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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너에게, 묻겠다

S님 연성교환 | 글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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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리우진

공백 포함 11,362자

 

 

 

미하일로 니코이치가 전장에서도 유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의 말을 경청했다. 지휘관 자리에 선 내가 상대해야 했던 그 어떤 남자들과도 다른 점이었다. 사석에서도 그는 나에게 친절했고 말하던 도중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 적도 없었다.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다.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서도, 그와 그의 부대원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체계적으로 훈련된 강력한 병력이라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나는 민병대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그 훈련방식에서 배울 점도 많다는 걸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훈련을 자주 지켜보았다. 외세의 도움은 한순간이고, 이 땅을 결국 살아가고 지켜내야 할 사람들은 우리, 쿠르드의 손이어야 했으니까. 이득은 가져가고 좋은 건 흡수해야 했다. 곧 앞둔 IS와의 싸움에서 이들은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를 싫어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혹시 할 말이 있는가?”

그러나 미하일로가 나의 시선을 눈치채고 물어왔을 때, 나는 욱 하는 감정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가라앉히려고 애써야 했다. 이성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냥 그가 싫었다. 그가 친절한 것도 싫고, 그의 여유도 싫었고, 그가 청포도 알 같은 밝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백인이자 ‘프랑스인’이라는 것까지 전부 싫었다. 그의 모든 것에서 본능적인 거북함이 느껴졌다. 나는 애썼지만 결국 입 밖에 나온 말은 상당히 불퉁한 어조였다.

“여기서 네가 할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나 보군. 우리 전력을 보고 나서 판단하기로 했던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다. 사실, 이 대화의 흐름 자체가 이들이 파병되기 이전에 했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가고 있었다. 나는 이 작전에 ‘외부의 도움’을 끌어들이기로 하면서,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올지에 대해 간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받은 사진은 미하일로 니코이치를 찍어온 게 확실했지만,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그는 사진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수송차량에서 내려 처음 부대에 발을 디딘 그는 나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었다. 국제의용군의 모자가 드리우는 그늘 아래로 진한 연두색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저분하게 내 몸과 얼굴을 쓱 훑는 시선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 나의 눈만을 강렬하게 응시하는 시선이었다. 차분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 눈빛만은 이글이글 강렬했다. 그런 시선을 낯선 이에게 받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원래 나에겐 저것과는 다른 시선들이 더 익숙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보듯 지나치는 시선, 전신을 재듯 훑는 모욕적인 시선, 불신과 의심의 시선, 가소롭게 보는 시선, 그리고 가끔은, 두려워하는 시선. 그러나 그의 시선은 어느 쪽으로도 분류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그는 프랑스인이기까지 했다. 겉보기에는 국제의용군의 모습을 하고 왔지만, 프랑스에서 슬쩍 보내준 인력이라는 뜻이다. 내가 그들 부대의 운용 계획을 느슨하게 짜뒀던 것은 그들이 어차피 멋대로 하려 들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도우러’ 왔다. 그것도 많이 훈련된 병력을 보내줬다. 그러니 우리는 이 덤을 ‘고맙게’ 생각하며 그들의 뜻을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자는 그러지 않았다. 내 뜻을 물었고 나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유도 합리적이었다.

“우리는 외부인이라네. 현지의 전투를 가장 잘 아는 건 그동안 싸워 온 전사들 쪽이지. 그들의 전투를 보완해 주는 게 훨씬 효율적인 방향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그는 편견도 없고 으스대지도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프랑스인을 끌어들여서 생길 수 있는 사태 중에서 최고로 좋은 방향이었다. 그는 제법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고, 그 사실을 인식하자마자 토할 것 같아졌다. 왜 이런 불쾌감이 생길까? 그와 같이 있고 그를 알아갈 때마다 점점 심해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라. 그래봤자 돌변하면 갑자기 철군할 수도 있다. 큰 나라들이 하는 짓이란 게 늘 그렇지…….’

