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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EJ (3)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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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무기질한 유리 벽이 제법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적당히 고층 건물이라고 부를만한 건물들이다. 도화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건축 양식이다. 아니, 단순히 층수가 높은 건물이라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 일별 유동 인구 수에 대단한 차이가 있을 거다.

도진은 입을 다문 이후 말을 하지 않았다. 휴게소에 들를 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눈은 감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조수석 창 밖의 풍경을 관망하고나 있었다. 도화는 묵묵히 운전을 계속했고, 가산동에 이르를 때까지 담배는 끝내 추가로 피우지 못했다.

“저기예요.”

겨우 입을 뗀 도진이 사거리의 카페를 가리켰다. 유리 통창 너머로 보이는 카페 내부에는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이제 열 시 반을 넘겼으니, 점심시간도 아닌 것이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목소리가 떨렸다.

의도적으로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던 도화는 문득 고개를 돌린다.

평소의 도진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저, 잠깐만 기다려주시면, 되니까.”

주차도 다 못했는데 안전벨트를 풀려 든다. 어쨌거나 도착했으니 상관은 없지만, 정작 도진의 벨트는 풀리지 않았다. 대신 잠금장치를 불규칙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틱틱, 틱틱하고.

손을 떨고 있는 거다.

알맞은 주차 장소에 차를 멈췄다. 시동을 껐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안전벨트가 풀렸다. 감사해요, 감사해요를 연발하며 조수석 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을, 도화가 잠시 불러세웠다. 당황한 얼굴로 돌아보는 도진의 팔을 잡아끈다. 거리가 가까운 감이 있다. 바지 주머니에 뭘 넣어도 모를 정도로.

”저기, 카페 맞은 편에 벤치 보여요? 가로수 밑에, 저거.“

약속 장소인 카페의 맞은 편. 그러니까, 도로를 끼고 그 너머에. 뜬금없이 가로수가 늘어선 블록이 있다. 도시 숲 조성 사업의 일환인 모양이다. 가로수 아래에는 기다란 벤치가 줄지어 서 있다. 그곳을 도화는 가리킨다.

“나, 저기 앉아있을 테니까. 알고 있어요.”

도진은 도화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가짜 숲과 도화 그 자신을 번갈아보다가,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빠르게 끄덕였다.

속삭임이 끊이지 않는다.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야 이제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정신에 해를 끼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귀를 막아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허사였다. 물리적으로 이루어진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나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고, 나의 일부이고. 물론 지금 내 바로 옆에서 귓가에 손을 대고 중얼거리고 있는 이 사람도 물리적으로 이루어진 실체가 아니다.

라고, 도진은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그의 입김이 닿는 자신의 귓가에는 온기랄 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생생하다. 생생한 환각이다. 또한, 그가 몇십 년째 앓고 있는 정신증의 증상이기도 하다.

“정말 네가 나설 자신이 있어?”

사촌 형의 얼굴을 한 환각이 물었다. 목소리 역시 그의 것이다. 처음 나타날 때부터 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정신증의 형태로 자신의 주위에서 돌아다니는가에 대해서는, 도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현실 인식은 존재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카페의 유리문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손잡이를 잡고 끌어당기기 전에, 도진은 자신의 모습을 살핀다. 그곳에 환각은 당연하게도 비쳐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비실비실 웃는 모습이, 잘도 비쳐 있다.

“무서워 죽겠지? 지금.”

도진은 여즉 살아 있는 사촌 형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자신의 정신적 종양은 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응.”

문을 열고 들어간다. 구석의 창가 자리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무심코 시선이 간다. 눈이 마주친다.

형이다.

머리가 조금 바래긴 했지만, 형이다.

정신이 한순간 멀어졌다.

몸은 멀쩡히 움직인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환각은 이제 속삭임을 멈췄다. 대신, 속삭이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환청이었던 것이 실체로 변환된다. 가만히 있어, 얼씬도 못 하게 해 줄 테니까.

인지가 해리된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언젠가 친절한 이웃이 가상현실체험을 시켜주었다. 그것과 참으로 동일한 기분이다.

헬멧을 쓰고 있는 느낌. 헬멧 안의 가짜 세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 이건 분명히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니구나, 하는 확신.

“스타일을 많이 바꿨네, 도진아.”

어느새 가까워진 대림은 그가 아닌 그를 보고 미소지었다.

삼 년 만의 재회다.

“형도 많이 늙었네요.”

“스타일을 바꿨다고 해 줘.”

“방금 한 말, 늙어보인다는 얘기였어요?”

“머리가 너무 짧다.”

