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레오: no more
가이드버스, 가이드 츠카사와 에스퍼 레오
지이잉-. 지이잉-.
주머니 속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츠카사가 귀찮은 듯 손을 찔러넣었다. 얇은 핸드폰에 손이 닿는 순간 진동도 뚝 멈췄다.
귀찮게 누가 월요일부터 호출이야.
주말에 있던 가족 모임에서 쌓인 피곤이 아직 남아있었다. 한숨을 깊게 쉰 츠카사가 모니터를 보던 시선을 내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번 한숨은 유독 더 짙었다.
붉은색으로 짙게 물든 머리카락이 신경질적으로 흐트러졌다. 의자에 반쯤 내려앉아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헤집은 그는 아예 책상 위에 이마를 찧었다.
“츠키나가, 츠키나가, 츠키나가…!”
조용히 혼잣말로 뱉는 음성에서도 짜증이 물씬 묻어났다. 한참 자리에 앉아 구시렁구시렁 거리던 츠카사가 이내 다짐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도로록 밀려 벽에 부딪힌 뒤에야 멈췄다.
오늘은 조금 쉬고 싶었다. 아침부터 힘들게 가이딩 센터를 돌아다녔는데, 잠깐 쉬는 시간에 꼭 나를 불러야겠어? 나름 배려한다고 휴게 시간을 골라 찾아온 걸 모르는 츠카사가 투덜거렸다.
[올해의 산타는 스오우에게 있다? 스오우 그룹 자선행사 성황리에 마무리]
큼지막하게 쓰인 헤드라인 아래로 가족사진을 본 츠카사가 냉큼 브라우저를 꺼버렸다. 쓸모없는 사진을 찍었으니 또 쓸모없는 얘기를 하러 온 걸지도 모른다. 또다시 한숨이 흘렀다.
벗어둔 가운을 입은 츠카사가 성큼성큼 휴게실을 나섰다.
S급 가이드는 대체 언제쯤 세상에 나타나 줄는지. 등급도 안 맞는 에스퍼 관리하느라 힘든 마음 누가 알아줄까.
평소엔 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은 타입이 아닌데, 츠키나가만 관련되면 이상하게 울분이 차올랐다. 매번 자신을 놀리는 그 사람 탓인지, 아니면 분수에 맞지 않게 S급 에스퍼랑 매칭률이 높은 게 억울해서인지.
호출받은 호실을 확인한 츠카사가 머릿속에 든 잡생각을 비웠다. 이제는 일이었다.
똑똑.
-들어와!
사람이 늘 한결같으면 어딘가 이상한 거라는데, 저 사람은 언제봐도 한결같았다. 해맑은 인사와 함께 먼저 문이 열렸다. 이럴 줄 알았다.
“좀 앉아서 기다리시면 안 됩니까?”
“아아, 가이드가 오니까 마음이 마구마구 설레서 말이야.”
“얼굴은 또 왜 그래요?”
“가이드가 가이드를 안 해줘서?”
“그걸 물은 게 아닌 거 아시잖아요.”
왜 다쳤냐고 물은 거지 왜 아직 안 나았냐고 물은 게 아니다. 츠카사가 고갯짓으로 침대를 가리키자 상대가 넙죽 드러누웠다. 목에 착용하고 있는 출입증에는 ‘S급 에스퍼, 츠키나가 레오’라고 쓰여있었다. 해맑게 웃는 증명사진은 덤이고.
츠카사의 눈이 레오의 상처를 세심하게 훑었다. 어디 폭발에라도 휩쓸렸는지 훤히 드러난 목에도 생채기가 가득했다.
“목 보호대는 안 했고요?”
“그럴 겨를이 없었어. 보호대도 늦게 도착했고 말이야.”
“상처가 나면 회복도 느리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재깍 찾아왔잖아? 어제는 가족 모임 하느라 바빠 보여서 안 간 거야.”
“어제는 업무시간 외니까 안 찾아오는 게 당연한 거고요.”
