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

구명구걸

"...한 번만. 딱 한 번만 살려주라."

파이브의 말이었다. 숨 하나도 제대로 못 쉬어서 끅 끅 대며 호흡하는 몸이, 채 죽이지 못하고 되려 패배한 상태로 3명을 제 앞에다 놓고서, 정상이 아닌 몸 상태로 고개를 푹 박으며. 자신을 살려달라고.


구명구걸救命求乞

바라건대 내가 이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죽지 않도록.


만신창이가 되어서 깨져버린 갑옷, 장기전에 지쳐버린 체력, 똑똑 흘리는 피. 그런 상태로 가쁜 숨을 내뱉으며 지면에 머리를 처박고서. 절대 굽힐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 무릎도 허리도, 확연하게 굽혀진 채로서. 명줄을 감히 구걸하는 파이브의 모습은 얼핏 보면 추하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을 모습이었다. 당연하지, 자존심이 있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죽이려고 했으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뭐, 어디까지나 생각에서나 그렇고 죽을 위기에 처하면 누구나 목숨을 구걸하는 법. 그렇지만 파이브는 다른 사람이었다, 적어도 속에서 죽음에 대한 불만이 있을지언정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파이브, 우리가 널 살려주는게 무슨 이득이 되는데?"

우융의 말이었다. 파이브의 손에 잃은 동료는 없다지만, 파이브의 동료가 제들의 손에 죽은 것은 많았다. 그래서 이렇게 복수를 하러 우리를 찾아온 거잖아. 우리를 죽이려고 혜비랑 같이 찾아왔던 거잖아. 파이브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려 마주하는 우융의 새카만 눈이 깊었다. 나긋나긋한 분위기의 어조에 힘이 가득 실린 채로, 검은 눈이 새카맣게 진해진 채로. 말해 봐, 파이브, 우리가 왜 널 살려둬야만 하는지.

그런 발언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기만 몇 분. 서로가 지독하게도 마주치는 눈싸움에서 누구 하나 물러남이 없이. 다만 파이브의 눈은 그저 그런 구차한 생존욕으로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죽은 동료라던가, 후회라던가.

짝, 힘이 실리진 않았지만 약해진 몸뚱이가 그 손짓 한 번에 휘청인다. 몸이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 다시금 새카만 것과 푸른 것이 허공에서 맞부딪친다.

"말 해, 파이브. 과거 회상이나 하라고 주는 시간 아니야. 왜 살려고 하는 거야?"

고압적인 목소리지만 분노 한 줌조차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당연하다, 저건 분노나 이런저런 것에 차서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파이브가 이렇게까지 살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었다. 애초에 살아나갈 방법은 없음을 잘 알면서. 애초에 미래를 그리는 눈도 아니었으면서. 티푸를 잠시 가둔 전적이 있었기에 살아서 다음을 기약하는 인간의 눈이라면 지겹도록 많이 마주해 봤다.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 하나, 파이브는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우융은 왜인지 그것을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저 끔찍한 동료 바보가 친구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늦춰서라도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친구들의 무덤을 만들게 해줘."

푹, 그제야 떨구는 파이브를 보면서 우융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너는 그래서 살아야만 했구나. 말하지 않고 있던 이유는 그것이 마지막 파이브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목표를 완전히 밝히고 목숨 구걸을 하는 치욕만큼은 남기기 싫어서. 그리고 지금 뱉은 이유는 뭐, 간단하지. 제 명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는 것이다. 죽음이 다가오면 인간은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조차 포기하게 되는 법, 그렇지만 파이브에게는 그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도 동료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참 눈물겨운 전우애네. 비웃듯이 올라가는 목소리가 작게 흘렀다.

"행크, 혜민님, 쟤 활동 가능하게만 살려 놓자. 우리가 안 죽여도 알아서 죽겠대."

그리고는 휙, 회복의 포션을 데구르르 굴려 파이브의 앞에 가져다 놓은 그가 날아올랐다.

"묏자리는 알아봐 줄게. 천천히 회복이나 하고 와."

그런 한마디만을 남겨두고서.


