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바다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걔는 그 수족관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사람 없는 시골이라는 것은 딱히 그렇게 볼 거리가 없는 편이었다. 사실 당연하지, 도시처럼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아니고 사람이 모이지 않으니 재개발 같은 것도 없다. 특히 그런 와중 고령화까지 진행될 대로 진행된 진짜 깡촌은 유난히 더 그랬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지금 이렇게 둘러보고 있는 파이브 자신은 도시에서 살다 잠깐만 내려 온, 여름방학 동안만 지낼 것이라는 점 정도일까.
그 외에 또 따지자면 어업촌이라 봉사활동 겸 해서 고기잡이 배에 타거나 그놈의 바다를 원없이 볼 수 있다는 거. 배도 좀 타고 낚시도 하고, 그걸로 뭐라도 해먹거나 날이 너무 더우면 수영 좀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썩 괜찮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문제가 있다면 파이브가 이 것들에 조금 질렸다는 것이다. 잘 즐긴 건 한 처음 일주일 정도지 그 외에는 그닥. 차라리 그냥 집에 박혀서 게임만 하는 건 어떤가 생각을 해봤지만 기껏 시골까지 내려왔는데 게임만 하고있기에는 좀 그래서, 파이브는 그닥 활동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제가 해야 할 일거리를 찾아다니곤 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놀거리지만. 뭐 그래도 제대로 찾지도 못해서, 그냥 심심하면 바다로 향하곤 했다. 그냥 바다를 보거나, 아니면 잠깐 물에 담그거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폰이나 건드리던가.
파이브가 바다를 보러 가는 곳은 대개 정해져 있는 편이다. 배들이 정박한 항구 부근에서 꽤 위로 올라가다 있는 높은 언덕을 넘으면 마주하는, 절벽이라기엔 너무 낮고 방파제라고 하기에도 뭣한 높이의 땅. 또는 그 바로 아래로 내려가서 있는 돌무더기와 같은 것들. 너무 오래 이 풍경을 봤다 싶으면 쭉 이어진 돌무더기 길을 따라 걷거나 항구에서 바다를 본다. 이미 바다를 보는 것에는 좀 질리지 않았나,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 할 수 있겠지만 파이브는 그 속에서 새 흥미를 찾아버린 탓에. 처음 볼 때는 무슨 돌고래 같은 것인 줄 알았던 새카맣게 반짝거리는 물 가운데의 그것은, 흰 덩이와 검은 덩이로 이등분 된 존재인 것 같은 색감을 지녔고, 파도 소리 사이에서의 엇박자로 헤엄을 치며, 또한 일부는 인간을 닮은 것만 같아서. 우리는 그 존재를 인어라 부르기로 약속했기에. 파이브의 바다 구경은 굳이 따지자면 인어 구경과도 같다.
인어를 쫒아서 헤엄을 칠 수는 없었으니 파이브는 그냥 단지 가끔 인어가 나오면 그를 보려고 한동안 바다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이 일쑤였다. 물론 밥은 꼬박꼬박 부르는 대로 찾아가 먹고 있다. 누가 뭐 하길래 그렇게 안 보이냐는 말을 할 때면 그냥 웃어넘기며 인어를 보기 위해 죽치고 있다가 가끔 보면 줌을 최대로 땡겨서 더 자세히 보려고 아등바등하고. 그런 정도가 일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상하지, 원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 인어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인어도 허리라고 부르는게 맞을까? 차마 정확하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파이브에겐 그렇게 보였다.—물 밖으로 상체를 끄집어내서 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파이브가 팔을 휘적였다. 인어도 그랬다. 인어가 파이브를 인식한 날이었다.
