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
파이브는 제게 익숙한 색감을 응시한다. 하늘이라기엔 찰랑였고 바다라기엔 조금은 새카만, 탁하고 진한 잿물을 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원류는 바다였을 테다, 그렇지 않고서야 드문드문 보이는 파랬던 흔적이 남을리가 없으니까. 검은 물, 그 속에서 드문드문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파도. 파이브는 이 광경을 잘 안다. 언젠가 본 이후로 잊을 수가 없다. 그래, 왜냐하면 그건.
새카만 머리카락, 새카만 역안, 새카만 색의 옷만 입는데다 피부는 기이하리만치 새하얀 놈. 보고 있으면 그 강렬한 검은색과 하얀색의 자기주장에 색감을 인식하던 기관이 망가질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이분된 색상으로 바다에서 헤엄치던 놈.
—파이브.
환청이 들렸다, 저를 보던 눈동자도 생각이 났다.
우융, 내가 파도에 떠나보낸 놈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
그놈—이름을 밝히자면 우융이라고 한다—은 고3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것이 좆같아질 시기. 근데 공부할때는 그렇게 구겨지던 얼굴이 수영할때만은 그렇게 밝아지더라. 우융은 답지않게 바다를 좋아했다—지금 생각하면 그냥 물이라면 다 좋아했다—, 물론 외양상 답지않았다는 말이다. 그걸로만 따지면 바다를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저였을 텐데 자신은 물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으니까.
여름이었다. 그들의 고향은 바다랑 인접한 깡촌에 애라고는 눈씻고 찾아보면 찾을 수는 있을 정도. 학교는 그때 어떻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며 파이브는 중얼거렸다. 그때 마침 여름방학을 맞은 날이고, 우융은 언제나 그렇듯 바다로 수영하러 갔다. 그때 파이브는 어땠더라, 바다로 가는 우융한테 잡혀서 질질 끌려갔던가. 잠깐의 실랑이 후 제 교복을 잡고 이끄는 우융의 손을 따라 조금 빠르게 걸었던 것 같기도 하다.
"파이브, 뭐하냐?"
우융의 물음이다, 덤으로 물벼락도 함께 맞으면서. 순식간에 입에 침범한 짠내에 정신을 차리면 우융은 웃고 있었더란다. 저게 어딜 봐서 고3이냐? 하는 물음은 잠시 접었다. 그보다 더한 분노가 솟았으니까. 파이브는 우융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간다. 저벅저벅 하는 발걸음은 어느새 찰팍찰팍이 되고, 이어서 물 차는 소리가. 파이브는 오랜만에 물에 들어온 셈이었다. 그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본능마냥 이끌려 수영으로 우융을 추격한다, 어딘가 돌아간 눈동자가 지레 겁을 먹였는지 수영하다가 쥐가 나서 가라앉는 우융을 보고 황급히 건져올린 파이브는 그날 제법 꾸중을 들었다, 왜 공부해야하는 고3 바다에 빠트렸냐고. 그때까지도 우융은 기절해 있었다. 제가 처음 물이 싫어진 때처럼.
"평소엔 잘만 수영하더니, 왜 이번엔 빠지고 지랄이야."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은 아마 우융에 대한 걱정도 조금은 섞여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파이브는 우융에게도 물 한번 먹여주려고 한 것 뿐이었으니까. 절대 뭔가 사고를 일으키려던 게 아니었다. 단지 사고란 녀석이 참 튀어나오기 좋은 환경이었을 뿐이지.
"야 파이브. 나 바다에 가고 싶어."
뭐? 파이브는 우융이 깨어나자마자 바다를 찾는 걸 보고 그런 반응을 내뱉었다. 고3인데 공부해야지, 같은 이유는 아니었고. 안전상으로 문제가 많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은 밤이었다. 물도 차가워질 밤. 물먹고 이상하게 오랫동안 기절해있던 놈이 깨어나자마자 밤바다를 찾으면 퍽이나 데려가주겠다. 파이브의 말에도 우융은 여전했다. 야 파이브, 나 바다에 가고 싶어. 우융 너 미쳤어? 지금 날씨에 가면 너 죽어. 파이브는 울며 겨자먹기로 우융을 바다로 보내줘야 했다. 저를 바라보는 눈이 이상해서, 바다에 데려다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뭔가 저질러버릴 것처럼. 설마 그래도 바다에 들어가진 않겠지 했는데. 설마는 무슨.
