暠, 黎, 煒

윤하영 천악AU

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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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WTe3C_RoDo?si=Cxnv_FHdcVHPPcTh

Arcánum carmĕn
:신비로운 음악. 지천사 중 한 명, 노래로 사람들에게 신의 은총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인간을 사랑하며 천사 치고는 악마들에게도 우호적인 편. 여성체를 하고 있으며 상징하는 것은 하프.

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목소리로 은총을 전하는 자라고 불리는 천사가 하나 이곳에 있다. 백금발의 머리는 내려오는 빛에 반사되어 그가 광채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부드럽게 흩날렸다. '신비로운 음악' 과거 인간들이 그에게 멋대로 붙인 명칭이지만 본래 이름은 '윤하영', 한국 지부에서 일하는 지천사 중 한 명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1세기 한국에서 신전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니, 가장 신에게 가까울 수 있는 곳이라고는 교회밖에 없으리라. 그렇지만 한국의 어느 한 교회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그의 모습이, 화려한 귀걸이를 끼고 검은색 수트를 맞춰 입은 것이 수녀는 아닌 것 같은. 그저 일개 신도 중 한 명처럼 보이는 게 특별히 교회 내에서 무언가 일을 맡은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이 천사가 하는 일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이 인간에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가수, 배우, 연예인 등 매체에 몸을 담그고 있는 쪽이다. 유명인 중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5명 중 1명은 천사일 것이다.
/익명 천사의 일기장 中

뮤지컬 배우 윤하영. 그의 노래는 마치 신이 내려준 목소리라며 다들 이야기하고 독실한 기독교인 점인 것까지, 팬들과 배우들 사이에서는 '목소리의 천사'라고 불리곤 한다. 모두가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같은 구절을 읊으며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 유일하게 그만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본다. 언제나 인간들은 사랑스러워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중간계의 그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언제나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빛을 내는 모습이,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신을 믿는 모습이... 그냥 하찮고 작은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예배가 끝나고 문을 나서자마자 들리는 수많은 목소리에 그저 화사하게 웃으며 화답해 주고는 앞에 준비된 차에 올라탄다. 사석에서는 사인과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 것 그것은 배우 윤하영의 원칙이자 천사들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이유는 자신들의 존재를 신처럼 믿는 팬들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착각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법에 맹목적이고 신에게 충성하는 하영은 무조건 따랐고 그래서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신에게 매우 가까운 지천사,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을 줄 알았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한쪽 날개를 잃고 이후 악마로 전락할 줄.

지천사 윤하영, 신에게 반하는 죄로 너의 날개 한 쪽을 자르고 천계에서 추방한다.

숨 쉬는 기척, 침 삼키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재판장. 그 속에서 손과 목에 족쇄가 묶이고 무릎이 꿇린 윤하영이 고개를 들자 사슬들이 부딪쳐 철그럭 소리를 낸다. 한 때 비단결 같던 백금발의 머리는 푸석해지고 제 목에 있던 족쇄를 억지로 풀려고 했던 것인지 손톱은 모두 깨지고 족쇄와 손끝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저의 판결을 알리는 오랜 소꿉친구의 목소리는 죽도록 잔혹했다. 절대적으로 그도 신을 추종하는 자였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리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그런 판결에도 윤하영의 눈은 선명히 빛나고 있었으니. 이제 그는 더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 믿을 수 없으니까. 그 속에는 강인한 신념만이 남았던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스케줄을 끝내고 귀가하던 도중 갑자기 제 목에 족쇄가 채워지던 날을 떠올린다. 사유는 신이 자기 뜻을 배반하는 자가 있다고 하였으니 그자가 지천사 윤하영이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성실히 신께 기도를 드리고 실적도 좋던 자이기에 꽤 많은 천사들이 놀란 눈치였으나 그 누구도 말을 얹지 않았다. 신이 정한 일에 어찌 자신들이 말을 얹겠는가. 아무 말 없이 순순히 지하 감옥으로 끌려간 윤하영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재판이 있기 전까지 매일,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손톱으로 족쇄를 긁어 댔다. 손톱은 부서지다 못해 빠지기까지 해서 매일 아침 그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던 교도관들이 급하게 재판 전날까지 손에다가 보호구까지 끼게 할 정도였으니.

신님, 말해봐요. 제가 무얼 그리 잘못했죠? 제가 당신에게 무얼 배반했느냐 말입니다. 

판결이 끝나고 그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마자 천사들이 웅성거린다. 지금 천사직 박탈당했다고 저렇게 막 나가는 거야? 저러니 신이 자신에게 반하는 자라고 하지. 주먹을 하도 꽉 쥐어 피까지 뚝뚝 떨어지는 날개를 잘리기 직전에 발악하는 그의 모습을 비웃으며 다들 쳐다본다. 그 누구도 신이 대답해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리 비웃었다. 그도 그럴게. 신은 치품천사들이 아니라면 말을 걸더라도 답해주지 않기로, 가장 최근에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100세기 전쯤일 정도로 오래되었기에. 그렇지만 그 예상을 깨고 놀랍게도 신은 답해주었다, 단 한 마디이었지만.

