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호흡의 연유

크리그어1~2 스포 / 날조라서 3 다녀오면 비번 걸 듯

개인서고 by 새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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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주차 주제 : 숨

목표 글자수 : 5035/5000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렌은 가끔 자문했다. 그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는 평을 듣는 것치고 사실 대단한 고뇌를 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런 인간이라면 철학자를 하면 몰라도 AOC의 요원 따위는 하지 않을테니까.물론 이런 빌어먹을 세계에서 삶의 이유를 사유하는 것 따위는 먹고 살 수단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 같은 것도 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저 태어났을 뿐이기에 이유 따위는 없으며, 그렇기에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 이유를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삶에 대한 이유를 규명하려고 발버둥치기엔, 이 빌어먹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존재한 탓이었다. 예컨대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크리쳐라거나, 뼛속까지 얼어붙을 추위, 사람을 가지고 미친 짓거리를 해대는 빌어먹을 AOC…….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후회하지 않을 최선의 선택들을 하며 살아가자고 생각했다.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지켜야할 것을 지킨다면, 그것이 곧 그의 삶의 증명이었기에.

……지금까지는, 그랬다.

“시로군, 시로군…….”

눈물이 얼어붙은 흙을 점점이 적신다. 잿빛 먼지와 눈이 뒤섞여 흩날리는 가운데에, 렌은 울며 바닥을 긁어모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땅은 아무리 긁어도 녹을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눈은 내린 그 상태로 굳어져 얼음만큼이나 단단했기에, 되려 바닥이 녹는 대신 손톱이 부러지고 손 끝에서 흐르는 핏물만이 바닥을 적셨다.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거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렌은 미친 사람처럼 바닥에 떨어진 먼지들을 긁어모았다. 이 안에 너는 얼마나 있을까. 내가 긁어모은 이 부스러기들 중에서 네가 있긴 할까. 너는, 너는…….

“시로군…….”

이게 다 뭐하자는 거야?

대체 뭐하자는 거냐고. 내게 살자고 했잖아. 죽지 말라고 말을 건네놓고서는, 왜 네가 죽어? 가족을, 가족들과, 네가, 우리가……. 불과 몇 시간 전에 했던 약속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크리쳐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추위가 다시금 생생했지만, 호흡을 틀어막은 차가운 공기보다도 시로의 부재가 더욱 그 숨을 틀어막았다. 아아, 아……. 흐느끼는 소리가 짐승처럼 흘러나왔다. 정말 안일하고도 이상한 일이지. 왜 죽어도 같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고작 2년이란 시간 동안, 곁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져서? 함께 있던 시간보다도 떨어져 있던 시간이 더 길었으면서, 대체 무얼 믿고.

‘좋아했어, 내 친구.’

마지막 인사가 스쳐지나가고, 렌은 미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왜 네가 거기서 죽냐고. 죽어가면서 한 마지막 말이 고작 그딴 것이어서는 안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어. 너를 어떻게든 방주에, 그곳에 남겨뒀을거야……. 손 안에 긁어모았던 눈들이 허무하게 녹았다가 얼어붙고, 재해에서 벗어난 이들의 환호 섞인 목소리는 그저 무게 없이 흘러나간다. 가족을 부탁한다고? 좋아했다고?

놓아도, 된다고?

“하, 하하……하…….”

왜 그런 말을 해? 너조차도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절대 내 손을 놓지 않았을거면서……. 그러나 결국 렌은 시로의 손을 놓치고야 말았다. 그가 잡을 손조차 없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유해도, 유품도 남지 않았다. 정말 그와 관련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혀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넋이 나간 채로 그는 하늘을 응시했다. ……어느새인가 해가 뜨고 있었다. 햇살이 잿빛 도시를 비추고, 눈은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거린다. 그가 없는 세상은 전과 다를바 없이 아름다웠고, 빛이 났고, 그리고, 또……. 실성한 것처럼 자꾸만 흐르던 웃음이 뚝 멎는다. 렌은 햇빛으로 반짝이는 도시를 내려다보다가, 곧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그래도 살아야겠지. 살아서, 살아가면서, 시로의 부탁을 들어줘야지. 부탁을 들어줘야 하고, 가족들도 간만에 만나야하고, 그리고…….

걸음을 옮기자 버석한 눈이 발밑으로 밟히고 눌리며 자국을 남겼다. 그제야 렌은 깨닫는다. 이 세상이 온통 시로의 유해였다. 파편조차 남지 않고 흩어진 그의 유해가 이 세상에 있었다. 눈과 함께 흩날리면서…….

문득, 홀로 남았다는 그 고독감이 끔찍하게 사무쳐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신념? 신념으로 살아왔고, 신념을 위해 달려왔으나 렌은 이제 알 수 없어졌다. 그러나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살아가야 할 대단한 이유도, 살아야 할만큼의 가치조차 없더라도, 숨이 붙어있다면 결국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그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살아가야 하는 대단한 이유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몰랐다. 그저, 살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기에. 그저 그 탓이었을지도 몰랐다. 친구의 목숨에 기대어 구차하게 호흡하는 것조차도 삶이었다. 그마저도……. 렌은 그런 식으로 살아갈 기회 따위 바라지 않았지만, 그의 친구는 다르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이었다. 어쩌면 렌 자신이 그런 사람이어서였을지도 몰랐다.


