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2화
추락한 성녀 02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추락한 성녀 02
루블, 보쓰, 히즈
***
“당신이 나를 구해주었듯이, 이번엔 제가 당신을 지킬 겁니다.”
아마데아는 홀린 듯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흉측하다고 생각했던 디모네의 어둠이 그 순간만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의 손이 이렇게 따듯하구나. 새삼 그 사실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부터 당신은 더 이상 추격당하지 않습니다. 다만 빛의 힘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만. 아마 지금의 당신이라면 상관 없을 테죠.”
잠시 멍하게 있던 아마데아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 초점이 돌아왔다.
“······빛이 원망스럽지 않으십니까?”
아마데아는 그의 손을 놓고는 그를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마치 그의 말이 이간질하는 어조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날 어쩔 셈이지? 무슨 목적으로 나를 이곳에 데려왔나. 너희 디모네들의 원수인 나를 공개처형이라도 시킬 건가? 하지만 뭔가 착각하고 있군. 비록 지금 내가 신성력을 못 쓴다고 해도 이것은 영구적인 것이 아냐. 여신의 총애는 나를 향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한마디를 강조하는 아마데아를 보며 그는 픽, 웃어버렸다. 그 모습에 아마데아는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
이상했다. 물론 최근에 좀 힘이 미약해졌다곤 하나 이리 한 줌의 힘조차 느껴지지 않다니. 모두 사라져버린 게 아니고서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너······!”
“분명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빛의 힘은 더는 쓸 수 없을 거라고.”
“설마 내 신성력이 약해진 것도 네가······?”
“상상력이 풍부하신 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신성력을 약화시킨 건 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당신은 저를 본 기억도 없을 텐데요.”
그 말에 아마데아는 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의심은 풀지 않은 듯 곱지 않은 눈초리였다.
헬레니온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리고 분명 말씀드린 것이 또 있습니다. 지켜드리겠다고요. 저를 믿지 못하는 점은 이해합니다. 아마 당신은 저를 모를 테니까요. 그러니 일단 행동으로 증명해드렸습니다. 추적이 불가능하게 해드렸으니까요.”
“내가 그 말을······.”
“그러니 당분간 여기 계시면 되겠군요. 확인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지만 그의 눈이 마치 갈 곳도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같아 아마데아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 당분간 여기서 머무시면 되겠군요. 시중드는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밖으로는 웬만하면 나가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자가 몇 있을 테니까요.”
며칠간 지내며 더 필요한 게 있다면 하녀에게 부탁하라고 말하고는 그는 다급히 방을 나갔다. 바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헬레니온이 나간 문을 황당하게 보고 있었더니, 아까 옷시중을 맡아주었던 여자가 들어왔다.
“하녀 그레이스 에버렛이라고 합니다. 편히 그레이스라고 불러주시길.”
‘아마 몸종 같은 위치인 모양이야.’
아마데아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비록 아군이라 믿던 자들에게 내쫓겨 적국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였으나 아랫것을 대할 때는 결코 얕보여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네가 헬레니온이 말한 내 시중을 들 자인가? 반갑구나. 나는 지고한 빛의 여신의 대리인, 아마데아 아우레티아다.”
“편히 부르라는 뜻은 말을 편히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레이스라고 부르십시오.”
부탁이 아니라 요청이라니. 부탁 조가 아니라 명령조라니! 기가 막혔다. 그녀의 처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아랫것들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건가 싶었다. 아마데아가 노여움에 한마디 하려던 찰나.
“그리고 이곳에선 그 이름은 쓰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덧붙여서, 당신은 이제 빛의 대리인도 아닌 것으로 압니다.”
“······.”
“다른 지시사항이 없으시다면 저택의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지내실 동안의 주의점도요.”
“············.”
결국 아마데아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끌려가는 기분으로 저택을 안내받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데아가 누워있던 침대방은 2층이었다. 그레이스는 이 방이 침실이며 앞으로 여기서 생활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 옆에 있는 방은 그녀의 침실보다 약간 조촐한 방으로, 그레이스가 머물 방이라고 했다.
“저는 바로 옆방이니 제가 필요하시다면 침실에 놓인 종을 울리시면 되겠습니다.”
공손하지만 무뚝뚝한 어조로 끊어 말하고는 바로 다음 방을 안내하러 움직이는 그레이스를 아마데아는 무력하게 따라갈 뿐이었다. 어째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2층은 대부분이 빈방이었으므로 간단히 넘어갔다. 다음은 1층이었다.
“이곳이 손님을 맞는 응접실입니다만. 아마 손님을 받을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알고만 계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기 응접실에서 식당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습니다. 여기 작은 문은 부엌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이 드나드는 곳이며······.”
끝도없이 이어 드는 설명에 아마데아는 정신이 없었다. 아녹스에 대한 정보가 없다지만 이리도 생활양식이 다를 줄은 몰랐다. 이런 그녀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쪽의 두 명이 각각 주방과 힘 쓰는 일을 맡습니다. 저는 이들의 총괄 겸 메인 시중을 맡습니다. 서로 얼굴 정도는 외워두시지요.”
어색하게 손만 들어 올린 아마데아를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쉰 그레이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우레티카에서는 ‘사용인’이라는 개념이 없다지요. 철저히 신분을 구분하며 허드렛일은 모두 노예 계층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계시는 이곳은 아우레티카가 아닙니다. 저희는 노예 계급이 아닌, 계약에 의한 관계입니다. 금전을 대가로 노동력을 빌려주지요. 문화가 아무리 다르더라도 최소한 지내는 곳에 맞추려고 노력은 해주셔야 합니다. 당신을 보호하기로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아마데아는 마치 어린 사람을 어르고 가르치는듯한 어조에 울컥했다. 자신을 하녀라고 했으면서 고귀한 자신의 앞에서 이런 훈계하는 태도라니.
“사용인이든 노예든 어쨌든 아랫것이라는 것은 같지 않느냐. 디모네 주제에 건방지다.”
그레이스는 바로 대꾸를 하지 않고 잠시 아마데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그 시선에 잠시 움찔했으나 그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오히려 더 지지 않고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물러남 없는 대치가 길어지자 주변인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용인들이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는 동안, 먼저 물러난 건 그레이스였다. 그레이스는 픽, 웃어버리고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지금 디모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주제에 말이 길군요. 예로케리가.”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사용인들은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던 무렵에 저택의 문이 열리고 헬레니온이 들어왔다.
“잠시 급한 일을 처리하고 왔습니다만······.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 일도요. 아가씨께 저택의 안내를 해드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레이스는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를 내오겠다며 사용인들을 이끌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아직 감정을 갈무리하지 못해 씨근덕거리던 아마데아를 헬레니온은 의문스러운 눈으로 보다 이내 앉으라며 권했다.
그레이스가 직접 차를 내왔다. 그는 주변 사람을 모두 물리고 아마데아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미룰 수 없는 일이 생겨 급히 떠났었습니다만······.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쩐 일입니까?”
아마데아는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고 말을 시작했다.
“저 여자 말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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