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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EJ (4)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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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는 맥도날드의 키오스크 앞에서 고전 중이었다.

언제부턴가 온갖 곳에 설치된 키오스크라는 녀석은 기기마다 감도가 죄 달랐다. 특히나 맥도날드의 키오스크는 하나같이 감도가 끔찍하다. 터치 한 번 하는데에 손가락에 힘을 이렇게 주어야 한다니. 이걸 만든 녀석은 설치 전에 테스트라는 걸 해 보긴 했는지 의심스럽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화는 열심히 햄버거 세트 두 개를 포장주문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매장 안에 사람이 좀 있다. 비어있는 창가석에 대충 앉아 제 번호를 기다린다. 주차해둔 차가 잘 보이는 위치다. 선팅이 되어있어 내부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일단 잘 있다는 게 확인만 되어도 안심이 된다.

도진은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 맥드라이브가 되지 않는 매장인 것이다.

점심 약속은 물건너갔구만……

하고 멍하니 머릿속으로 중얼대면서도, 도화는 착실하게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는다. 메뉴가 준비되었다고 알리는 전광판에는 이제야 제 번호보다 3이 앞선 숫자가 올라왔다.

첫 번째. 동네 산책 겸 서점 방문. 두 번째. 작가 양반의 대리운전기사 노릇. 세 번째. 윤서천과의 갑작스러운 만남. 네 번째. 맥도날드.

맥도날드가 그나마 평화로운 사건이긴 하다. 또, 맛도 있다.

도화의 몫은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세트. 도진은 평범하게 빅맥을 원했다. 아무리 그래도 콜라는 마셔야 하지 않아? 라는 도화의 권유에 빅맥 세트로 업그레이드 된 거지만.

도진은 분명 차를 빌려준 값으로 점심을 사기로 약속했다. 아니, 그 약속을 했던 때의 도진은 분명 도진이라기엔 애매한 상태였지만, 일단 도화는 약속을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격이 애매해도 약속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효력이 있지 않나.

실제로 약속에서 돌아온 도진은 점심을 사려고도 했다. 문제는 도화가 차에 시동을 걸고 악셀을 밟아 가산을 빠져나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는 거다. 아무리 도화라도 푹 젖은 얼굴의 동년배 남자와 단둘이 식당 안으로 들어갈 배짱은 없었다. 도진도 그걸 원하지는 않아 보였고.

그래서 도화는 근처의 맥도날드에 들렀다. 차 안에서 먹기에는 햄버거만한 게 또 없으니까. 아쉽게도 맥드라이브는 없는 지점이었다.

전광판에서 익숙한 번호가 반짝였다. 카운터에서 묵직한 종이 봉투를 픽업한 후 자차로 돌아간다. 운전석의 문을 여니 여전히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울어?”

원통형으로 포장된 빅맥을 조수석의 도진에게 건넨다. 눈이 발갛게 충혈된 도진은 잠시 머뭇대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빅맥을 손에 들었다. 들기만 했다. 포장을 벗길 생각은 없는 건가.

도화라고 연애 사정에 밝은 건 또 아니다. 아마 비슷한 나잇대의 이들보다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남자를 좋아하고, 또 일이 바쁘기 때문에, 여태껏 깊은 관계를 이어나갔던 이가 솔직히 말해 손에 꼽는다.

그래서 도화는 위로의 말을 고르는 데에 다소 애를 먹었다. 일회용 컵에 일회용 빨대를 꽂아 콜라를 한 모금 마시는 정도의 인위적인 뜸이 필요했다.

도진은 여전히 움직임이 느리다. 햄버거를 봉제 인형으로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여전히 포장을 뜯지 않고 그저 손에 들고나 있다.

"괜찮아요?"

몸이 가볍게 움찔댔다. 그제야 이쪽으로 시선을 슬쩍 돌려준다. 벌건 눈으로 무언가 우물쭈물 말을 하려 들기에, 도화는 잠시 기다려 본다.

"저, 그, 어, 어떻게......"

"응?"

"대화를......"

"아, 난 또 뭐라고. 바지 왼쪽 주머니 뒤져봐요."