파이브가 오면 인어가 온다. 이내 하이, 하고 울리는 남성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때려박히는 느낌. 놀랍게도 인어들은 텔레파시라는 것을 쓸 수 있었다. 이걸 처음 알게 되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무튼, 우융, 그러니까 제가 만난 인어의 텔레파시를 몇 번 받았음에도 언제나 첫 수신은 골을 울린다. 미안하게 됐다. 하며 말해오는 그는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저 멀리서 있었지만 들리는 텔레파시의 목소리 상태나 태도 등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친해졌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만난 지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친해지긴 무슨,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저쪽에서 먼저 편하게 대하는게 굳이 피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 맞다. 너 얼마 있다 돌아간다고 그랬나?
사일 뒤에. 왜?
물이 크게 올거야. 니네식으로 말하자면… 쓰나미. 바람이랑 같이.
그러니까 그냥 빨리 도망가. 그렇게 말하는 우융은 물에 잠겨있던 몸을 수면 밖으로 꺼내 하늘을 빤히 바라보다가, 작별인사도 없이 풍덩 하고. 파도소리와는 묘하게 엇박인 철썩임이 들렸다. 그게 제 착각인지, 아니면 그냥 인어가 내는 물소리는 유난히도 큰 건지.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융은 이를 경고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걸 어떻게 말해, 인어가 쓰나미랑 태풍이 온다고 도망가래요? 퍽이나 말을 잘 듣겠다. 애가 하루종일 바다에만 가 있다가 미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그 편이 제일 유력하겠다. 그렇다고 인어 사진을 보여주면서 진짜라고 하면, 그럼 우융은. 파이브는 차마 결정하지 못해서. 기상 뉴스에서 보도해주기를 빌었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또 하루가 흘렀다. 또 흘러서, 삼일 째. 우융이 예고한 날까지 이틀정도 남은 날. 미쳤는지 어떤 뉴스에서도 기상보도에 해안지방 대피를 요하는 뉴스가 없어서. 초조해지는 마음이 파이브를 바다로 이끌었다.
우융, 나 너 사람들한테 밝혀도 돼?
우융이 제 쪽으로 왔는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어서, 우융은 가끔 제게 할 말이 있으면 바다를 향해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 물이 말을 전해줄 거라고. 말도 파동이니 물을 타고 이동하는걸 이야기하는 건가. 그런데 그럼 언제 듣고 답하려고. 우융이 대체 어느 깊이에서 살다 위로 올라오는 건지 모를 파이브지만 그것이 꽤 깊음은 짐작하고 있어서.
그러던가.
하는 목소리가 파이브의 뇌에서 울린다. 예상외로 빠른 대답에 놀라기도 잠시, 파이브는 뛰었다. 아마 믿지 않겠지만 부딪치는 수밖에.
파도가 친다. 우융은 저 먼 인간의 마을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쓰나미가 올 지도 몰라요, 우리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기상예보에서도 말하지 않는 걸 네가 어떻게 아니. 인어가 있어요. 걔가 말해줬어요. 인어. 요즘 세상에 인어같은게 어디 있다고. 이거 좀 봐주세요. 인어가 있다고요. 어디에서. 항구에서 좀 멀리 올라간 만에. 매번 바다에 가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 하는. 들려오는 말을 조금 더 듣던 우융은 이내 귀를 닫는다. 저러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겠지. 소리를 듣는 것보다 차라리 수면 위로 올라가 하늘이나 보고 있을까 싶어 몸을 움직여 물 밖으로 제 몸을 꺼내면 보이는 것은 조금은 우중충한 하늘이다. 저게 내일은 더 짙어지고, 파도는 세차게 치고. 그 다음날에는 너무 거세져서, 거대한 물이 범람해 저 작은 촌을 한순간에 앗아갈 테다. 그러면 파이브는 어디선가 이 인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괴로워 할 것 같은데. 위성과 뉴스라고 했나, 뭐 아무튼 그런 것으로 정보를 전달받는 게 있다고 그랬으니 파이브는 언젠가 침수소식을 들을 테고. 아, 씨발.