하나하나 말씨름해봤자 도움이 안 된다. 츠카사는 상처 둘러보는 것을 그만둔 채 레오의 손을 붙잡았다. 퍽이나 바빠 보여서 안 왔겠다. 손에 닿는 레오의 파동 하나하나가 중상이었다. 움직이는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자 종알종알 이야기하던 레오의 목소리도 뚝 끊겼다. 얼굴로 쇄도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츠카사는 외면했다.
A급을 상대하는 것관 다르다. 잘못했다간 에스퍼의 능력에 피해까지 갈 수 있는 가이딩이었다. 어떻게 이 사람이 S급 에스퍼인지는 도저히 모르겠으나, 이렇게 접촉할 때마다 느껴지는 파동의 크기가 보통의 에스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츠키나가 레오는 인정받을만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슬슬 살만해진 에스퍼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손가락을 엮는 것도 모자라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못 참겠는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난리가 났다. 가이딩하던 츠카사가 짜증이 나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히면 그걸 보고 웃기까지 했다.
결국 츠카사가 붙잡았던 손을 팽 떨쳐냈다.
“가이딩할 때 위험하다고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남들은 잘만 자던데 대체 당신은,”
“아아아. 오늘도 잔소리, 잔소리. 걱정 마. 나는 스~오를 믿는다니까.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짜증 내는걸 들을수록 매칭률도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야! 와하하. 실제로도 그렇고!”
우리 매칭률이 80%를 넘겼어. 대단하지 않아? 듣다 짜증이 난 츠카사가 밖으로 뛰쳐나가니 뒤로 따라와서도 쫑알쫑알 말이 참 많았다.
실제로 이렇게 티격태격 밀어내는데도 이상하게 매칭률이 올라갔다. 최근에 검사 받았을 때는 작년보다 3%나 뛰었으니 내년엔 85%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뭐해, 나는 A급이고 그쪽은 S급인데. 차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애초에 A급 가이드가 S급 에스퍼를 일정 수치 이상으로 가이딩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잠깐의 가이딩으로 얼굴이 훤해진 레오가 방긋방긋 웃었다. 웃음이 참 헤퍼서 그런지 일반인들 사이에선 인기가 꽤 뛰어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일찍이 각성해서 매스컴에 얼굴을 드러냈으니 인기가 좋을 법도 했다. 물론 츠카사에겐 아니었다.
“다 끝났으니까 전 가볼게요. 힘 좀 자제해서 쓰시고요.”
“요즘 일이 많아서 그래, 그래서 많이 부르는 거야. 나도오, 어? 우리 스오 선생님 자주 부르고 싶지 않았어.”
그럼 응급 가이딩 받으시던가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은 꾹 삼켰다. 또 너스레 떨면서 갖은 이유를 댈 게 뻔했다. 허리를 꾸벅 접어 인사한 츠카사가 냉큼 몸을 돌려 그전까지 있었던 휴게실로 향했다. 뒤에서 ‘잘 가~ 스오~’하는 인사말이 들려왔다.
잘 가지 말래도 잘 가서 푹 쉴 겁니다. S급 가이딩 잠깐 했다고 속이 메슥거렸다. 쭉쭉 빠진 체력 때문인지 복도도 조금 흔들리는 것 같고, 약간의 어지럼증이 츠카사를 찾아왔다. 똑바로 걷는다고 애썼지만 이미 한손으로 벽을 짚고 선 츠카사가 긴 한숨을 뱉었다. 참 피곤했다.
“힘들어?”
“……?”
끔뻑 눈을 감았다 뜨니 아까 인사하고 간 줄만 알았던 레오가 바로 앞에 있었다. 츠카사의 안색을 관찰하는 녹색의 눈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동그란 눈이 반으로 접히며 빙그레 웃은 상대가 손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먹어.”
“이게 뭔데요?”
“초콜릿. 저쪽에서 가져왔어.”
가리킨 곳을 보니 카운터에 있는 초콜릿이었다. 단 걸 먹으면 나아지는 것이 맞았기에 츠카사가 냉큼 레오 손에 있던 초콜릿을 가져갔다. 얇은 포장지를 까 입 안에 넣으니 단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 사람한테 뭘 얻어먹은 거지? 인상이 팍 구겨지니 그 모습을 보고 레오가 한바탕 웃었다.