너의 신념은 과거의 그와 닮았구나.

그것이 수만 번을 찾아가 기도를 하던 그에게 들려온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의 목소리였다. 

신에게 반한다는 기준은 특별히 없다. 다만 신이 그것이 자신에게 반하는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할 뿐. 이 때문에 갑자기 천사직에서 박탈되는 이들을 보고 쉽게 신을 의심하여 천사 자리에서 박탈당하는 낮은 계급의 천사들 수는 꽤 많다.
/익명 천사의 일기장 中

https://youtu.be/J0w0t4Qn6LY?si=yNsC2e_9zkK32rw9

날개가 잘려 말로 이룰 수 없는 끔찍한 고통에 눈앞이 까마득해진 이후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중간계 어딘가의 골목이었다. 허전한 제 한쪽의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을 때에는 그 누구도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밤하늘 아래였다. 본래 제 얼굴이 걸려 있어야 할 제품의 광고 속에는 다른 천사의 모습이 걸려 있었다, 분명 천사직을 박탈당했으니 중간계에서 가지고 있던 존재조차 다른 이로 메꾼 것일 거다.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기고 얼굴을 파묻는다.

내가 바란 것은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뿐인데, 그걸 위해서 뭐든 하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물기 어린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리는 와중에 야옹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든다. 새하얀 고양이가, 아마 깔끔한 것이 집 고양이인 것같이 보이는 그런 고양이가 제 앞에 앉아있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아! 여기 있었구나!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재빨리 손을 거두고 급하게 도망친다. 어깨를 부딪쳐 시선이 돌아가 언뜻 중간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붉은 머리인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지만, 어차피 스쳐 지나갈 인연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폐의 끝까지 차올라 일찍이 시린 가을바람을 가득 불어 넣고 내뱉는다. 숨을 고르며 불이 다 꺼진 한 건물 앞 유리창에 비친 저의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푸석한 머리칼, 빛나지 않는 머리 위의 링, 하나뿐인 날개, 다 찢어진 하얀 원피스... 그리고 멀쩡한 발? 무엇인가 이상했다, 이렇게 맨발로 달렸음에도 상처 하나 없을 리 없는데. 전이었다면 천사이기에 가능했다지만 자신은 외관만 천사의 모습을 유지할 뿐 모든 것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가능한 경우는 천사가 축복을 내려주었을 경우였다. 그 생각이 들자 거울 이곳저곳에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비추어보다 머리카락을 들자 뒷목에 익숙한 문장이 보였다. 잊을 리 없는 익숙한 문장이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은 마지막 제 처분을 내린 친구의 것이니까.

윤하영, 난 네 신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분은 네가 틀렸다고 하지.

진성우. 윤하영의 오랜 친구이자 천사 중에서 차천사들을 제외하고 가장 실적과 능력이 좋은 천사로 유명한 지천사이다. 그런 그가 지하감옥에 갇힌 하영에게 찾아와 하는 말이었다. 절대적인 선에 속한 그가 저를 동정할 리는 없다. 단지 그건 그가 이야기하는 우정에 속한 무엇인 가겠지. 분명 그때 몰래 저에게 새겨넣은 것일 거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보다 신을 믿는 자가 왜 이런 짓을, 걸렸다가는 저도 천사의 자리에서 박탈 당할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제 신경 쓸 일일까 마주칠 일도 없을 것인데. 그냥 호의다, 친구의 마지막 안녕을 비는. 그뿐이다. 거지 같긴.

너, 천계에서 떨어졌지? 우리랑 같이 가자, 어차피 갈 곳도 없잖아!

하루에도 수십 번 달콤한 목소리를 가지고 인간들을 나락으로 끌고 가는 날파리같은 것들이 들러붙는다. 천계에서 떨어진 천사는 대체로 악마로 전락하는데, 그 이유는 저들이 말하다시피 갈 곳이 없기에 혹은 신에게 반항하기 위해 등등 여러 가지지만 하영은 적어도 악마라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본래라면 힘이 강한 계급이 높은 악마들이 아니라면 저가 천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금은 인간에게 그저 허름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일 뿐, 악마들에게는 올곧이 날개를 잃은 처참한 천사의 모습 그대로 보이기에 이것저것 들러붙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달콤하다. 가끔은 자신도 혹하게 하니까 말이다. 천사일 적에는 천사치고는 악마들에게 우호적이었었는데 첫째,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둘째, 흥미로우니까. 셋째, 그들도 천사들처럼 인간세계에 몸을 담그고 있어 마주치는 경우가 꽤 있었으니까 익숙해지기 위해서. 그러나 지금은 우호적이기에는 쉽게 넘어갈지도 몰라 짜증이 날 뿐이었다. 가장 넘어갈 뻔했던 적은 고위 악마처럼 보이는 푸른색의 눈을 가진 이가 말을 걸었을 때이다.

