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
쮸온
아. 이주연 진짜.
주연의 판판한 엉덩이에 챡 감겨있는 게 제가 찾던 정열의 빨간 빤스라는 것을 깨닫고나서야. 지석은 마음껏 인상을 구겼다. 아 레드 휀티 존나 땡겼는데. 하필 저걸 입고 있냐. 살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엉덩이가 얄미워서 손바닥으로 찰싹 때린다. 챡. 손에 감기는 맛은 여전히 좋았다.
“...모야. 아침부터.”
“이주연 니 왜 내 팬티 입냐."
“니 팬티 내 팬티가 어딨노. 우리 사이에.”
“내 돈으로 산 건 내 팬티지.”
“뭐래. 그럼 나도 니꺼지.”
“넌 원래 내꺼야. 몰랐냐?”
어째서 대화가 산으로 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얘네 재화는 일상이 그랬다. 시작은 분명 불평이었는데 원인이 되었던 빨간 빤스는 이미 바닥에 널부러진지 오래였다.
어젯밤까지 몸을 섞었던 게 까마득했던 예전처럼 서로를 물고 빨았다. 꺄르륵 웃으며 숨 넘어가는 해맑은 소리들만 가득했다. 알몸으로 좁은 집을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몇 번 굴러다니고나면 그제야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네가 밥 해. 아니야, 니가 밥 해. 서로 밥줘충처럼 밥찷여 얼른찷여 노래를 부르며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가위바위보를 하기로 한다.
주연은 보자기, 지석은 가위. 꺄르르 넘어가며 환호하는 목소리에 주연은 뚱한 얼굴로 짧뚱한 농구바지에 다리를 끼워넣었다. 매번 같은 레파토리였다. 늘 곽지석이 가위를 낼 걸 알면서도 보자기를 내는 이주연. 어이, 주연아. 팬티 안 입냐? 묻는 지석의 목소리에 냉장고를 쥐잡듯 뒤지던 주연이 퉁퉁거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밥 먹고 또 벗길 거면서. 귀찮아."
오. 간만에 똑똑한 소리를 한 주연 덕분에 지석이 웃었다. 아, 누구 남친인지 모르겠네, 껄껄껄.
딴따라
라면 두 개를 끓여먹고 또 한 바탕을 뒹굴고 나서야 두 노란 대가리가 집 밖으로 나섰다. 집 밖이라고 해봐야 그리 멀지도 않다. 옥탑을 내려와 두런두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걷다보면 도착하는 작은 상가. 왼 편은 무슨 설비기사 아저씨의 창고 겸 사무실이었고, 오른 편은 비워둔지 오래되어 파란 셔터에 녹이 잔뜩 슬어있는 빈 공간이었다. 주연과 지석은 딸랑딸랑 그 사이의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또 다른 게이새끼들이 하라는 합주 연습은 안하고 삐그덕거리는 소파에 엉겨붙어 대낮부터 신나는 한 몸되기 프로젝트 중이었다. 와우, 주연아. 쟤네 화끈한데? 지석이 주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면, 주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서 하면 허리 아플텐데. 니는 죽어나등데. 하는 태평한 대답이나 해댄다.
“아. 썩을 놈들아. 왤케 빨리 왔어. 평소엔 오라고 오라고 굿을 해도 안 오더니!”
괜히 민망한 건반게이 하나가 벗어두었던 반팔 티셔츠에 제 팔을 끼워넣으며 궁시렁댔다. 세로로 길게 그어져있는 흉터. 주연은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인상을 대놓고 찌푸리고는 했다.
“아니. 일찍 오려는 생각은 없었거든? 근데 우리 주연이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지... 그렇게 됐다.”
“뭐라고? 곽지석 니 방금 뭐라캤어.”
"혹시 내가 조금 틀린 말을 했니, 귀염둥이 남친아?”
"하. 내가 또. 니 힘들까봐 또. 어? 또 내가 적당히 해줬디만. 하. 니 진짜 이따보자이."
