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놀토
백신 개발이 박차를 가하고 안전지대가 확장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숨 트일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좀비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닌 보호 감찰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사살보다 포획이 우선되었다. 일상적인 소음 같던 총성은 차츰 드물어졌다. 사람들은 좀비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이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걸 뒤늦게 상기해 냈는지 선전 방송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훔쳤다.
퇴소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야토는 백신 제조법을 운반해 온—혹은 알아낸, 발견한, 무엇이 됐든—공적을 암암리에 인정받아 비교적 앞 순번에 배치되었다. 교도소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닭장 같은 보호소, 이 안전한 공간이 하야토는 싫었다. 하루빨리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잠을 자면 시간이 조금 빨리 흐를까 해서 하야토는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잠으로 흘려보냈다.
깨어있을 때는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이 시국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채널은 없었다. 클래식 음악 채널에서조차 ‘좀비 사태’의 종식에 관해 이야기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끝나면 진행자는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이름 뿐인 영웅을 기린다. 기적적으로 치료제를 개발해 내고 우리에게 일상을 되돌려주었다는 그 사람. 그러나 하야토는 조금도 기쁘지 않다. 인류를 구원했다는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신들은 관심이나 있는지. 혹여 나 아닌 누군가가 그의 희생에 보답해 주리라고 속 편한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애는 과학자도 약사도 아니었다. 세상을 구할 치료제를 위해 그가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정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튼 라디오를 끄고 다시 정적으로 도망친다. 이번에는 그냥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잠이 안 와요? 그럼 양을 세봐요. 아니면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 있을게요. 다정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를 간지럽혔다. 환청 같은 건 아니었다. 하야토가 자의로 떠올린 기억이었다. 아놀드와 함께 싸구려 통조림을 먹고 맨바닥에 모포 한 장을 깔고 번갈아 잠들던 기억. 모두가 평화로운 미래를 꿈꿀 때 하야토의 시간만은 아직 캘버리 교도소를 향해 걷던 그 기나긴 시간 속에 멈춰있었다. 작열하는 아스팔트 위를 걷느라 군화 속 발바닥은 짓물러 벗겨지고 어린아이보다도 무거운 군장에 어깨가 내려앉는 듯해도 이대로 그와 나란히 걸을 수만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 둘이서 함께, 캘버리에 무사히 도착하기만 한다면… 그러나 그때 하야토는 이 지난한 행군의 끝에 평화가 아닌 이별이 예정되어 있으리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때 난 너한테 네 목숨을 가장 소중히 하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보다도 널 더 소중히 여기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제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그런데 넌 왜…
탕, 하는 커다란 소음과 함께 눈을 떴다. 깊은 꿈속에서 억지로 끌려 나온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 쳤다. 그러나 그의 잠을 깨운 불길한 소리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 옆 방의 문이 거세게 닫힌 소리 같았다. 바람도 안 부는 곳에서 왜 저렇게 문을 쾅쾅 닫고 다니는지. 어두운 백열전구가 달린 콘크리트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던 하야토는 집으로 돌아가면 더는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군인이라면 굳이 돈을 더 내고 나가서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부대 주변 주택 단지는 인기가 없었다. 굳이 집을 구해 사는 건 보통 가족이 있는 경우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놀드와 하야토도 부대 근처에 따로 집을 구하게 됐다. 둘 다 모아둔 돈이 있어서 괜찮은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낡았지만 관리가 제법 잘 되어 있었고 원한다면 마음대로 고칠 수도 있었다. 구석구석 아놀드와 하야토의 손이 닿아 있는 그 집. 아늑한 나의 집… 하야토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오랜만에 돌아온 동네는 군부대 근처라 그런지 파손된 곳이 별로 없었다. 하기야 군부대는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가장 먼저 절대안전지대로 지정되었으니까. 접근을 막기 위해 테이프를 둘러놓은 곳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공사중이라 접근을 막은 것 같았다. 집이 무사할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행운이었다.
우편함에는 아무도 꺼내주지 않은 고지서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하야토는 구겨진 편지봉투들을 어렵사리 꺼내면서 속으로 헛웃음을 쳤다. 언제부터 보내기 시작했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보냈을까. 이제 와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느 순간 이 집의 주인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밀린 수도 요금 같은 건 영영 받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마지막 고지서는 아놀드와 하야토가 에덴 작전에 투입되고도 몇 달이 지났을 시점의 것이었다. 그리고 고지서마다 아놀드 가드너, 그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하야토는 무기질적이고 건조하게 적혀 있는 그 이름을 손으로 한 번 쓸어보았다.
