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나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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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뉴스입니다. 몇십년 주기로 관측되는 밀 혜성이 이번주 토요일, 그러니까 3일 뒤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미 명당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가운데 ... 뚝. 실없이 흐르던 뉴스를 갑자기 끊었던 것은 제가 들은 그것이 뒤에 들을 별 이상한 정보들과 섞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뭐 듣는다고 혼란이 오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단아. 평이한 어조, 라기보다는 어떤 유혹을 하는 것처럼. 사실 그건 유혹도 뭣도 아닌 부드러운 발성과 어투다. 사근사근하게, 마치 목소리만 베낀 다른 사람이 말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그게 특히 들릴 리가 없는 사람의 목소리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배가 된다. 단아. 다시 한번 저를 부른다. 바람에 희미하게 실려오면서도 결국은 또렷하게 들리고 마
행크. 마지막이 부르는 소리가 고막에 닿는다. 사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맞는지는 모른다. 그저 조심스럽게 말한 듯 느린 자극이 그를 찔렀을 뿐이니까. 행크! 아, 이번에는 강하다. 제 신체 어딘가를 찰싹 때리는 것 같은 통증도 함께 오는 소음에 행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앞에 보이는 것은 민트색 눈동자, 비니, 그리고 거기에 머리카락까지. …옝? 눈을 부비려
30일 뒤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뉴스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제가 켜지도 않은 뉴스가 시끄럽게 귀를 때려 차마 더 잠을 잘 수도 없게끔.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발로 차며 던져버리고서 침대에서 짜증스레 일어난 이는 눈을 빡빡 부비며 저기 티비가 크게 틀어진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눈을 문지르며 걸어가서 그런지 머리가 문에 부딪치기도
우토의 사진첩은 새파란 것이 한가득이다. 밀물, 썰물, 튀어오르는 파도와 부서지는 포말에, 갯벌. 새파란 것이 한가득한 사진첩은 대체 언제부터였더라? 우토의 취미 중 하나로 사진에 풍경을 담아내는 것을 가졌다고는 해도 비정상적으로 파도와 바다가 많다. 이게 다 파이브 때문이야, 라며. 작은 중얼거림을 내뱉는 것은 아마 실로 그가 옳기에. 새파란 바다를 닮은
사람 없는 시골이라는 것은 딱히 그렇게 볼 거리가 없는 편이었다. 사실 당연하지, 도시처럼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아니고 사람이 모이지 않으니 재개발 같은 것도 없다. 특히 그런 와중 고령화까지 진행될 대로 진행된 진짜 깡촌은 유난히 더 그랬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지금 이렇게 둘러보고 있는 파이브 자신은 도시에서 살다 잠깐만 내려 온, 여름방학 동안만
파이브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문득, 무덤을 만들던 손길이 우뚝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제 손에 쥐여진 것들은 모두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한 것. 하면, 파이브는 그들을 제대로 기렸는지. 파이브가 한 것이라곤 분노다. 결국 그 분노를 원료로 무언가를 해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제 분노에 함께하다 죽은 친구들만이 있겠지
우란 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봄을 향해 가는 것이라. 너른 봄을 향하여. 꼼꼼히 감싼 이불의 사이에도 틈이 있다. 그걸 모르지 않아서 조금 여러 겹 겹쳐놓은 이불이건만 자꾸만 찔러 들어오는 한기가 조금 강해서. 이불 밖으로 빼꼼 내민 손이 방황하다 손 끝에 걸리는 감각으로 휙 채 온 것은 휴대폰이라. 머리 끝까지 덮어 쓴 이불 안에서 확인한 시간은 정
입증된 종말론은 대체 무엇을 불러오는가? 예전에 교육을 받을 때, 종말론에 대한 수업에서 들었던 생각이다. 사람들은 저렇게 예언이라는 근거없는 사유에 의한 종말론을 믿으면 제정신으로 못산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정말로, 이성과 논리에 의한 기술로 관측한 종말을 목도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역사의 일부가 될, 똑같은 광증에 가까운
매미는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는 잊을 수가 없는 것에 더 가까운 부류의 것일 테다. 그림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압도적인 폭력성을 가질 수가 있는가? 터무니없는 질문이나, 그런 질문을 감히, 무심코 하게 될 정도로 압도적인 예술의 폭력성을 매미는 안다. 새하얀 캔버스를 가득 채운 물감과 붓질의 흔적들은 모두
8월, 거진 여름의 절정. 세상의 열이 절정으로 치달아오르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짜증스러울 지경으로 시끄럽게 울어댈 때. 분명 그건 찝찝한 습기와 빌어먹을 열기의 범벅일 것일텐데. 후우, 하고 내뱉는 숨에는 새하얀 것이 칠해지고 몸은 겪어야 할 열기 대신 시린 것만. 발에 밟히는 것은 아스팔트도 바닥재도 아닌 새하얀 눈의 촉감. 시야를 메우는 것 또한 자연물
