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샘플_6천자_1차페어 적폐에유
분위기: 독백, 독특한 구성, 내면묘사, 시리어스, 로맨스
리우진 글 커미션
Y님께 드림
2024.08.13.화요일
분량: 6,163자
이 글은 챕터별로 시간이 역순으로 진행됩니다.
현재에서 과거로, 더 먼 과거로.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시작된 때까지.
Chapter 1
쿠데타는 언젠가 벌어질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고 승리의 여신은 독재의 손을 들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바랐다. 모두 알았다. 오직 그들만 몰랐다. 쿠데타는 순리대로 성공했고 순리대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예정이다. 이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 일로 몇몇 사람들이 부모를, 형제를, 친구를, 연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을 것이다. 나는 이 일로 가족을 잃을 한 사람을 내려다본다.
쿠데타군에 의해 끌려온 그는 그전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는지 옷에 닳고 찢어진 자국이 있다. 그러나 천 조각이 엉망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아름다움을 가릴 수는 없다. 그의 눈은 여전히 당당함을 잃지 않고 고고한 모습이다. 이런 일조차도 그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꺾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쨍한 녹빛의 눈동자는 황금과 같은 광채와 함께 우리 모두를 응시한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항상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자존심을 지켜 주려고 온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을 부수러 왔다.
약속대로 나는 독재 세력의 가장 큰 프로파간다이자 가장 날카롭게 벼린 검, 퀴빌라 리즈크를 받아 갈 수 있게 된다. 원래라면 쿠데타가 성공했을 때 더더욱 본보기로 죽였을 사람이었다. 아니, 퀴빌라는 일개의 사람이 아니라 상징이었다. 그의 운명이 흘러갈 곳은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도중에 끼어들었고, 나는 쿠데타에 협조하는 대가로 퀴빌라의 신병을 인도받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쿠데타 세력의 우두머리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용병 에스체트’는 외부인이고 내가 직접 접촉했다는 것은 계획을 들킨 것과 사실상 같았다. 쿠데타는 계획을 들킨 순간부터 망쳤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용병 에스체트를 고용하는 비용은 제법 비쌌다. 퀴빌라 리즈크를 살려 두는 것도 그들이 선뜻 치르기엔 제법 비싼 비용이긴 했다. 하지만 전체 계획을 망치지 않는 대가로서는 전혀 비싸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고 거래는 성립했다.
그것이 양손이 앞으로 묶인 퀴빌라가 양옆의 군인들에게 떠밀려 가며 나에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군인들은 역시 그들 군대의 옷을 입고 완전무장을 한 내 쪽으로 퀴빌라를 떠민다. 동시에 그들은 퀴빌라의 손을 결박한 줄의 끝을 나에게 건네준다. 마치 결혼식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가련한 신부 입장. 문 너머에서 남자와 손을 잡고 입장해서 신부가 다른 남자에게로 건네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네.
퀴빌라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고 군복 틈새로 살갗이 한 뼘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쿠데타의 수장이 나를 방문한다.
“만족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수장이 말한다.
“좋아. 거래는 종료다. 역시 믿음직하군.”
그러고는 떠난다. 나도 마찬가지로 퀴빌라를 데리고 떠난다. 무장세력의 호위를 받으며. 아마 지켜준다기보다는 퀴빌라가 적어도 이 룩소르 안에서는 난리를 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험비 여러 대가 호위하는 가운데, 나는 검게 선팅된 SUV에 퀴빌라를 태운다. 무장을 벗을 시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직은 이 근방이 뒤숭숭하다. 그래서 그럴듯한 장소에 도착한 것은 룩소르를 벗어나고서도 한참 바깥이었다.
드디어 무장을 벗기 직전, 퀴빌라가 말한다.
“에스체트.”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일부러 퀴빌라 앞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무장을 벗지도 않았다. 차를 멈춰 세운 나는 머리를 가리고 있던 갑갑한 것들을 벗어던져 뒷좌석에 던져 놓는다. 그러고 고개를 돌려 퀴빌라를 바라본다. 나는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네 걸음걸이를 내가 모를 것 같았니?”
어리석은 짓을 했다. 우리가 서로를 못 알아보는 게 가당키나 한가. 퀴빌라의 말대로이다. 우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다. 퀴빌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룩소르로 돌려보내 줘.”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퀴빌라가 아직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한다.
“지금 당장.”
