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열

3부 이후

김유이 by 김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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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면 이런 느낌일까. 본디 수면이 필요하지 않은 흡혈귀이기에 ‘꿈을 꾼다’는 현상도 희미했다. 그에게 있어 수면은 육체의 회복을 위한 휴식이었고, ‘꿈’이란 기억의 반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의식이 부유하는 감각은 러셀에게 꽤 낯선 것이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러셀은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있음을 느꼈다. 그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감정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괴로움, 자책, 후회, 걱정, 그리고 무언가의 결심.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러셀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이대로 보내면 안 돼. 그는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끝을 간신히 움직였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와타루의 손과 조금이나마 맞대기엔 충분했다.

‘가지 마.’

제 연인에게 닿을 수 있을지 모를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다시 가라앉았다.

 


 

“아, 윽…….” 뜨거워…. 시야가 흐릿하다. 용암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뜨겁고 고통이 스며든다.

러셀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제 사슬을 옭아매던 힘, 강하게 역류하던 광기, 끔찍한 고통. 그것을 끝으로 기억이 끊어졌다. 지금도 악의 가득한 광기가 잔열처럼 남아 러셀을 괴롭히고 있었다.

“러셀, 괜찮아요?”

걱정 가득한 익숙한 목소리에 러셀은 천장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겼다. 잔뜩 어두워진 낯의 어린 연인의 얼굴이 보였다. 제대로 잠도 못 잔 것처럼 초췌한 안색에 러셀은 손을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고 했다. 러셀의 손이 움찔하는 게 느껴지자 와타루는 겹쳐있던 손을 조심스럽게 쥐어 올리며 물었다.

“필요한 거 있어요?”

“…네… 얼굴….”

“얼굴이요? 이렇게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는 끊어지듯 흘러나왔다. 와타루는 드문드문 이어지는 단어를 놓치지 않고 이어모았다. 그는 러셀의 손을 잡은 채로 제 얼굴로 끌어와 뺨을 댔다. 러셀의 손이 눈가를 느리게 쓸었다.

“울지…마….”

물기는 배어나오지 않았으나 러셀의 눈에는 제 연인의 얼굴이 못내 서러워 보였다. 그 말에 와타루는 멀쩡한 척하던 표정을 되려 일그러트리고 고개를 숙였다.

“바보….”

새까만 머리카락 위로 힘없이 손을 얹으며 러셀은 작게 웃었다. 시야가 이상했다. 오른쪽 눈에서 계속되는 열기를 닮은 통증과 평소와는 다른 거리감에 그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했다. 러셀은 자신을 이 상태로 몰아넣은 포식연에게 소소한 찬사를 보내며 동시에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한다. 물론 반성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자신의 실책에 길게 자학하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러셀은 눈 하나로 끝난 것이 꽤 적은 피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의식을 잃기 전엔 ‘죽음’의 개념을 실제로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 달라진 감각에 익숙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러셀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네 얼굴, 잘 보이니까….”

이번에는 손에 쥐고 있는 게 있으니까, 괜찮다고. 그때와는 다르니까, 러셀은 진실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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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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