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미련
불이다. 먼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그 짙은 탄내와 색상이 자기주장을 격렬히 해대고 있다. 건물을 잡아먹는 건지 건물에 붙은 기름을 잡아먹는 건지, 하나 결과가 있다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저 건물은 그 불길에 먹혀 사그라질 것이란 것이라. 뜨겁고 짙은 불이 작은 세상을 덮어서, 갉아먹다못해 전부 다 연소시켜버릴 것이란 이야기다. 그를 보는 코마의 코에는 그 탄내가 그렇게도 비릿해서, 울렁증이 도질 정도로 역해서.
우웩-
헛구역질을 했다. 속에서 쳐올라오는 구토감, 가슴에서 턱 막혀버린 감각, 헛구역질과 구역질의 사이를 노니는 자유로운 속내와 찔끔 배어나오는 눈물, 이윽고 따가워진 목구멍. 코마는 토를 뱉었다. 입에서 뭐가 흘렀다. 슬쩍 흘린 눈물이 눈을 흐려서 보이길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이. 그저 새카만 것은 바닥이고, 확연히 차이나는 것은 제 토사물이고.
"코마."
저 새파란 것은.
우리를 버린 너였다.
.
파랑에 파랑이 겹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늘색과 바다색 정도의 차이를 가진 그것들이 한데 만났다는 말이다. 밝은 색에 어두운 색을 덧칠하면 그것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눈동자 하나 정도에 담긴 두 색이 한데 만나 오롯하게 뭉쳐서. 진해지고 탁해지다, 결국에는 가라앉듯이. 밝은 하늘이 차마 바다를 피했다, 그러나 결국 둘은 만나서. 침묵. 겹친 눈동자는 진동 없이 고요했다. 이런 걸로 감정을 드러내기엔 퍽 오래된 사람들의 시선 교환이었기에.
"오랜만이야."
그걸로 짙은 파랑은 운을 뗀다. 오랜만, 이라는 것은 대체 무슨 낯짝이어야 그런 말을 감히 내뱉을 수 있는지. 사납게 성을 내는 와중에도 눈만은 다만 고요했다. 연기구나, 하는 한 마디에 뚝 멈춰버리는 하늘이 퍽 우스웠던가. 하여 군청은 웃는다. 소년이 기억하던 웃음과 일체의 상이함 없이 겹치는, 그래서 더 아릿한 웃음이라. 마치 그 웃음이 퍽 맑아서, 이런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그 맑음에 이끌려 그도 모르게 같이 따라 웃을 정도로.
"연기 실력은 많이 늘었네."
또다시 말하는 것은 짙은 파랑이라, 단지 그는 그저 들을 뿐이었다.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 말고 대체 언제쯤 가야 본론을 말할 건지. 친구—였던 것이지만—앞에만 서면 쓸데없는 말을 하는 버릇은 여전했다. "그런 버릇 좀 고치지, 쓸데없이 향수병 돋잖아." 하고, 툭 나가버린 말과 멍하니 제 앞의 상대를 보는 눈동자가. 그럼 그럴까? 상대가 물었고, 그러자, 하는 가벼운 긍정이 뒤를 따랐다.
"본론이 대체 뭐야?"
"알면서."
"지긋지긋하네."
"너도 그래."
푸하하. 서로가 서로의 눈을 보더니 폭소했다. 대체 이게 무슨 대화야. 장소랑 역할만 바뀌었지 다른 점이 없잖아. 그런 거라도 바뀐 거야. 서로 오가는 말은 마치 친구마냥, 그러나 여전히 눈에는 일체의 호감도 호의도 없이. 그들이 정을 통하고 있었다는 사실—과거형이지만—은 자명하나 그걸 굳이 여기까지 끄집어올릴 필요는 아마 없을 테다. 그래, 깡패새끼들의 협상이 다 그렇지. 뭣하러 말로 하냐? 귀에 익은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는 것마냥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여전하구나, 코마."
"그건 아마 너도 마찬가지야."