말은 잘 듣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콩알보다 조금 큰 크기의 도청기를 찾기까지 약 삼 초.

"작가님이 하도 불안해하니까 대처를 좀 하고 있었지."

도진은 한순간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내 글로브박스 위편에 작달막한 장치를 조심히 올려두었다.

햄버거를 먼저 베어물기 시작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도화였다. 빅맥보다 빵은 한 장 덜하지만 베이컨과 칠리 소스의 궁합이 좋다. 실은, 한 끼로 먹기엔 이젠 좀 달다. 삼십 대까지만 해도 이런 감상은 크게 가진 적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긴 먹었나.

도화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햄버거를 반 쯤 먹어치운 후에야 도진은 주섬주섬 빅맥의 포장지를 열었다. 몇 년 전에 갑자기 맥런치가 사라진 뒤로는 맥도날드에 자주 가지 않게 되었었다는 투정을 하고 있었을 즈음의 일이다.

"그런데 또 얼마 전부터 다시 생겼더라고. 우리 동네에는 맥도날드가 없어서 아쉬워."

갓 튀긴 감이 있는 감자튀김을 몇 개 집어먹었다. 곁눈질로 도진을 살피니, 아까보다는 그나마 표정이 나아있다. 빅맥을 한 입 먹는 것까지 확인하고 도화는 시선을 돌린다.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맥도날드는 없어도 시내에 롯데리아는 있었지? 롯데리아 정도만 되어도 솔직히 만족해. 버거킹은 바라지도 않아......

배를 채우면 사람은 경계라고 할까, 마음의 벽을 어느 정도 낮추는 경향이 있다.

도진은 빅맥의 삼 분의 일 가량을 해치운 후에야 겨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화는 대충 흘려듣는 모양새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러니까, 이대림이라는 남자는 도진의 직전 애인이었다. 사이비 종교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했다.

"아니, 어쩌다가 사이비 같은 데에 들어갔어."

맞장구치는 모양새로 슬쩍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라는 것이, 그 때의 저는 그런 곳에라도 발을 붙이지 않으면 금방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다.

도진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다. 고등학생 시절에 있었던 집단 따돌림이 일차적인 원인이었고, 그 뒤로 발생한 사촌 형과의 트러블이 부차적인 원인이었다. 솔직히, 정신이야 날 때부터 유약했다. 그러니 두 사건은 일종의 기폭제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만성 정신증의 기폭제.

성인이 되고 한참을 다섯 살 터울의 형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도진이 스물 일곱이 되던 해에 형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했다. 아무리 형제라고는 하지만 형의 미래까지 자신이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도진은 인생 첫 독립을 결심한다. 유약한 동생을 한참 염려하며 살았던 형도 화색이 되어 도와줬다고 한다.

스물 일곱. 도진의 정신적인 병세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던 때다. 무려, 근처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했다. 사촌 형과의 관계도 조금이지만 가까웠던 시기였다. 얼굴을 보아도 미간을 찡그리지 않을 시기였다.

그렇게 도진은 잠시 독립했다.

도진은 그 이후 삼 년 간 폐쇄병동을 전전하게 된다.

그 때의 기억은 애매하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자꾸만 자신을 저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 바깥의 광경이 어떤 때는 매캐한 도시의 낮이었고, 어떤 때는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시골의 밤이었고, 또 어떤 때는 창살이 얼굴을 가로막았다. 가끔은 노끈이 목에 걸렸다. 벨트가 목에 걸렸다. 전선줄이 목에 걸렸다.

길고 긴 천 일 동안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도진은 그렇게만 이야기했다.

"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샛길로 빠졌던 이야기를 되돌린다.

사이비 종교에 입교한 건 서른 두 살 때의 일이다. 병동을 나와서 이 년은 그럭저럭 사람처럼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약의 효과라는 것도 있고, 치료의 효과라는 것도 나름 있었다. 무엇보다 결혼해선 애도 생긴 형이 매일같이 얼굴을 보러 왔다. 형에게 미안해서라도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던 거다.

