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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주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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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오두막에 홀로 살던 남자는 어느 날 백사장으로 밀려온 이상한 물건을 발견한다. 미역 줄기도 찢어진 해파리도 아닌 그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목 아랫부분은 없다. 둥그런 머리통만이 덩그러니 모래에 묻힌 채 밀려오는 파도를 맞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남자는 잘린 머리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가다가 멀어지다가를 반복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과일이 썩은 듯한 달큰한 냄새가 확 끼쳤고 몇 발짝 멀어지면 뒷꿈치에 조개껍데기가 밟혀 자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런 수 번의 망설임 끝에, 새하얀 파도가 잘린 머리를 바닷속으로 끌고 가기 직전에, 남자는 그것을 눈앞에 둘 마음을 먹었다.

모르는 사람의 머리였다.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칼은 검었고 눈동자 역시 검었다. 파도를 맞는 동안 바다의 빛이 물든 건지 눈동자는 이따금 검푸른색으로 번쩍이기도 했다. 남자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곤, 머리를 자신의 오두막으로 가져갔다.

오두막 안, 창가 옆 작은 테이블에 남자는 머리를 올려두었다. 따스한 바닷가의 햇살이 머리의 콧등에 닿았다. 눈을 전부 감지도 못한 머리에 찬란한 햇살이 내리쬔다. 바닷속에 잠겨 한참 겪어보지 못했던 온기 탓이었을까. 머리는 반쯤 감겼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속눈썹 밑에 숨겨져 있었던 검푸른 눈동자가 완연히 드러났다. 심해를 닮은 눈동자는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장본인을 찾는 듯했다.

겁에 질린 남자는 테이블 앞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쳤다.

꿈틀거리던 푸른 눈동자가 한 곳에 붙박혔다.

머리는 남자를 보고 시익 웃었다.

어느 날 연락 하나 없이 돌연 출판사에 도착한 원고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닷가에 떠밀려 온 잘린 머리를 주운 남자. 머리를 자신의 거처로 가져가 바라보고 있자, 분명 생을 다했을 터인 머리는 눈을 번쩍 뜬다. 기겁한 남자에게 머리는 자신을 한때 탐정이었던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머리가 몸을 지니고 있었을 때 마주했던 괴상한 사건들과 그 해결을 늘어놓는 사이 남자는 머리에게 완전히 매료된다.

살아 있는 잘린 머리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는 서술자인 남자의 인지 하에 현실로 탈바꿈되고 만다. 남자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머리를 앞에 두고 밤낮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혹은 한 사람과 하나의 머리는) 이내 돈독한 관계가 되고, 한때 우울증을 앓아 홀로 사는 신세가 되었던 남자는 머리의 격려로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지만…….

편집자 윤필규는 앉은 자리에서 그 원고를 전부 읽었다.

모종의 이유로 본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필규는 대학 시절의 연줄로 소규모 출판사에 취업했다. 소규모라고 하기에도 뭐한 것이, 실상 출판사의 사장인 김영수 외의 사원은 필규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1인 출판사로 자기개발서나 교양서적을 내며 어찌어찌 생업을 이어가던 영수는 필규의 퇴사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 중 하나였다. 마침 일이 많아져서 사람을 하나 고용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검증된’ 유능한 인재인 네가 와 주면 좋을 것 같다. 당시 직장에서의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던 필규는 차라리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 선배인 영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의 작은 출판사로 출근을 하기 시작한 게 겨우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동안 필규는 영수에게서 기본적인 업무를 배웠다. 1인 출판사라고 해서 배울 게 적은 건 아니었다. 필규는 출판이 아닌 아예 다른 업계에서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야만 했다……. 그 인수인계 프로토콜에 투고된 소설 원고를 읽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수의 출판사는 이제껏 소설을 출판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 주 전, 출판사 메일로 괴상한 제목의 투고가 들어왔다. 소설 투고였다. 마침 그 때 영수는 외근 일이 있어 투고를 읽기에는 무척이나 바빴다. 그는 오피스에 남은 필규 앞으로 투고를 전달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소설 투고가 왔네. 요즘 이런 사람들 많아. 영세 출판사면 뭘 내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일단 자기 원고를 보내 보는 사람들. 왜 그러는지 몰라. 보내주신 원고 잘 읽어봤지만 우리 출판사는 소설을 안 낸다고 완곡하게 거절해야 하니깐, 대충 훑어보고 내용만 좀 전달해 줘.