작전 이야기나 계속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와 단둘이 남겨져 있는 이 상황이 덜 어색할 것이고, 이야기가 더 빨리 끝날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 손가락으로 가상의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는 너흴 구역 점령에 동참시킬 생각이다. ‘도시’의 다리를 끊는 것은 다른 부대에서 해줄 것이고…….”

작전지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아마 작전을 진행하는 그날까지도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가전이 벌어질 예정이었고 그러면 최대한 정보는 유출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나는 ‘도시’ 구역의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선을 죽 그으며 말했다.

“우리는 동쪽에서부터 도시를 해방시키며 진입한다. 신중하게 갈 거다. 지형별로 구역을 나눠서 한 구역을 점령하고 완전히 적을 소탕한 뒤에야 다음 구역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할 예정이지.”

역시 내 말을 경청하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Bite, Clear, and Hold 전략이라. 시가전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방식이니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군.”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다른 나라에서 연구해 이름까지 붙은 전술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보통 이 전술에서는 ‘보조 전력’이 뒤에 남아 소탕된 점령지를 관리한다네. 따라서 그 정도가 추가 투입 부대에다 던져주기 좋은 임무지. 그렇지만 자네는 우리를 좀 더 공격적으로 쓸 모양인가 보군?”

그의 밝은 눈동자가 빛났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부드러움이나 유약함의 미소가 아니라, 어떤 적극성과 공격성이 진하게 깔린 미소였다. 어쩐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기분 나쁘다. 싫어.’

왜 계속 모순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건가. 그가 객관적으로 좋은 행동을 할수록 나는 더더욱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이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불쾌함에 가장 가까웠다.

나는 마찬가지로 웃었다. 그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지은 미소였던 것 같고,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상황을 부드럽게 할 의도는 아니었다. 그 뒤에 흘러나온 내 말도 마찬가지였다.

“더 방어적인 것을 원하나?”

순간적으로 그가 당황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웃어서? 그럴 리가. 아니면 대놓고 도발해서? 그게 맞겠지. 그가 큼큼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네. 우리는 혹독한 훈련을 받았지. 마침내 보여줄 때가 되었고. 난 가능하면 자네들이 좋은 결과를 보길 바라네. 그리고 도시 탈환은 빠를수록 좋지.”

그래, 이 불쾌감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겠다. 미하일로는, 그리고 그와 같이 온 프랑스인들에게는 이게 전부 남 일이었다. 나에게 있어 여기는 전부 현실이었는데도. 게다가 하필 프랑스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우리 쿠르드에게 해묵은 앙금이 있었다. 두 배로 재수 없었다. 그가 적극적이었어도, 방관적이었어도 이 감정은 그대로일 것이다.

“열심이군. 남의 나라 일에도.”

그가 다시 미소 지었다. 방금은 명백히 시비조였음에도 그는 화내지 않았다. 그가 화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동물적인 예감이었고 그게 옳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벌써 그를 신뢰하게 된 것이다. 하,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왜 내가 이러고 있는 거지? 왜 그가 내 방어선 근처까지 오도록 해 버린 거지? 하지만 내 본능은 그를 완전히 믿어도 된다고, 그렇게 속삭였다.

그에 대한 미하일로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에겐 남 일이 아니라네.”

이윽고 그가 설명했다. 자신 또한 내전 중인 나라에서 자라나 난민으로서 프랑스에 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고. 내전에서 직접 싸우고 있는 내가 정말 대단하고, 그러니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그러니까 그는 아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거 고마운 일이군.”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었고, 나는 미하일로를 돌려보냈다. 대화를 더 이어나갔다간 내가 평정을 잃을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충분히 침착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초보자처럼 굴고 있지? 사적인 감정이 요동친다면 그걸 공적인 일에 개입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나를 초보라고 볼 수는 있었다. 초보 지휘관. 모두가 내 말을 듣게 하고 시건방지게 대드는 놈들을 다 밟아서 정신 차리게 하는 데만도 한 달의 내부 정비와 두 번의 전투가 소요되었다. 이전에 ‘비공식적’으로 게릴라전을 지휘할 때는 찍소리도 안 하던 것들이 내가 정식으로 권위를 지니고 그들 위에 서자 오히려 덤벼들었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공적으로 권위를 세우는 법을 겨우 익혔다. 그런데 정작 다 세운 권위를 내가 그 앞에서 다 망치고 있었다. 도우러 온 부대장에게 내가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고 있었다.