집에 돌아온 이후로는 매일 제때 일어나 씻고 식사를 했다. 집을 치우고 환기하고 먼지를 털었다. 스스로가 썩어버릴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혼자서도 꼬박꼬박 일과를 지켰다.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에겐 계속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이 아직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볕을 쬐러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세상은 느리지만 확실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동네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공원의 잔디와 나무는 인간들의 불행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이전보다도 푸르고 울창해 보였다. 다듬어지지 않은 잔디밭 위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야토는 공원의 외곽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사이에 섞여 드는 건 하야토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가끔 공원의 바깥길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이 벤치 앞을 지나치곤 했는데, 그들의 산책이 길어지면 하야토는 마주침이 계속되기 전에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거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쐬는 것도 이만하면 됐다. 이제 계절은 완연한 가을이지만 해가 여전히 높아서 보고 있으면 눈이 부셨다.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대충 가다듬은 하야토는 비니를 조금 더 눌러썼다. 집에 음식이 다 떨어져 가는 참이라 밖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번듯한 식당가는 허물어진 지 오래고, 임대 간판이 붙어 있는 텅 빈 곳에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들어와 푸드트럭만 못한 식당을 차리는 게 예삿일이었다. 그 중에 못 보던 중화 식당이 하나 생겨 있었다. 유리문 위에 붙어 있는 간판과 그 앞에 서 있는 입간판에 쓰인 이름이 달랐다. 차임벨 하나 없는 문을 열자 으레 식당에서 들릴 법한 소란스러운 소음 대신 맥없는 종업원의 인사만이 하야토를 반겼다. 밝은 레몬색 페인트를 어설프게 덧칠한 시멘트 벽 위로 기울어가는 햇빛이 비스듬히 들이치고 있었다. 가게의 맨 안쪽 구석에는 웬 노부부가 빈 접시를 앞에 둔 채 벽면에 붙어 있는 구식 TV를 보고 있었다. 피차 오는 손님도 없으니 내보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야토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잠시 헤매다 결국 적당한 자리에 앉아 유일한 메뉴인 치킨 누들 수프를 시켰다.
음식은 맛이 없었고 노인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군인들은 이제 어떻게 되나? 군인들이야 늘 군인이었죠. 전쟁 끝난다고 군인이 없어지나요. 그런 애들 말고, 연방 정부에서 많이들 뽑아갔잖아. 젊은이들… 할 거 없고 밥 굶는 애들 말이야. 그런 애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헌신짝처럼 버릴 거 아냐. 정적을 쫓아내기 위해 틀어놓은 라디오처럼 그들의 음성이 끊겼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그건 젊은이들을 염려하는 말이 아니라 늙은이들이 으레 하는 푸념에 불과했고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평일 뿐이었다. 알면서도 하야토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TV에선 소리가 나지 않았다. 탱크의 캐터필러 바퀴가 쉼 없이 돌아가는 모습에 이어 행군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송출되었다. 사태 발발 초기에 닥치는 대로 징집되었던 청년들이 화면 속에서 되살아나 어설프게 걷고 있었다. 저 중에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하야토는 궁금했다. 저 단조로운 군모들의 행렬 사이에 자신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놀드도.
하야토는 숟가락을 탁 놓았다. 수프가 반이나 남아 있었다. 계산서를 집어들자 카운터에 서 있던 종업원이 다가왔다. 주문을 받을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쭈뼛거리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하야토가 납작한 지갑을 뒤질 때쯤 그가 돌연 말을 걸어왔다.
군인이세요?
하야토는 대답 없이 무표정으로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그를 군인이라고 짐작할 만한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침묵이 어색했는지 종업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뒷머리를 만졌다.
저분들 이야기를 듣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불편해서 나가시는 줄 알고.
군인 아닙니다. 이야기도 별로 안 듣고 있었어요. 여기.
저희 조부모님이세요. 갈 곳이 없으셔서. 장사를 많이 도와주세요…….
뚝뚝 끊어지는 대화 사이에 어떻게든 변명을 구겨넣느라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매우 빨랐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요? 좀처럼 받아 들지 않는 2달러를 손에 쥔 채로 하야토는 하마터면 그렇게 쏘아붙일 뻔했다. 그가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조바심을 내는지, 겨우 얻은 손님을 잃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그런 것들은 하야토와 조금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야토가 바라는 건 말 한마디 없이 당장 계산을 마치고 이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 미련한 눈. 그는 기껏해야 스물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앳된 얼굴이 불러일으키는 기시감에 발이 무거웠다. 생판 남에게도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는 순진하고 정직한 눈… 평소라면 지나쳤을 텐데. 하야토는 얼굴을 찌푸린 채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못 이기듯 중얼거렸다.
…알겠어요.
쭈뼛거리며 굳어 있던 종업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한결 긴장이 풀린 목소리와 함께 그가 앞치마에 달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가 2달러라는 푼돈과 맞바꿔 건네준 건 한 장의 쿠폰이었다. 유선 번호도 주소도 없는, 이 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초라한 명함. 하야토는 그걸 받아들었다. 도장이 이미 하나 찍혀 있었다. 앞으로 9개를 더 모을 수 있지만 다 모았을 때 무엇을 주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하야토가 그걸 알게 될 일은 영영 없을 것 같았다.