파이브와 우융은 대체 무슨 관계인가? 서로 존재를 인지한 지는 조금 된 것 같지만 제대로 인사를 나눈지 열흘 쯤, 굳이 따지자면 우융에게 파이브는 그냥 인간이고 그건 파이브에게도 역으로 성립하는 명제일 테다. 그냥 자기를 좀 지켜본 인간이랑, 인어를 좀 흥미롭게 지켜본 놈. 그러다 얼떨결에 인사까지 하며 교류를 시작한. 이 사이에서 둘이 짝짜꿍 잘 맞아봤자 파이브는 결국 내륙으로 올라갈 사람이라서.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우융이 파이브를 굳이 신경 써줄 여유는 안 되었다. 차라리 혼자만 알고서 잘 알아서 말하면 한 몸 빠져나가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오히려 우융에게는 파이브가 무시한 그 선택이 더 좋은 편이기도 했고. 인간에게 인어가 알려져봈자 좋을게 뭐가 있다고, 차라리 이 바다로 영영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포획이라도 당하면 그 순간 끝장이고.
수해에서 도망친 파이브. 증거는 모두 물이 녹여 줄 것이고, 그 입만 다물면 그는 인어를 만났다는 경험만 남길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바보가 그런 선택을 기꺼이 저지르지 못한 이유는 그의 천성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우융 자신을 밝히게 해 달라니. 이기적인 선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언급하는 파이브에겐 절박함이 보였다. 그래서, 우융은 그 물음에 무심코 허락을 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푸른 색은 그런 마성이 있었다.
이내 들려오는 탁, 탁, 탁 하는 샌들 소리는 우융의 상념을 헤집고 들려온다. 일정한 박자 사이사이에 거친 호흡이 섞이고, 그 일정한 리듬도 깨지고. 이내 우융이 있는 그 돌무더기 앞에 와서는 그저 헉헉거리는 숨소리만 가득 채워서.
우융.
파이브가 우융을 불렀다. 네가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느냐고. 허벅지를 부여잡고 거칠게 내쉬던 숨을 그치고 앞을 바라보면 우융의 새카만 눈동자와 파이브의 푸른 눈이 맞는다. 우융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알 수 없는 새카만 색, 파이브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파란색. 힘듬과 미안함, 희망과 절망 사이를 줄타기하는 긴장. 일렁이는 감정이 퍽 바다 같아서 우융은 묘한 친숙함을 느끼나.
후우, 하고 소리내듯 우융은 볼을 부풀렸다 내뱉는 시늉을 했다. 폐호흡이 아니기에 실제로 그 숨이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가 실제로 날아간 느낌이 드는것도 아니지만. 파이브는 그걸 또 무엇으로 알아들었는지 감정의 파도가 일었다.
그런거 아니니까 닥쳐봐.
그런데 너는 괜찮냐?
우융이 어이없다는 듯 웃고 파이브는 입술을 살짝 누른다. 파이브도 제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정도는 안다. 그래서인지 사실 제가 말해놓고 우융을 걱정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는 것도. 가장 좋은 결말은 우융에게 그런 쓰나미를 밀어내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파이브의 말은 거짓말 취급당하는 것. 그래서 그냥 어떤 피해도 없이 끝나는 것. 그렇지만 그게 아닐 테니까.
내가 쉽게 잡힐 거 같냐?
배 뜨면 그냥 잡힐거같은데.
야.
비가 내린다. 물을 곱절로 만드는 새카만 하늘이 흔한 여름의 장마를 닮았다. 우융이 정말 물을 막아줄까? 염치없고 너무 나쁜놈같은 생각에 스스로 중얼거리고서도 사죄하듯 입을 꾹 다문다. 차라리 우융이 아무것도 막지 못하고 그냥 이 마을과 함께 수해에 휩쓸린다면 너무한 생각을 하고 무리한 부탁을 요구한 것의 사죄쯤으로 퉁 칠수 있지 않을까. 따위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살고싶어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서. 파이브는 살고 싶었다. 가능하면 우융도. 그런 생각은 대체 어디부터 꿈이었는지 아니면 언제 잠이 든 건지도 모르게 기절했는지. 세상은 밝았고 수해는 없었다. 이틀 전 파이브가 예의에 어긋나게 한 행동 모두가 쓸모없어졌단 말이고 또 하루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파이브가 달렸다. 부모님의 말소리를 뒤로하고 바다로 뛰었다. 우융, 너는 살아있어?