‘정신 차려.’

게다가 사적일 거면, 적어도 들키지나 말든가. 아무래도 그에게 나는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내보낼 때 그가 당황하고, 무언가 초조해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그를 싫어하는 걸 그도 이제 확실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째서 그는 지금까지 나와 만난 사람 중 가장 나를 잘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대부분은 내가 대개 인상을 쓰고 얼굴을 굳힌 채 이야기하니 많은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도.

자기 딴엔 잘해보자고 꺼낸 이야기겠지. 하지만 현재도 쿠르드를 위해 싸우는 전사로서, 자신이 겪는 내전에서 도망친 자에 대한 경멸을 완전히 감추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건 내 사적인 문제였고, 공적인 관계에 개입시킬 감정이 아니었으며, 나로서는 그와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왜 이러고 있지.’

미하일로 니코이치. 프랑스 대테러부대의 대원이자 현재 파병부대의 지휘관. 거기서는 ‘캄파뇰’이라는 코드네임을 쓰는 것 같았다. 나는 프랑스어를 몰라서 ‘캄파뇰’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벽처럼 단단한 느낌이 드니까 대충 그런 별명이 붙지 않았을까 싶다. 캄파뇰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그의 실제 이름보다 더 마음에 들어서 불러 보고 싶었지만, 그를 ‘캄파뇰’이라고 불러 보는 건 너무 사적인 태도처럼 느껴졌다. 부르려면 나도 코드네임이 있어야 할 텐데, 군대에서는 저격수들이나 특수부대원들에게만 그런 걸 붙여주는 법이니까.

‘빨리 눈앞에서 치우는 게 낫겠군.’

어차피 그가 날 심란하게 할 것이고 그걸 내가 막을 수 없다면, 작전이나 잘 성공시켜서 그들을 빨리 철군시키는 게 나았다. 그때까진 싫더라도 잘 협력해 보는 수밖에.

이 결심을 한 뒤로는 울렁거림이 조금 나아져서 그를 제법 침착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를 쫓아냈던 날 이후로 그도 나를 사무적으로 대하려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려고 애쓰고는 있었다. 같이 훈련할수록 내가 캄파뇰에게 사적인 것만큼이나 그도 나에게 마찬가지라는 것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 대한 질색과 경멸을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캄파뇰도 나에 대한 ‘무언가’를 가끔 숨기지 못했다. 그 포도알 같은 눈동자가 가끔 나를 강렬하게 의식하면 나는 그걸 모르는 척했고, 캄파뇰도 내가 정말로 돌아볼 타이밍에는 눈길을 돌렸다. 나는 캄파뇰의 ‘무언가’가 무엇인지 몰랐다.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는 게 옳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게 무엇인지 진짜로 알아버린다면, 난 토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모른 척했고, 작전 전날에는 필수 사항만 점검한 뒤 우리는 계속해 왔던 것처럼 서로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것을 먼저 깬 건 캄파뇰이었다. 한적한 곳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 뒤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들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캄파뇰?”

그 말에 다가오던 캄파뇰과 내가 동시에 놀랐다. 잠깐의 침묵 뒤 캄파뇰이 내 옆에 와서 같이 앉았다.

“자네가 나를 그렇게 부를 줄은 몰랐다네.”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이 망할 위기를 헤쳐 나갈지. 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네 서류에 그게 적혀있었다.”

나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쏟아질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야간 작전 시 별빛보다 밝은 것은 다 치명적인 결과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캄파뇰에게 물었다.

“상태는 어떻나?”

