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우드워드

안나 조피야 소볼레프스카는 그 누구보다도 딸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2022.12.30

인종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서술은 오너의 사상과 동일하지 않음을 명기합니다.


안나 조피야 소볼레프스카는 그 누구보다도 딸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똑 닮은 검은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말썽을 부리는 법도 없는 착한 아이. 볼가에 점점이 피어난 주근깨도, 다소 낮아 콤플렉스라는 콧대도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

남편 없이 홀로 낳아 홀로 길러야 했던 자식이었다. 거기에 미안함은 존재할지언정, 원망도 미움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좋은 것만으로 감싸주고 싶었다. 하루종일 일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그렇게 지친 채로 집에 돌아오면서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딸을 생각했다. 먼저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쓸어넘겨주며, 안나는 때때로 속삭였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소중한 나의 딸.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전부 너를 위해서란다.”


폴란드계 영국인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차별과 폭력 아래 노출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안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맞서서 싸웠으나 이후 팽당한 자유 폴란드군. 어머니는 영국과의 동화에 실패한 하층계급 노동자. 기업은 그들을 싸게 부려먹고자 했고, 노동자들은 그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여겼으며, 언론에서는 그러한 적대감을 부채질해 사람들의 불만을 돌렸다. 

수많은 수식어가 그들 앞에 붙었다. 더럽고 무식한, 우리의 세금을 축내는, 우리 땅에 빌붙는, 우리의 일상을 약탈하는…. 왜 정부는 저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는가? 왜 저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가? 우리의 권리는 어디로 갔는가? 너희들은 이 땅에 필요 없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뒤에 있는 것은 돌아갈 수 없는 고국. 앞에 있는 것은 혐오와 배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폴란드를 향한 애정과 긍지라도 있었으나, 이 땅에서 나고자란 안나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뿌리, 빌어먹을 이름, 빌어먹을 가족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안나가 아닌 애나. 소볼레프스카가 아닌 우드워드.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던 폴란드어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고, 그 대신 완벽한 에스추리¹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부모에게서 벗어나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사랑하는 남편은 누가 봐도 영국인인 사람으로. 그렇게 하나씩 바꾸어 갔다. 그렇게 하나씩 지워버렸다. 그렇게 한 발짝씩 ‘나아갔다’. 

보다 완벽한 소속을 향해. 보다 ‘진짜’가 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들’과 구분되기 위해서.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세제를 탄 물에 접시를 담근다. 수세미를 들고 하나씩 그것을 문지른다.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거실에 틀어져 있는 TV 소리와 잠긴 수도꼭지에서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물 소리, 그리고 접시와 그릇들이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아, 거기에 더해 두 여자의 목소리도.

“그 애 있잖니, 메리. 그 키 크고, 틈만 나면 집에 놀러오는 분홍색 머리 남자애.”

“나비드. 지난 번에 말했잖아. 마리샴 나비드야, 걔 이름.”

“그래, 아무튼 그 애 말이다.”

아이는 접시를 닦는다. 수세미를 문지르는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하나를 수세미로 닦고, 물에서 꺼내고, 행주로 한 번 더 마무리한다. 다시 닦고, 물에서 꺼내고, 행주로 마무리하고. 

달그락, 달그락.

“그만 데려오면 안 되겠니?”

그리고 뚝. 손에 들린 접시에서 물이 떨어져 바닥을 적신다. 짧지만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시선이 마주친다. 두 쌍의 갈색 눈이 서로를 바라본다.

“왜?”

먼저 시선을 돌리는 것은 질문을 던진 쪽이다.

“좀 그렇잖아. 남자애기도 하고, ‘그런 애’랑 어울리면 밖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

“나비드는 나쁜 애 아니야.”

“알지, 엄마야 아는데. 이웃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접시를 문지르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접시가 닦이다 못해 긁히기라도 한 건지 거친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말한다. 의문과, 항의의 뜻이 담긴 어조로. 아이는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걔도 이웃이잖아.”

“메리,”

작은 한숨. 이내 TV 소리가 잦아든다. 그는 아이를 바라본다. 입을 연다. 부드러우면서도, 달래는 듯한 목소리.

“걔는 우리와 달라.”

그는 설명한다. ‘저들’과 ‘우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우리는 유럽에서 왔고, 저들은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저들이 믿는 신은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국에 속해 있다. 우리는 다르지 않다. ‘저들과 다르게’.

“너는 똑똑한 아이니까, 이해할 거라고 믿어.”

다시금 침묵이 덮친다. 아이는 접시를 향해 손을 뻗고, 그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

세제를 탄 물에 접시를 담근다. 수세미를 들고 하나씩 그것을 문지른다.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거실에 틀어져 있는 TV 소리와 잠긴 수도꼭지에서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물 소리, 그리고 접시와 그릇들이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러나 더이상 두 여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안나 조피야 소볼레프스카는 그 누구보다도 딸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소중한 그의 딸. 그는 딸에게 언제나 최고의 것을 안겨주고 싶었고, 그 딸이 어떤 누구에게도 무시받으며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딸은 영국인이다. 영국인이 되어야 했다. 보다 완벽한 소속. 더욱 ‘진짜’에 가까운 모습. 그 누구도 딸을 보며 그 출신을 생각하지 않도록, 저 피부색도 다른 것들과 같은 취급을 받지 않도록.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는, 정말이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¹영국 영어의 현대적인 변종 중 하나로, 비지역적인 영어와 남동부의 발음, 문법, 어휘가 혼합되어 있다. 템즈강과 그 하구 부근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지며, Cockneyfied RP 및 비표준 남부 영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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