바다는 유독 비린내가 더 심했다. 수산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훅 불어오는 바다냄새를 더 응축한 것 같은 축축한 습도의 냄새. 평소처럼 부르는 이름에 우융의 응답은 없다. 야 이 물고기자식아. 이새끼가. 살아있었구나. 감동한 척 진짜 역겹다.
가야겠네.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은 저 멀리서 목소리를 들은 우융이 내뱉는 말이라. 파이브가 저를 부르는 말을 들을 때 쯤에는 우융은 이미 몸을 살짝 숨긴 채로. 갈게. 잘 가라.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작별은 이렇게나 건조하게. 습하기 짝이 없는 짠내 속의 건조한 작별은 그렇게 갔다.
무언가가 물에 날았다. 하나는 작살과 엇비슷한 것, 그물망, 효력이 있는 걸까 싶은 총, 그리고 물가 위에 둥둥 떠 있는 배. 수면 가까이 붙은 그건 그 날아드는 모든 것을 피하고 여유부리듯 수면 위로 훌쩍 뛰어올라서, 새까만 비늘과 새카만 체모, 그리고 비인간적인 순백. 우융이다. 물에 잠긴 걔는 잠수해서도 날아드는 온갖 것들을 피한다. 피하고 피해서 큰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걸린 그물을 마주한다. 억세기는 아주 억세서 가진건 손밖에 없는 우융이 차마 풀어내지 못할 거친 그물. 수면으로 향하면 잡힌다, 그렇다 해서 이대로 있어도 잡힌다.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은 우융을 조인다. 날아들고 달려들고 퍼지고. 눈도 하나같이 다 가린 것들이 매섭기는 너무 매섭게. 눈이 보이지 않지만 속에 품은 욕망의 파도소리가 적나라하게. 철썩, 파도가 쳤다. 작살이 아슬아슬하다. 그 속에서 우융은 문득 새파란 것이 그리웠다. 파이브의 눈동자. 이기적이긴 했어도 선한 이기심이었던 걔의 바다. 이제는 마주하지 못할 그 물색.
아 씨발.
상념의 끝에서 작살이 헤집는다.
철썩, 파도가 쳤다.
파이브는 그런 꿈을 꿨다.
기분나쁜 꿈이다. 그리 평가하면서도 꿈이 잊히지가 않아서. 꿈에서 깨기 전에 마치 우융의 두 눈이 저를 본 것 같았다. 부릅뜬 그 눈이 마치 꿈을 꾸는 파이브 자신을 바라본 듯한 그 움직임에 차마 아무것도 못하고. 머리를 도리질하며 상념을 털어내려던 찰나에 시끌시끌한 교실에서 들려오는 인어라는 키워드가. 설마, 아니겠지. 파이브가 아는 인어가 우융밖에 없다지만 진짜 우융일 리가. 근데 그렇다고 해서 우융 말고 또 올라올 인어가 있을까?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코마.
오.
(링크)
이거 진짠가? ㅋㅋ
이상하게, 코마가 보낸 링크 미리보기 사진에 걸린 것은 누가 보아도 우융이라서.
꾹. 파이브는 링크를 누른 손을 차마 떼지 못했다. 여기서 손을 떼면 기사는 대체 어떻게 우융을 묘사하고 있을지 볼 용기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잡혔고, 지금 저 사진은 무슨 상태이며, 또 그의 조치는 어떻게 되는지. 고작 보름 조금 안되게 만난 인연 때문에 무슨 고생인지. 안 잡힌다며.