풍덩.
우융이 바다에 빠졌다. 스트레칭도 하지 않고, 수영복 같은것도 안입고 그냥 입고있던 옷 째로 입수해버렸다. 한참을 바다에 있길래 저거 말려야 하지 않나 싶어진 파이브가 그를 올리려 바다에 발을 들인 순간에 우융은 수면 위로 머리를 쳐든다. 머리를 흔들고, 물방울을 튀기며 웃는다. 야, 파이브, 하며 부르기까지.
"우융 너 지금—"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으면 인어가 된대."
"...뭐?"
생뚱맞은 말이다, 그래서 파이브는 우융을 자세히는 못봤다. 정확히는 흥분상태였던 것이 더 자극을 받으면서 어딘가 그를 보고있으면서도 그를 보고있지 않았다. 저 덩어리가 우융이구나, 정도?
"내가 죽으면, 인어가 될까?"
풍덩,
그런 소리가 났고. 우융의 신형이 물 아래로 침몰했다.
고요,
파이브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융이 장난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우융!"
다급함.
파이브는 이제 그것이 장난이 아님을 깨달아서.
풍덩, 파이브가 바다에 빠졌다. 우융을 잡으러 가려고 준비운동은 미리 해뒀고, 수영하기만 하면 됐다. 이걸로 파이브는 저도 모르게 꺼려하던 수영을 2번이나 했다. 어째 물에 대한 거부감이 우융만 관련되면 사라지는 것 같긴 하지만, 지금의 파이브에게는 그런 잡생각을 할 것 없었다. 왜냐면 우융이 자꾸 가라앉아가는 것이 들고 온 플래시라이트의 빛으로 확실히 보였기 때문에. 아, 왜 저기까지 가서 잠수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 말은 구하고 난 다음에 해주기로 했다. 살아라, 우융, 제발 살아. 그런 염원을 담고서.
빠르게 헤엄친다, 이래뵈도 파이브는 중3때까지는 수영을 제법 했다.
그래서 우융을 잡았는데, 뭔가, 왜이리 딱딱하지?
건져올린 우융에게선 검은색이 흘렀다. 시간대가 밤이라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흐를수록 우융이 닳아 없어지는 것만 같이. 이상하지, 우융은 이다지도 단단하게 제 감각에 걸려 있는데. 사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파이브는 그게 두려워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연습을 학교에서 받긴 받았지만 침착함을 잃은 탓에 사람을 망가트릴 뿐인 것이 어디 소생술인가?
—사람이 죽으면 바다에 빠져 죽으면 인어가 된대.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였더라.
—내가 죽으면 인어가 될까?
그리고 홀린듯이 우융을 잡아서, 바다에 풍덩 던졌다. 그게 파이브의 최선이었다. 죽은 우융이 인어가 되어 살아나라고 비는 정도의 행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시체를 유기하는 행위. 우융은 살아날 것이다, 분명 그런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
—파이브.
우융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느새 상승하는 수면이 파이브의 발을 살짝 잠그고서 찰랑거린다. 새카맣고, 하얗고, 두가지 색이 너무 강렬하게 자기주장을 해대서 가만 바라보기도 힘든 놈이 저를 보고 있었다.
"너야, 우융?"
저기 멀리서, 인간의 상체 쯤으로 보이는 것이 불쑥 튀어나온다. 하얗고, 까맣고, 그리고, 눈이 부신 사람.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바뀐 역안에, 자세히 보면 그 근처에서 흔들리는 꼬리지느러미 닮은 무언가. 하여 파이브가 웃는다, 멍청하게 웃다가 넘어졌음에도 웃었다.
"살아있었구나, 인어가 되어서."
그 사실이 묘하게 기뻐서. 그래서 파이브는 픽 웃고야 말아서.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어느새 물은 파이브의 가슴팍까지 차오른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어깨, 목을 감싸고, 턱을 지나, 입을, 코를, 눈을.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
마침내 파이브의 전부를.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