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들)
20240127
단순히 팔이 네 개가 된다고 해서 동시에 더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눈이나 귀가 네 개로 늘어나더라도 마찬가지고요. 핵심은 의식의 제어니까요. 한 가지 일에밖에 집중할 수 없다면, 팔이 네 개가 아니라 백 개여도,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겠죠.
그러니까 늘어나야 하는 것은 팔이 아닙니다. 의식입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도 보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다고 칩시다. 우리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는 건 어째서인가요? 텔레비전 화면과 공부할 책을 동시에 시야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인가요? 아니죠. 눈의 초점이 아니라 뇌의 초점이 문제가 되는 거니까요.
만약 두 개의 의식이 있다면, 한 의식은 영화에, 다른 한 의식은 수학에 초점을 맞추면 그만입니다. 각각 초점을 맞춘 것이니 집중력이 떨어질 염려도 없죠. 진정한 의미의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영어 강의와 역사 모의고사에 동시에 집중할 수도 있겠죠. 의식을 하나 더 늘려 음악을 들으면서 다리로는 자전거를 타는 건 어떨까요? 말 그대로, 우리는 두 배 세 배의 효율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필연적인 한계는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두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 두 개의 눈을 갖고 있다는 점이요. 사실 팔다리와 같은 부분은 역시 팔을 새로 달거나 외부 기기에 의식을 연결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눈은 어떨까요? 우리는 기발한 해법을 발명해 냈습니다.
영화의 원리를 아십니까? 연속되는 사진 여러 장을 빠르게 지나가게 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만약 이 사진 중 절반을 뺀다면? 그러니까 하나 걸러 하나씩만 남긴다면. 조금 자연스럽지 않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정보를 인식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겁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두 의식이 눈을 ‘동시에’ 쓰는 대신, 아주 빠르게 ‘번갈아’ 쓰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의식에게 정보를 ‘배분’하는 것이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떤 의식은 더 중요한 일을 혹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운전하면서 웹툰을 본다면? 필요한 시각적 정보량은 당연히 차이가 나겠죠. 이럴 경우 운전을 하는 의식에게 더 많은 정보를 배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지도 않았겠죠.
자, 이제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말씀드릴 차례겠군요. 하지만 여러분도 예상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야 제 머리 위에 신기술 프레젠테이션이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웃음)
그렇습니다. 저희 회사는 이번에 드디어 ‘정보 배분’ 기술을 상용 가능한 수준으로 완성해 냈습니다.
아시다시피 ‘다중의식’ 기술은 이미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한 상태입니다. 임상 적용도 완료되었다고 말씀드린 바 있죠. 그리고 이번 ‘정보 배분’ 기술의 임상실험 성공은 다중의식 기술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과장하자면, 우리는 곧 ‘신인류’가 되는 것입니다.
비밀 하나를 알려드리자면, 사실 저 자신도 이 기술의 임상실험에 참여했답니다. 이제야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군요. 네, 저는 지금 세 개의 의식을 가진 채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달리 멀티태스킹이 필요하지 않으니 두 개의 의식은 쉬고 있지만요.
여러분, 다중의식 기술은 삶의 질을 엄청나게 높여 줍니다. 경험자가 말하는 것이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사실상 세 사람이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물론 지금 말하고 있는 건 한 사람뿐이니까요. 하하, 쉴 때는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습니다. 의식들끼리 충돌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말 그대로 다중의식이기에 그 모든 의식이 하나라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요. 정보를 배분하는 것도, 일을 배분하는 것도, 어색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결됩니다. 결국은.
저를 보세요. 한 의식인 듯 멀쩡하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기대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머릿속에 생겨나는, 여러분만의 어시스턴트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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