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대결
호봉 vs 제갈량
사우나…
생각해 보니 가본 적이 없다. 뜨거워서 시원하다, 등을 지진다, 뭐 이런 이상한 표현들은 살아서 공감을 해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더위를 못 견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야 위의 기계가 고작 한증막 사우나에 맥을 못 추게 된다면 누군가 조조를 자는 사이에 한증막 사우나로 옮겨놨겠지. 하지만 솔직히 찬물 샤워 파인 호봉은 제 믿음에 자신이 없었다.
아, 내기하기 전에 조조한테 물어볼 걸 그랬나. 하지만 대체 뭐라고 물어봐야 한단 말인가? 조조, 진짜 죄송한데 혹시 사우나에 들어가면, 어… 우리 죽어요?
졸졸 쫓아오던 제갈량이 종알거렸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호봉 씨 팔이랑 다리 고장나도 제 책임은 아니에요.
그럴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해라. 너 쓰러져도 책임 안 질 거야.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고민을 시원하게 떨쳐낼 수는 없었다. 만약에 사이보그를 끓는 물에 넣고 삶으면… 당연히 죽겠지? 하지만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제갈량을 끌고 척척 걸음을 옮기던 호봉은 혼자 고개를 도리질 친다. 다시 다시. 그러니까… 사이보그를 찜기에 넣으면 죽겠지?
하지만 그건 제갈량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어언 2시간째…
덥다…
호봉은 문 위에 붙어 있는 빨간색 전자시계를 멍하니 바라보며 젖은 눈꺼풀을 끔뻑거렸다. 안대는 땀이 차서 진즉에 벗었고, 사우나 특유의 묵직한 무지 반팔 반바지는 땀에 젖은 지 오래였다. 제갈량이 만들어준 양 모양 수건은 1시간이 넘어가면서 원상복귀시켰다. 땀을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제갈량만 없었어도 웃통을 벗었을 것 같다. 물론 들어오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진짜 벗은 건 아니잖아, 상상만 했지.
가끔씩 사람들이 드나드느라 문이 열릴 때면 잠깐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지만 문이 닫히면 다시 불행해졌다. 어두컴컴해서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아도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불붙은 듯 달아올랐으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번에 확실히 알았는데, 불한증막이라는 곳은 굉장히 뜨겁고 어둡고 불우한 곳이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뜨거운 이상한 곳이기도 하고.
다리를 불량하게 쩍 벌린 채로 허벅지에 한쪽 팔을 괴고 있던(오른팔은 너무 뜨거워서 다리에 대고 싶지 않았다) 호봉은 이마에 들러붙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슬슬 몸 안팎의 공기가 죄다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쉬어도 들이쉬었단 기분이 들지 않았다. 고개를 돌릴 힘도 없어 눈만 흘끗 굴려서 옆에 앉은 제갈량을 바라보면 그는 지금까지도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사실 10분 전에 봤을 때도, 20분 전에 봤을 때도 그랬다. 와, 양반은 건식 사우나에서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데 괜히 사람들이 선생 선생 하는 게 아니었구나. 아니면 촉들은 그냥 죄다 이런 건가. 아이 씨, 한 명 갖고 일반화하기엔 자존심 상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봐도 무력으로는 와룡이 촉에서 최약체인데… 이놈이 이 정도면 나머지 촉수들은 불한증막 같은 건 당연히 껌 아니야?
어쨌든…….
독한 놈… 내가 졌다. 난 나갈래.
호봉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패배를 인정하기로 했다. 기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은 원래 이런 곳에 몇 시간씩 있으면 탈수가 온다. 팔다리가 아니라 쇳덩이를 달고 있어도 와룡을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거늘 지금 호봉의 팔다리가 딱 고문용 쇳덩이처럼 느껴졌다(멀쩡한 팔을 포함해서). 문을 열고 나가서 목구멍이 시린 찬물을 벌컥 들이키고 싶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호봉의 제안을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호봉의 의지박약적 면모를 무시하는 건지 영 대답이 없었다. 미쳤어. 설마 더 버티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호봉은 의미 없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얼굴의 땀도 훔치고 목에 힘을 주며 몸을 돌렸다…
야, 내가 졌다니까… 어…?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 있었다. 호봉은 살면서 남의 죽음을 보고 놀라본 적 없지만 이번엔 정말 놀라서… 턱이 벌어졌다. 제갈량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머리카락이 최소한의 빳빳함을 잃고 굴곡 없이 사우나의 의자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호봉이 코앞까지 다가와도 귀 옆에 손뼉을 쳐도 의자 모양 그대로 반쯤 흘러내려 누운 제갈량은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잠깐만. 얘 언제부터 이랬지? 생각해 보니 이 자식, 10분 전에도… 아니, 20분 전에도…….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호봉은 제갈량의 옷깃을 꽉 쥐고 맨손으로 뺨을 툭툭툭 쳤다. 와, 와룡. 정신 좀 차려봐. 야, 습하고 더우면 너희한테 좋은 거라며. 이거 왜 이래… 새빨개진 뺨을 때릴 때마다 척, 척 물기 어린 소리가 났다. 이거 땀인가? 아니면 촉수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마지막 이슬 한 방울까지 빠져나온 걸지도. 손아귀 안에서 갈대처럼 허위허위 흔들리는 제갈량을 경악한 얼굴로 바라보던 호봉은 결국 빽 소리를 질렀다.
왜 이래~~!! 일어나 빨리!!
*
두 사람이 들어간 지 거의 2시간이 지나 불한증막의 문이 벌컥 열리고… 축 늘어진 제갈량을 들쳐 업고 나온 호봉이 바닥에 쓰러졌다. 도합 약 200kg(호봉이 140kg)의 무게를 호봉의 기계 무릎은 버텼지만 불구덩이 속에서 소진한 정신력이 버텨주기엔 무리였고… 추후 사우나 주인의 잔소리와 적절한 식혜 처방을 받고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두 사람의 몸을 갈아 넣은 실험을 통해 얻은 귀중한 결과가 있다면 그건 촉수 인간이나 기계 인간이나 불한증막에 두 시간 넘게 있으면 안 된다는 것. 더불어 낮잠을 잘 때는 되도록 건식 사우나를 이용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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