“긴장된다네.”

“제법 화려한 경력을 지닌 것 같던데.”

“난 평화 속의 전장을 누비는 사람이라네. 전사보다는 요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 자네는 진짜 전사이고.”

“나는…….”

새삼스럽게 그와 나의 차이를 느꼈지만, 이번에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그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별 아래서 대화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진짜 전사’라는 말에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기 때문인가. 처음으로 그 앞에서 나는 제법 고요하게 있었다.

어쩌면 곧 다가올 거대한 죽음 앞에서 생각이 정리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 나는 전사다. 그들에게 지옥을 가져다줄 ‘여자’.”

IS와의 전투에서 내가 지휘관이 된 건 결코 그 통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믿음 안에선 여자에게 살해당한 남자는 천국으로 갈 수 없다. 그래서 쿠르드는 여성 저격수들로 그들과 맞섰고, 이번에는 여성 지휘관도 내세워 그들을 전면적으로 위협할 준비를 마쳤다.

많은 것이 걸려 있었고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왜 캄파뇰이 이제는 편안한지. 그는 어찌 되었든 그의 전장을 누빈 자였고, 나를 경청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의 압박감을 비웃지 않을 사람이었으니까.

“자넨 잘 해낼 걸세.”

“당연하지.”

그 대답을 하면서 그동안 하늘을 보고 있던 고개를 무심코 내렸고, 나는 캄파뇰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심장이 불규칙하고 기분 나쁘게 뛰었다. 기분 나쁜 감각이 스멀스멀 다시 밀려오려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별 아래에서 그 불쾌감은 오다 말고 물러가 버리고 다른 것들이 들어찼다. 다른 것들, 다른 것들…….

나는 다시 외면했다. 어쩐지 이번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캄파뇰에게 호의적인 생각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힐난 받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에게? 나? 사명? 조국? 쿠르드? 그 죄책감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리하여 도망친 곳은 작은 한 구석.

“‘캄파뇰’은 무슨 뜻인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프랑스어를 모른다.”

“한 번 짐작해 보게.”

“내가 물어봤지 않는가.”

그 근엄한 말에 캄파뇰은 킥킥 웃었다. 그러고는 대답했다.

“밭쥐. 이만한.”

캄파뇰은 손을 들어 그 쥐가 얼마나 조그만 사이즈인지 보여주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그 손짓을 보자 캄파뇰은 소리내어 웃더니 일어섰다.

“밭쥐는 이만 가보겠네. 너무 늦게 잠들진 말게나.”

그러고는 거대한 밭쥐는 자기 막사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곧 막사로 들어갔으나,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작전날 당일은 전부 순조로웠다. 군기가 바짝 든 내 부대는 내 수족처럼 자유롭게 움직였고, 전장은 역동적이었지만 내가 벌인 판 안에서 수습 가능했다. 도시를 해방시키는 작전이었으므로 점령된 도시의 민간인이 받는 피해는 최소화해야 했다. 적군이 민간인을 인질로 잡는 것도 막아야 했다. 그러려면 순식간에 휘몰아 닥쳐 혼을 쏙 빼놓는 게 좋았다.

사전에 논의한 대로 도시의 구역 하나하나를 완벽히 점령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므로 나는 구역 한쪽, 캄파뇰은 구역 반대쪽에서부터 점령해 나가 가운데에서 만나는 게 통상적인 흐름이었다. 캄파뇰의 부대는 우리보다 더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며, 실제로는 그 정도 덤 같은 전력이 아니라 훌륭히 작전을 해내고 있었다. 느린 것은 뭐, 그들이 전사로서는 초보이고 신중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면 어쩔 수가 없었다.

‘빼앗는 전술이 아니라 지키는 전술을 자꾸 쓰고 있군…….’

