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마지막 기회야, 코마.
열통. 눈을 뜬 파이브가 감각하는 것은 그렇게나 뜨거운 열통이었다. 하늘로 향해있는 시선과 땅에 등을 대고 볼품없이 추락한 흔적은 그렇게 통증을 남기고 생명을 남겼다. 터져나간 것은 등만이 아니었는지 배에도 새겨진 그 여러군데의 출혈과 피부가 전신에서의 열통을 동반해서. 생을 꺼트리는 통증이 되려 사실 하나를 상기시킨다.
"...살았다."
그는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내가 죽기 전에 이 삶의 의미를 알려줘.
골든타임
파이브는 살았다. 살아남아버렸다. 복수라도 이루고 살아남았으면 모를까 그것도 안됐다. 혜비는 어떻게 되었더라, 아, 내가 버렸구나. 또 친구를 버리고 살았다. 정말 뻔뻔한 목숨이네. 파이브가 웃었다. 자괴감만 가득이 떠안고서 웃었다.
혐오 분노 우울, 기타 등등. 취급불량의 감정을 꾹꾹 웃음에 눌러담아 폭소로 저를 비웃는다.
하하하, 이 뻔뻔한 새끼. 어중간하게 했다가 아무것도 못한 놈.
선하의 복수를 해야할텐데~
환청.
우융의 목소리가 그를 가득 채웠다, 하하, 복수. 그래, 복수. 그렇게 주장해놓고 막상 실패할것같아서 목숨 하나 보전하자고 도망친 그 한낱 복수. 자살도 실패하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꼴값일 수가. 그딴게 뭐가 복수야. 그냥 자기만족이지.
한참 자신의 욕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뚝 멈춰버린 파이브의 눈 앞에 깜박이는 창 하나가 떠올랐다. 부활 알림. 부활시킬 사람도 이제 없고 애초에 우융네는 다 클리어하는 것으로 여기서 사라졌는데, 누가 부활을 한다고.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파이브의 눈이 살짝, 그리고 엄청 커진다.
komq, 그 이름이 달랑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파이브는 어찌 불러야할지 모르는 충동을 품고서 심장이 뛰어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침착하려 해도 질주하는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막연한 기대감과 막연한 희망. 코마가 어떻게 살아났고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따지고들다간 이렇게 나타난 코마마저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그러면 정말로 이 생명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파이브가 달렸다. 친절하게도 코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을 들고서 무작정 뛰었다. 기다려, 기다려 코마. 내가 너랑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 사과해야할 것도 있고, 감사해야할 것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너랑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
.
—야 파이브, 만약에 니가 복수 못하면 그땐 어쩔거야?
—생각해본적 없는데. 그리고 왜 복수를 못해?
—자신감 쩌네. 그래도, 혹시 네가 복수를 실패하고, 세상엔 우리 둘밖에 안 남았을 때. 그때 니가 그렇게 고독하면.
우리 이 삶의 의미라도 찾아볼까.
—와, 말투봐, 고백하냐?
—사과해 파이브.
.
코마, 네가 말한 약속이라도 우리 한번 지켜볼까.
네가 이 남은 생의 의미를 알려주지 않을래?
.
파이브가 코마를 쫒아 무작정 달린 땅의 끝자락에는 바다가 있다. 그 푸른색의 향연에 파이브는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죽기로 한 것은 세상의 끝. 그리고 세상의 끝은... 어디에 있더라. 바다였나? 지구평평설의 그 마지막? 생각이 닿은 파이브는 웃는다. 뭇 멍청한 소리라서는 아니었고, 왜인지 코마가 왜 그런 약속을 했는지 알 것 같아서일까.
근데 어째, 결국에 남은건 나고, 죽었던 너도 왜인지 돌아왔는데. 있잖아 코마. 단 두명이 남은 세계에서 뭔가 살아봤자 할 게 있을까. 먼저 간 애들에 대한 추모? 그런건 이미 질리도록 했고. 복수? 이미 실패했지. 모르겠어, 코마.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그러니까. 네가 내한테 그 의미를 알려줬으면 좋겠어.
같이 죽지도 못하고 나만 살아버렸을 때 꿋꿋이 걸어나갈 수 있도록.
내가 너랑 죽기 전까지, 꼭 알려줘야 해.
나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은 너랑 같이 세상의 끝에서 떨어지기 전까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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