*
하야토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쿠폰을 신발장 위에 대충 던져두었다. 쿠폰은 저대로 먼지에 뒤덮여 차츰 잊힐 것이다. 오는 길에 들른 식료품점은 말이 좋아 식료품점이지 사실상 온갖 종류의 보존 식품과 통조림을 파는 장소에 불과했다. 그것들이 담긴 봉투를 식탁에 내려놓자 주석 캔들이 시끄럽게 달그락거렸다. 하야토는 어떤 것도 정리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집을 비운 사이 먼지를 잔뜩 먹은 패브릭 소파는 아무리 닦아봐도 앉을 때마다 먼지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새로 사야 할 모양이었다. 그러나 같이 사는 집이니 혼자 결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아껴 두었던 것을 꺼낸다. 닳기라도 할까 봐 쉽게 돌려 볼 마음이 들지 않는 비디오테이프들. 한 장을 꺼내 플레이어에 밀어 넣고 소파에 도로 몸을 기대면 이제 어두운 방 안에서 빛나는 것이라고는 납작한 직사각형의 화면뿐이다. 그 안에는 아놀드가 있고 아놀드의 눈으로 본 하야토가 있다. 그곳은 또 다른 세계였다. 하야토가 돌아갈 수 없는 행복하고 찬란한 또 하나의 집이었다. 수백 번을 보아온 비디오의 끝이 다가오면 하야토는 테이프가 끝나고 찾아올 어두운 정적이 두려워져서 리모컨을 찾는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 화면에 있는 것들이 서서히 되돌아간다. 아놀드와 하야토는 거꾸로 걷는다. 저물던 해가 다시 떠오르고 구름이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마침내 비디오의 맨 첫 번째 장면에 다다르면 하야토는 손에 힘을 푼다.
아놀드는 카메라를 먼저 켜고 뒤늦게 이것저것 조정한답시고 렌즈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는 버릇이 있었다. 화면을 꽉 채운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아놀드가 자꾸만 중얼거린다. 어라, 왜 안 되지. 그리고 뒤에서 쏘아붙이는 목소리. 지금 돌아가고 있는 거잖아. 아무것도 모른다는 천진한 얼굴. 하야토는 그 자신 없이 흘러가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아놀드에게 말을 걸었다.
아놀드, 너는 모르고 있겠지만.
집에 왔더니 수도세랑 전기 요금이 몇 개월이나 밀려 있었어. 넌 돌아오면 분명 신용불량자일 거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걸. 그래도 내가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이냐?
소파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 침대도 그런데 소파가 더 심해. 커버도 따로 벗겨서 빨았는데도 그래. 집을 너무 오래 비웠나 봐.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치.
그 사이에 동네가 많이 바뀌었어. 공원에 풀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자란 것 같아.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우리가 좋아하던 그 식당은 없어졌고. 사실 식당은 거의 다 없어졌다고 봐도 돼.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르지. 여긴 다시 안전해졌으니까.
모르는 식당이 생겼더라. 중국 음식점은 다 거기서 거기라 별로인데… 하기야 지금 세상이 이 모양인데 괜찮은 식당이 어디 있겠어. 메뉴가 하나밖에 없어서 그걸 먹었어. 맛은 그저 그랬고.
다시 안 갈 것 같아. 아니, 다시 갈지도 모르겠다. 있잖아… 사실 거기서 널 닮은 애를 봤어. 그렇게 닮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네가 남한테 쩔쩔매던 그 모습이 잠깐 보이는 것 같았어.
그래서 네 생각이 났다.
아놀드가 소리 내서 웃었다. 정말요? 그 목소리에 화면 속 하야토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 모든 것을 하야토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식당에서 마주친 노인들을 떠올린다. 이미 모든 게 끝난 자리에 앉아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탓하는 사람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슬퍼해 봤자 그 일들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마음을… 하야토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원망의 대상을 찾게 된다. 지나치게 부조리한 운명,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불필요하게 모든 걸 뒤집어쓰고 희생한 아놀드, 마지막으로는 혼자 살아남은 그 자신까지.
정신을 차리면 비디오가 완전히 끝나 있다. 거실은 달빛조차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이제는 담뱃불의 미약한 색만이 남아 있었다. 담배를 쥔 손가락이 뜨거웠다. 담배가 필터 끝까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버릇처럼 테이블 위로 손을 뻗던 하야토는 흠칫 멈췄다. 재떨이가 이미 지저분했다. 치우는 걸 잊어버렸나? 왜? 분명 오늘 아침에 집을 청소했는데.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에 빠져 손 둘 곳을 찾지 못하고 꽁초를 들고만 있는 사이 미약한 불씨는 살이 덴 듯한 통증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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