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말로를 기리며
IV/엘리아스 흑조로그
(*오너는 절대 본 캐릭터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IV—아니, 이제 엘리아스라 칭해야 할까. 그의 인생은 기록자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정의될 수 있지만, 결코 평범하다고 정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의 인생은 살인만 저지르지 않았을 뿐, 수많은 죄악에 가득차 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이상을 향한 도전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다만 인간님들은 저의 인생을 죄악이라 평가할 듯 하니—절대 다수의 법칙에 다라, 인간님들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고해성사”나 해볼까요.
인간님들이 규정하는 ‘죄’에 부합하는 행적은, 네 가지 정도가 있겠습니다.
I. 누군가의 비상의 가능성을 짓밟았습니다.
아무래도 시작점을 잡으라 한다면, 가장 적합한 곳은 10세쯤일 것이다. 엘리아스는 매우 어린 나이부터 천재라는 말을 수없이도 들어왔다. 제 나이에 맞을 정도의 교과 과정 내용은 한 달—아니, 적성에 맞는 과목은 일 주일도 안 되어 습득하는 것은 물론, 남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들마저 어린 나이에 척척 해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엘리아스를 천재라고, 천재를 능가하는 아이라고 칭송하곤 했다. 엘리아스는 이러한 반응들을 즐겼다. 경쟁 속 타인을 짓누르고, 남의 고통에서 오는 행복—일명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 엘리아스 또한 신의 이상을 바라지만 본질 상 인간 아니겠는가.
그 중 엘리아스가 가장 흥미롭게 여겼던 것은 그녀의 언니 리베. 정확히는 그녀의 위에 위치한 정점에서 군림할 때 느껴지는, 그 우월감이었다. 리베는 결코 천재라면 천재에 가까웠지 범재였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지 천운이 따르지 않았던 탓에, 평생을 동생의 그림자—아니, 빛에 가려져 살아야 했을 뿐이다. 밤하늘의 별들은 달이 밝은 날에는 달빛에 의해 별들이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리베 또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하나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리베는 평생을 그늘에서 보내야 했다는 것. 엘리아스는 친언니를 짓밟으며 정상에 서며 느끼는 우월감을 삶의 낙으로 삼았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자연스레 매번 비교 선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도, 아버지의 제약회사 “폴라리스”를 물려받는 것도 장녀 리베가 아닌 엘리아스가 되어 있었다.
이를 죄라고 칭할 만한 유일한 이유라면, 이 때문에 리베는 평생을 정체기에서 살아와야 했다는 사실과, 어쩌면 찬란히 빛날 수도 있던 또 다른 천재의 빛을 덮어버린 것.
다만—저는 이를 죄로 간주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적자생존은 자연의 법칙이니.
II. 한 신을— 아니, 꼭두각시였던 인간을 능멸하였습니다.
엘리아스는 성인이 될 때쯤, 스스로를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자, 그렇게 평가했다. 그러니 그가 신과 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전세계적으로 신도가 존재하는 아무리 엘리아스라도 자신의 능력 밖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당도한 것은 한 사이비 종교의 신. 그 종교에서 신이라 추앙받던 한 여인은, 신도로서 접근한 엘리아스의 손 위에서 놀아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신의 권위를 증명하기 위한 의식의 권모술수를 간파하고, 직접 신이란 작자를 만나며 교리의 허점을 확인하고.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신이 신도에게 수도 없이 허점을 드러내다니, 이토록 우스운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단순히 피를 공유한 이 뿐이 아닌, 신으로 추앙받는 이까지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니—엘리아스는 이로부터 오는 우월감을 즐겼다. 자신의 밑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은, 예나 지금이나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다만 한 가지 오류가 있다면, 그 죄악의 결말이었다. 그 신의 파멸은 엘리아스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저 예상된 자멸이었으니.
—이 또한 죄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녀의 말로는 운명이었으니까요.
III. 구원이란 명목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쥐락펴락했습니다.
신의 가장 주된 가치는 구원, 능력과 권위. 그중 엘리아스는 구원을 우선적으로 타파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엘리아스가 찾은 인물은 구원의 결과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사람—즉, 지금 인생이 시궁창에 쳐박혀 있는 사람. 엘리아스는 그런 사람의 인생을 나락에서 끌어올리고자 했다.
그녀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일본에 있던 한 가출청소년. 망상증에 대책도 없이 새장에서 뛰쳐나와, 미래에 대한 가망조차 없어보이는 아이.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에 그녀를 끌어올리기 위해, 엘리아스는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요약하자면, 결과는 실패였고, 그 아이의 망상증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결국 그 아이는 엘리아스의 실패작으로 남고, 엘리아스에게 유기될 뿐이었다.
—“죄”라기보단, 쓰라린 실패에 가깝긴 하지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IV. 영생으로 초월을 탐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아마—이 참회록을 읽는 이들이 가장 익히 알고 있을 죄악. 구원에 실패한 엘리아스는, 능력과 권위, 이중 능력을 얻기 위해 다시 비상해야 했다. 신의 능력은, 인간을 초월한 것. 인간이 결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룰 수 없는 것. 종의 틀을 깨는 무언가—영생은 그 중 하나였다.
종의 한계를 능멸하고, 생명 그 자체를 유린할 수 있는 불사의 약.
그런 것이 실존하기만 한다면 ‘필멸자’의 개념을 깨부숴 신의 경지에 당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아니겠는가.
제아무리 많은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제아무리 많은 필멸자의 죽음을 맞닥뜨리더라도,
제아무리 많은 이들의 고통 섞인 원성을 감당해야 하더라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면—필히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가, 그리고 이곳에 계신 몇몇 분들이 그토록 원하던 영생의 약은, 인간을 초월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말하자면—신의 절대적 권능을 얻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였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지금, 나는 배신자의 신분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인간이 내린 배신의 정의가 올바른 선택이라면, 인간님들 사이에 있는 나 또한 그 정의에 얽매여 심판받아야겠지.
그 대가가 죽음이라면 미련한 인간의 본성을 탓하며 희생할 날을 기리고,
그 대가가 신뢰의 상실이라면 인간성의 말살을 통해서라도 신의 이상으로 비상할지니.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저희를 위해 누군가는 기억을 바치시고, 누군가는 목숨까지 버리시고…”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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