“안 돼, 퀴빌라. 가면 죽을 거야…….”
“안 죽는다니까? 내가 그런 일로는 안 죽어~.”
그러면서 퀴빌라는 언제나 그렇듯이 화사하게 웃는다. 볼 때마다 언제나 넋을 잃게 만드는 것. 얼핏 후광이 드리워지는 착각. 어떤 말이든 전부 들어줘야 할 것 같은 매혹.
“그러니 우리 좀 이따 유턴해서 돌아가자.”
그러나 내 대답은 한결같다.
“안 돼. 가면…….”
“왜 안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네~. 그럴 이유라도 있어?”
“너 처형당해.”
단호한 거절 뒤로 차량 안에 침묵이 감돈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다. 퀴빌라는 룩소르로 가고 싶지만 나는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평상시의 농담이나 주고받는 순간과는 다르다. 나는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다시 입을 연 퀴빌라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는다.
“왜 이런 짓을 했어?”
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사랑, 이 조그만 단어 하나가 돌덩이처럼 내 심장에 얹힌다. 퀴빌라는 아직 내 마음을 모른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이 일이 있기 한참 전에 우리는 절교했다. 우리의 일이라고 부르기에는 나의 일방적인 단절 선언이었다. 퀴빌라는 오히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다시 보고 싶다고, 언제든 돌아오라고 했다. 나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퀴빌라는 두 갈래 길 중 자신을 내던지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으면 항상 그 길을 택했다. 그것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나는 그 곁에 머무르며 고통받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절교를 선언했었다.
퀴빌라는 나 때문에 쿠데타가 더 성공했다고 믿는 걸까? 그래서 가족이 전부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병 에스체트가 없었더라도 저 쿠데타는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면 퀴빌라는 처형되었겠지. 난 순전히 운이 좋아 이것을 미리 알아냈고 퀴빌라를 구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처형되는 걸 볼 순 없으니까. 그게 다다.
그게 다이기 때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퀴빌라의 숨이 거칠어진다.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결국 퀴빌라는 내 뺨을 치고 내 고개가 휙 돌아간다. 아프다. 감정이 담뿍 담긴 손찌검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퀴빌라를 보면 고고함이라든가 여유라든가 하는 건 이제 없다. 그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하다. 지금 그는 빨리 룩소르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가족들이 처형되는 것을 빨리 막고 가족들이 그에게 원해왔던 것을 조금이라도 복원하려 애쓰고 싶을 것이다.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퀴빌라를 보내줘도 마찬가지다.
그저 개죽음.
퀴빌라에게서 이런 눈빛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퀴빌라는 너무 분해서 몸을 떨고 있다. 배신감일까? 눈에는 눈물이 맺히려는 것을 애써 참는 것 같다.
뺨을 맞은 부분이 화끈거리면서 간질간질해진다. 드디어 입을 여는 나의 목소리는 둔탁하고 건조하다.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널 사랑해서.”
고백에도 점수를 매길 수 있다면 나는 최악의 점수를 받을 것이다.
Chapter 2
나는 룩소르로 가는 장거리 비행 내내 잠들지 못한다. 어떻게든 빨리 가야 한다는 마음만이 나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비행기가 더 빨리 가주진 않는다. 너무 긴장되어서 물도 음식도 입에 댈 수 없었다. 그러자 승무원들이 뭐라도 마시라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고, 이는 내 신경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비행기는 기류가 불안정한 지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안 가 난기류로 비행기는 마구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날씨마저도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드디어 룩소르에 내렸을 때는, 내 눈은 약간 충혈되어 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서 밀수꾼으로 오해받고 검문까지 걸렸다. 바야흐로 최악의 날. 그러나 지금부터 하려는 일이 성공하지 않으면 더 최악의 날이 될 것이다.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 어떤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식사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는 용병 에스체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의향이 충분하다. 절반쯤 먹어갈 때 나는 말한다.
“무엇보다 곧 룩소르를 뒤집어엎을 것 아닙니까?”
상대방의 얼굴이 굳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상대는 표정 관리를 하려다가 그냥 포기한다. 상대의 불편한 제스쳐 이후 곧이어 무장한 자들이 나를 향해 사방에서 총구를 겨눈다.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저 원하는 것을 말할 뿐이다.
다른 것은 전부 필요 없다. 원하는 것은 오직 퀴빌라 리즈크 뿐. 살아 있는.