오피스에서 할 일 없이 인터넷 서점의 주간 순위를 확인하던 필규는 전달된 메일에 첨부된 원고를 확인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전부 읽었다. 서식 하나 맞추지 않은, 들여쓰기조차 하지 않은 한글 문서에서 눈을 떼자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문장은 분명 투박한 맛이 있다. 소설 창작을 전문적으로 배워보지 않은 티가 났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잘린 머리라는 소재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남자와 머리의 대화는 철저하게 환상소설의 영역 같기도 했고 어떤 측면으로는 셜록 홈즈와 같은 미스터리의 형상을 띠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대화는 전혀 어렵지 않았으며 필규와 같은 평범한 수준의 독자조차 소설 안으로 빠져들 수 있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독자가 한창 흑과 백의 자간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불현듯 다가오는 결말이랄 것이…….

필규는 그 직후 영수에게 연락해 당장 이 소설을 출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소설 출간은 역시 쉽지 않았다. 아니, 책을 제작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자기개발서도 교양 서적도 책이니 말이다. 기본적인 틀은 모두 익히고 있는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건 글을 쓴 작가와의 연락이었다.

그는 투고한 원고의 가제 아래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두긴 했다. 그러나 연락은 받지 않았다. 문자에도 답신이 없고, 이메일은 열지 않은 채 며칠을 두었다. 삼 일 정도 그의 연락을 기다린 필규는 참다 못해 그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필규는 짙은 눈썹을 찌푸린 채 의자에 등을 푹 기댔다.

필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삼 일에 한 번은 꼭 연락을 남겼다. 만약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 답신이 없으면 그때는 정말로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그에게서 답신이 올 거라는 확신이 필규에게는 또한 있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는 건 자신의 글이 빛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존재했다는 거니까.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언젠가는 답신을 줄 것이다…….

필규의 믿음은 데드라인 이틀 전에 빛을 보았다. 처음으로 그가 답신을 남긴 것이다. 이메일도, 전화도 아닌 메시지를 이용해서.

감사합니다

미팅은 언제가 좋으실까요 라는 메시지에 대한 답으로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필규는 일단 전화를 걸었다. 길고 긴 착신음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멘트로 넘어가기 직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어딘가 겁에 질린 기색이 있는 남성의 목소리였다. 나이는 짐작되지 않지만 소심한 성정만은 눈에 빤히 보이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필규는 그 즉시 전화로 미팅 약속을 잡았다. 이틀 뒤 수요일 오후 2시, 근처 카페에서였다.

그런고로 윤필규는 미팅 시간보다 십 분은 이르게 카페에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출판사가 있는 건물의 건너건너편 블록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점심시간이면 근처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다가, 점심시간이 끝나면 썰물처럼 훅 사라지는 곳이다.

필규는 되도록 사람이 덜한 쪽의 4인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가져온 서류 가방을 열어 두꺼운 A4용지 뭉치를 꺼낸다. 스테이플러로는 도저히 집히지 않아 집게를 이용해 고정한 서류 뭉치를 한번 팔랑팔랑 넘겨봤다. 필규가 초벌 교정을 본 원고였다. 내용에 손을 댄 곳은 없지만 문장을 맥락에 맞게 바꾸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작은 비틀림이 발생했다. 그걸 작가가 마음에 들어할지 혹은 역정을 내며 싫어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필규는 빠진 페이지가 없는 걸 확인하곤 원고 뭉치를 서류 가방 안으로 도로 넣었다. 닫지 않은 가방을 제 옆자리에 올려두고 작가가 도착하면 상의해야 할 것을 고민했다.

고작 책 한 권을 서점 매대에 올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과정을 필요로 했다. 작가의 의사결정이 책의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필규는 깨달았다. 얼마 전 출간 일정이 잡혔던 교양 서적이 그러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물리학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쓴 교양 서적이었는데, 작가는 표지가 너무 진중해 보인다며 다른 스타일의 표지를 원했다. 표지의 스타일을 아예 바꾸어야 하니 일러스트레이터도 새로 컨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 결국 최종 출간 일정을 미루게 되었다.

“아니, 그 사람한테 표지 작업을 맡기라고 한 건 작가님인데. 이제 와서 말 바꾸기야? 환장하겠네 이거.”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SNS로 면식을 쌓았던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는 그새 언쟁을 벌여 서로를 차단했다고 한다.

