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해의 영역

어린 카밀에게 있어 세이라키아는 어릴 적 누구보다도 친한, 제 반쪽과도 다름없는 존재였다. 보통 쌍둥이들이나 서로를 그러한 단어로 지칭하기는 한다지만 카밀이 느끼기에는 저와 세이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거의 모든 순간에 함께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런 단어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고는 했다.

세이라키아가 열여섯에 증발하듯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는 스무 살이 된 카밀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끝도 모르고 몰려오는 마물족에 고통받는 지상 상황과는 상반되게 하늘은 쾌청하기만 했다. 어느새 여름이 온 것이다.

지금의 카밀에게 세이라키아는, 글쎄. 물론 여전히 무엇보다 소중한 사촌 동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가해한 존재였다.

“…세이."

너는 매번 나를 두고 멀리 사라지기만 하네.

그 애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으나, 어느 순간엔가 불쑥 유치한 불만이 치솟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다만 그 감정들을 모두 삭혀내고, 눈 앞의 마물족을 베어내는 데 급급했다. 그는 이제 마냥 세이를 기다리던 어린애가 아니었고, 이곳에서는 끝마쳐야만 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

생각해 보면 그가 세이에 대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매일같이 붙어다닌 탓에 그 애의 사소한 취향이나 습관, 당장 할 법한 생각 따위는 짐작해낼 수 있었으나 본질적인 것까지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이 애는 왜 이렇게 행동하지?' '왜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는 걸까?' ... 등의 일 말이다.

어릴 적에는 단순히 세이를 조용하고 책만 읽는 성격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아마 천성일 수도 있겠으나, 라반트 백작가에서 적잖이 눈칫밥을 먹고 살았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조금 큰 후에나 알게 되었다. 16살에 세이가 갑작스레 사라졌을 때도 그랬다. 할아버지의 시험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속으로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우리 사이에는 비밀 같은 건 없는 게 아니었냐고 심통도 내봤다. 그 애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게 영 불만스러워서 수소문을 해 보안부 중에서도 하필 말단 행정부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할아버지는 사실 알고 계셨을까..."

"네?"

"아, 아니. 혼잣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또한 세이가 이종족이었음을 알고 난 후에서야 어렴풋 짐작했다. 설령 몰랐다고 한들, 그의 할아버지인 루스터 공작이 세이를 쫓아낸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왜 어린 세이가 검을 배우지 않았는지, 갑자기 미술 따위의 것을 시도하려 했는지... 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루스터는 아니었으나 루스터의 피를 이은 카밀 또래의 남성이었고, 그렇기에 눈에 띄면 안됐던 것이다. 오로지 후계자인 자신을 위해.

괜히 입 속이 씁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그 애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조차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만일 원망이라도 받고 있는 것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린 날의 저는 순수하고 무지했으며, 때로 누군가에게 무지는 곧 죄가 되는 법이었다. 모두들 카밀 앞에서만은 몸을 사렸고, 입도 벙긋 하지 않았으므로 정확한 경위를 알아내는 일은 앞으로도 요원해 보였다. 그런 이상 카밀은 영원히 세이라키아보다 한 발짝 뒤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절대 세이가 그에게 허락한 이상으로 발을 디딜 수가 없다. 이제는 아예 제 종족과 활동하는 듯하니 그들 사이의 거리는 더욱 벌어지기만 했고, 카밀은... 아, 더 이상 어리지 않은 그는, 그러나 여전히 그 거리감이 싫었다.

종족이 다르면 어때.

라반트 가의 자제가 아니면 또 어떻고?

네 아버지가 누구인지, 나는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네 어머니는 내 고모고, 우리는 피를 나눈 사촌인데... 유년기를 함께했던 내 반쪽인데.

세이 본인에게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