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

생존선고

살아남은거야.

"파이브, 왜 죽으려고 들어. 살아야지, 그치?"

흐으, 하아. 간신히 들이마셨다 내뱉을 수 있는 숨이 파이브의 폐부를 채웠다가 빠져나간다. 추락 실패, 우습게도 파이브는 친구들이 가는 곳으로마저 가지 못했다. 무덤 5개를 만들고, 자신의 것 치는 꽃 하나를 심고 장렬하게 날아올랐다가 추락사.

—같은, 뭐 그런게 아니었다 이거다. 우융의 새카만 눈이 파이브를 본다, 새파란 것에 까만 것이 섞이다 흩어졌다. 바보같이 눈싸움이나 할 기력도 없었고, 솔직히 저는 이제 죽어가는 몸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우융은, 저 이상한 배신자 놈은, 저보고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생존선고

너는 살아남았어


"살아야지. 살아서, 아득바득 끝까지 살아서 우리한테 한방 먹여줘야지. 네가 이렇게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 거야. 코마는, 티푸는, 혜비는, 우토는, 그리고 선하는. 파이브 너 선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근데 이렇게 한방도 못먹이고 자살로 죽으면 되게 좋아하겠다. 그치? 아닌가?"

재생의 물약을 던지면서 사근사근히 무언가 말하려는 파이브의 목을 밟는다. 아, 말하지 마 파이브. 아직 내 말 다 안끝났어. 그런 와중에도 재생의 물약은 서서히 망가진 파이브의 몸을 고치고 있어서. 다만 그게 파이브의 목이 밟혀 살짝 더뎌지긴 했다마는, 적어도 말 할 수준은 되었지만 여전히 올라간 발이 파이브의 말을 허용하지 않았다.

"살아보자 파이브. 너 이렇게 죽으면 되게 아깝잖아. 먼저 올라갈 애들이 니가 자살로 죽은 걸 알아봐, 엄청 난리칠텐데. 왜 그냥 죽었냐고, 왜 하필 자살이냐고. 그리고 너는 깨닫겠지, 내가 바보같은 실수를 저질렀구나."

"켁, 콜록, 콜록!"

"말해 봐, 파이브. 살래, 죽을래? 뭐 우리는 죽을 거라고 해도 이악물고 살려줄건데."

퍼질러 엎어졌던 몸이 애써 상체를 들어올려 자세를 정돈하고 우융의 눈과 마주한다. 방긋방긋, 참 예쁘게도 웃는 얼굴이 주먹을 한대 불렀지만 애석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닿을 일은 없었다. ...그 기분나쁜 웃음이나 일단 지우시지, 하는 의미없는 쏘아붙이기만. 그 말을 들은 우융은 그저 더 방긋 웃을 뿐이었다. 살살 속을 긁어대는 저 꼬라지가 참 마음에 안들었다. 정말로.

"말 돌리지 말자, 너는 사는 편이 좋잖아. 죽은 친구들한테도 미안하지 않고, 저-기 하늘로 올라가서 애들이 자살은 하지 말았어야지, 하면 되게 기분 나쁘잖아. 살아야지, 개처럼 기더라도 살아남아서 싸우다 죽던가 해야지. 그래야 네 죽음에 한점 부끄럼이 없지. 그거 아냐, 너 자살할때 진짜 꼴값이었다?"

저게 대체 어딜봐서 살라고 말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인지. 비난을 받는 파이브의 눈동자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동요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사실에 또 한번 예의 그 웃음이. 활짝 핀 우융과 달리 파이브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저 말에 어딘가 동조하게 되어서. 제가 아는 친구들이라면 자살로 올라갔을 때 걱정하면서도 슬픈 질책을 할 것만 같아서. 다 끝나고 나니 이 선택이 과연 옳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충동의 끝에 돌아온 이성이 파이브를 잡았다. 지금은 우융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맞지 않는가, 하고. 그러나 여전히, 그러나 계속, 마음 한켠의 기묘한 열망이 파이브를 불살라서. 갈등은 잠시, 판단은 순간에. 마음은 바뀌지 않은 채.

흔들림이 멈춘 파아란 동공이 검은 눈동자와 겹친다. 칙칙한 바다를 닮아 겹치다 흩었다. 곱게도 접힌 우융의 미소가 파이브를 향해 활짝. 결정했어? 우융의 말이었다. 파이브는 여전히 침묵하는 채였다.