그건 그들의 전장에서는 유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굴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을 프랑스는 그런 곳이니까. 하지만 여기는 평화 속의 전장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과감해야 했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인간 대 인간의 일이므로, 결국 적이 두려워하는 건 병력뿐만이 아니라 광기이기도 했다. 휴식 시간에 만난다면 그 점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바로 앞의 흙이 총알 때문에 튀었다. 나는 잽싸게 몸을 굴려 엄폐했다. 뒤의 부대원이 외쳤다.

“저격수! 남남서쪽 방향!”

하필 이런 때에! 조금만 더 하면 이쪽 구역도 금방 점령할 수 있었는데. 캄파뇰의 속도를 고려하면 우리 쪽의 속도가 이 정도로는 빨라야, 해 지기 전에 이번 구역 점령을 완료할 수 있었다.

생각을 마치자, 본능이 움직였다. 방어적인 전술은 적어도 지금의 우리와는 맞지 않았다. 나는 저격수의 사격 반경으로 굴렀고 총알이 귀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저격수가 지키고 있는 거면 분명 뭔가 있다!

“엄폐하며 따라와!”

그러고 결국 찾아내고 말았다, 도망가는 적의 간부 하나를. 적의 간부라는 직감이 바로 들었고 뒤늦게 현상수배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저격수가 지키려고 했던 자였다. 나는 확신이 들자마자 바로 총을 들어 그를 쐈다.

그때 간부는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고 도망가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현상수배로 파악된 간부들은 전부 얼굴을 달달 외웠으므로 그는 나에게서 도망갈 수 없었다. 발소리를 들은 그는 나를, 나의 긴 머리를 보고 경악과 두려움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탕. 그는 여자 총알을 맞고 지옥으로 갔다.

부대원이 달려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놈이 여기 있었다니. 대장님, 저희 벌써 한 건 했습니다!”

“점령하기 전까진 아직 아니다. 움직여!”

우리에겐 아직 성가신 저격수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캄파뇰의 부대가 그 저격수를 해치우고 우리와 합류함으로써 이번 위기도 무사히 넘겼다. 잠깐 조우한 캄파뇰이 말했다.

“서쪽 구역의 저항이 세! 합동 작전이 필요하다!”

“캄파뇰! 동쪽 방면으로 이동해. 서쪽은 지형이 복잡해서 위험…….”

내 말을 듣고 있던 캄파뇰의 눈, 발라클라바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청포도 빛 눈이 갑자기 확 커졌다. 캄파뇰에게 밀쳐지고 나서야 나는 삑삑 소리를 들었다. 그 삑삑 소리에 대한 엄청나게 소름 끼치는 예감이 흐르는 동안, 나는 거칠게 밀려났고 캄파뇰이 내 위로 쓰러졌다.

펑, 소리와 함께 무언가 폭발했고 바로 옆에 있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이명이 들려서 어지러워 생각이 잘 굴러가지 않았다. 이성적인 생각은 작동을 멈췄다. 내 몸은 본능적으로 끔찍하게 무거운 캄파뇰의 몸을 떨쳐내고 잔해 뒤에 몸을 숨겼다. 총을 손에 꼭 쥔 채였다. 이명이 끝나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엄폐물 너머로 다섯 명의 적군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폭탄을 캄파뇰이 먼저 간파하고 나를 구한 것이다. 지금 오는 놈들은 폭탄을 원격으로 터뜨린 놈들일 것이다. 곧 이쪽으로 올 것이고 나와 캄파뇰을 발견할 것이다. 후자는 어찌 될지 잘 모르겠다.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혼자서 5명의 적군을 상대해야 한다. 증원이 올 때까지. 아니? 증원이 오기도 전에 다섯 명은 이쪽으로 들이닥쳐 날 죽일 것이다. 아니면 죽이지 않고 잡아갈지도 몰랐다. 쿠르드 여군에게 그들이 가하는 보복은 끔찍하고 잔인하다. 아니, 그리고 아직도 이 빌어먹을 이명이…….

오랜만에 패닉이 왔다.

그리고 패닉은 본능만을 남긴다.