“지금 나한테 받아서 기분 상했구나? 그래도 이렇게 걸어가는데 어떻게 그냥 가.”
레오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츠카사의 걸음걸이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 이러니까 정이 안 가지. 초콜릿을 먹은 덕택에 정신이 든 츠카사가 다시 냉정한 얼굴을 했다.
“이제 괜찮으니까 가세요. 저 똑바로 걸을 줄 안다고요.”
경고하듯 뱉은 말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갈게~!’하고 친구에게 말하듯 신나서 외친 그가 먼저 반대편을 향해 걸어갔다.
사라지는 것 보고 돌아가야지. 안 그러면 뒤에서 또 쫓아올 것 같았다. 츠카사가 레오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레오가 두어걸음 걷고 뒤돌아 인사하고, 두어걸음 걷고 뒤돌아 웃고를 반복했다.
가는 데만 한 세월이겠네. 하고 속으로 빈정대던 차였다.
우르릉.
위이이이이이이이잉————
건물에서 난 괴상한 소리와 함께 비상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한차례 자리에서 휘청인 츠카사는 귀를 뚫듯 들어오는 사람들의 비명을 들었다. 귀가 아파왔다. 초콜릿의 당분이 그사이에 힘을 잃었다. 다시 한번 건물이 휘청였다. 가이딩의 여파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주욱 풀리며 몸이 뒤로 넘어졌다.
“아.”
시야에 보이는 것은 하얀 저건 뭘까? 지지직. 균열이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얀 천장 사이로 회색 금이 가고, 그 안에 든 콘크리트가 선명히 보였다. 시간이 무척 느리게 흘렀다. 바로 위로 쏟아지는 것이 보이는데 좀처럼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멍청하게 뱉은 ‘아’ 소리가 마지막이겠구나. 그래도 죽기 전에 S급 에스퍼 한명은 사람 만들고 죽었으니까 꽤 영웅적이지 않을까? 산재 처리는 될까? 내가 죽으면 레오 씨는 누가 가이딩해주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 마지막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츠카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깨에 무엇인가 닿았다. 차갑다. 무너진 콘크리트 덩어리일까?
“정신 차려!”
삐———————이.
귀에 이명이 울렸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하얀 콘크리트 천장이 아니었다. 몸은 어느새 카운터 뒤에 놓여 있었다. 주변이 혼비백산한 가운데 츠카사는 산산이 부서진 가이딩 센터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스오! 나 진짜 빠르지 않아?’
빠른 손이 다리를 쓸자, 검지에 걸려 나온 권총 하나가 핑그르르 돌며 방향을 바꿨다. 탕. 날아간 총알 하나가 순식간에 손을 뚫고 상대의 머리를 터트렸다. 비명 나올 새가 없이 다음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아낌없이 날아간 총알은 이번에 벽 뒤에 숨은 상대로 향했다. 한 발이 기둥에 흠집을 내고, 한 발이 기둥을 뚫고, 한 발이 그사이를 지나쳐 상대에게 닿았다.
낮게 구른 몸이 이번엔 카운터 반대편, 진료실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총. 나도 총이. 현장에서 에스퍼를 돕는 가이드에게나 지급되는 총이 고작 가이딩 센터에서 근무하는 가이드에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얼굴에서 절망이 번지는 가운데, 다시 맞은편의 진료실에서 레오의 얼굴이 나타났다.
‘쉿.’
아, 나 정말 쓸모없다.
스오우 츠카사. 추해.
언제까지 구해지기만 할 거야…….
추하다고 스스로 욕하는 중에도 제발 그가 무사하길 바란다는 간절한 기도가 섞여버린다. 제발. 이번에도 죽지 마.
짓궂게 웃은 상대방은 능숙한 속도로 총알을 재장전했다.
S급 에스퍼, 츠키나가 레오, 능력은 속도, 주 사용 무기는 종류 상관없이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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