쭉, 팔을 핀 우융은 파이브의 앞에다 잡으라는 듯이 제 손을 흔들었다. 잡아야지, 파이브. 이번 딱 한번만 눈감고 살아남으면 되는거야. 그 다음에 우리를 죽이던가 해서 떳떳햐지면 되잖아. 퍽이나 희생적인 말이었다. 파이브나 우융이나 믿지 않는 말이기도 했고.

"...그래, 할게. 생존. 살면 되잖아."

턱, 하며 파이브가 우융의 손을 잡고 지지받아 일어선다. 알 수 없는 생각이 가득 들어찬 눈에서 알 수 있는것은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

둘 다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약속을 하고. 다 들통나는 거짓말을 끝마치자 다가온 것은 행크였다. 돌아가서 제대로 치료하자, 파이브. 그런 말을 건네는 행크를 가만 바라보기를 몇 분.

"뭐 해, 안 갈거야?"

살겠다며? 우융의 도발적인 웃음이었다. 그를 마주한 파이브는 다만 걸음을 옮기면서, 사정이 어쨌든 저 찢어죽일 배신자 행크를 노려보며. ...가자, 행크. 치료해줘. 하고. 다만 그런 한마디를.


파이브 스스로가 내뱉은 자살하지 않겠다는 선언 후로부터 한달, 그는 명목상으로 그들의 동료가 됐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도전과제들을 착실하게 하나하나씩 깨 나가면서, 이제 이 세계의 끝이 날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씩 초조해져가고 있는 것일지 몰랐다.

그동안 파이브는 참으로 많은 시도를 했다. 낙사, 용암에 빠져 사망, 얼어서 사망, 몬스터에게 사망. 뭐, 그러한 모든 자살방법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우융에 의해서 저지당했지만. 징글징글한 놈, 지치지도 않나. 우융의 말이었다. 묘하게도 파이브가 우융에게 품은 생각 또한 그랬다. 어떻게 그렇게 죽으려고 할 때마다 귀신같이 찾아오는지.

"진짜 너무하네, 일단 살아보겠다고 말했으면 죽지 않으려는 노력은 하지? "

"실수를 내가 어떻게 해."

"실수, 실수로 퉁 치겠다?"

그럼 다 방법이 있지. 셜커상자에서 도끼를 꺼내든 우융이 갑작스럽게 쾅, 휘둘렀다. 머리를 향해서 휘두른 도끼가 투구에 의해 막히더라도 충격은 머리에 여실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힘도 풀리고.

"자고 있어, 파이브."

잠깐 자고 일어나면, 네 안락한 생존은 보장되어 있을 테니까. 우융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파이브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그 웃음이었다.


깨어난지 일주일 하고도 얼마 안 되어서, 온통 새카만 것 투성이였던 감옥 속에 꺼지지 않는 빛이 들어왔다. 자연광. 파이브를 막던 감옥의 한 귀퉁이가 깨져나갔다는 것이다. 빛의 존재로서 확인하게 된 감옥의 색은 밤이나 어둠의 그런 종류가 아니라 뭐랄까, 약간 보라색에 가까운 그런 새카만 색. 지옥으로 가는 포탈이 이런 색이었더란다, 그럼 이건 흑요석인가? 그런 중얼거림을 뱉으며 몸을 일으켜세운 파이브는 빛이 새어들어오는 곳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일단 우융 그놈만 없기를, 하며.

"워, 놀래라."

어째서 바라는 건 이루어지지도 않는지. 한숨을 푹 쉬며 억지로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 우융을 바라보면, 놀려먹는 그 얼굴이 여전했다. 기분이 나빴다.

"우리 파이브 기분 나빴어요? 이걸 어째, 나는 파이브가 자꾸 도망쳐서 죽으려고 하길래 그냥 가둬둔건데. 파이브가 안 죽기로 했으면서 먼저 약속을 그렇게 어기니까 내가 이렇게 아이템도 다 몰수하고 그런거 아니야. 그러게 죽을거면 잘 좀 도망쳐서 하지."

"자기가 멋대로 살려놓고 죽으면 안되니 어쩌니, 진짜 웃긴다. 선하 죽인것도 그런 니 마음 때문이었지?"