나는 총을 재장전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다섯 명의 적군을 겨냥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가 아니라, 가장 멀리 있는 적군부터 쏘기 시작했다. 탕! 총소리가 날 때마다 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총소리는 계속 메아리쳐서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탕! 가장 멀리 있던 적군을 쏜 직후 두 번째로 멀리 있던 적군을 쐈다. 탕! 그들은 아직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세 번째로 멀리 있던 적군을 쐈다. 탕! 당연한 일이다. 뒷사람부터 쏘게 되면, 나머지 앞사람들은 쓰러진 사람을 볼 수 없다. 앞사람이 쓰러지는 것만큼 확실한 방향 지표가 없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마지막 적은 너무 가까이서 소리가 들렸던 탓인지 무언가 알아차리고 엄폐물을 돌아서 왔다. 철컥. 이런. 탄환이 없었다. 적은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쏘려다 멈췄다. 잔인한 미소와 끔찍한 분노가 그의 얼굴에 어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하게 차분했다. 앞으로 다가올 내 운명에 대해서도.

왜냐면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캄파뇰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갈겼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헉…….”

“캄파뇰! 괜찮나?”

“자네야말로…….”

“괜찮냐고 물었다, 캄파뇰.”

“작전 속행 가능, 돌아가서 점검 필요.”

그 직후 후방에 배치되었던 부대원들이 여기로 왔다. 나는 캄파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들어가. 남은 구역은 혼자 가능하다. 상태를 점검해라.”

“할 수 있…….”

“들어가.”

고집을 부릴 기세였던 캄파뇰은 내 표정을 보고는 순순히 돌아갔다. 한 고집 하게 생겼던데, 내가 대체 무슨 얼굴을 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울 것 같았다.

캄파뇰에게 공언한 대로 나머지 부분을 밀고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 도시의 세 구역을 점령했다. 엄청난 성과였다. 하지만 나는 성과를 자축하기 전에 의무병에게 달려갔다. 캄파뇰은 이런저런 처치를 받고, 지금은 안정제를 맞은 채 잠에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들어서자 캄파뇰은 졸린 듯 눈을 떴다.

나는 다시 울 것 같았지만 그걸 들키고 싶진 않았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사무적이었지만, 약간은 부드러웠다.

“구해줘서 고맙다.”

“폭발물 공격은 익숙해서 말이지……. 바로 알 수 있었다네. 가만둘 수는…… 없어서.”

캄파뇰은 약과 잠에 취해 아주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지금이야 잠에 취해 있는 게 다지만, 그때 까딱 잘못했었다가는 시체로 누워 있을 수도 있었다.

난 그걸 보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런 꼴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우수한 전투원의 손실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미하일로 니코이치를 잃고 싶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었다.”

“우린 언제나…… 그렇다네.”

“날 두 번이나 구해줘서 고맙다.”

“지킬 수 있었다니…… 다행이구먼…….”

내가 전사라면 그의 본성은 다르다. 그것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가 미웠다. 하지만 사실 나는 미웠던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그를 부러워한 것이었을지도.

그를 잃기 싫은 나는, 언제나 거북했고 울렁거렸던 나는, 아마도 사실…….

캄파뇰이 내 생각의 흐름을 끊었다.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네. Tu es éblouissante...

졸려 하며 횡설수설하듯 말하던 그는, 갑자기 뜻 모를 말을 하면서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그가 숨기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그는 숨기지 않았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캄파뇰. 뭐라고 말한 거지? 캄파뇰?”

그는 깊이 잠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뭐라고 말한 거지?’

아니, 사실은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마주친 그 연둣빛의 눈, 그동안 감추었던 애정을 그득그득 담아 나를 바라보는 바로 그 눈. 그것은 무언가의 확고한 대답. 본능이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본능이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데도, 확신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확신하려면 캄파뇰에게 그게 무슨 말인지 직접 물어야 했다. 어쨌든 모르는 채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잘 자라, 캄파뇰.”

캄파뇰은 하루 정도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살아 돌아와서, 반드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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