필규는 상념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때마침 카페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남자 두 사람이다.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작가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필규는 시선을 물렸다. 괜히 스마트폰의 알림을 확인하고 있으니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필규는 시선을 도로 원고에서 떼어냈다.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 두 사람이 필규가 앉은 테이블 앞에 서선 멀뚱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둘 다 남성 치고는 머리가 긴 편이다. 목을 덮는 정도의 머리칼은 둘 다 검었는데, 한쪽은 매끈한 직모고 다른 한쪽은 반곱슬에 가까운 곱슬이었다. 흰 티에 감색 블레이저를 걸친 캐주얼한 복장의 직모는 우선 필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윤필규 편집자 님?”

허나 필규의 시선은 곱슬 쪽에 꽂혀 있었다.

구깃한 흰색 셔츠를 입은 곱슬머리의 남자는 필규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맞잡은 두 손을 꿈지럭댔다.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표정에서는 희미하게 나프탈렌의 냄새가 났다. 평소에는 결코 입지 않았던 예의갖춘 모습을, 옷장 안에 고이 접어두었던 모습을 오늘 겨우 꺼내 입었다는 듯이. 그는 이 공간이 버겁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직모는 작게 한숨을 쉬곤 곱슬의 등을 툭툭 쳤다. 우울한 표정의 곱슬이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맞잡은 두 손이 해체된다. 오른손은 왼손목을 잡는다. 힘이 들어간 오른손의 마디가 하얗게 물들어 가는 모습을 필규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도진입니다.”

통화에서 들었던 소심한 목소리가 다 튼 입술에서 튀어나왔다.

서 작가는 대화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작품 미팅에서 작가가 대화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블레이저를 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그는 한 현이라고 했다. 서 작가와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자신은 동네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지금까지의 일은 전부 전해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팅에 나가면 서 작가는 혼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지극히 소심한 성격이고 자신이 그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간 것도 개인적으로는 기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필규는 왠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렬한 불만은 아니었다. 초면의 상대를 보고 그런 감정을 품을 정도로 필규는 비뚤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아주 조금, 무언가 거슬리는 정도의 반감이 그의 안에서는 피어나고 있었다. 현의 설명을 들으며 필규는 자신의 당혹스러운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런 반발이 자신의 내부에 태어났는지에 대해 필규는 알아내야만 했다. 그것이 옳은 행동이었으니까.

“도진 씨는 작품 출간을 부정적으로 보고 계셨습니다.”

현이 제 앞에 놓인 아이스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서 작가는 아무 것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그의 앞에 생수가 담긴 물잔을 내어준 건 현이었다.

“성격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죠. 그런 분이 어떻게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신 건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서 작가는 제 앞에 놓인 물잔의 표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전 도진 씨가 이번 미팅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은 필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서 작가는 겁이라도 먹은 듯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필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편집자의 눈을 바라보는 건 작가여야만 했다. 작가의 지인인 제삼자가 아니라. 그의 내부에서 태동했던 작은 반발이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제삼자는 잠시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 얼굴에 일말의 의아가 스치는 걸 필규는 포착해내고 말았다.

“도진 씨의 글은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읽어보셨습니까?”

“네, 그야…….”

제삼자는 그 부근에서 눈썹을 팔자로 하고 웃었다. 묘하게 비웃음의 티가 나는 표정이었다.

“전부 읽어봤습니다. 편집자님이 전화랑 문자를 여러 번 하셨잖아요. 난처한 얼굴로 안 받고 있는 걸 보고 제가 좀 캐물었죠. 무슨 전화냐고.”

서 작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무슨 출판사의 편집자라고 하는데, 그가 왜 자신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전화를 받으면 무슨 대화가 시작될지 알 수 없어서 무섭다. 문자로는 뭔 책을 출판하자고 하는데 자기는 글을 쓰긴 했지만 어딘가에 보낸 적은 없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서 작가는 분명 필규가 근무하고 있는 출판사의 메일에 원고를 투고했다. 필규는 서 작가의 원고를 처음 본 그날부터 줄곧 교정 작업을 벌였다. 서투른 교정 솜씨를 한껏 발휘해 몇 주고 그의 원고에 매달려 있었다. 그게 허상일 리 없다. 실제로 서 작가가 집필했던 원고는 그의 구형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었고, 서 작가에게서 노트북을 뺏은 현은 원고 파일을 자신의 메일로 보냈다. 불안한 얼굴의 서 작가를 무시하고 그는 원고를 죽 읽었다고 했다.

