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저진

압생트

질투와 독소

매미는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는 잊을 수가 없는 것에 더 가까운 부류의 것일 테다. 그림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압도적인 폭력성을 가질 수가 있는가? 터무니없는 질문이나, 그런 질문을 감히, 무심코 하게 될 정도로 압도적인 예술의 폭력성을 매미는 안다. 새하얀 캔버스를 가득 채운 물감과 붓질의 흔적들은 모두 모여서 하나의 압도성을 갖는다. 2월 28일. 오후 세 시. 보여 줄 것이 있다고 말하며 저를 잡아끌던 그 손이 캔버스를 가리던 천을 훅- 당겨 열어버린 풍경이라는 것.

흔적과 흔적이 뭉쳐서, 물감과 물감이 만나서, 그것들이 결국 큼지막한 캔버스를 다 채워서. 너는 그걸 보여주고 웃었나? 사실 그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붓질과 물감의 흔적이 잔뜩 새겨진 그 캔버스에서 눈을 뗀 적이 없어서. 과장하자면 소리조차 잠깐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에 옥에 티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제가 쓰던 캔버스였다는 점이다. 제가 그리던 그림에, 아직 제가 건드리지 않은 많은 부분에 아로새겨진 붓질 가운데에. 당당하게 불편한 요소로서 남아있는 그 것을 보고서.

‘⋯뭐야, 이게?’

제 자신이 이렇게 추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나?

1.

오후 한 시. 해가 중천에 뜨고도 한 시간은 더 지난. 이불은 어디 갔는지 매트리스 위에도 올라와있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새하얀 침대 위에서 눈을 뜬 사람을 천천히 눈꺼풀을 끔벅거린다. 깊은 숙면을 취해서인지 아니면 꿈자리가 사나워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전날 그렇게나 실컷 들이켠 녹색 질투 때문인지. 나른함과는 거리가 먼 무력감이 대자로 뻗은 몸을 지배했다. 움직이고 싶지도 않고 움직여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다. 잠깐 깨서 한다는게 화장실에 잠깐 들리거나 다시 숙면을 취하는 것 외에는 달리 무엇이 있을까. 그러면서 하품을 쩍, 하다가 느껴지는 식도가 따끔따끔한 감각. 아, 하나 더 있네. 물 마시기. 지난 밤에 실컷 마시고 토해낸 뒤 그대로 잠이 들었었나? 그런 잡스런 생각과 함께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신체의 말단을 천천히 움직여보지만 몸뚱이가 말을 잘 듣질 않았다. 꼼지락꼼지락,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여 보다가 익숙한 듯 작동하는 것은 엄지와 검지로 그림을 그리듯 까딱거리는 손목의 스냅 뿐이라. 그 사실에 열이 뻗친 몸은 그제야 제 통제를 따랐다.

기어코 몸을 일으켜 발을 땅에 딛으면 느껴지는 푹신한 이불과 덕지덕지 달라붙은 토사물의 촉감은 절대 빈말로도 그것을 좋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제서야 일어났을 때 침대 위에 이불이 있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이불에다 토하고 그냥 바로 침대 아래로 떨어트렸나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하자 그제야 느껴지는 역한 냄새에 코까지 부여잡은 손길이 이불을 주워들었다. 진짜 되는게 없네, 같은 짜증도 함께.

2.

매미의 일상은 제법 단출하다. 단출한 것도 스스로의 의지로 그러기보다는 단출할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아마 더 옳은 말이리라. 혼자 사는 집에서는 집에서 받아온 반찬과 밥을 먹거나, 아니면 대충 식사를 때우거나. 그러고 나면 그림을 그렸다. 그는 주로 새하얀 캔버스에 붓과 물감을 가지고서 그림을 그렸다. 원래 주로 그리던 것은 유화였으나 요즘은 수채화를 했다. 그렇게 한참 그림을 그리다 보면 참을 수 없는 열이 아래서부터 솟구쳐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다가 떡이 되고, 개가 되고, 그러다가 구토를 하며 속을 게워낸 다음 숙면. 딱 봐도 좋은 하루 일과라고는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것을 그도 모르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관성과도 같은 쓰레기같은 하루 일과의 진행은 이렇게나 지랄맞은 연속성에 저항할 수도 없고, 정신이 가끔 좀 또렷할 때면 이 루틴을 반복하고 싶게 만드는 웃기지도 않는 감정이 솟아올라서. 몇 년째 반복되는지 모를 현상에 매미는 웃는다. 사람에겐 사랑을 비롯한 감정의 유통기한이 있다고 했었나? 아마 그것은 틀렸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감정이 끊이지가 않는데 어떻게 유한할 수가 있는지.