신은 널 버렸어, 알잖아? 인간 사랑한다며 걔네 계약이나 해주면서 소원 이뤄줘, 그럼 걔네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된 거 아닌가. 아 귀찮게 내가 왜 너 설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벌레나 마찬가지인 거 왜 신경 쓰는지. 아차, 너도 지금 같은 상태던가~. 

푸른 눈은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확실히 그의 이야기가 홀리듯이 귀에 들어오기는 했다. 그도 꽤나 끈질겼다. 몇 번이고 신이 나를 버렸음을 암시하고 천사가 아니어도 인간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타락하는 것으로 택하면 편히 살 수 있다 그리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만두기로 했다, 뒷목에 있는 것이 조금은 신경 쓰여서. 그리고 마지막 말에 짜증이 나서. 가운뎃손가락을 올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심기에 거슬렸다가는 아무 힘도 없는 지금 정말 죽지 않을까 싶어 그저 화사하게 웃고는 자리에서 벗어난다. 

중간계로 추락한지 몇 주나 지났을까. 몇 번이나 노래하던 무대를 찾아갔고, 몇 번이나 카메라 앞에 섰던 세트장을 찾아갔다. 그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한다. 갈 곳 없이 떠도는 윤하영을 몇 주 동안이나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얼굴 곳곳에 밴드를 붙이고 머리를 묶은 악마 하나가 있었다. 하영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빌미 삼아서 함께 마계로 내려가자고 하는. 오늘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골목길 구석에 무릎을 당겨 머리를 파묻고 작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또 찾아왔다. 

혼자가 된 곳에서 뒷목을 매만진다.

신에게 반한다며 나를 이리 버릴 거면, 정말 신이 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인간들도 나를 사랑하잖아.

신념이 뒤틀려가는 것을 알면서도 붙잡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악마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신은 나를 버렸으니까. 그리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은 여러가지 아닌가. 

그래! 나도 너를 사랑하고! 아니면 저기 인간이랑 계약해버릴래~.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는 다시 파묻는다. 이제 더는 받아 줄 기력도 남지 않아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다가왔던 발소리가 사라지길래 갔나 싶었는데 다시 들려오는 발소리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것도 한 명의 발소리가 아닌 한 사람 더 있는 것 같은 발소리에 고개를 들자, 악마와 어딘가 홀린 듯한 눈을 한 인간 하나.

자 선택지를 줄게. 이 인간이랑 내가 계약한다, 아니면 네가 나를 따라간다~?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생각한다. 그를 따라가야 하나? 인간을 사랑한다 해도 악마를 택해야 하는 것인가, 결국에는 악마로 전락하게 되는 것인가. 이미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고 있지만, 알고는 있지만. 웃으면서, 그 재수 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인간과 계약하려는 그의 손목을 일어나 손을 뻗어 잡는다. 

이래서 악마들은 좋아하려고 해도 좋아할 수가 없어. 너희는 항상 그러지, 결국에는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만 두고선 말이야. 

그를 따라가기로 택한다. 악마로 전락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모두와 같은 결말이다, 천계에서 추방되고 결국에는 악마들에 꼬임에 넘어가는. 그렇지만 어차피 신은 저를 버렸고, 인간들은 사랑해주니까. 신이 없어도 인간들이 사랑해주면 그만이다 이제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갈 곳은 없고, 그 누구도 저를 기억하지 못하고, 인간과의 계약이라는 빌미의 협박인 이 선택지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를 따라가는 것뿐이니까. 

윤하영

몇 번이고 모두에게 불렸던 이름이다. 신이 주었기에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택할 만도 하였지만, 그는 버리지 않는 쪽을 택하였다. 작은 반항심이 들어서 그것뿐이다. 천계에서의 기억은 버리기로 한다 신이 저를 버린 것처럼.

천계에서 쫓겨난 천사가 악마로 전락하였음에도 여전히 천사 일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하나뿐일 것이다. 타락천사 중 이래로 가장 강한 신념을 지닌 것으로 그것은 인간친화적이지만, 위험등급으로 판단되며 루시퍼의 직속인 것이 판명되어 처리 우선순위에 속한다.
/익명 천사의 일기장 中

Smniális suávĭtas
:꿈의 향기. 루시퍼의 아래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개 한 쪽이 잘리고 머리 위의 링에서 검은색 액체가 흘러내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한때 그처럼 신을 바라던 자였지만 결국에는 같은 결말을 맞이하였다. 여성체를 하고 있으며 상징하는 것은 끊어진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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