"선하는 옝이 죽인거 잘 알면서. 머리 맞았다고 기억도 왜곡된거야? 어떡해, 치매도 아니고. 혹시 우리 팀이었던거 기억해? 우리 초반만 해도 진짜 좋았다. 니네가 적대해서 그렇지."

"드래곤 먼저 잡으면서 선 그었으면서 이제와서 원래 타령이야? 니들 손에 죽은 애들만 몇인데."

"몇인데? 말해 봐, 우리 손에 몇명이나 죽었는데 그래?"

"..."

그 즈음에서 파이브는 우융과 말을 섞는것을 멈췄다. 더 이상 대화해봤자 제 정신만 갉아먹을 뿐이다. 마지막 전투에서도 그래서 흔들린 게 없지않아 있었잖아. 홱 몸을 돌려버린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융은, 제 인벤토리에서 폭죽과 겉날개를 집어들고 흔들면서, 있잖아, 파이브. 하며.

"죽게 해줄까?"

참으로 기묘한 물음이었다. 죽게 해주겠단다, 이제와서. 여태껏 죽는걸 잘도 방해해왔으면서 이제서야. 그러니까 저건 우융의 악질적인 장난이다. 그 사실을 파이브도 알았다. 그치만, 그렇지만, 이제서라도 죽을 수만 있다면.

옅은 두근거림을 가지고서 돌아본 곳에서 우융은 쏙, 아이템을 집어넣은 채로 웃었다. 그렇게 쉽게 보내 주겠냐~ 하며. 그럼 그렇지, 괜한 기대감을 가졌어. 그런 생각과 함께 몸을 또 돌리려는 순간에.

딱 사흘만 기다려, 사흘만.

그러면 내가 죽게 해 줄게.

답지않게 우융은 진지했다. 그래서 파이브는 살짝 당황했다. 도대체 저게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사흘 뒤에 뭐가 일어나는 건가? 파이브의 눈이 깊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말을 멈췄다. 마치 이제부터라도 어울리지 않겠다는 듯이. 이미 실컷 어울려놓고, 나중에 자살하려니 같이 지낸 세월이 퍽 부끄러운 모양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우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흘 뒤에 죽게 해 줄 테니 죽을 수 있으면 죽어보시지, 하며. 활짝.

하루, 이틀, 사흘. 마침내 파이브가 죽을 수 있는 날. 파이브는 그동안의 생각을 마치고서 우융을 마주했다. 여전히 마음이 바뀌지 않은 채로. 저 의지를 그냥 살아가는데 쓰면 될 걸, 하는 우융의 말을 무시하고서 파이브는 다만 꺼내달라고만 할 뿐이었다.

"자, 자. 죽던가 말던가. 알아서 해."

우융에게 아이템을 받은 파이브는 받고서도 의문스러운 채였다. 죽는걸 필사적으로 막으려던 게 아니었던가, 그래서 번거롭게 자신의 명줄을 어떻게든 붙여놓은 주제에.

"안 날거면 말고, 나는 분명 날라고 말했다?"

묘하게 저런 말이 거슬린다. 마치 네 죽음은 이제 상관이 없다고 판단하는듯한 저 태도가.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하게만 해도 파이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예전에 죽었더야 할 명줄이 이제 끝난다, 날아올라서, 추락해서, 그래서 죽어서. 마지막 전투 후에 홀로 살아남아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너희는 알까,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까. 죽지 못해 살았던 내 마음을 알까.

5.

모르겠다. 이젠 아무것도.

활공의 끝, 겉날개를 뺀 파이브가 추락했다. 천천히 지면에 가까워진다, 이제 바닥에 박히기만 하면 자신은 죽는다. 그런데 이상하지, 우융이 뭔가를 세고 있는 것이.

4.

숫자다, 우융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뭘 세는거지? 추락까지의 시간? 아니면 무언가?

3. 땅


2.


1.

그리고, 추락이 멈췄다.

"축하해, 파이브."

지금부로 이 세계의 모든 도전과제가 전부 종료됐어.

그것은, 어쩌면 최악의 말.

"네가 살아남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 말을 하면서. 우융은 다만 웃었다.

파이브가 가장 싫어하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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