지난 8월 31일 오후 3시경 인어가 있다는 제보와 함께 들어온 사진이다. 사진의 제공자는 어촌에서 거주하는 50대 남성 A씨로 어느날 본 바다의 이상한 것을 관찰하다 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포획 방법에 관한 인터뷰에서 인어가 수면 위로 나오거나 하는 시간을 기록해 마을 사람들과 합심하여 인어를 포획하는 데에 성공하였다고 대답했고, 수조에 담았다며 30초짜리의 짧은 영상 또한 함께 제보하였다. 다른 마을사람들과의 인터뷰에서 이 인어는 공격성이 있고 거친 면이 있어 구속이 필요했다고 밝혀왔다. 현재 인어의 정확한 위치는 한 수족관에 …
차마 더 볼 수 없는 기사에 파이브는 화면의 전원을 눌러 꺼버렸다. 이 문장의 나열들을 보고 있자면 업보가 드디어 왔구나, 하는 느낌의 허탈함과 그럼에도 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천천히 호흡하는 파이브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이 덮은 어둠 속에서는 우융이 저를 빤히 직시하고 있었다. 왜 그랬어, 하고 묻는 것 처럼. 혹은 그냥 파이브를 보는 것처럼. 너는 와야지, 하고 말을 걸듯이. 그래서 파이브는 수족관으로 가야만 했다. 우융이 저를 불렀고 파이브는 그 부름에 갈 수 밖에 없다. 수족관에 갖힌 우융은 자신의 죄니까.
수족관 패러다이스. 물고기의 낙원이라는 의미라나 뭐라나, 파이브는 딱히 공감할 수 없었다. 물고기의 낙원은 무슨, 인간의 낙원이지. 그런 감상을 품는 것은 이 수족관이 우융을 담아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어를 전시한다는 것의 이득을 잘 아는지 한정 티켓같은 것도 뽑아서 인어 모양으로 참 예쁘게도 뽑았다. 팔랑팔랑하고 손에서 흔들리는 티켓을 가만 보던 파이브는 인어 구역이라고 명명된 거대한 수조로 향했다. 새파란 조명 천지에 캣타워 비스무리한 이상한 구조물 같은 것도 수조 안에 넣어놓고, 장식하기는 퍽 예쁘게 꾸며서 파이브도 잠깐 눈을 흘낏 돌릴 뻔 했다. 그 수조 안 장식물에서 기대어 있는 우융을 보기 전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우융의 머리카락 기장은 못본 새에 많이 길었다. 혹시 붙임머리같은걸 인어한테도 붙인건지, 본래 물속에서는 치렁치렁하고 퍼지는 것이 예쁜 법이니까. 그래도 붙인 것은 그게 다인지 화장이나 이상한 것 따위는 없었다. 그래, 귀하신 인어인데. 어떤 실험에 동원될지도 모르는 몸이니 무언가를 할 생각은 못했겠지. 속으로 조롱하면서도 바뀌는 사실이 없음에 울적해하는 것도 잠시간. 파이브는 며칠 전만 해도 입 밖으로 내뱉던 우융의 이름을 굴린다. 우융, 우융. 이 물고기자식. 무심코 내뱉은 말에 우융이 기대어 있던 몸을 이끌고 파이브와 눈을 마주쳐온다. 물 속에서 보는 우융의 눈동자가 일렁이는 것이 꼭 검은 바다가 울렁이는 것처럼. 우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냅다 제가 갇힌 거대한 수족관을 돌았다. 구조물을 감싸안듯 돌고, 수중에서 앞으로 구르듯 돌고, 몸을 꼬았다가, 해초 장식물 사이에 섞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휴대폰을 든다. 파이브는 그것이 썩 좋은 꼴이 아니라고 자신했다. 당장 우아하게 몸을 움직이는 우융의 눈만 해도 즐기는 기색이 아니고, 그저 의무감에 몸을 움직이는 행위에 가깝게.