하지만 이 년을 넘기지는 못했다. 도진의 정신 상태는 또다시 비탈길로 굴러떨어진다.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몇 년에 걸쳐 정상의 봉우리에 올려두면 금세 비정상의 협곡으로 빠져들고 만다. 시지프스는 신을 농락했다는 죄목이라도 있지만, 자신에게는 당최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살고야 마는 건가. 서른 두 살의 도진은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이가 두 사람의 사이비 포교인이다.

도진은 그 길로 사이비 종교인이 된다. 허나 그들의 신앙을 진지하게 믿고 있지는 않았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것이 온다면 자신은 무얼 믿어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기묘한 믿음이 그에게는 깊게 뿌리박혀 있었으니까.

서론이 길었다. 도진은 그곳에서 이대림을 만난다. 

안경도 쓰지 않고 가르마도 오대오였던 대림이 그에게 접근했다. 대림은 언변이 제법 좋았다. 도진과 같이 사회에서 튕겨나간 이도 '말'로써 쉽게 포용하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도진은 대림에게 모종의 이끌림을 느꼈다. 별 것도 아닌 자신에게 이 정도로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이니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끌림이 관심인지, 애정인지, 신앙인지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대림은 분별하기 어려운 이끌림을 애정이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명명했다.

도진은 대림의 주장을 분별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뒤로 사 년을 만났다.

어느 순간 친족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대림의 영향이었다. 그 사람들은 도진이 네 마음도 모르고 그저 사이비 종교에 들어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야단치는 나쁜 사람들이라 했다. 피가 이어진 게 무슨 상관이니. 도진이 너랑 마음이 이어져 있지 않은데. 그러니 너를 이해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연락 하나 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연을 끊어야 네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맞는 말 같았다. 서서히 형의 연락도 사촌 형의 연락도 받지 않게 되었다. 가끔은 형과 사촌 형이 집 대문을 두드리곤 했는데, 열지 않고 있으면 왜 비밀번호를 바꿨냐는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문 저편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한 번은 경찰이 왔었다. 나는 괜찮은데 형들이 자꾸 들어오려고 한다는 상황 설명을 했다. 경찰은 맥락을 살피지 않고 그것으로 납득해주었다. 귀찮은 건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당시의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 년에 걸쳐 도진의 인간관계를 자신 한 명으로만 한정해 둔 후, 대림은 대뜸 해외 출장 건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당장 내일모레 출국해야 해. 아마 몇 년은 있을 것 같은데. 아쉽지만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아.

그 이후의 기억이 역시 모호하다. 도진은 이야기했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가산동에 있던 자신의 집을 처분했다. 그리고 그 동네를 떠나 새롭게 출발할 장소를 모색했다. 서울에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좀 멀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는 안 된다. 그곳은 언어가 다르다. 다른 세계에 온 기분이 들 거다. 그렇다면 너는 완전한 이방인이 될 테니, 더더욱 생명줄을 놓고 싶어질 거다.

너는 살기 싫을지 몰라도 나는 살고 싶거든.

목소리가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서 도진은 새 거주지를 모색했다. 끝끝내 괜찮은 매물을 찾아냈다.

그것이, 실패한 도시의 외딴 아파트였다.

다음 날 아침. 도화는 평소와 같이 아침 러닝을 하고 있었다. 초여름이라지만 벌써부터 햇빛이 사납다. 아침인데도 빠르게 올라가는 기온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오르막을 거슬러오른다. 미장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편의점은 이미 문을 열었다. 서점은, 이제 막 문을 열고 있다. 도화는 그 앞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유리문의 잠금을 풀고 있던 현이 의아한 얼굴로 도화를 바라본다.

"안녕하세요?"

이건 의외로 현의 인사.

"어젠 낮부터 어딜 다녀오셨어요?"

의외이지 않은 현의 신변잡기.

도화와 도진이 살고 있는 외딴 아파트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점 앞을 지나게 된다. 아무래도, 이 젊은 사장은 대낮부터 시내 쪽으로 굴러가는 도화의 새빨간 소형차를 본 듯 싶었다.

"작가님이랑 데이트."

"네?"

"불륜 조사도 좀 했지."

"바쁘셨네요. 그런 것치곤 어제도 방송 잘만 하시던데."