“이건 여기 묻혀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진 씨를 설득해서 이 자리에 나오게 한 거죠. 혼자 가는 게 부담스러우면 같이 가 주겠다고 하면서.”

제가 마치 서 작가의 보호자라도 되는 듯한 말투였다. 당당한 얼굴의 현의 옆에서 서 작가는 줄곧 시선을 물이 담긴 잔에 붙박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도 보이는 미묘한 표정을 바라보다가, 필규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작가님, 괜찮으십니까?”

축 처져있던 그의 초라한 어깨가 흠칫 튀어올랐다. 시선은 급하게 잔에서 떨어져 테이블 위를 한번 훑다가 겨우 허공을 향한다. 하얗게 질린 뺨은 몇 번 경련하다가 볼의 근육을 경직시켰다.

“네, 네…….”

“괜찮으신 겁니다. 낯을 많이 가리셔서요.”

현은 제가 데리고 나온 작가를 잠시 흘겼다가 필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감정과 생각을 통 읽을 수 없는 시커먼 눈이었다. 이전 직장에서도 이런 눈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필규는 그들에게 질려서 사표를 내고 나왔다. 고개를 치켜드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이성의 망치로 애써 짓누르고 있자 현은 왠지 눈을 가늘게 떴다. 상대를 살피는 듯한 눈짓이었다.

“이 자리에 억지로 끼어든 건 죄송하지만, 제가 이런 조정 역할을 맡지 않으면 도진 씨는 절대로 나오지 않으셨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이런 성격이시고, 다른 문제도 좀 있어서.”

“문제라니요?”

필규가 틈을 주지 않고 물었다. 현은 가늘게 뜬 눈을 천천히 끔뻑이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고질병이 있으십니다. 그건 뭐 집필에 큰 영향이 있는 건 아니고.”

이번에는 현이 조금 더 빨랐다.

“어쨌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도 도진 씨의 글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도진 씨는 의사소통에 조금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 도진 씨랑 친해서 의도를 잘 전할 수 있고 출판업계 사정도 간간히 아는 제가 앞으로의 미팅에 같이 참여했으면 하는데요.”

필규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 지금은 첫 미팅이니 동행인이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앞으로의 미팅에도 참가하겠다?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 씨가 서 작가님의 법률적 대리인도 아니고.”

“법률적 대리인이요? 무거운 말을 하시네. 우린 법정에서 미팅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요.”

“현 씨가 서 작가님과 함께 집필에 참여해서 원고의 속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도진 씨한테 물어보면 되는 일이죠. 도진 씨는 낯을 심하게 가리셔서, 처음 뵙는 편집자님께는 설명을 잘 못하실 거예요. 그러니 제가 중간에서 조정 역할로 참여하겠다는 겁니다.”

단전에서 은근히 피어오르는 짜증을 애써 억누르며 필규는 잠시 언쟁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작은 한숨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약간 돌리자, 여전히 물이 담긴 잔에 시선을 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서 작가가 보였다. 구깃한 흰색 셔츠의 주름은 아까와 달라진 것이 없다.

출판 미팅에서 오가는 모든 사안의 우선적인 선택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작가다.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필규는 다시 한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서 작가님.”

서 작가는 또 다시 어깨를 흠칫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다가, 필규와 시선이 아슬아슬하게 맞지 않을 각도에서 고개는 멈춘다. 필규는 서 작가의 긴 속눈썹만을 보아야만 했다.

“서 작가님의 의사를 존중하려고 합니다. 혹시 작가님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현 씨를 중간에 끼워서 소통하는 게 정말로 편하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긴 속눈썹이 움찔거렸다. 그가 온몸을 바쳐 가리고 있는 눈동자는 불안한 눈치로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속눈썹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제는 창백한 눈꺼풀이 푹 내려왔다. 눈가의 주름이 진하게 지는 모습을 보면서 필규는 그의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단지 낯을 가린다는 어구로 갈음할 정도의 성격이 아니었다. 필규의 눈에는 그것이 성격이라기보다는 어떤 병리학적 증상으로 보였다.

서 작가는 입을 몇 번 달싹였다. 다 튼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거슬한 입술이 발음에 방해가 되었는지 그는 제 앞에 놓여있던 물잔을 들어올리고자 했다. 보기 딱할 정도로 떨리는 손이 잔에 닿는다. 지진이라도 온 듯이 덜덜 떨리는 투명한 물의 표면을 여전히 필규는 시야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떨리던 서 작가의 손에서 빠져나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카페 테이블 위에 엎어지는 모습도.

