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겨울
선님 글 리퀘스트
당신을 동경했다.
당신처럼 되고 싶었다고 감히 말해본다.
아버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어느 시점부터 너무나도 냉정해진 아버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때를 그 기점으로 삼겠노라. 감히 선언해 본다. 나의 어린 날이 품었던 따스함은 갑작스럽게 식어버렸고 끝나지 않을 겨울만이 찾아왔다.
봄을 불러오고 싶었다. 내 방은 너무 추웠다. 이불을 몇 겹씩 덮어도 돌아오지 않는 온기를 원했다. 아버지께서 다시 웃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마냥 지나간 봄을 쫓아 달렸다. 떨어진 꽃잎들을 한 장씩 줍다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꽃잎을 아무리 주워 엮어도 피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깨달음이 살을 에는 것처럼 추워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친절하게 대하시는 당신이 신기했다. 아버지의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들고자 입학한 학교였으니 적응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이 학교에서 너무나 자연스레 살아가고 있었다. 당신은 완벽이었고 흉내와는 비견할 수 없는 진정한 봄이었다. 나는 여전히 봄을 쫓아 달리고 있었다. 당신을 꿈꾸며 겨울을 살았다.
학교는 어려웠다. 대련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와 싸움을 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면 더욱더. 행여 이기기라도 하면 한 번이나 돌아봐 주시지는 않을까. 그런 치열함이 있었다. 치열함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 성취도 있었다. 아버지로 인해 얻은 고통을 부여잡고 운동장에 누워서, 나는 울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란 눈물이었으나 당신은 눈치도 빠른 모양이었다. 아무렴, 완벽인데.
그 이후로 당신은 나에게 조금씩 다가왔다. 나를 놀리는 양 웃음 짓게 해주었고 스쳐 가듯 말하는 고민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런 당신을 동경했다. 가벼운 체하지만 실은 누구보다 속 깊은 당신이 존경스러웠다. 한 걸음 바로 옆에 온기를 두고서 모닥불 쬐듯 쬐었다. 봄 옆에 가만 서 있으면 봄이 옮을 줄 알았나 보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나는 당신을 동경했다. 나는 당신처럼 되고 싶었다. 당신에게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단 말이다. 나는 당신을 믿었다. 그래서 전부 털어놓았다. 내가 내색한 힘겨움도, 내색하지 않은 힘겨움도, 전부 당신에게 내어주었다. 당신이 떠났을 때도 가장 어두운 면을 받아주지 않은 당신이 아닌, 그런 면을 함부로 꺼내놓은 나를 탓을 했다. 나는, 당신을, 동경했다.
봄에 둘러싸여 살았으면서 왜 피우지 못했을까.
그래, 결국은 내 잘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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