스트리머 백도화의 최근 방송 주제는 다름아닌 고전 게임이다. 한창 오락실에 다녔을 시절에 자주 했던 횡스크롤 슈팅 게임을 원 코인으로 클리어하는 챌린지를 하고 있다. 성공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건 아니지만, 시도하는 과정에서 돈이 꽤 들어오는 편이다.

도화는 대답은 않고, 잠금이 풀린 서점 안으로 대뜸 들어가기나 한다. 현이 뒤따랐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윗층의 거주 공간에 있는 걸까.

전등이 켜진다. 현이 스위치를 켠 모양이다. 고즈넉한 인테리어의 서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윤서천이 일본에서 유학을 했었다며."

"갑자기요?"

"뭐 들은 거 있어?"

"지도 교수가 죽어서 한국으로 왔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자세히는 몰라?"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갑자기 걔는 왜요?"

"어제 만났거든."

"어제 되게 많은 일을 하셨네요."

"응, 어쩌다 보니."

현은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카운터에 앉는다. 에어컨과 포스기를 켠다. 그리곤, 오늘의 첫 손님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딱히 손님에게 보일만한 시선은 아니다. 도화를 손님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도화는 수백 권의 책이 얌전히 진열된 평대를 힐긋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해 줄 얘기가 있어."

이름 모를 작곡가의 제목 모를 클래식이 어디선가 흘러나왔다.

강상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오신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얼굴을 보자는 요지의 메시지였다. 내가 귀국한 걸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생각하고 있으니 부하 직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아, 최근에 강상호라는 분이 왔다 가셨어요. 소장님이랑 연락이 안 되어서 근처에 온 김에 들러봤다고 하시던데요."

내가 이 회사를 차렸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연락할게요. 고마워요."

아니, 곰곰히 생각해 보니 출국하기 이전에 그를 만났던 것도 같다.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샘플 분석 업무를 합니다. 형사님도 비밀스럽게 뭔가 분석 맡길 일이 있으시면 연락주시죠. 그런 영업용 멘트를 곁들였던 것도 같고. 나이가 드니 자꾸만 깜빡깜빡해서 큰일이다.

그와는 크게 나눌 말이 없다. 몇 년 전까지 그가 주도했던 살인 게임은 잠시 중단 상태다. 눈치 빠른 동료 형사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라고 했던가.

내가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게 삼 년 전이었나......

대림은 생각한다. 삼 년 전의 출제를. 완전히 실패하고만 그 출제를.

상호에게는 오늘 밤에 시간이 괜찮냐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작은 말풍선에 OK라는 두 글자만이 달랑 적혀있었다.

"이대림 씨! 귀국했으면 당장 연락을 줬어야지."

반팔 와이셔츠 차림의 상호가 장지를 밀고 룸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보아도 동작이 힘찬 면이 있다. 팔뚝에 덕지덕지 붙은 근육의 탓인지도 모른다.

글쎄, 초여름이라고 저녁 바람도 뜨끈하네. 그런가요? 이 정도면 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은 좀 더 덥지? 시시껄렁한 잡담을 대충대충 이어가고 있으니 종업원이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밑반찬과 물병과 잡다한 식기가 금방 차려진다. 주문은 일찍이 마쳐두었다. 종업원이 장지를 닫고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나간다.

"어째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여. 일본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대림은 살짝 놀란다. 그러한 기색은 힘내어 숨겨 본다.

"하하, 아뇨. 귀국하고 이것저것 인수인계하느라 바빴어요."

귀국하자마자 이전 애인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못 하지.

"아, 맞아. 형사님. 범궤관이라고 아세요?"

재빠르게 주제를 바꾸어본다. 범궤관이라면, 그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법한 소재다. 아니나다를까 상호는 올빼미 같은 두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 대림을 바라본다.

"물론 알고 있지요. 산 속의 그 범죄 연구소 말이지? 최근에 범죄 세미나 모집을 했던...... 설마?"

"그쪽에도 참가 신청을 넣느라 더 바빴어요."

"뭐어!"