존나 티엠아이가 오갔다. 네가 먼저 쌌네. 내가 먼저 쌌네. 하는 과분한 소리들을 듣고 있자니 낮부터 밥맛이 떨어져서 건반치는 게이들은 악기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느그 섹스사 따위는 듣기 싫다는 뜻이었다.
아직 편곡이 덜 끝난 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저 게이새끼들이 떠들어대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연주부터 하고 본다. 밴드음악이라면 환장을 하는 노란머리의 게이새끼(from 대구)가 허겁지겁 베이스를 찾아 매고서 마이크 앞을 찾아간다. 끝내 누가 먼저 쌌는지 밝히지 못한 게 답답한 금색머리의 게이새끼(from 의정부)도 못내 제 일렉기타를 들어 머리에 꿰어넣는다. 금방 제 활력을 찾는 연습실.
주연이 덜 쓴 가사 덕분에 허밍을 흘리며 마이크를 잡는다. 인력 난으로 베이스를 들긴 했으나 아직 실력은 좀 그런... 따지고보면 좆밥 베이시스트. 그래도 자세 하나는 프로 뺨친다. 락이란 원래 그런 거였다. 기세... 자신감. 그런 주연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걔 남자친구 곽지석은 늘 사랑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논다. 악기를 두드리다가 또 배가 고파져 짱깨를 시켜 먹었다. 탕수육도 먹꼬 싶은데에. 주연의 목소리에 다 같이 언성이 높아져 한 마디씩 한다. 탕수육 비싸잖아. 너 돈 있냐!? 등등의 원성. 아라써어... 왜 구박해. 주연이 주눅이 들면 지석이 주연의 마른 어깨를 감싸안으며 편 들어줬다. 주연이야. 내가 이 담에 돈 많이 벌면 탕수육 맨날 사줄게! 어린애 소꿉장난 하는 꼴들이 귀엽지만 승민과 정수는 끝내 탕수육을 사주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없으니까.
그릇까지 핥아먹을 기세로 식사를 끝내고 나면 너도나도 바닥에 힘없이 널부러졌다. 배부르면 원래 잠오는 게 당연한 일이지. 승민과 정수는 서로의 몸뚱이에 몸뚱이를 적절하게 얹어두고서는 낮잠에 빠졌다. 가사를 쓰는 주연의 엎드린 등에 기대 누운 지석은 핸드폰 게임 중. 음. 뒤지게 안풀린다. 나 디스코 덱 아직 덜 외웠는뎅. 볼펜 뒤꼭지를 물고 낮게 웅얼웅얼 가사를 읊어보는 주연의 낮은 목소리가 좋아서 지석은 그 등에 고개를 파묻는다. 같은 섬유유연제를 쓰는데도 이상하게 더 따뜻한 이주연냄새.
“지슥. 이거 들어봐바.”
“그래. 해보거라.”
곽지석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왜 빨갛냐면 어제,
"야, 이 미친 새끼야."
결국 잠이 들지 않았던 건반게이 한 놈한테 뒤통수를 후려맞고 만다. 히잉. 나 아포, 자기야. 호 해주세요. 지석의 품으로 안겨드는 주연을 지석은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잘썼는데? 왜 우리 주연이 기를 죽이죠? 염병 꼴값을 떠는 게이들을 보며 저 쪽에서는 고개만 절레절레. 그 때였다. 여전히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던 건반게이 하나가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든 것은.
"...우리 웃을 때 아닌 거 같은데."
"웨애."
"성태윤. 밴드 못 나오겠대."
고개가 돌아간다. 저 새끼둘 너무 더러워서 같이 하기 싫대지? 승민이 진담을 농담으로 받았다. 부모님한테 걸렸대. 정수의 목소리가 어둡게 깔렸다. 불쌍하당. 뭐라고 할 부모가 없는 주연이 낭창하게 대답했다. 드럼없이 공연이 되냐? 지석이 누구에겐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하. 승민이 다시 발라당 찬 바닥에 몸을 뉘이며 중얼거렸다.
