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집
짙은 어둠 속 푸르스름한 조명만이 옅게 깔린 공간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팔뚝에 소름이 돋을 스산함을 자아낸다. 오로지 듣는 이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일념 하에 제작된 배경음이 심장을 두드릴 듯 낮게 울렸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잔뜩 긴장해 몸을 움츠린다. 다시 뒤로 돌아가고 싶을 쯤,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면 유난히 큰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끔찍한 몰골을 한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 좁은 복도는 한 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보통은... 그렇다는 소리다.
"분장이 꽤 잘 됐네요. 기술이 좀 옛날 것 같다 쳐도."
"소재 덕 아냐? 저기 뺨에 너덜거리는 거 페이크 페어리(Fake Fairy)의 날개일 걸."
귀신... 아니, 귀신 분장을 한 '익스트림 호러 파크'의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을 앞에 두고 갑자기 토론을 벌이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뻣뻣이 서있었다. 그는 이 유령의 집에서도 손꼽히게 무섭다고 소문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지만, 그 자신감이 오늘 똑 떨어지고 말았다.
분명 혼비백산 도망갔어야 할 두 손님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살점이 떨어져나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분장을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비명은커녕 제법이라는 듯 감탄하는게 아닌가? 오히려 아르바이트생이 뻘쭘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연기를 그만두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 죄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 배희신은 아르바이트생이 얼굴에 칠갑한 가짜 피의 정체를 궁금해하기 바빴고 여자, 은주아는 작게 하품을 했다. 이럴거면 대체 여기는 왜 들어온거야?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직접 내뱉을 깡이 없었던 아르바이트생만 불쌍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진짜 귀신의 소행을 앞에 두고도 귀신을 목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언커먼들에게 가짜가 통해야 말이지. 은주아는 여전히 아르바이트생의 분장을 보며 소재로 쓰인 것이 페이크 페어리의 날개인지 삼각뿔뱀의 허물인지 고민하는 배희신의 옆구리를 툭 쳤다.
"이만 가요. 다른 손님들 오겠네."
"아, 그런가."
배희신은 조금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저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인가? 은주아는 고개를 절레 내젓고 아르바이트생을 보았다.
"미안하게 됐어요."
"아, 아닙니다. 살펴가세요, 손님."
미안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아르바이트생은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은주아도 마음에 없는 소리를 금세 흘려버렸을 따름이다.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쩔쩔매는 아르바이트생을 흘끔거린 은주아가 배희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좀 무서운 척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왜 나한테 그래? 연기라면 아가씨가 더 전문이잖아."
"놀러와서까지 일하라는 소리예요?"
"말 한 번 잘 하는구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나?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걸음을 옮기려던 배희신은 문득 멈춰섰다. 그리고는 은주아의 등 뒤로 돌아서더니 그의 옷깃을 두 손에 움켜잡고는 온 몸을 말아버릴 듯 어깨와 고개를 푹 숙엿다. 한순간 휘청인 은주아가 짜증내려던 그때 배희신이 입을 연다.
"아이고 무섭다. 아이고, 얼른 나가야겠네. 빨리 앞으로 좀 가봐, 아가씨. 나 앞을 못보겠어."
구글에서 돌리는 AI의 음성도 이것보다는 자연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은주아는 하려던 말도 잊고 벙찐 얼굴로 허공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배희신이 옷을 붙잡고 있는 바람에 그를 볼 수는 없었다.
"...허? 지금 뭐해요?"
"무서운 척 하라며. 보통 이럴 땐 귀신이 나올까봐 눈을 감고 싶지만 일단 여기서 나가기는 해야겠으니 앞장 선 친구의 등에 게딱지마냥 달라붙어서 뛰어가는게 국룰이지."
"그 묘하게 디테일한게 기분 나쁜데요. 그보다 무거우니까 얼른 떨어져요."
그 커다란 덩치로 은주아의 뒤에 숨어봤자 가려지는 것 하나 없었지만, 마치 은주아의 몸이 더없는 방패인 양 앞을 막는 꼬라지는 돈주고도 못볼 광경이다. 그 광경을 아르바이트생 단 한 명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르바이트생은 혼미한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제 목에 걸린 수당을 떠올리고는 애써 눈을 부릅떴다.
"저, 손님... 얼른 다음 루트로 이동해주셔야..."
"아, 그렇다잖아요!"
"알았다, 알았어. 나 참. 말을 잘 들어도 뭐라 해."
투덜거리는 배희신의 종아리를 가볍게 걷어찬 은주아가 빠르게 걸어나가자 배희신이 그 뒤를 어슬렁어슬렁 뒤따랐다. 그리고 마음에 상처를 잔뜩 입은 귀신의 귀곡성이 그날따라 더욱 구슬펐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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