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인간
언젠가 내 이름을 불러.
그러면 내가 나타나서. 네 고민을 해결해 줄 거야.
누구였더라. 그런 말을 한 건.
확실한 것은, 그 속삭임은 다만 어렴풋하나 확실한 사실이라는 점이었고.
나는 그 이름을 아직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1.
악마는 인간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 본 것만 같다. 천사가 인간의 상상처럼 마냥 아름답지 않듯 악마 또한 인간의 상상 마냥 그렇게 괴물이 아닐 것이라는. 인터넷에서 흘러가듯 본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악마는 인간을 닮았을까, 하는 궁금증 또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종류의 궁금증은 절대로 가져서는 종류의 궁금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테다. 하지 말라는 것에는 이유가 있고, 대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더욱 저항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개중에는.
절대로 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있노라고.
—전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마른 중얼거림이 붉은 하늘에 녹았다. 수평선을 지나는 태양이 아예 저를 삼켜버릴 듯이 타오르면 어떨까. 차라리 이 모든 걸 끝내버릴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하다가 웃는다, 그런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던 탓에.
2.
악마의 이름은 소원이라 한다. 사람들이 다 비는 그 소원. 소원을 빌다, 라는 행위는 전부 자신에게 들어온다나 뭐라나.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중2병이 오기에는 많이 늦은 시기에 스스로 악마라 말하는 기인은 스스로를 소원이라는 이름의 악마라고 불렀다.
생각해보면 유소원은, 그러니까 제가 악마라고 말한 그 애는. 중2병에 빠져 사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사실 이걸 이상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정상적인 사람처럼 살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악마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였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뇌리에 박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악마는 인간과 크게 다름이 없구나, 그냥 흘러가는 말 정도의 그것을 고등학교 2학년부터 3학년까지 달달 들어버려서. 그 짤막한 문장 하나였기에 오히려 외우기가 더 쉬워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도 마땅찮은 꿈이 없었던 나라는 사람은 신이 존재하는지, 인생은 어떻게 되먹은 건지 따위의... 소위 개똥철학을 주로 생각하곤 했다. 주위에는 그런 생각에 어울려주던 사람이 없다가 어느 날 무심코 흘려버린 말에, 어느 날 유소원이라는 애가 그걸 받아 준 덕분에 우리는 그날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걸 계기로 친해지고, 붙어 다니고, 어쩌면 누가 한쪽에 대한 사랑을 품고. 만약 그랬다면 조금 험난한 길을 걷는 하나의 로맨스 소설과 같은 궤적을 그렸을 테다. 우리 둘은 동성이었으니까. 다만 그 일생이 예쁜 꽃길을 걷지 못하게 된 것은 둘 다에게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연을 들여다본 탓에. 걔가 마침 심연이었던 탓에. 악마에 대한 것이 우리의 주된 이야깃감이었지만 수많은 고해성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단순학 흑역사 털이였을 뿐이지만—와 수많은 고민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내 쪽이었고 걔는 다 듣고서 적당한 답변을 건네줄 뿐이었지만, 묘하게도 걔한테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어떤 말이든 귀에 솔깃하게 만드는 능력. 어쩌면 듣는 사람을 홀리고 있다고까지 표현 가능할 이상한 인력을.
"내가 소원을 빌면 네가 이루어줄거야?"
어쩌면 그런 말이 시발이었을 테다. 시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욕설로서 내뱉었을 가능성 또한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걔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서울 정도로 눈을 바라보면서, 살풋 짓는 그 웃음과 함께 긍정을 뱉어서.
"힘들면 내 이름을 불러."
그러면 내가 나타나서, 네 고민을 해결해 줄거야.
그것이.
어렴풋하지만 확실하게.
3.
고등학교의 우정이 무색하게도 대학교로 올라가자마자 걔랑 연락이 끊겼다. 나름 친했다고 자부하던 것이 전화번호도 카톡도, 친구들의 반응도 그런 애가 있었나? 하는 정도라서. 그럴 때면 기묘함에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조용할지언정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믿어버린 환자처럼 되는 기분을 지워버릴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적어도 너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고 자부할 수 있었을 테다. 사랑까진 못했을망정 그 정도의 정은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부정되는 그런 네 존재가 싫어서. 무심코.
너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부 날려달라고.
그런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4.
"불렀네, 내 이름."
그건 네 목소리였다. 나긋나긋하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건 내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서. 놀란 몸을 돌리면 어느새 너는 내 앞—그러니까 내가 등을 돌리기 전의 그 앞—에 서서. 나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와 변함없는 웃음으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너는 예뻤다. 참으로 고운 얼굴이 살풋 웃는 것이 인상적인 유소원. 네가 그렇게 있어서. 그래서 잠깐, 내가 빈 소원이 뭐였는지도 잊었을 때.
"어?"
어땠더라, 뜨거운 것이 옆에서 튀었나.
선홍색의, 짙고 탁하고 비린 향기가 나는 그것이. 제 살갗에 탁, 하고 가래침을 뱉어내듯이.
"유소원?"
"다음엔 뭘 해주면 돼?"
네가 나를 불렀다. 내 뺨을 붙잡고서, 나랑 너랑 그 새까만 눈동자 둘을 맞대고서.
무서울 정도로 나를 바라보는 네가 살풋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물어오는 네 말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기묘한 인력을 품어서.
"——————"
내가 뭔가를 뱉었다.
네가 그걸 들었다.
그제야 나는.
네가 악마였음을 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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