크리쳐조차 아니었던 그것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불타오르는 건물과 잔해만이 남아있다. 무너진 건물, 쌓인 시신, 울부짖는 사람들을 지나치고, 지나치고, 지나치고……. 부상으로 인해 걸음이 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의 인류라는 호칭은 남아서, 렌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들을 처리하고, 처리하고, 처리하며 앞으로, 다시 앞으로…….

제 1번째 안전구역. 자신의 가족들이 사는 곳. 렌은 피를 뒤집어 쓰면서도 그곳으로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비명소리가 들리면 도왔고, 괴물들이 달려들면 처치했고, 그도 아니라면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무작정 앞으로 향했다. 어떤 정신으로 그랬던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아, 가족들. 그래. 가족들을 찾으러 가야 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이제 그 뿐이었으므로. 시로도 자신이 그의 죽음에 짓눌려 질식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터였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야했다. 사람답게 살아야했다. 그런데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쿠로다 렌은 여전히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저 숨이 붙어있기에 구차하게 호흡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앞으로, 앞으로……. 렌은 걸으면서 생각했다.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할까. 우선 휴식을 취해야겠다. 너무 오래 쉬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아버지와 형님께 시로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상의하는거야. 이 세계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 나는 최강의 인류 중 하나니까. 그리고 같이 계획을 세우자. 다시 사람들을 돕고, 시로의 가족들을 찾아가서 알려주고, 그들을……. 이제는 익숙한 그곳. AOC의 위협에 대비해서 옮긴 후로 한 동안 적응하지 못했지만, 분명 그들의 새로운 집이 있던 곳. 휘청거리면서도 빨랐던 걸음은 점차 속도를 잃고 느려졌고, 이내 얼어붙은 것처럼 자리에 붙박였다. 침음성이 문득 흘렀다.

“아…….”

여전히 겨울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호흡을 틀어막고, 잿빛 하늘은 잿빛 눈을 뿌려댄다.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렌은 멍하니 섰다. 매캐한 연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 타오르고 기둥만이 남은 건물의 잔해, 크리쳐의 시체들……. 삶은 불합리하며 선을 행한다고 하여 그것이 선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만약 세상이 그렇게 합리적으로 돌아간다면 훌륭한 과학자였던 내 아버지와 타인에게 상냥했던 내 어머니는 왜 크리쳐의 손에 죽고 나만 살아남았겠어?

“왜…….”

왜?

렌은 알 수 없어졌다.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문득 입 밖으로 뱉은 그 질문에 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불합리에 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자신의 삶이, 이 모든 빌어먹을 상황이 사실은,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이 정해진 답이 있고, 이 불합리함과 죽음과 피와 절망이, 이 모든 것들에 이유가 있다면, 이유가 있어서는 안되는 거잖아! 렌은 총을 버리고 달려들었다. 손을 뻗어 무너진 잔해를 헤집으면, 이제는 크리쳐가 아닌 몸은 지나치게 연약하고 부드러워서……. 불에 타고 부서진 잔해들을 집어서 던지듯이 치울 때마다 손에 파편이 박혀들어오고, 생채기가 하나, 둘씩 늘어난다.

“아버지, 아버지! 형님! 어디 계세요! 제발……, 제발, 제발! 제발……제발요!”

렌은 미친 사람처럼 잔해를 헤집고 밀어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도 알 수 없이 커다란 잔해를 부수고, 치우며 그는 건물을 헤집었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 덕에 얼고 굳었을 뿐, 썩지 않은 사람들의 시체를 뒤집었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 이 사람도 모르는 사람…….

모, 르는…….

“아. 아아, 아…….”

형태를 입지 못한 비명이 뭉개졌다. 지금까지 찾아낸 시신들 중 가장 상태가 처참했지만 알 수 있었다. 모를 수 없었다. 어떤 모습이어도, 어떻게 있어도 그는 그의 가족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 아버지……. 형……. 말이 채 끝맺어지지 못하고 울음 사이로 묻혔다. 나에게는 위험하면 도망치라고 말했으면서. 도망가지, 차라리 도망가지…….

렌은 더듬더듬 시신을 쓸다가,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차가웠다. 너무 차갑고 뻣뻣해서, 사람 같지 않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과, 처참하게 부서져버린 사랑하는 사람 중 뭐가 더 나은거야? 차가운 겨울 내음과, 비릿한 혈향이 뒤죽박죽 뒤섞였다. 뜨거울 정도의 열기를 가진 눈물이 가족들의 얼어붙은 손을 축축하게 적셨다. 가슴에 귀를 대었지만, 당연하게도 심장 박동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일말의 호흡도…….

보답받고자 한 일도, 인정받고자 한 일도 아니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걸 바란 적 없었지만……. 자신이 사람들을 살린 만큼 누군가가 그의 가족들을 살려줄 수는 없었나? 타인을 살리기 위해 죽었던 자신의 친구를 누군가가 살려줄 수는 없었어?

“아아아! 아아아악!”

끓는 울음은 곧 비명이 되었다. 답을 해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이곳에서 호흡하는 이는 자신 뿐이었기에.질식할 것만 같은 고독감. 시신을 엎드리듯 끌어안고 렌은 울었다. 죽은 도시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울음 소리만이 울렸다. 눈은 그치지를 않고 내리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만이 하나 남아, 모든 살아야 할 사람들을 두고 홀로 살아남게 된 이유를 곱씹었다. 시로도, 가족들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없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어떠한 이정표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나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건가? 대체 무엇이 남아서 나는 이곳에서 이렇듯 주저앉아있나. 내 모든 것이 스러져 전부 흩날리는 안전지대의 먼지 같이 되었는데…….

살아서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도무지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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