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신 세계관 조각글 (2)
프란체스카는 어김없이 동시에 배달된 두 다발의 꽃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발랑솔의 라벤더와 뚜레뜨의 제비꽃을 장식하는 안개꽃 세 종류가 섞인 꽃다발 하나와 르에이의 붉은 장미 한 종류로만 이루어진 꽃다발 하나. 라벤더향과 장미향이 동시에 코를 타고 뇌를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누가 보냈는지 명백한 꽃들이었다. 줄기 아랫부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장미 꽃다발의 밑단은 일직선으로 잘려 있었고 라벤더 꽃다발의 줄기 아랫부분은 사선으로 잘려 있었다.
장미 꽃다발 안에 들어 있는 금박 카드를 꺼내 눈으로 훑은 프란체스카는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카드를 다시 꽃들 틈새에 끼워 놓는다. 라벤더 꽃다발에도 마찬가지로 카드가 들어 있었지만 이 카드는 물로 인해 살짝 울어 있었고 발랑솔 라벤더 농원의 정경이 부드러운 붓질로 그려져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모인 수채화 카드만 해도 벌써 마흔 장은 될 것이다.
프란체스카는 장미 꽃다발을 그대로 협탁에 두고 라벤더 꽃다발의 포장지를 푼다. 부드러운 고급 하얀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꽃다발을 묶어 두고 있던 실크 리본은 가난한 집 아낙네들이라면 버리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옷을 장식하는 데 써도 될 정도로 부드럽고 광택이 났다. 아이보리색 벽과 가구 사이 부드럽게 녹아들어가는 보랏빛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가사, 화병의 꽃을 바꿔 줘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아가사는 아기를 안아들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유리를 건드리는 소리가 몇 번 나고, 물을 따르고 다시 부어주는 소리가 난다. 종이가 사부작거리며 구겨지는 소리를 듣고서 프란체스카는 물병에 잘 꽂힌 보랏빛 꽃다발을 바라본다. 언제나와 똑같은 보랏빛이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주근깨가 솔솔 뿌려진 올리브색 얼굴의 소녀는 그런 프란체스카를 바라보다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연다.
“다른 꽃다발은 어떻게 할까요?”
협탁에 놓인 붉은 꽃다발에 잠깐 프란체스카의 시선이 머물렀다. 프란체스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제 머리카락을 빗질한다. 작은 한숨을 내쉰 뒤 그녀는 아가사에게 답한다.
“알아서 하세요. 버리든가 갖고 가든가 되팔든가.”
아가사는 고개를 꾸벅하고 장미 꽃다발도 들고 나간다. 방의 분위기와 따로노는 붉은빛이 사라지자 눈의 피로도가 확 낮아졌다. 프란체스카는 눈을 감고 등받이에 기댄다. 자신의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지켜주는 사람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가만히 앉아서 조금만 꼼지락거리면 자신에게 모든 걸 맞춰주는 사람이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채주는 사람이란 얼마나 편한가. 둘 사이 무언의 공감대라는 건… 그러고 보니 그 장미는 왜 보낸 거지? 생각해 보니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카드를 장미꽃 사이에 끼워놓았었다. 프란체스카는 다시 아가사를 부를까 생각하다가 움직이기 귀찮다는 결론과 함께 원래의 편안한 자세로 돌아간다.
“뭐, 몰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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