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연성교환

글커미션 샘플_드림_2천자

분위기: 독백, 심리묘사, 내면묘사, 동양풍, 시리어스, 로맨스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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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진 글 커미션
A님께 드림
공백 포함 2,022자
2024.08.15

 

혁명이 끝나고 A가 위험해졌다고 하자 나는 기꺼이 그의 증인이 되겠다고 나선다.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혁명을 위해 애쓴 사람이에요, 이중 첩자로서 누구보다도 혁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요. 이게 그를 돕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의 반응이었고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사형 집행인이자 고문관으로서 이중 첩자 생활을 해왔으니 상처 입힌 사람도 많겠지. 그를 용서하면 그로 인해 죽거나 미쳐 버린 사람들은? 나는 참석하지 못한 A의 1심 재판에서 거론된 목록을 본다. 그것은 그가 고통 주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들의 목록으로 그의 죄만큼이나 길다. 눈높이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 내 부모님의 이름. 운명의 장난인지 신께서 예비하신 것인지 그 이름은 목록에서 딱 내 눈높이에 위치한다. 부모를 잃은 짐승이었던 나를 A가 구원했고, 부모님을 고문하고 죽인 사람도 A다. 나의 은인이자 원수.

집까지 어떻게 걸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은 다정했어요.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항상 저에게만은 눈물 나게 다정했어요. 이제 그 이유를 알았네요. 알량한 죄책감이었나요? 절 대하며 무슨 생각을 했나요? 바보같이 당신의 말에 위안을 얻는 저를 보면서?

나는 동시에 기도한다. 내가 모시는 신께 기도한다. 이 한낱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해야 하리까. 평소에는 짓눌릴 정도로 거대한 존재감이 오늘따라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고 가벼워서 나는 무섭다. 버림받은 기분이 든다. 날 떠나셨나? 그럼 부모님은 왜 죽어야 했던 거지? 그러자 나는 신께서 지켜보심을 다시 느낀다. 그러나 신께선 말씀이 없으시다. 당연하다. 이것은 너무나도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마치고 쓰러진 나는 간신히 일어나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가 산발인 여인이 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으나 여인은 어떤 눈물도 흘린 적 없고 지금도 흘리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 눈물이 절규한다.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몸단장을 한다. 충혈이 사라졌을 무렵 거울 앞에는 단정하고 곱게 차려입은 내가 앉아 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격식이다. 나는 그러고 A를 면회하러 간다. 면회자의 성함은 ‘너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다. 그렇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간수는 이 문을 열고 나가면 그가 있을 것이라 한다. 문 너머에는 짧은 복도가 있고 복도의 끝에는 창살, 그 너머에 A가 있다. 간수는 설명을 끝내고, 다만 복도의 어두운 부분에 서 있는다면 그곳이 너무 어두워서 죄수에게는 나의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일 것이라는 당부를 듣는다.

철문이 불쾌한 소음을 내며 열린다.

나는 복도의 어두운 부분에서 나아가지 않는다. 복도는 정말 짧아서 지금도 바로 A의 얼굴을 제법 선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다. 말할 것이 정말 많았는데 그를 본 순간 전부 잊어버린다. 그는 처음 보는 모습이다. 그의 얼굴에는 괴로움이 너무나 아로새겨져 있어 누군가 모진 고문을 하지 않았는지 의심할 정도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없다는 걸 나는 안다. 그는 고문받았고 고문자는 그의 양심이다. 그래서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인다. 내가 말이 없자 A가 먼저 말한다. 미안하다고. 아무 변명도 없이.

A는 양심을 가진 자라 그를 아무도 구할 수가 없다. 양심은 그의 고문자로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빛으로 걸어나가 말한다.

“난 당신을 용서해요.”

빛 아래서 나를 알아본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B……?”

할 말은 전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감옥이 아닌 곳에서. 나는 면회를 마치자마자 곧장 가서 [ ]에 통보한다. 증인이 되겠다고. 누군가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서 대답한다.

“나, 그 사람 용서해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으니 헛되게 만들지 마세요.”

그들은 더 묻지 않고 나를 돌려보낸다.

문득 이 모든 것이 슬프다. 모두의 운명이 결국 이런 식으로 다다른 것이 슬프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스스로 택한 길이라 신도 나도 그를 구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의 곁에 설 것이다. 그가 흘리지 못하는 눈물을 대신 울어줄 것이다. 내가 지금 웅크리고 흐느끼는 것처럼.

그의 곁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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