언제나처럼 캔버스 앞에 앉으려던 매미가 진정되지 않는 열에 발로 캔버스를 콱 찼다. 볼품없이 나동그라지는 꼴이 퍽 초라해 매미는 순간 그것을 가엾게까지도 봤지만, 이내 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자조했다가 머리를 달구는 열을 느낀다.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정신이 미쳤나? 옅지만 작은 웃음기가 스민 목소리를 끝으로 감정은 다시금 저 볼품없어진 캔버스를 닮는다. 색을 나름대로 칠한, 가만 보면 나쁘지는 않을 그림의 대략적인 형태감이 담긴 캔버스가 땅에 굴러다니듯이. 한번 더 발로 차면 잘못 맞은 발은 아프고 캔버스는 캔버스대로 구른다. 발의 통증과는 별개로 캔버스가 구르는 것은 또 아팠다. 그러면 이 행위는 자학인가. 그런데도 멈출 수 없는 것은 행위가 기반하는 감정이 그만큼 깊고 아프기 때문이리라.

“나는 왜… 너처럼 안될까.”

복잡한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깊은 한탄이 샜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네가 지금 이런 나를 보면 우스울지.

윤아, 이미 없는 사람한테 아직도 질투하는 나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알코올이 목을 타고 흘렀다.

3.

그깟 질투—매미는 항상 제 질투에 저런 볼품없는 수식을 붙였다. 아마 그만큼 깊이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좀 했다고 해서 매미가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고 미친 인간처럼 살게된 것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원망하고 질투해 마지않던, 그러면서도 소중한 제 가족이었던 그 모든 교집합의 장례식이란 것에 갔을 때부터 아마. 정갈하게 담긴 너를 처음 보았을 때. 그때부터라고.

동생에게 질투했다는 자괴감에 술을 퍼마시던 것에 이제 이유 하나가 더 늘어버린 날. 정말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한참을 가만 멍하니 있었던 날. 걔는 잠깐일지언정 진심으로 미워했고, 그럼에도 그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것이 너무 질긴 탓에, 하필이면 우리는 쌍둥이라는 그 빌어먹을 진득함까지 함께해왔기에. 여전히 매미는 동생의 그림이 황홀하면서도 싫었다. 닮고 싶으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싶다는 고집을 가졌었고, 재능을 느끼면서 여전히 열등감을 가진다. 그런 것 모두 동생이 살아있었으면 조금은 속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제는 편하지도 않은 속이 되었고. 쉽사리 열폭하기 위해서라도. 가족이라는, 쌍둥이라는 혈연으로서의 정에서도. 매미는 어쩌면 제 동생을 그리워하고 있었을 테다. 아니, 그리워했다.

그러면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매미야.”

어떻게.

저렇게 선명한 환각을 볼 수가 있을까.

4.

질투의 색을 가득가득 담아 알코올에 녹인 독의 이름은 압생트라고 한다. 알코올에 탄 독인지 독에 탄 알코올인지 모르게 독한 그것은 언제나 사람을 노란 빛밖에 보지 못하는 황시증으로 만들어버린다. 쨍한 압도적인 노란색으로 세상이 덧칠되어서, 마치 그 모든 것이 물감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처럼. 그러고 보니 너도 노란색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에 그렸던 노란 해바라기를 보고 좋아했으니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그냥 그림에 좋아했을 수도 있지만. 매미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네가 언제나처럼 입을 열었으니까.

너는 퍽이나 노랗게 물들어버린 세상 속에서 방긋 웃으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를 시간 속에서 취기와 함께 나타나서. 강렬한 황시증 탓에 한쪽은 노란색이었던 머리색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머리가 어지럽고, 네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널부러진 캔버스와 의자를 고쳐 건드리다 이내 살포시 앉아 붓을 든다. 너는 항상 그림을 그리면서 뭔가 자꾸만 내게 말을 건다. 가끔은 네가 나를 가르치고, 가끔은 우리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네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끝나는. 노란 세상 속의 너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나마 부를 때라는 것은 너를 처음 인지할 때와, 네가 나를 떠나갈 때라. 매미야, 하는 다정한 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이제 너는 간다. 윤아, 그런데 나는 아직 네게 하고 싶은 말을 못 했는데.

가지마.

목이 메었다. 왈칵 올라와버린 구역질의 탓이다. 다급히 입을 막기에 급급한 손짓 몸짓은 그 새에 또다시 동생을 떠나보내고 만다. 여전히 웃는 너는 나를 보다 그렇게 흩어져버린다. 그렇게 샛노란 세상에 텅 빈 나만 남는다.

우웨엑-

그 허무함이 참지 못하고 토를 쏟게 만든다. 벌린 입에서 먹은 것과 위액이 뒤섞여서 발치에 떨어지기만 한다. 켁켁대며 전부 게워낸 속은 여전히 매미가 내뱉고 싶어하던 말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하게 한다. 차라리 토와 함께 모든 것을 쏟아내 버릴 수 있으면 좋았는데. 언제나 항상 후회는 토사물을 보면서. 항상 줄곧 말하고 싶었던 게 있다. 술을 마신 것도 술과 함께 이래선 안되는 질투를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랬는데. 이게 뭐야. 내가 너무 질투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독을 그렇게도 많이 쌓고 다녀서 그런가. 녹색은 질투의 색이라 하고, 나는 질투의 비소를 한껏 들이켰으니. 세상을 노랗게 보다못해 너를 보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살짝,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이런 상황에서도 살짝 미련한 생각이지만.

윤아, 나는.

네가 되고 싶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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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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