 부여하거나 상황에 휘말렸기에 강제로 부여된 목적의식과, 혼란만이 있었을 뿐이므로. 그렇지만 시로는 당시의 렌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고작 가족을 죽인 원수의 자식을 위해 쿠로다 렌은 어떠한 소명도 없이 자신의 스무 해를 낭비한 것이 되었던 탓이다.

 

-렌, 나야. 시로. 이 연락 보면 말해줘.

 

그러나 그것 말고 다른 이유를……시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경시청의 안드로이드이고,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래밍대로 임무를 수행해야 할 뿐이었다. 거기에 렌의 친구이자 파트너인 시로라는 정체성이 하나 더 끼어들었을 뿐.

시로는 그저 그런 연락만 남겨놓고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다. 목적이 있었을까? 그건 몰라도 시로는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경찰로서의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아도, 렌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 자체는 즐겁고 보람찼다는 것을. 렌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아, 그러네. 그냥 그렇게 말했으면 됐을걸.

돌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말해줘야겠다.

 

 

**

 

 

“……시로 삼촌?”

“어라, 츠짱이잖아? 학교는 안 갔어?”

 

대략 하루 종일 걸었던 것 같다. 일부분이 녹이 슬고 간혹 스파크까지 튀는 수상한 안드로이드가 배회하고 있다는 신고에 달려온 경찰 중 하나와 마침 안면이 있었던 터라, 시로는 사정을 설명하고 이동을 부탁할 수 있었다.

 

“아, 그런데……쿠로다 선배?”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너랑 쿠로다 선배는 사이가 좋았지. 그래……. 데려다 줄게.”

 

……사정을 설명할 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미묘한 반응이 신경 쓰였지만, 시로는 애써 무시하고 경찰차에 올라탔다. 형사는 시로를 흘긋대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포기한 듯 했다. 이제 경시청 소속 안드로이드가 아님에도 기억의 마지막은 그곳이기에 그런 걸까? 그렇지만 시로는 자꾸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렌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툭, 툭…….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고 있자니,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감전에 유의하라는 우습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는 조언을 듣고 경찰차에서 내린 시로는, 곧장 쿠로다 츠무기와 맞닥뜨렸다. 이럴 수가, 타이밍의 신은 그를 제법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놀란 것인지 입을 벌린 츠무기의 품 안에서 무엇인가가 툭, 떨어졌다. 5년……아니지, 대략 7년 전에 렌이 입양했던 딸. 이제 벌써 17살이구나. 시로는 갑작스럽게 커버린 조카의 모습을 보며 잠깐 멈칫했다가, 웃으면서 태연자약하게 말을 걸었다. 많이 놀랐지?

 

“중간에 혼선이 생겨서 일 처리를 잘못했는지, 눈 떠보니 폐기장이었거든. 렌이 찾으려고 해도 찾기 힘들었겠지. 하필 폐기장들 중에서도 제일 구석진 곳이라……. 그나저나 츠짱, 많이 컸는데? 렌이 보람차겠다.”

 

멍하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녀가 문득 입을 가린다. 우산이 바닥을 뒹굴고, 시로는 우산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저건 뭐지? 꽃? 저걸 왜……. 왈칵 일그러진 얼굴로 휘청거리던 츠무기가 달려들어 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라, 츠짱? 혹시 울어?”

“사, 삼촌……죄송해요, 저, 사실은…….”

 

오는 내내 느껴졌던 위화감과 뒤섞인 불길함이 툭, 하니 고개를 들고 치고 올라오는 와중, 츠무기를 달래려던 시로가 문득 눈앞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경고. 배터리 손실. 배터리가 부족합니다. 기체의 보호를 위해 전원을 종료합니다.

 

“아, 잠…….”

 

츠무기를 급히 달래려던 시로는 순식간에 점멸하는 시야를 느끼며 속으로 험한 말을 뱉었다. 내장된 배터리는 충전할 필요가 없는데, 배터리까지 손실 됐었다고? 하필 지금……!

깜빡.

 

**

 

 

눈을 떠보니 익숙한 렌의 집 안이었다.

 

깜빡깜빡. 눈을 두 번 깜빡인 시로는 멀쩡한 몸 상태와 기억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집안을 보며 생각했다. 뭐야, 꿈?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

 

“삼촌…….”

“아, 츠짱. ……꿈이 아니네?”

 

키가 확연하게 자란 츠무기를 보며 시로가 벌떡 일어났다. 렌은 어디 있지? 연락을 받았다면 곧장 달려왔을 텐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몸 상태가 멀쩡한 걸 보니, 고친 시간을 고려하면 아무리 빨라도 최소 하루는 꼬박 지났을 텐데?

 

“죄송해요……. 제가 삼촌을 인수했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러지를 못했어요…….”

“응? 렌이 아니라 그걸 왜…….”

 

네가……. 말끝을 흐리고, 바깥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형광등 빛을 등진 소녀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웠다. 울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차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우물대는 아이에게서는 아직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언젠가의 시로와 렌의 얼굴이 비쳤다.

 

“……거짓말이지?”

 

한참을 지난 후에야 뱉을 수 있던 것은 고작 그 한마디 뿐이어서. 시로는 문득 뱉었고, 그제야 제가 내린 결론을 인지했고, 당연한 수순으로 부정했다. 아, 이게 렌이 느낀다던 그건가? 고독감?

 

“놀리려고 하는 말이지? 렌이 이상한 장난을 배워서…….”

“그때, 집으로 돌아오시다가…….”

 

인질극이었다던가. 어쨌거나 아이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은퇴 후였기에 순직 처리마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츠무기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우두커니 굳어진 시로 앞에서 얼굴을 가린 채 열다섯에 잃은 부모가, 그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여서.

 

“삼촌, 죄송해요. 제가 인수해야 한다는 걸 몰랐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고작 그 사이에 죽었다고? 렌이? 이젠……자기 일도 아닌 어린애를 구하다가?”

 

……고작 그게 뭐라고 네가 죽어야 해? 다시 보자고 말해놓고, 나를 두고 이렇게 바보 같이 죽었다고?

뙤약볕 강한 여름날을 떠올린다. 그늘에 가려져 있어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하게도 서로의 의중 따위는 짐작했던 날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던……. 렌. 너는 경찰이 되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했잖아. 그런 사명감도,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이 그저 쳇바퀴처럼, 언젠가의 선택 때문에, 내게 매여서…….

 

곁에 있겠다고 했으면서, 나를 두고 홀로 간다고?

이건, 반칙이잖아…….

 

“보러, 보러 가야겠어. 츠짱. 보러 가자.”

 

가족사진,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 렌의 미련과, 이제는 그 딸의 미련까지 함께 눌어붙은 집 안을……그 안으로 눅눅한 빗소리가 달라붙는다. 서러운 낯으로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시로는 몸을 일으켰다. 아, 그래. 몸을 일으켰다. 2년만에, 그에게는 며칠 만에, 자신의 파트너이자 친구를 보러 가기 위함이다.

그게 딱히 시로가 상상한 형태는 아니었을지라도.

 

가끔 홀로된 기분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목소리. 이젠 나와 네 딸이 있잖아? 그런 답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던, 더이상 청년이라 할 수 없었던 남자 하나.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마도, 집에 데리고 가기 제법 곤란하겠다는 생각 따위를 했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하릴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어서……홀로가 아님에도 찾아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그 기분을 느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염려와 다정함, 애정 따위를 담은 목소리가…….

쿠로다 렌은 거짓말쟁이였다. 이제 시로는 그 사실을 알았다.


이 부족한 글을 보고 써주신 분희님의 갓글

https://posty.pe/537tk7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