상호의 외마디 감탄과 함께 다시 장지가 열렸다. 종업원이 조금 놀란 눈치이기에, 상호는 머쓱한 모양새로 몸을 물린다. 해산물로 이루어진 전채 요리 몇 가지를 늘어놓고, 종업원은 다시 복도 너머로 사라진다.

"......그 범궤관에 가는 거예요?"

목소리가 한 층 작아졌다.

"참가가 허가된다면 가게 되겠죠."

"이야, 이거 부럽네요. 실은 나도 가고 싶었어요. 도무지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했지만요."

"형사님 몫까지 듣고 올게요."

잠시 음식을 맛보는 시간. 평범하게 평이 좋은 일식집만큼의 퍼포먼스다. 광어 초밥을 우물거리고 있으니 맞은 편의 상호가 대뜸 물음을 던졌다.

"서도진 씨였나?"

샤리를 잘못 삼킬 뻔했다.

곧바로 시선을 드는 건 하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림은 부러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흰자의 비중이 조금 높은 상호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그렇지? 이대림 씨가 문제로 내려고 했던 그 사람이지?"

"네, 맞습니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씹는다. 회쳐진 광어의 쫄깃한 식감을 느긋하게 즐겨본다. 혀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횟감의 부들부들한 감촉이 오늘따라 섬뜩하다.

"얼마 전인가 만난 적이 있어요. 친구가 사건에 휘말려서 많이 다쳤는데, 옆에서 되게 슬퍼하고 있더라고."

"아, 그래요? 무슨 사건이었길래."

"뭐랄까...... 깡패한테 잘못 걸렸었어."

상호는 그렇게 말하고 큭큭 웃었다. 놓았던 젓가락을 다시 든다. 정말로 지나가다가 떠오른 화제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상호는 뒤이어 말한다.

"삼 년 전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볼 생각 없어요?"

대림은 결국 젓가락을 슬쩍 내려두었다.

"글쎄요. 도진이로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겠지만, 또 모르는 일이죠. 다른 사람을 꾀어서 성공시킬 수 있을지도요."

"서도진 씨는 이대림 씨에게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잖아요."

소스가 묻은 입술을 쓱 핥아낸다. 그 모습이 꼭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도 같아서, 대림은 불길함을 느낀다.

"난 항상 궁금했어요. 이대림 씨는 한 사람의 신자를 만들고 싶은 신님 아니었습니까."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너는 공의존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갈했던, 그 남자.

도진이를 품에 안고 그런 말을 했던......

"그런데 왜 항상 마지막에는 자신이 어여삐 키운 신자를 박살내어 버릴까."

"하하."

"이대림 씨는 악한 신이기 때문에? 파멸이라는 것이, 이대림 씨라는 악신을 믿는 신자에게 응당 내려질 보답이라서?"

더 이상 두 사람의 젓가락은 움직이지 않는다.

"솔직히 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봐요."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이대림 씨 당신도 망가질 겁니다. 신자가 없는 신은 과연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애초에, 신자가 없는 신이라는 게 존재는 할 수 있을까요?

상호는 두 팔꿈치를 테이블에 댄다. 두 손가락을 엮는다. 이어진 손가락 위로, 벌써부터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턱을 올려놓는다.

"이대림 씨. 나는 당신을 오래 보고 싶어."

"제가 일본에서도 그러고 왔다는 걸 아시는 모양이네요."

"그럼. 결별로 인한 비관 자살이 어디 흔한가."

"흔하지 않나?"

"당장 서도진 씨만 해도 그러지 않았잖아요."

"그 친구 이야기는......"

문득 대림은 깨닫는다.

테이블 아래로 내린 왼손을 꾸욱 쥐고 있다.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킨다.

이완.

손가락을 천천히 펴낸다.

페이스에 완전히 감겼다.

십 년 전의 나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실없는 감상이 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아니, 도진이만 확실히 죽었어도......

이러지 않았을 거다.

그 애는, 나의 역린이다.

그런건가......

대림은 한 번 더 숨을 들이킨다.

심박수가 잦아드는 걸 느낀다.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천천히 한 자 한 자 내뱉는다.

올빼미 같은 눈으로 대림을 빤히 바라보던 상호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게임을 재개하지 않을래요?"

장지가 열렸다. 메인 메뉴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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