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스타즈 2차 창작 글

[치아미도] 새벽의 취중진담

주제 : 어느 날 한 명이 취했습니다.

2019년에 있었던 앙상블 스타즈의 등장 캐릭터 모리사와 치아키 x 타카미네 미도리, 약칭 치아미도 커플링 합작 참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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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바닥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그 자세 그대로 치아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굳어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툭툭 털고 간단히 일어나면 될 일이었지만 지금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넘어진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은 미도리 때문이었다.

“타카미네, 일단 진정하고.......”

“대답 하라고여!”

왜 그렇게 됐는지, 붉게 물든 얼굴을 치아키의 앞에 바짝 들이대며 미도리가 소리쳤다. 미도리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치아키는 침을 삼키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은 부엌의 테이블에 닿았고 그곳에서 지금 미도리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타카미네, 설마 저걸 혼자 다 마신 건가?”

테이블 위에는 뭔가를 따라 마신 것 같은 유리잔과 가로로 널브러져 굴러다니는 와인병이 있었다.

 “선배,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요?”

아침에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중,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머뭇거리던 미도리가 꺼낸 질문이었다.

“응? 당연히 알지! 타카미네와 내가 연인이 된 지 1년이 되는 날 아닌가!”

치아키의 말 그대로였다. 미도리의 고백 후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는, 그러니까 둘만의 기념일이었다.

“알고 계시네요.”

“내가 연인과의 기념일을 잊을 리 없잖은가!”

“그냥. 혹시나 해서요.”

“하하, 걱정하지 마라. 모처럼 연인과 단둘이 보낼 수 있는 날인데 이런 날을 놓칠 리가 없지.”

치아키의 말처럼 그도 그렇고 미도리도 그동안 각자의 일로 바빠서 둘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도 그날은 두 사람 다 저녁 스케줄이 비어 있었다. 저녁에 근사한 곳에서 외식하자는 치아키의 말을 들은 미도리는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지만 그게 그가 원한 모범답안은 아니었는지 치아키가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서 먼저 몸을 일으켰을 때, 미도리의 입 꼬리는 다시 바닥을 향했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한 두 사람 손에는 작은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잠시 후, 두 개의 와인 잔이 맞부딪히는 기분 좋은 낭랑한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앞으로도 연인으로서 잘 부탁한다! 타카미네.”

“저도요, 선배.”

그렇게 말하면서 둘은 서로 손을 잡아 깍지를 끼며 웃었다. 꺼 놓은 부엌의 전등 대신 식탁에 놓은 작은 촛불, 서로의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는 커플링,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서로의 미소. 모든 게 완벽했고 흠 잡을 데 없는 기념일이었다. 소소한 이야기와 애정 섞인 말들이 오가는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시계의 바늘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기념일이 끝나가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다음날 두 사람 다 일이 있으니 그만 잠자리에 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치아키가 입을 열었다.

“그만 잘까?”

“아, 저....저기 선배.......”

치아키의 말에 미도리가 머뭇거리며 뭔가를 말하려 했고 치아키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칫한 자세로 미도리를 바라봤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그......아녜요. 그만 자자고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계속 머뭇거리는 미도리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본인이 아무것도 아니라 말하는데 더 물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치아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씻고 잠자리에 든 게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잠결에 옆자리가 허전한 걸 느낀 치아키가 잠에서 깬 건 새벽 3시가 넘은 때였다.

“타카미네?”

잠에 막 들 때만 해도 옆에 있던 미도리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라도 간 걸까 싶어 기다렸지만 그가 자리를 비운 지 꽤 되어 보였는데도 다시 방에 들어올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싶은 치아키가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고 그 앞에 서 있던 미도리가 그의 품으로 안기듯 달려들었고 그 반동으로 치아키가 바닥에 넘어진 건 그 후의 일이었다.

“타카미네, 괜찮나?”

엉덩이가 얼얼했지만 치아키는 미도리의 상태 먼저 살폈다. 치아키의 부름에 미도리가 치아키 품에 파고들려 하다 고개를 들어 치아키와 눈을 맞췄다.

“선배.”

“어, 그래.”

“선배, 저랑 진도 나가기 싫어여?”

그 한 마디는 치아키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미도리는 치아키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게 불만이었던 건지 대답하라고 한번 소리치고 나서는 치아키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연인의 이런 행동에 한동안 얼어있던 치아키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미도리를 조심스레 불렀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치아키를 바라봤다. 취기로 인해 붉게 물든 얼굴, 불만이 가득 담긴 것 같이 부풀려진 볼, 품에 안겨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은 평소 미도리가 잘 하지 않던 애교 섞인 행동이라 치아키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바람에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미도리가 치아키를 쏘아보았고 치아키는 그런 게 아니란 의미로 손사래를 친 뒤, 미도리의 등을 토닥이며 아까 미도리의 질문을 곱씹었다. 일단 미도리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둘의 스킨십 진도는 키스 이후로 나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아키가 미도리 말처럼 진도 나가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순히 선후배일 때부터 연인이 된 지금까지 치아키에게 있어 미도리는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렇기에 혹시 그에게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설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문득 자신의 품에서 계속 꾸물거리던 미도리가 미동도 하지 않자 치아키는 그에게로 시선을 내렸고 미도리는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잠시 그대로 있던 치아키는 미도리를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미도리를 침대에 눕힌 뒤, 이불을 덮어주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조만간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도리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아침임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미도리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미쳤었지, 진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미도리는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모처럼 기념일이었고 치아키와 연인으로서 진도를 나가고 싶었지만 치아키는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 거 같았고 본인도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답답함에 뒤척거리다가 뭐라도 마실까 해서 부엌으로 나왔고 물을 꺼내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을 때 미도리의 눈에 들어온 건 아까 치아키와 함께 마신 와인이었다. 답답함 때문이었는지 와인병을 꺼내 한 잔 따르고 마시기 시작하다 어느새 한 병을 다 비워버렸고 그 뒤에 치아키 품을 파고들며 온갖 푸념을 늘어놓았던 게 불과 몇 시간 전 일이었다.

‘그 난리를 쳐놓고 선배 얼굴을 어떻게 봐.....!’

정말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한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던 미도리는 조심스레 이불을 들쳤다. 방문은 닫혀 있었고 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고리가 돌아갔고 미도리는 다시 황급히 이불을 뒤집어썼다.

“타카미네.”

침대 가장자리가 가라앉는 느낌이 지나고 이불 위로 익숙한 온기를 가진 손길이 올라왔다. 여느 날 아침과 다르지 않은 그 다정하고 편안한 손길에 미도리는 조심스레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손길과 마찬가지로 다정한 얼굴이 미도리를 맞았다.

“오늘 평소랑 다르게 늦잠이구나. 자자,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하루가 든든하지 않겠나!”

“저기, 선배.”

“응?”

“새벽에....... 죄송했슴다.”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하하, 타카미네. 사과할 거 없다. 오히려 타카미네가 속마음을 얘기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침묵을 깬 치아키의 대답은 미도리가 생각지 못한 것이었고 미도리는 놀란 듯 아무 말 없이 치아키를 바라봤다. 미도리가 그러고 있는 사이, 치아키는 미도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새벽에 그 질문, 조만간 대답 들려줄 테니까.”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인 치아키의 목소리가 미도리의 귓가를 간질였고 치아키는 그 순간이 지나가 아무 일 없단 듯 평소의 목소리와 미소로 미도리에게 아침 먹으러 나오라고 한 뒤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혼자 남아서 치아키의 말을 곱씹던 미도리의 얼굴이 홍당무가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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