그 종교는 썩 유명한 집단은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 열 명을 붙잡고 종교의 이름을 말하면, 네 명 정도는 어디서 들어봤다고 대답하고, 그 중 두 명 정도는 그 특징에 대해 알고 있다고 대답하는 수준이었다. 빈말로도 인지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대림이 어째서 마이너한 사이비 종교에 들어갔느냐 하면, 간단하다. 이전에 꽤 유명한 사이비 집단에 입교했다가, 이직을 계기로 모든 연락을 끊고 은근슬쩍 타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같은 종파에 적을 올렸다간 그들의 음습한 네트워크망으로 자신의 신상이 위협받을 위험이 있었다. 적어도 대림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귀여운 규모의 사이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진을 만났다.

심약해 보이던 겉모습과 다르게, 도진은 의외로 종교를 진지하게 믿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예배당에 늘어선 기다란 의자 한구석에 앉아 그저 설교와 예배를 관람하기나 한다. 가끔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과 길지 않은 대화도 나눈다. 그것은 종교 활동이라기보단 차라리 일종의 사회 교류형 치료였다.

그런고로 도진을 사이비 종교에서 꺼내오는 일은 상당히 쉬웠다. 애초에 교회에는 큰 애착이 없었던 것이다. 원하는 것은 신앙이 아닌 교류다. 대림이 무엇보다 자신있어하는, 인간과의 교류 말이다.

불안정한 사람을 사이비 종교에서 떼어놓는다. 그 후, 신앙의 대상을 종교에서 자신으로 바꿔친다. 자신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그를 잠시 구경하다가, 질리면 쉽게 잘라낸다. 본래 있었던 것보다 훨씬 큰 정서불안에 휩싸인 그의 말로를 조금 더 구경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부의 사람은 대림을 해하려 들었다.

도진은 과연 어느 쪽에 속할까. 세 번째 만남에서 대림은 기대했다. 높은 확률로 전자에 해당할 것 같긴 하지만, 상관 없다. 어느 쪽이든 한 사람의 말로를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그래, 즐거워서. 대림은 즐거워서 끊임없이 사람을 찾아 헤맸다. 끊임없이 사람과 교류했다. 끊임없이 조련했다. 끊임없이 최후를 디자인했다.

그런데, 도진은 최후를 맞지 않았다, 라고.

분명히 공을 들여서, 자신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도록 길러뒀는데도, 헤어지고 삼 년이 지난 오늘까지 멀쩡히 살아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사 년 가까이 교제하면서, 네 본심을 숨기기라도 한 거야?

불가능한 일이다. 대림은 단정했다. 하지만 도진은 살아숨쉬고 있다.

길고 긴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공항의 서점에서, 보랏빛 심해를 쥐어든 채, 대림은 뺨을 발갛게 물들였다.

테이블에는 이미 두 잔의 음료가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초코다. 도진이 넌 여전히 카페인을 못 먹지, 하고 대림이 아는 척을 했다.

“출판사 인터뷰에서 읽었어. 대단한 작가님이 다 되었던데.”

사람 좋아 보이는 처진 눈을 슬쩍 접어 웃는다. 도진은 여전히 무표정하다. 싱글대는 대림의 얼굴을 한 번 흘기는가 싶더니, 연한 갈색의 아이스 초코가 담긴 잔으로 시선을 떨궜다.

‘만나고 싶어?’

작가님은 이미 숨어버렸다. 그는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나오려 들지를 않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형’인 거다. 분명 이야기 정도는 나누고 싶겠지.

작가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죽인 채 아이스 초코에 시선을 집중한다. 뭐라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서워서 도망친 건지. 너야 항상 그런 놈이지만. 그는 작게 한숨을 쉰다. 고개를 들어 대림을 마주한다.

“그러게요. 형은 항상 팔아먹진 못할 이야기라고 했는데.”

“응, 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그야 플롯이 너무 날것의 환상이잖아.”

대림의 눈동자가 테이블 위의 자신의 왼손으로 향하는 걸 눈치챈다. 이미 손을 빼기엔 늦었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왼손으로 잔을 든다. 마신다. 달아빠진 초콜릿 음료를.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나보네.”

왼손 약지의 반지가 유리잔의 손잡이에 부딪혀 묘한 이물감을 준다.

“우리 헤어진 거 아니었어요?”

“어떤 사람일까? 도진이의 새 사람은.”

“형도 참 쓸데없는 걸 궁금해하네요.”

“네 담당 편집자니?”

정신이 울렁인다.

작가 녀석이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다. 유리잔을 쥔 왼손에 힘이 실린다. 하얗게 변하는 관절을, 대림은 놓치지 않는다.

멍청한 놈! 전혀 도움이 안 돼. 도망쳤으면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란 말이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구나.”

