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프릴

[스네이프 드림] 외면


촛불이 노란빛으로 일렁인다. 방은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책상에는 작은 상자가 만드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네모난 상자에는 벌써 몇 분째 시선이 닿는다. 창문 틈으로 부는 바람에 리본이 두어 차례 팔을 흔들어 바스락거린다. 탁자 앞에 앉은 남자는 그제야 내키지 않는 얼굴로 상자를 집어든다. 한 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상자는 보기보다 꽤 묵직했다. 그는 모서리를 잡고는 살짝 들어 상자를 살핀다. 검은색 상자 위에 곱게 묶인 녹색 리본이 엺게 빛을 머금고 있다. 받는 사람의 취향을 꽤 고려한 모양이다. 탁. 세베루스는 선물을 다시 책상에 내려놓는다. 무게로 보나 포장으로 보나, 이 선물은 보낸 사람의 지갑사정과는 맞지 않았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또 받아버렸다. 안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든 골칫거리다. 포장을 여는 순간 답을 돌려주어야 한다. 스무살이나 어린 제자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받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붙잡을 틈도 없이 도망치듯 뛰어 가 버리는데 어떻게 붙잡는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가서 돌려주면 될 텐데 뭘 망설이는건지. 한숨을 쉰다. 제 자신에게 조금씩 짜증이 솟구친다. 사실은 너를 놓치기 싫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지만, 외면하려 해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든다. 세베루스는 길게 숨을 내쉬곤 상자를 책상 구석으로 밀어버린다. 풀어보려면 사나흘은 걸릴 듯 하다.


사진 출처: Hakan Erenler, https://www.pexels.com/ko-kr/photo/289756

글 출처: https://miyeokayeah.tistory.com/48?category=697691 [빛과 어둠 그 너머]

-티스토리에 썼던 걸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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