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신주아

비오는 날 문득

로나OC by 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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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아가 열린 문 밖으로 세찬 빗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는게 아니라 양동이째로 쏟아붓는 것처럼 매섭다. 문이 사라지자 소리가 뚝 끊겨 대장간은 다시금 고요해진다. 그가 올 것을 알고 미리 음료를 골라 빼둔 배희신은 차게 식은 병을 건넸다.

"웬일로 이 시간에 온다 했더니."

"비가 오니까 움직이기 귀찮더라고요. 좀 그치면 갈게요."

익숙하게 공간을 가로질러 소파로 향한 은주아는 털썩 내려앉아 병뚜껑을 땄다. 그 모양을 가만 지켜보던 배희신은 한쪽 빈 벽에 둥그런 창문을 만든다. 눈꺼풀이 열리듯 투명한 유리로 변한 벽 너머로 낮치고는 흐리다못해 어두운 하늘과 세찬 비바람이 보였다. 조용하던 대장간은 금세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젖은 유리창을 가만 들여다보던 배희신은 고개를 돌린다. 목이 탔는지 병을 단숨에 반쯤 비우는 은주아가 있다. 창 밖이 번쩍이며 번개가 내리꽂힌 후, 뒤늦게 천둥소리가 우르릉 찾아왔다. 배희신은 갑자기 수런거리기 시작한 속이 천둥 탓이 아님을 안다.

조금 더 일찍이. 그것은 문이 열린 순간부터.

"남편한테 데리러 오라 하지?"

질문은 충동적이었다. 치기어린 시절에 부렸던 괜한 심술과도 같은 것이다. 목소리는 다를바 없이 나직했고, 시선은 어느샌가 다시 창밖을 향했으므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은주아는 배희신이 그런 마음으로 말을 꺼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할테니. 은주아는 남은 액체가 담긴 병을 빙빙 흔들며 말한다.

"헤어진지가 언젠데."

"벌써?"

"이만하면 길었죠."

뭘 더 바라. 은주아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배희신은 어두운 창에 비친 흐린 모습을 흘끔 바라본다.

얄팍한 감정은 외줄에 올라 탄 광대처럼 위태롭고 견디지 못하면 사소한 어긋남에도 떨어지는 법이다. 그 자신이 그런 형태를 바랐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능한 발레리나인 은주아가 쉽사리 떨어질리 없으니 휘청여 추락하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그렇게, 그가 아는 한 은주아의 인연은 느닷없고 짧았으며 이별은 쉽게도 찾아왔다.

"다음 결혼은 언제 하려고."

마치 당장 내일의 산책시간을 정하는 듯하다. 은주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듯 가늠하고, 흐르는 침음은 가볍다. 배희신은 창을 등진 채 기대어 서 팔짱을 꼈다.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은 행태에 은주아는 눈을 끔뻑인다.

"진짜 궁금한 거였어요?"

"그렇다면?"

"아직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당장 선이라도 봐?"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하는 양 웃음기 어린 얼굴이 조금 얄밉다. 그 자그마한 입에서 흘러나오는 결혼은 마냥 성스럽지 않고 부부라는 단어는 살얼음보다도 쉽게 갈라졌다. 은주아에게 그토록 쉬운 것이,

"그 다음 거. 나랑은 안돼?"

이쪽이랑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번쩍, 번개가 내리친다. 한순간 대장간을 환히 밝힌 빛이 사라지자 자신이 들은 게 맞냐고 묻는 눈초리가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르릉, 천둥이 울었다. 배희신의 말은 천둥보다도 일렀으므로, 잘못 들었을리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소란하다. 배희신은 뭐가 문제냐는 듯 태평한 얼굴로 느슨히 고개를 기울였다. 맺혀 고인 빗방울이 유리창 위로 미끄러지며, 대충 묶어내린 머리가닥이 흘러내렸다. 교묘하게 가려진 입꼬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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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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