“아.”

당황한 투가 역력한 그 작은 비명이 현의 목소리인지 서 작가의 목소리인지 필규는 분간할 수 없었다.

서 작가는 미팅 시작 이후로 물을 마시지 않았다. 회의인지 다툼인지 모를 대화를 계속하며 드문드문 제 몫의 음료를 마셨던 두 사람과 다르게. 그러니, 그의 잔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가득 찬 물이 낙하의 충격으로 사방팔방으로 튀어오른다. 테이블에 촥 펼쳐진 물. 내용물을 뱉어내고 바닥을 구르는 잔. 주변 손님들의 시선이 잠시 이쪽으로 쏠린다.

“조심 좀 하시지.”

그것은 현의 말이 맞았다. 음료와 함께 트레이에 올려 가져온 티슈로 테이블을 닦는 건 그의 몫이었다. 귀가 새빨개진 서 작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떨어진 잔을 줍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테이블의 모서리에 그의 어깨가 닿았다. 흰 와이셔츠가 짙게 물든다. 테이블 위로 돌아온 그의 왼쪽 소매는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그러니까, 젖은 와이셔츠가 달라붙은 속살을 필규는 좋으나 싫으나 보아야만 했다.

손목부터 팔꿈치를 잇는 전완부. 그 절반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는 검붉은 생존의 자국을 보아야만 했다.

“그렇게 자꾸 물어보셔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저도 모르거든요. 어디서 뭘 하다 오셨고 왜 그렇게 되신 건지.”

결국 필규는 현의 참여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절차가 끝난 후 이 주 뒤에 다시 보자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지만, 출판사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필규는 어쩐지 서 작가가 신경쓰였다. 현에게 연락을 한 건 고작 이틀 후의 일이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동네가 좀 외져요. 사는 사람도 얼마 없어서 동네 이웃이라면 제가 전부 꿰고 있죠. 도진 씨는 두 달 전에 이사 오신 분입니다. 제 가게 앞에서 들어올까 말까 고민하시던 걸 제가 끌고 들어와서 어떻게 인연이 생겼어요.”

현은 첫눈에 그가 며칠 전 가게 앞 도로를 지나다녔던 이사차의 장본인임을 알았다. 동네에서 여태 본 적 없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가게 안으로 그를 끌고 들어온 현은 안 사셔도 되니 편하게 구경하시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서점이라는 케이지 안에 뉴페이스를 들여놓고 찬찬히 관찰하고 싶었던 그의 흑심에서 비롯된 행동임은 틀림이 없었다.

덥수룩한 남자는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닿았다. 앞머리는 눈을 가렸고 부스스한 머릿결은 솜사탕처럼 결을 따라 뭉쳐있었다. 결국 서점 안에 발을 들인 그는 우물쭈물하며 주변을 살피다가 신간 매대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섰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매대에 누운 신간들을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꼭 날개를 절대 펼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박쥐와 닮았다고 현은 생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남자는 고개를 슬쩍 들었다. 치렁치렁한 앞머리에 가려졌던 처진 눈이 아주 조금 보였다. 그는 들었던 고개를 작게 한 번 숙이고는 뒤돌아 가게를 나갔다. 처량한 뒷모습이었다. 어쩐지 이대로 보내면 평생 고객으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현은 카운터에서 벌떡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남자의 뒷모습이 완전히 작아지기 전에 소리쳤다.

“내일도 오세요!”

남자는 몸을 멈춰세워 현을 돌아보았다. 느린 움직임이었다. 이 길 위에 자신 외의 사람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돌아볼 결심이 섰던 듯했다.

“오셔야 돼요!”

현은 한 번 더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현을 돌아본 모습 그대로 움직임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겨우 대답을 대신했다.

다음 날 남자는 정말로 현의 서점에 다시 찾아왔다. 어제와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이번에는 제 손으로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간 매대를 살핀 후 소설 매대를 살피고 가게를 나갔다. 현은 또 다시 가게 밖으로 나가 내일도 오라고 소리쳤다. 그 다음 날 남자는 또 다시 현의 서점에 찾아왔다. 신간 매대를 살핀 후 소설 매대를 살피고 가게의 인테리어 조명을 빤히 쳐다본 후 가게를 나갔다. 현은 또 다시 소리쳤다. 그 다음 날 남자는 또 현의 서점에 찾아왔다. 신간 매대를 살핀 후 소설 매대를 살피고 가게의 인테리어 조명을 빤히 쳐다보는 그의 옆에 현은 다가갔다.