대림은 상반신을 테이블 쪽으로 조금 기울인다. 앞머리에 서린 하얀 새치가 눈에 띈다. 금테 안경은 치렁치렁한 안경줄을 달고 있다. 새치도, 안경도, 삼 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요소들이다.

“도진아, 내가 네 글을 잊을 리 없잖아.”

하고, 대림은 속삭였다.

“그건 네 글이 아니야. 그렇지? 내용은 분명 네 것이 맞지만, 글은 네 오리지널이 아니야. 말하자면 너는 책의 시나리오를 쓴 거고, 그 뒤에 누군가가 문장 하나하나를 고쳐 전체적으로 개작한 거야.”

지배가 다소 약해진 것을 느낀다. 한 쪽 다리가 멋대로 떨린다. 입술이 두 번 정도 실룩이다가 멈춘다. 거대한 감정의 너울. 파도치는 바다에 허벅지까지 푹 담근 듯한 압박. 감정에 짓눌린다.

그렇다면 자신은 도로 환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걸 원하는 건가? 너는……

“작가의 글에 손 댈 법한 사람은 담당 편집자 뿐이지. 그리고, 너의 그 기이한 환상록에 푹 빠져 문장을 한 땀 한 땀 손봐줄 정도의 감정이, 너의 편집자에게 있었다면.”

반박한다. 통할 리 없는 반론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그 정도의 미약한 통제권만이 남았다.

“형은 비즈니스 관계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데요. 만약 편집자가 정말로……”

도진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돌연 입을 다물었다.

“저, 정말로……”

식은땀이 배어나온다. 뒷덜미에서 시작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천천히 온몸으로 전이된다.

도진의 그 모습을 보고, 대림은 이렇게 즐거울 수가 또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의 이 표정을 알고 있다. 어느 상황에 짓는 표정인지도 알고 있다.

거짓말을 꿰뚫어보았을 때……

“죄, 죄송…… 아니……”

“죄송할 게 뭐 있어.”

눈꼬리를 접어 웃는다.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지금이라도 전부 털어놓으면 용서해주겠다는 엄포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니까. 하지만 털어놓고 용서를 빌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상냥하게, 상냥한, 상냥했던, 형으로 되돌아가서……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

대림이 느릿하게 물었다. 끈적한 점성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귓가에 들러붙는다. 솔직하게 대답하기 전까진 떨어지지 않을, 주문과도 같은 목소리.

하지만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심박수가 지나치게 높아 몸이 오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진은 생각한다. 형은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는다. 어디로 간 걸까? 이런 상황이면 언제나 나를 멍청한 녀석이라며 매도했는데……

“좋은 사람인가 보네. 나보다 훨씬 더.”

“아, 아니, 그게……”

“하지만 도진아.”

차가운 목소리다.

도진은 한순간 흑,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시야가 빠르게 점멸한다. 카페의 전등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너는 왜 이 지경이 되어 있는 거니?”

왼손에 따뜻한 무언가가 닿는다. 대림의 오른손이다. 손가락 사이로 파고든다. 반지가 조금 들린다. 꼭, 결합에 방해가 된다는 듯이.

“너는 왜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느냐는 말이야.”

“그건, 아니, 아닌데……”

“그 사람을 위해 계속 그런 글을 써내서 그런 거지?”

그런 글?

“네가 세간에 발표한 글을 전부 읽어봤어. 데뷔작이자 네 꿈 일기에 가까운 보랏빛 심해를 시작으로, 장르 합동 앤솔로지에 실린 환상계 중편, 문예 잡지에 실린 가장 최근의 단편까지.“

맞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떨리는 건 물론, 자신의 손이다.

“네 글의 경향은 데뷔 때부터 달라지지 않았어. 모두, 잔혹하고 환상적인, 분류하자면 미스터리에 겨우 발을 걸칠만한. 너의 정신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언가.”

너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특징적인 몽환성이 대단하다고 아주 추앙을 해주지만 말이야. 그런 점에서, 출판사 측에서 너를 복면작가로 셀링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독자들은 환상의 세계를 엿보고 싶은 거지,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의 솔직한 수기를 보고 싶어하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정작 그런 글을 써내는 네 건강은 어떻게 될 것 같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셀링 포인트는 그것이니까.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면, 그것은 무미건조하고 또 맥락이랄 게 없는 단순한 활자의 나열로 환원될 뿐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물론이고 편집자에게도 외면당한다.

그래서, 부러 제 정신을 해쳐가면서 환상의 세계를 쌓아올렸다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편집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잡힌 손에 힘이 실린다. 따스한 손이다.

“도진아. 정말로 그런 사람이랑 함께하고 싶어?”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 너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편집자가 아니라, 나다.

