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데이
연인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T… Trick or Treat!”
조금 더듬거리는 어린 목소리와 함께 쭉 내밀어지는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맑고 푸른 하늘, 신선한 아침의 공원의 공기와 어울리는 맑고 청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평소에는 말할 일 없는 문장을 아주 많이 연습한 듯 자신만만 표정으로 볼을 발그레 붉히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와타루를 기다리고 있었던 러셀은 난데없는 꼬마 손님의 요청에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게 뭐지?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자 오늘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의 복장이 다양했다. 유령처럼 하얀 천을 뒤집어쓴 아이, 호박 모자를 머리 위에 얹은 아이, 마녀처럼 고깔모자를 쓴 아이…. 그들의 말랑한 뺨은 이 앞의 아이같이 복숭아처럼 물들어 연신 즐거움에 들썩이고 있었다. 러셀마저도 쉽게 이들이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오늘이었던가. 약 300년 전에도 비슷한 날이 줄곧 있었지만, 봉인에서 깨어난 후의 지금에는 모두에게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은 할로윈 데이. 날짜를 세는 습관이 없는 러셀로서는 주변의 분위기를 통해 이런 이벤트를 맞이하곤 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 말은 즉, 사탕 같은 것은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 러셀의 사정을 모르는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한껏 힘을 준 까만 망토와 붉은 장식이 여기저기 달려 있는 망토는 아이와 제법 잘 어울렸다. 러셀은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낮춰 아이와 시선을 마주쳤다. 호기롭게 외쳤던 아이는 난데없이 예쁜 사람의 얼굴이 정면에 보이자 조금 부끄러운 듯 주춤, 물러났다.
“넌 뭐야?”
“Trick……… 에?”
수 없이 외웠던 문장을 반사적으로 다시 말하던 아이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고장난 듯 멈췄다. 모, 모르는 애가 사탕 달라고 해서 화난 걸까? 아이는 문득 민망하고 부끄러워져 몸을 비비 꼬다가 다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그러니까… 음,” 분장이라고 말하려던 러셀은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잠시 말을 골랐다.
“네 종족이 뭔데?”
“종족…아! 뱀파이어!”
어른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나름 상냥하게 물어보는 목소리에 금방 표정이 밝아졌다. 차려입은 옷을 자랑하듯 가슴을 쭉 내밀고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에 러셀은 픽 웃었다.
“꼬맹아, 눈 감고 3초만 세어 봐.”
“으응? 알았어요.”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눈을 꾹 감고 숫자를 셌다.
“1, 2, 3!”
“손 내밀어 봐.”
러셀의 말에 다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하얗고 작은 손이 쫙 펼쳐졌다. 그 위로 떨어지는 것은 알록달록한 포장지의 사탕이었다. 그리고 러셀은 씩 웃으며 아이에게 작게 속삭였다.
“뱀파이어는 송곳니가 길어야 해. 이렇게.”
뾰족하고 긴 러셀의 송곳니를 언뜻 보게 된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곧장 부모에게로 달려가 긴 송곳니를 사달라고 할 것같은 기세였다.
“우와아아! 이쁜 언니, 감사합니다!”
아이는 나름 예의 바르게 꾸벅 인사하고 사탕을 쥔 팔을 번쩍 들며 어디론가로 뛰어갔다. 아이는 자신이 눈을 감고 있던 3초 동안 눈앞의 어른이 어디에 갔다 왔는지, 그리고 그 언니는 사실 오빠란 것도, 진짜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알 길이 없겠지만, 첫 번째 사냥이 성공했으니까 무척 즐겁고 행복했다. 아이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뭐 하고 계셨어요?”
“오늘따라 볼만해서.”
축제를 즐기는 아이들과 그걸 지켜보는 어른들은 평소보다도 더 온화하고 즐거운 기운을 풍겼다. 그것이 퍽 나쁘지 않아 의자에 앉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러셀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아? 이게 뭐야?”
어이없는 한숨에는 이내 웃음이 스몄다. 와타루는 어울리지 않게 머리 위에 귀여운 호박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와타루는 호박을 툭 쓰다듬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쥐고 있는 것을 내밀었다.
“오다가 받았어요. 오늘따라 분장한 사람이 많네요.”
“너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이건 뭐야, 박쥐 머리띠? 어이없는 목소리로 반문하며 머리띠를 쥐고 살펴보던 러셀은 이것도요, 하고 건네지는 호박 사탕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깜찍하고 귀여운 머리띠는 제 연인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름… 귀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박쥐 머리띠를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에 툭 쓰며 말했다.
“오늘 할로윈 데이잖아.”
“…아, 그래서였군요.”
짧은 감탄사와 뒤늦게 깨달은 와타루는 할로윈 데이 같은 기념일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음에도 제법 괜찮은 날이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순순히 자신이 챙겨온 머리띠를 써 주는 러셀의 모습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넌 무슨 인간이 나보다 유행에 느려?”
와타루의 호박 머리띠를 꾸우욱-, 누르며 잔소리를 하던 러셀은 아까 아이에게 주고 남은 사탕의 껍질을 까서 와타루의 입에 쏙 넣었다.
“Trick or Treat.”
러셀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던 와타루는 입안에서 퍼져나가는 달콤함에 입을 우물거렸다. …역시 좋아해요. 러셀을 따라 미소를 짓는 와타루의 뺨은 아이처럼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요즘 할로윈 데이는 분장이 유행이야? 우리도 하러 갈까.”
“…………아, 그러실래요? 오늘은 임무도 없으니까….”
“어디다 넋을 빼놓고 있어? 오다가 옷 가게 같은 거 봤어. 가보자.”
어느 평범한 연인의 뒤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
후일담?
「러셀 님, 저도 사탕 주십시오!!! Trick or Treat입니다! 러셀 님, 저도요, 저도요!」
연신 웅웅 거리며 외치는 네페쉬를 토닥여주며 러셀은 몸을 일으켰다. 넌 입이 없잖아, 라는 냉정한 말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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