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일주일간 지옥의 지배자와 연애 어쩌구
다니엘 x 오로와 일주일 계연
호텔 아더월드는 그 수상쩍은 이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의 인간들에게서 호응을 얻고 있었다. 아마도 고급스러운 시설 때문이겠지. 그것도 아니면 아더월드의 '아더' 부분을 유명하기에 그지없는 '그 왕'의 이름으로 착각했거나. 어쩌면 호텔 팸플릿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지배인 다니엘에 현혹되었는지도 모른다. 호텔을 배경으로 주름 하나 없는 정장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팔짱을 낀 그는, 어쨌거나 꽤 잘생겼으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아더월드, 다른 세상. 즉 지옥이라는 뜻이다. 호텔 아더월드는 애초에 인간들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 물론 그 잘생긴 지배인도 인간이 아니다. 호텔 아더월드에 출입하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어떠한 사유로든 이승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르며 친절 운운하는 민원인 및 수정 사항 한 무더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직장 상사를 상대하느라 지쳐버린 괴물들이다. 이들은 인간이라면 진절머리가 난 상태로 머리를 조금 쉬러 왔기 때문에, 밤이 되면 위장용 모습 따위는 벗어던지고 광란의 파티를 벌인다. 또한 '인간이라면 진절머리가 난'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호텔 방문을 계획한 멍청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호텔의 지배인이자 저승의 군주인 다니엘은, 그런데도, 인간의 방문을 막지 않았다. 이는 순전히 그의 오락거리였다. 어쨌거나 그는 재미로 사는 괴물이니까. 덧붙여 호텔을 방문할 만한 고객이 60억-이제는 70억이라던가-더 늘어난다는 건, 다니엘의 주머니 사정에도 상당한 보탬이 됨은 물론이다.
호텔에서 사람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나면 상황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다니엘은 괴물보다 턱없이 적은 인간 손님들을 잘 케어했다. 그들의 장대한 하룻밤 체험을 도왔고, 죽어 지옥에 떨어질 상황이 오면 몇 번이고 자비를 베풀어 살려주고는 했다. 가끔가다 지지리 운이 없는 몇 명 정도를 제외하면 대개는 멀쩡히 두 발로 호텔을 빠져나갔다.
탈출 과정을 지켜보는 건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호텔에 오는 인간들을 하룻밤의 유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을 살게 하는 것도, 죽게 하는 것도, 모두 저승 군주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달렸으니까. 오랫동안 다니엘을 즐겁게 해주려면 비범해야 했다.
적어도 당장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모노폴리와 할리갈리로 맞짱을 뜨자고 제안할 정도로 비범해야 했다.
그 인간들이 호텔을 나간 지 일주일. 다니엘은 계속해서 그들을 생각했다. 그 셋과 벌였던 모노폴리 판이 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금액의 현금으로 그들의 스릴 넘치는 하룻밤을 배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초췌한 리액션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세 남녀가 호텔로 돌아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들을 다시 찾아갔다.
"이런 미친." 환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또 온 거예요?"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던 춘식이 집게로 고기를 어찌나 꽉 눌렀는지, 매캐한 연기가 맞은편의 로와를 습격했다. 그릴에 해파리를 올리던 로와는 몇 번 잔기침했다.
"모노폴리 하자."
다니엘은 전후 설명 없이 결론만을 들이댔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모노폴리 박스를 꺼내놓았다.
"저희 지금 고기 먹고 있는 거 안 보여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그 개가 케르베로스라면 어떨까."
"그러면 더 건드리면 안 되죠." 로와가 투덜거렸다.
"괴물들은 재미없어. 한 명도 모노폴리 룰을 제대로 이해 못 해. 내가 원한 건 노예들을 걸고 벌이는 도박이 아니었다고."
다니엘이 스릴 넘치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았다. 이제 춘식은 집게를 그릴에 굽고 있었다.
"저희도 재미없을 텐데요. 그냥 평범한 인간들의 모노폴리잖아요. 당신 내기 좋아한다면서요. 뭔가 조건이 걸리는 걸 원한 거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괴물들을 찾아가는 게 더 빠를걸요."
환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다니엘은 나름의 답변을 내놓았다.
"조건이야 걸면 되지. 꼴찌가 1등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거야."
"이를테면?"
"노예가 된다든가."
"에이씨, 관둬요."
환이 투덜댔다. 노예 어쩌고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이에 다니엘은 노예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는 걸 원하지 않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춘식은 그를 향해 드라이버를 집어 던질 준비를 끝마쳤다.
"그럼 이건 어때요?"
로와가 대뜸 말을 꺼냈다.
"꼴찌랑 1등이랑 연애하기. 일주일 동안."
"노예랑 비슷한 거 아니야?"
"차라리 노예가 낫다."
수많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로와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일주일간 연애하게 되었습니다]라니, 뭔가 로판 소설의 제목 같아서 멋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 해라해. 너 나랑 걸려도 군말 없기다." 춘식이 드라이버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난 안 걸려!" 로와가 웃으며 테이블 한구석에 게임을 세팅했다.
대개 이런 벌칙은 제안한 사람이 걸리게 마련이다.
"[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일주일간 지옥의 지배자와 연애하게 되었습니다]..."
"완전 로판 제목이네." 환이 소재 공책을 꺼내 로와의 말을 받아적었다.
"배짱이 두둑한데? 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다니." 공교롭게도 1등에 당첨된 다니엘이 키득거렸다.
"아 뭐, 걸린 거 어쩔 수 없죠."
로와가 고깃집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내 목에 칼만 차면 죄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 로와는 한쪽 무릎을 들어 올렸다.
"저와 연애합시다. 일주일."
"이열~"
춘식과 환의 비아냥 섞인 축하가 이어졌다. 다니엘은 로와를 바라봤다. 이어서 허공을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로와를 바라보며 웃었다.
"무르기 없기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드래곤이 고깃집의 벽을 부수고 들어왔다. 당황한 환은 테이블 밑으로 급하게 숨었다. 춘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로와 역시 테이블 아래로 숨으려 했으나, 그럴 틈이 없었다. 다니엘은 로와를 품에 안고서 드래곤 위에 탑승했다.
"지옥으로 가자."
"뒤지게 로맨틱하네요, 근데 저 치만데요."
드래곤이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고깃집 벽에 난 구멍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환은 그릴 위에서 구워지고 있던 해파리를 꺼내 쓰레기통에 넣었다.
"괜찮을까?" 춘식이 물었다.
"쟨 지옥 가서도 김장할 거야." 환이 답했다.
춘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틀 뒤, 세 사람은 로와의 집에 다시 모였다. 로와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집으로 가게는 해주더라."
"페르세포네." 환이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별 일 없었으니 다행이지. 나 진짜 괴물들한테 잡아먹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
"괴물들은 어때? 나중에 네 시누이가 될지도 모르는데." 춘식이 간장과 참기름에 비벼진 밥과 김치와 계란을 한입에 넣었다.
"끔찍한 가정을 걷어내고 보면 괜찮아. 다들 잘해줘. 어제는 다 같이 모였었어."
"이 김치 뭐야? 독특한 맛 난다."
"지옥에도 배추가 있더라."
춘식은 로와에게 드라이버를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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