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별은 왜 새벽별인가

BM ;

베인밀레 토막/G25 스포일러 매우 주의

- G25 스포일러 극 주의

- 잔열 속의 밀레시안

사랑은 승리하지 않는다.

불타는 평원의 환상 속에 선 자는 결론을 내렸다. 실상 그것은 그의 것조차 아니었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누군가, 혓바닥을 바싹 마르게 하는 열기, 매캐한 연기의 자취와 호흡을 사르는 불꽃의 주인이 그에게 내린 형벌에 가까웠으나, 어쨌든 그는 그 속에서 결론지었다. 사랑은 결코 승리하지 않는다.

찢긴 상처가 미적거리며 아물고, 잿가루가 엉겨 붙은 피딱지가 눈꺼풀 위에 거칠게 일어난 곳에서, 밀레시안은 잘려 나간 마음이 패잔병의 깃발처럼 너절하게 펄럭이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누가 사랑이 감히 승리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사랑만큼 철저하게 패배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신발 밑창에 눌어붙은 진흙조차도 사랑에 비하자면 영광의 문을 지나며 개선 나팔을 불 자격이 있었다.

밀레시안은 어떤 애정의 방식이 사라진 자리를 눈으로 더듬었다. 고통이 시선을 붙잡아 느릿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곳에 어떤 사랑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가 남는다.

이곳에 패배로서 완전해진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남긴 가장 엄혹한 자취 위에 선 자가 있다.

어깨를 둥글게 굽힐 자격조차 상실한 자가 있다. 뱃속에서 절절 끓는 감정들이 빠져나갈 입술을 잃어버린 자가 있다. 비로소 위대해진 별빛, 비로소 수호의 길 끝에 올바로 선 자가 있다.

참혹한 애정의 창끝에 꿰뚫린 자가 있다.

 

- 그대는...

 

별에서 온 여행자는 붉은 환상 속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더듬는다. 섬세한 공예품을 만져 보듯 소중하게.

혹은 덜덜 떨리는 손끝이 한낱 꽃잎을 어르듯 위태롭게.

 

- 너무나도 눈부시군.

 

순간 속에 천 번의 깨달음이 내리친다. 그 한마디가 그를 무너트렸음에 쐐기를 박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려던 목소리는 깊고 어두운 불꽃에 살라진다. 그는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

그는 패자에게 내밀어진 독잔을 마셨다. 남겨진 것을, 짊어진 목숨들을, 어쩌면 부드럽고 다정했을지도 모를 다른 미래를, 그의 발끝에서 떨어져 나간 껍데기들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씹어 삼켰다.

 

그리고 그때에야, 밀레시안은 비로소 사랑이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안다.

사랑이 어떻게 패배로서 승리자의 깃발을 붙잡는지를 안다. 사랑이 무엇으로 가장 영광된 자리에 오르는지, 어떤 모습으로 그림자 없는 광휘에 스며드는지를 안다...

 

영원한 것이 그와 함께 있었다. 아물지 않는 붉은 상처가, 벌어진 채 꿰매진 핏덩어리가, 발밑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어둡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함께 있었다.

 

별은 기꺼이 그것을 지니고 운명에 오른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