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달 스무 이틀, 사흘 그리고 나흘
은하수가 쏟아지던 밤하늘, 그리고 나는 너희를 잃었다.
https://youtu.be/3aeQMsXhfuo?si=E6t7JLZ-KZcF6A12
수 많은 시체들, 그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을 아끼지 않는 너희. 내가 너희를 지켜야 하는데. 한두 명씩 곁에서 사라져갔다. 우리는 친구를, 가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나의 잘못 같았고, 버틸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잃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었기에, 특히나 아꼈던 너희이었기에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그렇지만 너희는 나를 믿고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이걸 누구한테 이야기하겠어, 그냥, 그냥 혼자서 마음에 담아두는 거지.
모두가 잠든 새벽녘 은하수가 떠내려가는 밤하늘을 이 사태가 난 후부터는 매일 바라보았다. 은하수는 강이 흘러가는 것만 같았고 그렇게만 하면 내 불안도 떠내려갈 수 있었을 것만 같으니까. 언젠가 하루는 진성우가 잠들지 않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몇 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나는 모르겠어. 우리가 학교를 떠나 이곳으로 온 게 잘한 일일까? 얌전히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아니, 애초에 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는 있는 거야? 나는 정말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네 잘못이 아님에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 결국에는 너에게 쏟아낸다. 스스로 쥔 주먹의 손바닥이 빨개져서야 손을 풀었다, 그 때까지도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있잖아 성우야 말없이 있던 그때의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독한 놈 절대 한 마디를 안 해요. 그래 우리는 정말 끝인 거지, 우리 그때 이후로 한마디도 안 했잖아. 후회를 안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생각도 없어. 넌 또 그런 날 알고 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겠지. 나는 언제나 너의 그런 점이 짜증이 나 성우야. 배려라는 이름으로, 정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붙여가며 하는 너의 그 모든 일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진성우에게 윤하영은 생각한다, 독한놈.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 와서는 후회한다. 그게 정말 우리의 마지막인 걸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두지 않았을 거라고.
진성우! 어디가!
다시 또 긴긴 밤이 지나면 우린 돌아갈 수 없겠지
/긴긴밤, 블루 파프리카
무리에서 떠나 어딘가로 달려가던 진성우의 뒷모습은 언젠가 한번 즈음 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아.., 그래 네가 우리 집안을 뒤집어엎겠다며 나 대신 화를 내던, 스스로를 아끼라며 화내던 그때의 모습이었다. 여태껏 장난으로 나에게 화를 내는 척을 했던 네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건 나를 향한 화였고 나의 집안사람들에게 향한 화였다. 아니 그건 화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겠지. 그럼에도 나는 너를 이해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싸우고 나서 우리는 사과 한마디 없이 이 서먹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던거겠지, 끝까지.
이제 등 뒤는 막다른 길.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옆에 우리들의 버팀목은 없었고, 너희는 시체들을 막으려 필사적이었다. 나는 또 너희를 지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치...지직. 그때 갑자기 마이크의 잡음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노랫소리. 이건... 네가 좋아하던 노래였다. 몇 번이고 질리도록 네가 들려주었던 노래니까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소리였다. 어딘가로 달려가던 네가 방송장비를 찾아 방송하고 있는 것일 거라고 그 바쁜 와중에도 생각이 났다.
천일 고등학교 방송부가 마지막으로 알려 드립니다.
축제 시작 때 몇 번이고 내가 읊었던 이야기들, 그렇지만 시작이 조금은 다른. 언제나 웃으며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 방송이 너의 마지막 방송이라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천일제에서는 외부인 출입을 금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외부인을 데려오는 일들이… 없길 바랍니다. 천일 고등학교 학생회는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마이크 너머의 쾅 소리, 무언가 부서지고 넘어가는 소리. 어느샌가 휑한 주변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우리를 향해 공격하던 시체들이 어딘가로 일제히 달려가고 있었다. 분명 저들이 가는 끝에는 네가 있겠지. 그들처럼 너에게 달려가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며 뺨이라도 한 대 때려서 데려오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내가 그럴 자격이 있겠어.
꾸물거리지 말고 뛰기나 해!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이 제대로 들었다. 그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남은 너희라도 살려야 해. 급하게 비상구를 향해 아이들을 내보낸다. 마지막까지 그 누구도 남지 않게. 마지막으로 --을 내보내고 여령이와 나만 남았을 때, 나는 문 바깥으로 밀쳐졌다. 이게 무슨?이라는 생각과 문 안으로 보이는 언제나와 같이 웃는 얼굴. 언니는 여기서 죽으면 안되는 사람이잖아, 적어도 조금은 행복하고 죽어야하는거잖아. 나 그거면 돼. 나 그거면 기뻐. 언니... 나 잊지마, 알겠지? 지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사고가 따라가지 못한다. 너에게 손을 뻗을 때에는 이미 문이 닫혀버렸고, 안에서 무언가로 막는 소리가 들린다. 현실은 언제나 끔찍이도 잔혹했다. 아아... 너희를 희생시켜 살아남은 나는 의미가 있을까.
약속해 다시 올게 그때는 떠나가지 않을게
/긴긴밤, 블루 파프리카
밤하늘을 바라본다. 애석하게도 밤하늘은 맑고도 맑아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금방이라도 뒤에서 어깨를 잡으며 올 것 같은데. 성우야, 여령아 나는 너희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갑작스럽게 맞은 끝에 남은 것은 나 혼자라서...
휴대폰의 전원을 켜자 셋이서 함께 찍은 사진이 밝게 내 얼굴을 비춘다. 일에 지쳐 둘이서 내 어깨를 베고 잠들었을 때 금화가 몰래 찍어주었던 사진. 지금은 먼 일이 되어버려 이제는 사진으로만 추억해야 하는 우리들이 함께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곧 10월 24일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축제가 끝을 맞이하고, 다 같이 부스를 정리하고... 그리고 불을 붙인 초가 박힌 케이크를 든 여령이와 함께 너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줬어야 하는 어제. 나는 오늘 너희를 잃었다. 우습게도 네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노래는, 내가 너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선물로 불러주려고 하였던 노래였다.
생일 축하해, 진성우.
처음으로 일렁이는 감정을 붙잡는다, 잔잔한 물결 속에 돌이 하나 던져진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떨린다, 음을 잡기가 힘들다. 그래도 바란다. 이렇게라도 하면 너에게 닿을까. 저 밤하늘에 빈다.
나는 네가 죽어서야 너를 이해하게 돼. 그럼에도 여전히 화가 나. 그래도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그리워하는 것 정도는 해도 되겠지.
안녕,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
/긴긴밤, 블루 파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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