“정말 그걸로 되겠소?”
상대가 가볍게 묻지만 의심하고 있다. 퀴빌라의 가치는 그에게 있어 애매하다. 그는 내가 더 큰 대가를 부를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거래는 본디 한 물건이 쌍방에게 다른 가치를 가져서 성립된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딱 그 정도만을 바랍니다.”
‘그 정도’는 나에게 있어 세상 전부니까.
협상은 의외로 간단하게 끝난다. 쿠데타의 수장이란 자리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는 좋은 거래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협상이 끝나자, 입맛이 뚝 떨어진다. 나는 더 이상의 식사를 사양하고 룩소르를 쏘다닌다. 이곳이 퀴빌라의 터전.
퀴빌라, 퀴빌라…….
‘보고 싶었어, 아주 많이…….’
먼저 절교한 주제에 아주 꼴사납다. 그러나 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이후부터 나는 계속 퀴빌라를 그리워했다. 우리의 관계 추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있었는데도. 퀴빌라는 그 사실에 아무 관심도 없고 나는 그저 괴롭기만 해서 덜 괴롭기 위해 내린 결단이었는데도. 그러나 퀴빌라는 그 결단에 대고 이렇게 말했었다.
“널 다시 볼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워. 그래도 어딜 가든 행복해야 해, 알았지? 돌아오고 싶으면 이런저런 생각 말고 언제든지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기다린다고. 떨어져 나가서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된 나를 기다린다고. 그 말이 나는 아찔하다. 퀴빌라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나아간다. 내가 보는 건 항상 네 등이다. 나를 등지고 자신을 내던지려고 나아가는 저 등. 너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그리고 나를 덩그러니 남긴 채. 내 결단은 한순간에 우스운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그 기다린다는 말이 너무 좋아서,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다. 멍청이처럼.
아니, 난 실제로도 멍청이다.
퀴빌라의 터전인 룩소르는 오늘도 햇살이 쨍하다. 가만히 서 있다가는 타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태양이다. 살갗이 따갑게 달아오르면 너의 생각이 난다. 너의 광휘는 가끔 감당하기 힘들어서 나를 태워 없애고 만다.
거사 일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하진 않다. 준비할 것은 오직 나 자신뿐. 그러나 그것이 가장 준비하기 힘들었다. 나는 준비해야 했다. 각오해야 했다.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퀴빌라에게 미움받는 것을.
그래서 나는 지각한다. 지각한 만큼 만회했지만 끝의 끝까지 결정을 미룬 내가 우습다. 퀴빌라가 죽을 수도 있다는데 고작 미움받는 게 무서워 망설였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나는 완전히 무장한 채 그들과 섞여 들어가 쿠데타를 돕는다. 완전히 무장한 데는 여러 가지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 쿠데타군에게 아군으로 인식되기 쉽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전투를 줄이고, 내가 여기서 얼쩡거린다는 것을 굳이 누군가에게 목격당하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가린 이유는, 글쎄, 퀴빌라에게 끝의 끝까지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심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미움받는 것을 끝의 끝까지 유예하고 싶어서.
‘얼간이가 따로 없군.’
그러나 얼간이에겐 우선 할 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수행한다. 조그마한 전쟁. 전리품은 퀴빌라. 참전하시겠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Chapter 3
오랜만에 만난 퀴빌라는 태양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자,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영웅,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은 불타 버릴지라도 계속하는. 그것은 독일의 태양이 아니라 룩소르의 태양과도 같다.
그는 여전히 나의 태양이다.
……여전히.
나는 그가 너무 눈부셔서 타 죽을 것만 같다. 왜? 무엇에?
그건 아마도 슬픔 때문일 거야.
그래.
Chapter 4
이것은 한 양파의 이야기다. 그 양파는 착했다. 그래서 태양은 양파에게 빛을 허락한다. 너무나 포근한 태양이라 이대로라면 나는 쑥쑥 자랄 것이고 훌륭한 양파가 될 것이다. 그러면 태양이 나를 칭찬하지 않을까, 기특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부나방이 되고 싶어. 저 아름답고도 잔인한 태양의 광휘에, 아득히 먼 태양을 향해 영원히 다가가다 시꺼멓게 타 죽고 싶어.
하지만 착한 양파는 착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 그는 온순하게 태양의 말을 잘 듣는다. 이 평화로운 나날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이고 태양도 영원을 약속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웃으면서 함께하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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