"그 새낀 포기라도 하니 좋겠다. 난 당장 생활비 없어서 딴 거 할 생각도 못해."
비슷한 사정들이었다. 주머니 털어봐야 나올 돈 없는.
꿈만 먹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지석은. 문득 그래서 제 키가 덜 큰건가. 생각을 했다.
드럼 없는 밴드? 있을 수 있다. 팥도 안 들어간 밀가루 덩어리들도 붕어빵이라고 우기는 시대였으니까.
그러나 김정수는 기분이 좆같다. 꼭. 그게 저의 미래만 같기도 해서.
음악하겠답시고 집을 나왔다. 누구네 아들은 서울대 준비를 한다던데. 누구네 아들은 벌써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단다. 잔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걔는 서울대 가는 게, 공무원되는 게 꿈이었나부지. 지석의 꿈은 그게 아니었다. 기타 잡고. 손가락이 다 부르트도록 연주 갈기면서 돈벌이를 하고 싶었다. 쉽지 않은 길이될 거라는 걸. 지석도 알았다.
"업어주까?"
"자기야. 너 뿌러지면 나는 어쩌고."
"하. 곽지석 지금 남친을 이래 무시한다꼬."
합주연습이 끝나면 새벽까지 밥벌이를 했다. 주연의 얼굴만 뜯어먹고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으므로. 지석은 공연을 하는 클럽에서 서버를. 주연은 근처 술집에서 설거지를 했다. 손이 가만있어도 바들바들 떨리눈데. 라면만 먹을 수 없어 시작했던 알바의 첫 날. 주연은 덜덜 떨리는 제 손을 보면서도 키득키득 웃었다. 웃기냐? 지석의 핀잔에 돈도 벌고 체력도 키우고 일석이조. 하며 너스레를 떠는 것도 잊지 않고서.
서울이 한 눈에 다 내려다보이는 집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긴 시간 올라온 덕분이겠지. 주연아, 오늘도 우리 폐활량 한 층 더 좋아졌다. 지석의 한국인다운 풍자섞인 해학에 주연이 웃었다. 우리 백년해로 하겠다. 그러면 정말 좋을텐데.
세상에 영원한 건. 영원하다는 그 단어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석은 알았다.
명함을 받았다. 주연은 들뜬 얼굴이었다.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말에 주연은 한참을 고민을 했다. 뭐가 나은데, 그래서. 주연과 지석의 안목은 도찐개찐. 승민이 결국 몇 없는 제 옷장을 털어 주연을 입혔다. 잘되면 알지? 탕수육 쏴. 무신사도 못가고 구제시장에서 털어온 옷들리면서. 라이더자켓에 다 찢어진 디스트로이드 진이 주연에게 제법 잘 어울렸다.
"잘 어울리?"
"엉."
"그래도 내한테는 니가 젤 잘어울리지."
이마에 눌러 찍어지는 뜨뜻한 입술. 우엑, 시발. 승민의 가운데손가락에도 주연과 지석은 늘 그랬듯 꼴값커플의 몫을하며 그저 홍홍 웃었다. 댕기오께.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비탈진 길을 내려가던 주연의 가벼운 발걸음.
"...야."
"왜."
"괜찮냐?"
지석은 음악을 하겠답시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오디션 제의는. 주연에게만 들어왔더랬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비좁은 틈으로 파고 들어간다. 이제는 떨어져 있는 게 어색한 몸들. 깡마른 두 몸은 또 다시 제자리를 찾듯 포개어진다. 웃느라 하나되지 못했던 혀가 웃음이 잡히지마자 섞여드느라 바빴다. 지석의 허리를 감싸안는 주연. 주연의 목을 끌어안던 지석. 안고 또 안아도 따뜻하기만한 서로의 체온.
그러니까.
그 때는 몰랐던 거다. 서로를 할퀴고 나아갈 앞날 같은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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