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홀리데이
(언젠가의 크리스마스…어쩌면 오늘일지도 모르고. 시나리오 내용을 모르지만 대충 지어냈지만 잘맞는다면..! 길게썼으니 3일치 도장찍어주세요. 초롱초롱)
도시의 밤은 깊고 길어 쉽게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조명이 눈이 부시다. 환하게 밝은 밤을 거니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정한 연인, 가끔 다투는 친구, 편안한 가족, 외로이 홀로 있는 사람, 여전히 바쁘게 일을 하는 사람.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는 이들의 얼굴에는 특별하게 불리는 내일, 성탄절을 기대하는 빛이 떠올라있다. 거리는 이미 즐거운 캐럴과 반짝이는 전구들로 가득 들떠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만 그 여유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의 밤은 이제야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개중에는 낮부터 밤까지 아낌없이 일을 하고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특별한 날에는 좀 쉬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겠지만, 공무원이란 그렇다. 까라면 까야 한다. 하물며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란 더욱 그랬다. 가능하면 호출하지 말라는 글까지 남겨 뒀지만 그건 ‘미안하게 됐지만’이라는 말을 붙이게 하는 기능 외에는 효과가 없었다. 특별한 날을 위해 이번에는 나름대로 준비를 한 와타루는 내심 아쉬웠지만, 임무를 빨리 해결하면 적어도 크리스마스는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따라 아주 의욕적인 와타루의 모습에 러셀은 조금 의아했지만, 공휴일에도 일을 하는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특근수당을 떠올리곤 그럭저럭 납득했다. 물론 와타루는 제 연인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아주 억울해했을 테지만.
이게 혈전인지 천하제일흡혈귀대회인지 구분되지 않는 소란이 지나가고 난 뒤는 평화로웠다. 비록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고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아무튼 그동안의 소란에 비하면 이건 평화 그 자체였다. 그들 가운데 업혈귀들 사이에서 공포 같은 혈맹이라 하여 호러라 불리는 호조 와타루와 러셀은 그사이에 둘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비록 처음과 달리 조금 꼬질꼬질하고 상처투성이에, 곳곳에 피가 묻어있긴 했지만, 아무튼 이 정도면 양호한 상태였다. 적어도 기절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갈까? 네, 가요. 라는 간단한 대화가 오간 후 그들은 유유히 격전지였던 곳을 벗어났다.
병원에 들러 치료를 받고 나온 그들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어디엔가 나가 놀고 싶어도 그럴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의 새벽, 밤의 주민이 아닌 이들은 잠들어 있는 시각이었다. 이제는 그들의 집이 된 단독 주택은 그 앞에 작은 마당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사용하는 이들이 그들뿐이어서 자연이 준 선물이 온전히 보관되기도 했다. 마당은 간밤에 내린 눈으로 뒤덮여 온통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일출이 멀지 않았는지 천천히 밝아져 가는 밤하늘이 하얀 눈 위로 베일을 드리운 풍경은 아름다웠다.
“눈사람 만들래?”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러셀이 문득 꺼낸 말에 깨졌다.
“만들어 보신 적 있으세요? 저는 잘 못 만들거든요.”
“그냥 만들면 되는 거 아냐?”
러셀은 잠시 혈주법을 사용하면 못 만들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처럼 제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 손을 내려다보다가 슬쩍 눈 사이로 파묻었다. 차갑고 폭신했다. 서늘한 체온에 닿아 사르륵 흘러내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와타루는 옅은 미소를 짓는 러셀의 옆모습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런 걸 좋아하셨나. …귀엽다.
“우선 이렇게 작은 눈 뭉치를 만들어서, 눈 위를 굴리면서 점점 크게 만드는 거예요.”
와타루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다소 울퉁불퉁한 뭉치를 만들고 있으면, 러셀은 그 옆에서 와타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눈 뭉치를 굴렸다. 과연 인간의 속도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 크기는 삽시간에 커졌다. 어지간한 사람의 키를 넘을 기세라 잠깐 질린 기색으로 보던 와타루는 러셀을 멈춰 세웠다. 그는 왜? 하고 불만 어린 표정을 했지만 와타루의 것과 자신의 것을 비교해 보곤 그럭저럭 납득했다. 분위기를 타서 조금 신났나 보다. 러셀이 만든 눈 뭉치 위로 와타루의 작은(인간의 기준으론 컸지만) 눈 뭉치를 올려놓자 나름 눈사람 같아졌다. 크기가 문짝 하나 정도는 충분히 넘을 정도로 크긴 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위에 올라간 얼굴은 매끄러운 하단에 비해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좀 패이긴 했지만. 그들은 나뭇가지나 돌멩이 등을 주워 와 나름대로 눈사람을 장식했다. 뭔가 조금 아쉬워 눈토끼와 눈오리, 눈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들도 슬쩍 만들어 주변에 놓아두었다.
“처음 만들어보는 것 치곤 잘됐네.”
몇 번의 겨울을 같이 보냈지만 이렇게 눈놀이를 한 건 거의 처음인 기분이었다. 새삼스레 그들이 함께 보내온 시간과 많은 변화를 떠올리곤 시선을 마주하고 미소 지었다. 러셀은 와타루의 얼굴을 감싸고 자연스럽게 끌어당겨 입술을 가볍게 맞부딪혔다. 그러곤 이마를 툭 기대며 속삭였다.
“트리 장식하러 가자.”
“…알고 계셨어요?”
“진짜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와타루가 남몰래 준비하고 있던 트리를 떠올리며 그들은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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