예쁘죠. 책 모양 독서등이래요.

네.

이것이 그들의 첫 대화였다.

“그 뒤로 말 좀 트면서 얘기를 꽤 많이 나눴어요. 이름이 뭐고 나이가 어떻게 되고 사는 곳은 어디고. 기본 신상은 거의 다 털어놓으셨죠. 그런데 편집자님이 말씀하신 그 부분만은 저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전파 너머의 현은 약간의 투덜거림이 섞인 말투로 그리 말했다.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모르겠다고요?”

“이사 오기 전까지 자기가 어디서 뭘 하고 살았는지, 자기가 왜 소설을 쓴 건지, 그 소설을 왜 출판사에 보낸 건지 모르겠다고.”

필규는 묘한 엇갈림을 느꼈다.

“서 작가님은 두 달 전에 이사 오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 뭐.”

“출판사에 원고가 도착한 건 한 달 정도 전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님은 그곳으로 이사한 후에 원고를 보내셨다는 게 되는데요.”

“한 달 전이요?”

투덜거림이 약간의 경악으로 뒤바뀐다. 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필규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많은 가능성이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서 작가의 고질병. 인생을 관두고 싶어하는 병리적 기질. 이사 오기 전의 기억을 잃었다. 이사는 언제 하게 되나. 계약이 만료되어 어쩔 수 없이 거처를 옮겨야 할 상황에서? 그것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왠지 그와는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말마따나 이사는 거처를 옮기는 것이다. 거처를 옮기는 것은 때때로 그 환경에서 도망치는 것과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도망친다. 인간은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극한에 다다르면 이따금 자신을 현실에서 분리해내기도 한다. 방어기제라는 개념. 필규는 알고 있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방어기제로 인한 기억상실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저는 또, 원고를 한참 전에 보내신 줄 알고…….”

현이 뒷말을 흐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서점을 운영하는 자신과 함께 있었으면서 왜 원고를 보낸 사실을 숨겼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죄송합니다. 그건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랑 같이 있을 때 편집자님한테 연락이 여러 번 왔던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때 반응은……. 정말로 자기가 원고를 보낸 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꼭 스팸 문자나 광고 전화를 받은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래서 현도 몇 번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런 문자가 몇 주나 지속되자 이상함을 느낀 현은 그의 스마트폰을 뺏어 내용을 확인했다.

“심각하네…….”

이상하네, 가 아니다.

필규는 그 역시 서 작가의 기억상실을 병리학적 문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병원은 다니고 계십니까?”

“아뇨, 전에 먹던 약이 남아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동네에는 마땅한 병원이 없고……. 게다가 도진 씨는 자가용도 없으셔서.”

현은 스무스하게 필규의 질문을 받았다. 이사 온 이후로도, 즉 요즘도 기억을 간헐적으로 잃는다면 그건 더 이상 집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병이 아니다. 그런 사실을 현 역시 인지한 듯했다.

“얼마나 남아있는지 아십니까?”

“전에 물어봤을 때는 한 달 정도 남아있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나중에 물어볼게요.”

“한 달이요…….”

책이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당장 이 주 뒤에도 두 번째 미팅을 해야 하지 않나.

아니, 애시당초 서 작가는 한 권만을 쓰고 사라질 작가가 아니다. 필규는 예견했다. 만일 이번 책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도 필규는 그에게 차기작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편집자의 아집이라고 해도 좋았다. 팬으로서의 욕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다른 작품을 더 보고 싶다. 그럴 수 있도록 제가 서포트하고 싶다. 서 작가의 원고를 다듬는 이 주 간 필규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서 작가는 병을 이겨내야 한다.

그는 다음 작품을 집필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필규는 현에게 그들의 대략적인 주소를 물었다. 요즘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경기도의 한 신도시였다. 뉴스에서 지나가듯 본 기억이 났다. 투자자 창출에도 인프라 건설에도 실패해 앞으로의 전망이 불투명한 도시. 실패한 도시의 외곽에 두 사람은 살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오피스의 제 자리에 앉아 컴퓨터 바탕화면의 캘린더를 확인했다. 일정이 없는 날을 세어보았다. 남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법을 생각했다.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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