화려한 퍼포먼스를 멈춘 우융은 이내 팔을 움직여 인사하듯 과장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또 그에 환호하고 박수친다. 이는 이제 유튜브 쇼츠같은 곳에 퍼져서 반응 따위의 것으로 재생산되고 그러겠지. 그런 인사의 과정에서 날아드는 것은 언제나의 텔레파시다.
오 일 뒤에 물이 올거야.
파이브의 몸이 굳었다. 물? 물. 우융이 인간 식으로 말하자면 쓰나미라고 했던 거.
그리고 우융이 한 번 막아냈던 거.
파이브의 낯이 굳었다. 이건 우융의 복수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 뭘 어떻게 알아챈 건지 우융이 작게 도리질해서. 마치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는 양.
나는 그때 도망칠 거야.
그래, 우융은 제 도주를 논했다. 파이브는 그 당돌한 선언에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애초에 반박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선언이었으니까. 우융은 바다의 생물이고 이런 수족관에 갖혀서 인간들의 손가락질과 웃음, 휴대폰의 빛을 받고 사료를 먹으며 살 존재는 아니니까. 그대로 둘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인간이 보존하려 하는 순간 망가지고 마니까. 지금 우융의 눈이 좋지 않은 것처럼 어디가 또 망가질지 모르니까. 어딘가 아쉬운 이유는 파이브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차라리 우융이 어디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미안하지만 파이브는 우융이 아니라서 그런 불쾌한 생각을 했겠지.
우융이 인상을 찡그린다. 파도가 조금 죽었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게 파이브에 대한 실망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채 묻기 전에 입장시간의 문제로 파이브는 나가야만 했다. 파도가 죽었다는 의미를 여전히 곱씹으면서.
하루가 지났다. 그 다음도, 또 다음도. 그러고도 두 밤이 지나서 마침내 우융이 예고한 물이 오는 날이라. 우융이 처음 예고한 물과는 달리 이번엔 기상예보가 제대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자정부터 울리는 호우주의보에 바깥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재난문자까지. 낮은 건물이라면 2층까지도 잠긴 주제에 이상하게 실내로는 물이 안들어온다는 점에 사태가 진정된 후 연구해본다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넘기며 제 방에 누워 가만 있던 파이브는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무심코 문을 열려다 손을 멈췄다. 파이브, 하고 부르는 그 골이 울리는 텔레파시. 우융이라서.
가냐? 간다. 묘한 기시감이다. 세상이 물에 잠긴 듯 비린내가 진동하던 그 바다에서의 작별과 실제로 잠겨버린 지금에서의 인사. 그게 너무 무미건조했다는 점마저. 세상이 습한 바다향이었다. 거기서 우융은 파이브를 지나쳐서 이내 바다로 떠난다. 헤엄치는 소리와 함께 우융은 어떤 말을 물에다 대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냥 바다로 나아가는데 집중하고 있거나, 그때도 우린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그를 닮으려 할 지도.
도시를 뒤덮은 거친 빗줄기와 물살은 장장 하루를 꼬박 새어서 끝났다.
파이브는 다시 그 수족관을 찾았다. 우융이 있던 거기로.
우융이 담겨있던 수조는 완전히 박살나서 유리조각이 흩뿌려진 채로, 차마 다 치워지지 않은 물에서는 바다향이 났다. 아마 바다 인어라는 점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맞췄겠지.
그렇지만 우융은 인어다.
끌어온 바닷물이라고 해서 잘 살수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잘 꾸몄다고 해서 바다가 아닌 곳에서 살 수 없다.
그래, 우융은 인어다.
인간의 형상을 취하면서도 우융은 바다에 있어야 한다
새파란 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새카만 놈이 영원토록 어울리지 않는 그 푸름 속에서 있을 것이라.
그래서 아마 우융은 이 수족관을 견디기 어려워 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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