“못 본 사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형의 눈썹이 팔자로 휘어진다.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 슬퍼하는 것도 같다……

“지금의 너한테는 치료가 필요해. 오늘은 나랑 같이 있자.”

네, 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바람이, 그곳에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 필규는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대림은 입을 다문 도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녹기 시작한 커피잔 안의 얼음이 스스로 움직여 달캉, 하는 소리를 낸다.

“싫으니?”

낮게 읊조린다. 그 목소리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형에게 혼나고 싶지 않다……

“저, 저는, 형, 그게……”

“이것 봐. 말까지 더듬고…”

호흡은 분명히 평소의 배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산소가 부족하다. 눈앞이 당장이라도 핑 돌 것만 같다. 카페 안의 산소 밀도가 낮아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가고 싶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나가지 않으면,

필규에게 돌아갈 수 없다……

그건 무척이나 싫은 일이다.

한순간 정신이 요동친다.

먼저 움직인 건 몸이었다. 잡힌 손을 비틀어 빼냈다. 빠질 뻔한 반지를 제대로 움켜쥔다. 대림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도망쳐야 한다.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아니, 온 몸에 가득해서.

“도진아?”

등 뒤에서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엿보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멈추면 안 된다.

멈추면, 다시는……

하지만 주춤하고 만다.

그렇게 길들여졌으니까. 그 정도의 자각은 분명히 있다. 그래도 길들여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칠 년 전의 나는. 그 때의 나는. 의지할 사람이라곤 형밖에 없어서. 그 외의 사람은, 모두 멀어지고 없어서……

형이 그렇게 만들어서……

‘용케도 그걸 알고 있네.’

유리문을 열었다. 공기의 온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걸 느낀다. 습도 있는 대기가 피부를 감싼다. 그런 현실 자각도 잠시, 뒤에서 다가오는 형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앞에서도 누군가 달려오고 있다.

익숙한 얼굴이다……

뺨에 물기가 서렸다.

벌써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라고. 도진은 희미한 자아로 생각했다.

“징그러운 인간이네, 당신.”

당면한 상황의 이해를 위해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외려 카페를 뛰쳐나가버린 도진.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도진을 감싸는 선글라스의 남자. 대림은 작은 동요를 숨기고 방해꾼을 바라본다.

남자치고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뒤로 넘겼다. 새카만 선글라스 뒤의 눈은 보이지 않는다. 눈썹은 브이 자 모양으로 휘어져 있으니, 심기가 좋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도진을 감싸안은 왼손에는 반지가 없다.

새 남자도 아니라면, 이건, 누구지?

설마, 애인 외의 사람을 사귀었다고?

“새 사람 사귄 전 애인을 기껏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하핫.”

걔보다 내가 더 잘해줄 수 있으니까 돌아와라, 이거야? 아저씨, 그 나이 먹고 구질구질하게 그러고 싶어?

선글라스의 남자는 한껏 비꼬는 투로 그리 말했다. 대림에게는 어떠한 흠집도 내지 못하는 말이지만.

“저희가 대화하는 건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대림이 미소지으며 물었다. 기본적인 예의가 부재한 이에게는 의외로 예의를 갖추어 말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건 알 거 없고.”

뻔뻔한 그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당신 같은 사람들 잘 알아. 연약한 사람들 잘 구슬려서 자기 아래에 두려는 놈들.”

아, 알겠다. 이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이에게서 탈출한 부류다.

그 사람은 이 사람을 왜 탈출하도록 두었을까? 아니, 자신과 같이 망가뜨리려고 했지만, 도진처럼 이레귤러하게 살아남고 만 걸까?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 있어 귀찮은 상대인 건 확실하다.

도진이는 어쩌다가 이런 든든한 아군을 사귀게 된 걸까?

내가 한국에 없던 삼 년 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살아남았던 걸까.

궁금한 것은 많지만, 도진이에게 이런 친구가 붙어있는 이상 캐묻기는 어려워보였다.

“그런데 그거 알아?”

선글라스의 남자는 저주 같은 그 말을 툭 내뱉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아래에 누가 없으면 몰락해.”

의존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공의존이야. 당신은 공의존 대상을 찾고 있을 뿐이야.

“재미있는 말을 하시네요.”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말을 스스로 듣고 나서, 대림은 조금 놀란다.

“재미있어?”

도진이는 울고 있다.

도진이를 달래줘야 할 사람은 나일텐데.

그래야 길들일 수 있는데……

“아저씨, 정곡 찔린 얼굴로 그런 말 해 봤자야.”

선글라스의 남자는 네 대답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듯이 몸을 훅 돌리고 나아갔다. 도진이도 덩달아 등을 보인다.

두 사람 모두 한 번을 돌아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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