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우드워드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

2023.01.13

인종과 한 부모 가정에 대한 혐오적 표현이 직접적으로 언급됩니다.

학교 폭력, 집단적 괴롭힘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자신의 성을 물려준 사람. 그렇게 소볼레프스카가 아닌 우드워드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 그러나 정작 제 곁에는 단 한 번도 실재한적이 없었던 존재. 그것이 메리 우드워드가 제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부재가 상흔을 남기는 것은 그것의 부재를 깨달을 때이다. 다시 말해서, 본래 그것이 존재해야 했으나 존재하지 않음을, 있어야 할 것이 없음을 깨달을 때, 사람은 비로소 부재를 실감한다. 그리고 부재가 고통이 되는 것은 그것이 용인받지 못할 때이다. 제게는 이상하지 않은 것이 남들에게는 기이한 것으로 비추어질 때, 자신에게는 당연한 것이 남들에게 당연하지 않을 때, 그것은 약점이 되고, 감추어야 할 수치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메리에게 아버지란 마치 발바닥에 박힌 가시와도 같았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다, 그제서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아, 맞다. 난 가시에 찔렸었지.

아, 맞다. 내게는 아버지가 ‘없구나’.


폴란드 계집애는 아버지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좋은 놀림거리였다. 그들은 메리를 밀치고, 양갈래로 땋아내린 머리를 우악스레 잡아당기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노랫말처럼 음을 붙이며, 외치고 또 외쳤다. 

폴란드 계집애는 아버지도 없대요. 

폴란드 계집애는 아버지도 없대요. 

그들이 ‘폴란드 계집애’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버지가 없는 것이 왜 문제인지 알기나 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단지 눈치챘을 뿐이다. 속삭임에서, 메리와 그의 가족에 대한 시선에서, 나도는 온갖 뒷말에서, 때로는 아이 앞에서마저 함부로 내뱉어지는 언어에서 그들은 깨닫는다. 저 아이를 보호해줄 사람은 없구나. 저 아이를 함부로 대해도 그 누구도 돕지 않겠구나. 

그러니까 저 아이는, 괴롭혀도 되는 아이구나.

괴롭힘에 이유는 없다. 그러나 괴롭힘을 받는 자는 이유를 찾는다. 메리 우드워드는 영리할지언정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는 부당함을 깨달을 머리는 있었으되 거기에 대항할 용기는 없었다. 그가 느낀 감정은 분노가 아닌 수치심이었다. 아버지의 부재가 어떤 의미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면 어떻게 되는지 실감한 때.

그것이 그에 대한 ―그의 부재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이었다.


짧게 깎은 갈색 고수머리에 그와 똑같은 색의 눈동자. 사진 속의 남자는 쑥스럽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낯간지러운 문구와 함께 적혀 있는 것은 그의 어머니, 안나의 영어식 이름이었다.

사랑해, 빌. 

그는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서라면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 흔적을 온전히 숨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미처 버리지 못한 물건들 사이에 그 이름이 있었다. 어디서는 W.Woodward라는 이름으로, 어디서는 Bill이라는 애칭으로. 한 때 메리는 이것 하나만으로 아버지의 정체를 추측하려고 하기도 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소용없음을 깨닫고 그만두었지만.

사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 얼굴을, 언제나 움직이는 모습으로만 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법 세계의 사진이란 언제나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모두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사라지고, 나타나고, 뛰어다니고, 날아오르고, 변화했으니까. 졸업 앨범에서의 사진도, 나비드가 얻어다주었던 사진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모든 것이 자리를 찾았다. 파편적인 단서들 속에서 알 수 없었던 것, 아무리 조사하고 또 조사해도 공백으로 남았던 것. 그리고, 그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나 다름없었던 사실.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는 메리 우드워드의 혈연인가?

사진이 대답했다.

‘그렇다.’ 라고.


“엄마, 내 아빠는 어디로 갔어? 나는 아빠가 없는 아이야?”

언젠가 메리 우드워드는 안나 소볼레프스카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그 날의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그가 더 이상 ‘폴란드 계집애’일 뿐만 아니라 ‘아빠 없는 아이’로도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수히 붙여졌고, 붙여질 괴롭힘의 이유에서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던 날. 

그 때 안나가 보였던 표정을 그는 기억했다. 그 얼굴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네 아빠는 그저 먼 곳에 있을 뿐이야.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메리 우드워드. 이제 그만 방으로 들어가도록 해.”

떨리는 목소리. 어린 메리는 타고난 민감함으로 알아차렸다. 안나의 분노는 그를 괴롭힌 가해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으며, 안나의 고통은 그가 마주했을 따돌림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서러운 마음이 울컥, 솟아올랐다. 그는 방으로 뛰어가 문을 세차게 닫았다. 

그 순간 보였던 것은,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어머니의 형체. 이어서 들렸던 것은 그가 듣지 못하도록 숨을 죽인 채 내뱉었던 흐느낌. 그는 자신이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단순한 ‘없음’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것은 거대한 상흔이었으며, 그렇기에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아무리 그가 궁금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사진은 여전히 그 순간에서 얼어붙은 듯 단 한 차례의 움직임도 없었다. 짧은 갈색 고수머리, 그와 똑같은 색의 눈동자, 쑥스러운 듯한 미소와, 그럼에도 애정이 한껏 담긴 시선. 그가 지난 3년간 보고 또 보았던 그 얼굴. 

윌리엄.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 분명 그 이름은 메리 우드워드가 계속해서 찾아 헤맸던 질문이었고, 그가 간절히 바랐던 해답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주어진 지금, 그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알지 못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언제나 같았다. 어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거기에 윌리엄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윌리엄.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 단 한 순간도 그의 곁에 없었던 사람. 그의 어머니를 무너지게 만든 사람. 그가 ‘아빠 없는 애’라는 소리를 듣게 한 사람.

그는 언젠가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누군가는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해버리기도 한다고.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지금이라도 알게되어서 기뻐. 앞으로는 함께 있자.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오는 그런 상투적인 말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알았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메리 우드워드. 어느 날 아버지가 나타나 모든 걸 마법처럼 해결해주길 남몰래 바랐던 메리 우드워드. 그러나 그런 메리 우드워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이럴 거였다면 조금 더 일찍 자신을 알리셨어야죠.”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는 그의 아버지였다. 좋다.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는 마법사였다. 그것도 좋다.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상관 없다. 윌리엄 티모시 우드워드의 삶은 이러했다. 그것은 그의 알 바가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존재가 아니었다. 곁에 한 번도 없었던 존재를 찾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결국 어떠한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바랐던 것은 언제나 명분이었다. 그를 향한 괴롭힘을 멈추게 만들 수 있는 명분. 그들의 말을 반박하게 할 수 있는 증거. 

그는 생각했다. 당신이 있다면 나는 ‘잡종’을 벗어날 수 있다. 한 평생 떨쳐내지 못했던 낙인 중 일부를 벗을 수 있다. 더는 나를 숨길 필요도, 언제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할 이유도 없었다. 공격받기 전에 먼저 날카로이 나 자신를 방어하지 않아도 되었다.

당신을 가족으로 인정하기만 한다면.

“메리! 이러다 열차 놓치겠어!”

“지금 가!”

그는 사진을 트렁크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걸쇠가 잠기며 찰칵 소리를 내었다. 문을 열고 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 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 지옥을 향하여. 1996년의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향하여.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진실이 있는 한, 모든 것은 결코 이전과 같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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