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사鹿鯊의 사냥 (+)
탈화석, 해리탄생 AU IF로그
※CW: 동의 절차 없는 신체 접촉
“당신이 나타나고부터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레아 윈필드가 말했다.
“그것 참 안됐네.” 핀갈 모레이가 말했다.
“다 당신 때문이에요.” 레아가 말했다.
“그것 참 잘됐네.” 핀갈이 말했다.
레아가 모래사장 한복판에 멈춰섰다. 북해에서 돌아온 인어들을 따라, 머글들을 밀어낸 해안에 핀갈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본래 자리로 옮겨간 모레이 가족의 집은 예의 안전가옥과는 걸어서 반 시간 이상 떨어져 있었기에 배웅을 명목으로 리델이 나직하게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들리지 않는 거리까지 넉넉히 걸어올 수 있었다. 핀갈 모레이가 언제부터 이런 말하지 않은 암묵적인 목적과 계획을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 순간에는 그것조차가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좋겠네요.” 그가 말했다. “그 사람들의 하나가 돼서. 무리에 받아들여져서. 모두를 구하고, 전쟁 영웅이 되고……”
핀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레아보다 몇 발짝 앞서 걷고 있다. 해풍에 머리칼이 어지럽게 나부끼고 망토가 날아갈 듯 펄럭거리지만 천천히 내딛는 걸음은 한 번 헛디딤도 없이 견결하다. 이곳의 모래는 곱지도 희지도 않고 거뭇하니 입자가 거칠어서, 바람에 날아온 모래알이 발목에 부딪혀 살갗이 쓸렸다.
“……내가 우스워요? 우습냐고요. 시종일관 실실 웃기나 하고 사람 말은 귓구멍으로 듣지도 않고…… 원래대로라면 그 사람들, 당신을 끼워주지도 않았을 거예요.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요. 듣고 있어요?”
듣고 있냐고. 정말로, 들리고 있기는 한 건지, 음절과 단어들이 바람에 묻혀 말이 되지 못한 소리의 뭉텅이들만이 겨우 날아가 단단한 어깨에 부딪혀 뭉그러지는 기분에 레아 윈필드는 더한층 악을 썼다. 핀갈 모레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곧게 펴진 등은 뒤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지만 적어도 듣고는 있다는 뜻이다. 레아는 비척거리며 한두 발 더 다가간다. 코웃음인지, 헛웃음인지, 밭은숨인지 모를 가쁜 소리를 짧게 뱉었다.
“그래요, 그 사람들 말대로 됐죠. 어떻게든 전부 나아지고 있어요. 당신 덕분에. 좋아요? 좋겠죠. 그렇게 다함께 앞서가니까 뭐라도 된 기분이겠죠. 나는 그런 거 싫은데, 원한 적도 없는데, 전부 당신 멋대로, 다 자기들 멋대로…….”
나 혼자만 뒤에 남겨두고. 그럼 나는. 나는 이제 어떡하는데. 제풀에 맥이 빠진 규함은 흐느낌처럼 힘없이 잦아들었다. 너 때문이야. 전부 다 너 때문이라고.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았다. 핀갈이 물끄러미 그 모습을 돌아보았다. 이내 몸을 돌려 웅크린 인영을 건너다보고 섰다.
“있잖아, 나도 그 사람의 말처럼,”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에스마일이나 힐데가르트를 사랑하듯이, 형제 독수리들을 사랑하고 호그와트의 친구들을 사랑하듯이…… 너희들you을 사랑하듯이 인간 모두를 사랑하려고도 한 번 해봤거든. 그런데 역시 그건 안 되는 것 같아. 이 세계는 너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친절하지 않잖아. 역시 나는 머글들이 싫고, 그걸 어르고 달래는 데 정신 팔려서 다른 건 안중에 없는 마법사들이 재수없고. 그러니까 그 식탁에는 앉을 수 없어. 그렇지만 너희들이 살아갈 세계라면, 적어도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해볼까 해서…….”
한 발짝, 한 발짝씩 푹푹 빠지는 젖은 모래를 밟고 그가 가까이 다가온다. 지척에 와서야 그가 멈췄다. 한 손을 쭉 뻗고 손바닥을 보이며 오래 알아왔던 소년이 물었다.
“그러니까 말해봐. 어떻게 하고 싶어? 네you가 살아가고 싶은 세계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면, 거기랑도 되도록 잘 지내볼게. 혼자 힘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면 내가 보태서 데려다줄게.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고 그냥 계속 여기에 숨어있고 싶으면, 네가 좋은 만큼 있다 가도 돼. 그 집은 여전히 잠겨 있고, 나도 어머니도 네가 어디 있는지 누구에게 말 안 할 거야.”
미래 같은 건 난 잘 모르지만, 나의 현재라면 그렇게 살고 있어. 핀갈 모레이가 말한다. 레아 윈필드는 그를 올려다본다. 그의 얼굴은 담담하다. 열정도 측은함도 비치지 않는, 그저 단단하고 확고한 표정. 손을 꼭 붙들고 타인의 고독을 염려하던 그 얼굴이 아니다. 등 뒤에서 칼에 찔리곤 배신감에 치를 떨던 그 얼굴도 아니다. 무심한 듯 태평한 듯 주위의 모든 것을 부단히 경계하던 그 얼굴도 아니다. 어쩌면 핀갈 모레이 그 자신조차 새로 배우고 있는 낯선 얼굴, 많은 일을 겪으며 비로소 얻어낸 얼굴이다.
“그럼 나 줘요. 여기서 살래요.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질릴 때까지는요.”
레아는 뻗은 손을 붙들고 몸을 일으킨다. 핀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마치 그럴 것도 예상이라도 한 마냥. 거기에 균열을 내고 싶어져서 레아는 충동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당신도 거기 와 있어요.”
“내가!? 왜!?”
처음으로 그 얼굴에 동요가 일었다. 이제서야 겨우 눈에 익은 얼굴이다. 새삼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척 심통맞게 톡 쏘아붙였다.
“그럼 그 집에서 혼자 살라고요?”
“부모님이 계속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무언가를 바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듯한 얼굴로 핀갈 모레이가 되물었다. 레아 윈필드는 그의 머리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 해명하고 왈가왈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멱살을 잡듯 그의 앞섶을 틀어쥐고 긴 말 없이 힘껏 입술을 겹쳤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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