말은 길지 않았다. 어느새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서 물러난 코마와 그를 빤히 바라보는 파이브가,
쨍그랑-
방아쇠를 당긴 총 끝에서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건 툭 건들면 무너질 것만 같은 여린 유리와 같은 서로의 관계가, 지금껏 파국이라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을 그것이 결국, 하나의 결과로 확정남을 증명하는 꼴이라서. 탕탕거릴 총 끝에서는 유리가 연신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헛맞추는 총탄이 뚫어버리는 것은 한낱 유리창인 것처럼, 그 총탄 한발 한발에 무너져내리는 소리만 가득해서. 아, 우리는 이제 완연한 적이 되었노라고.
코마는 파이브에게 시도때도없이 붙었고 파이브는 코마가 붙어오는대로 총을 쐈다. 총과 몸이 뒤엉키는 꼴은 마치 개싸움처럼. 탕탕거리는 총소리는 코마의 돌격에 귀찮아하는 파이브의 짜증처럼 튀었더란다. 파이브, 너무 감정적인거 아냐? 조용히 해 코마.
각자 한마디씩 주고받은 대화의 그 짧은 시간에 숨을 고르고서 탕. 우지직, 총성과 움직임에 의한 소음이 공간을 메웠다. 꽤나 큰 폐건물에서 싸우고 있는데도 나는 소리가 이정도일 수 있었던 건 총성이 컸다는 것과 코마가 앞뒤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일 테다. 미친개는 강하다, 잃은 놈도 강하고, 마지막 전투의 각오로 싸우는 놈들이 대개 그렇다. 그리고 코마는 분명 그 셋에 전부 포함 될 녀석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어느새 살짝 죽었던 눈이 불타고 있었다. 분명 그랬다.
탕, 하는 것은 마지막의 총성이다.
그것이 코마를 지났다.
졌네, 졌어. 그런 말을 하는 코마는 왜인지 또랑또랑한 그 눈을 죽이지 않고 파이브에게 맞췄다. 안광이 빛나는 것이 그렇게 소름끼칠 수가 없어서. 누가 보면 니가 이긴 줄 알겠네. 파이브는 그런 말을 했다.
"죽일 거야?"
"보고."
침묵, 이내 그것은 깨트린 것은 코마였다.
"왜 그랬어?"
"깡패들이 다 그렇잖아."
"하긴, 그렇지."
"예의도 모르고."
"바보들이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러고있진 않겠지."
"켈로인 말하는거야?"
"좋을대로 생각해."
"그런 걸로 할게."
청명과 군청이 만났다. 빨간 것이 살짝 섞이긴 했지만 뭐 어떠할까. 그들의 시선에선 서로는 하늘이었고 바다였으매, 짙고 밝은 정도가 다른 두 파랑이 단지 서로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바다가 위였다, 하늘은 아래였고, 그제야 코마는 제가 기어코 꺾여버렸음을. 패배했음을.
"코마, 한가지만 물어도 돼?"
"누가 그런 것도 허락을 구하냐."
"그럼, 있잖아."
파이브는 코마의 몸을 묶다 말고 임시로 꾹 묶어놓은 후에, 다시 한번 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왜 조직을 버리지 않았어?"
"네가 그랬잖아."
아무래도 코마 너는 그 고집 평생 못 꺾겠다.
"너-"
그건 언제였더라. 파이브가 그런 말을 코마에게 했던 때가. 코마의 말을 듣고 멍해지는 눈에 코마는 순식간에 구속을 풀어내고서 파이브의 턱을 빡 차올렸다. 아릿한 고통, 다만 파이브는 턱을 맞고 휘청이는 와중에도 그런 아득하고 먼 기억만을 더듬어서. 아, 그래.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던 때는. 우리가 아직, 바보같은 놀이를 끝내지 않았던.
"내가 고집이 세다고 한 건 너였어."
그때였노라.
코마가 뛰는 소리가 들렸다. 파이브는 구태여 잡지 않았다. 다만 그 시간에 변명을 생각했다.
변명, 변명, 그러니까, 내가 갑작스러운 기습에 턱을 맞아 시선이 흔들렸고, 하필 그때 나는 방심을 하고 있었고, 총을 저어기 멀리 떨어트리게 되어서, 차마 잡으러 간 사이에 코마는 도주해버렸다라고. 그런 변명을, 하면 어떨까.
"...용서해줄래, 우융?"
"나는 너를 다시 코마잡이에 쓸거야."
"좀 용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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