세상이 망했다. 이유가 크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합병증이 심화되고 심화된 끝에 거진 종말을 불렀다. 엄연히 따지자면 세상이 망한 것은 아닐 테다. 온도가 높아지니 해수면이 높아지니 해봤자 정작 지구라는 별이 입을 피해가 뭐가 있다고. 단지 인간의 세상이 망했고, 인간의 문명이 망했고, 그에 휩쓸린 여러 동물만이 있을 것이라고. 그
건물이 부서진다. 높은 빌딩을 부수는 것은 저 멀리서 날아온 사람의 몸이 건물에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충격량이라. 건물에 깊게 파고든 사람의 몸, 벽을 다 뚫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폭발. 몸에 관통된 그 위치에 있을 가로선을 모두 지워버릴 심산으로 터지는 불꽃은 금세 큼지막한 화재가 된다.건물 전체가 불에 타기 쉬운 소재가 된 것처럼 번지지
철썩, 쏴아아. 파도가 드세게도 방파제에 부딪치던 소리. 새파란 것이 새하얀 물거품과 함께 와 철썩, 부딪치고는 윤슬이 빛나던 광경.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두 꼬맹이. 귀에 익은 소리가 돌아올 수 없는 과거를 불렀다. 소라고둥이 담은 옛 바다의 소리처럼, 여전한 소리가 담은 과거는 짠 내음과 함께 훅 밀려들어왔다. 그날 썰물과 함께 실려간 것은
"...한 번만. 딱 한 번만 살려주라." 파이브의 말이었다. 숨 하나도 제대로 못 쉬어서 끅 끅 대며 호흡하는 몸이, 채 죽이지 못하고 되려 패배한 상태로 3명을 제 앞에다 놓고서, 정상이 아닌 몸 상태로 고개를 푹 박으며. 자신을 살려달라고. 구명구걸救命求乞 바라건대 내가 이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죽지 않도록. 만신창이가 되어서 깨져버린
"파이브, 왜 죽으려고 들어. 살아야지, 그치?" 흐으, 하아. 간신히 들이마셨다 내뱉을 수 있는 숨이 파이브의 폐부를 채웠다가 빠져나간다. 추락 실패, 우습게도 파이브는 친구들이 가는 곳으로마저 가지 못했다. 무덤 5개를 만들고, 자신의 것 치는 꽃 하나를 심고 장렬하게 날아올랐다가 추락사. —같은, 뭐 그런게 아니었다 이거다. 우융의 새카만 눈이 파
불이다. 먼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그 짙은 탄내와 색상이 자기주장을 격렬히 해대고 있다. 건물을 잡아먹는 건지 건물에 붙은 기름을 잡아먹는 건지, 하나 결과가 있다면 무엇이 되었던 간에 저 건물은 그 불길에 먹혀 사그라질 것이란 것이라. 뜨겁고 짙은 불이 작은 세상을 덮어서, 갉아먹다못해 전부 다 연소시켜버릴 것이란 이야기다. 그를 보는 코마의 코에는 그 탄
열통. 눈을 뜬 파이브가 감각하는 것은 그렇게나 뜨거운 열통이었다. 하늘로 향해있는 시선과 땅에 등을 대고 볼품없이 추락한 흔적은 그렇게 통증을 남기고 생명을 남겼다. 터져나간 것은 등만이 아니었는지 배에도 새겨진 그 여러군데의 출혈과 피부가 전신에서의 열통을 동반해서. 생을 꺼트리는 통증이 되려 사실 하나를 상기시킨다. "...살았다." 그는 그럼에도
파이브는 제게 익숙한 색감을 응시한다. 하늘이라기엔 찰랑였고 바다라기엔 조금은 새카만, 탁하고 진한 잿물을 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원류는 바다였을 테다, 그렇지 않고서야 드문드문 보이는 파랬던 흔적이 남을리가 없으니까. 검은 물, 그 속에서 드문드문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파도. 파이브는 이 광경을 잘 안다. 언젠가 본 이후로 잊을 수가 없다. 그래, 왜냐하
https://penxle.com/2cha/1474413162 이전 편을 보고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後 나쁜 꿈을 꿨다. 그렇게 마냥 일축하기에는 제법 많은 것이기도 했고 짧은 것이기도 한 긴 꿈의 끝에서 울리는 휴대폰의 알람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이내 보이는 것이라곤 침대와 옷장 하나, 그리고 책상과 선반 몇개만 달랑 있는 제 방의 그저그런 풍
봄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목소리라서. 바람에 흘러오듯 귓가에 와닿은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면 그곳에서는 검은색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는 환상을 봤다.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은 머리에 한 손에는 담배처럼 생긴 막대사탕 하나를 쥐고, 저를 불러놓고 아직도 자신을 보지 않는 눈동자는 분명히 검은색일 테다. 졸업한 고등학교
넓적한 창문의 연속과 교실과 교실의 연속, 양 벽을 가득 채우는 문의 향연의 바깥에서 이른 아침의 햇살은 산뜻하게 복도를 비췄다. 나른한 온기, 라고 하기에는 제법 애매한 열감은 상대적으로 차가울 아침공기를 충분하게 덥혔다. 이게 무슨 가을이야, 라며. 정말로 더운 공기를 만끽하는 그가 중얼거렸다. 정말로 가을답지 않은 날씨였다. 아니, 사실 가을이 맞긴
언젠가 내 이름을 불러. 그러면 내가 나타나서. 네 고민을 해결해 줄 거야. 누구였더라. 그런 말을 한 건. 확실한 것은, 그 속삭임은 다만 어렴풋하나 확실한 사실이라는 점이었고. 나는 그 이름을 아직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1. 악마는 인간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 본 것만 같다. 천사가 인간의 상상처럼 마냥 아름답지 않듯 악마 또한 인간
철컥 하고, 첨벙 하고. 검은 바다를 헤엄치는 생명은 그런 소리를 냈다. 아가미 대신 달린 필터를 가지고, 다리 대신 달린 지느러미를 가지고. 달이 가려진 밤에 바다를 떠도는 신비 속의 생명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짠 내의 사이에 풍기는 철의 냄새가 있다. 구름에 가려진 달이 비추는 빛 아래서 인간이 상상하던 인간과 물고기의 혼합된 생명은 그렇게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