"힘들어 보이는데, 우리가 도와줄까.."

"가만히 있어 행크, 우리가 돕는다는 소리같은거 하니까 아주 죽이려고 노려보는데?"

행크의 혼잣말을 어떻게 잡아챈 건지, 부릅뜬 채로 노려보는 새파란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일절 표정의 변화를 가지지 않는 우융은 웃었다. 참 자존심도 높지,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도 파이브는 연신 휘청이기만 하는 몸으로 용케도 균형을 잡아서 잘도 무덤을 만든다. 코마와 티푸까지는 그나마 안정적이던 움직임이 선하의 것을 완성하면서부터 크게 무너졌다. 억지로 붙여놓은 명줄이 이제 끊어질 때가 됐구나. 싶은 것이 우토의 것을 다 만들고 혜비의 무덤을 반쯤은 완성했을 때였다.

파이브도 느꼈고 우융도, 행크도, 혜민도 전부 느낀 명이 다 된 것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파이브는 꿋꿋이 움직였다. 창작물에서 많이 보이는 그거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음에도 기합이나 의무감 같은 걸로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다가, 달성하면 죽어버리는 그런 거. 멈추면 죽는다, 쉬고 싶다고 생각해도 죽는다. 적어도 목적을 이룰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제가 살아있을 수 있기를. 파이브는 그때 처음으로 신에게 빌어 봤다. 아직 제 명줄을 끊지만 말라고, 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네가 죽으면 무덤은 우리가 만들어 줄게."

"..."

"노려볼 힘도 없나 보네. 뭐해, 이제 죽어야지."

움직이지 않고 우융과 눈을 맞추던 파이브가 다시금 움직였다. 작게 퍼서 그러모은 흙 위에 파란색 꽃을 심는다. 친구들의 무덤만큼 화려—사실상 화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고의 호화스러운 것이라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하지도 않지만. 어차피 고작 제 무덤인데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하늘을 올려다본 파이브의 눈에 하늘이 비쳤다, 구름 하나 없이 깨끗이 맑은 하늘이 파이브의 시야에 담겼다. 필사적으로 꼿꼿이 서서 약간의 심호흡을 하고, 손에 쥔 폭죽을 터트려서 활공하면.

빠르게 높아지는 고도가 어느새 끝에 달한다, 천천히 힘을 빼고 추락하는 시야에 저와 같이 따라붙는 새카만 것이 보였다. ...우융? 갑자기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파이브가 알 도리는 없었다, 감각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 찬 공기의 온기도, 바람이 스치며 느껴지는 촉각도, 치유되었으나 그럼에도 아직 만신창이인 제 몸에서 풍기던 피냄새도. 서서히 가라앉아가고 있다. 그에게서 분리되듯,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듯. 이제 그 또한 친구들의 품 안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듯.

그때 갑자기, 우융이 입을 벌려서 뭔가를 전하는 것은 의외였다. 여태까지의 정신을 뒤흔들던 행동을 보면 당연히 입으로 전달하겠거니 했지만, 소리도 안들리기 시작하는 판국에 왠지 모를 답답함을 품은 채로. 분명 그랬는데, 그나마 성한 시각이 우융의 입 모양을 읽었다.

니 무덤은 우리가 만들어 줄게.

고맙지?

전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잔뜩 구긴 파이브의 표정은 전달되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를 마주한 우융은 그저 웃으면서, 저승길 선물이라는 말을 입으로 전했다. 빌어먹을 놈. 언제나 저 입이 파이브를 뒤흔들었던가. 그것이 좋은 쪽이든 아니든, 그것이 어찌 됐든 간에. 그 뒤흔듦이란 지금, 죽어가는 저 자신을 또 한 번 뒤흔들어서.

지면까지 앞으로 5초, 파이브의 의식이 날아갔다.

이내 철퍽, 하며 몸이 뭉개지는 소리가.

"...이제 뒤처리 하죠, 다들."

사뿐히 착지한 우융이 파이브의 흔적을 응시하다 곱게 매장하며.

그런 말을, 나지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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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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