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의 너_ 6

1박 2일

 

 "세수했어?"

 "어. 좀, 덥지 않아?"

 

 다연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뭔가 숨기는 것처럼. 왜인지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다연은 본인이 아프면 숨기기에 바빴다. 최근 무리하더니 오늘도 아픈 데 숨기는 게 아닐까 추측을 했다.

 

 수업을 시작했는데도 다연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잡다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열이 나는 건 아닌가 생각만 했을 뿐인데, 어디에 홀린 듯이 손이 다연의 이마로 갔다.

 

 '온도가 좀, 높은 것 같은데.'

 

 온도를 잰 후 그제야 확인한 다연의 표정은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 미안. 열나는 것 같길래."

 "어?"

 

 내 말을 들은 다연은 잠깐 멈칫 하고는 아니라며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열도 좀 나는 듯하고 수업에 집중도 못 할 정도면 이건 분명히 아픈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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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연아. 너 얼굴 계속 빨간데 진짜 어디 아픈 거지? 약 사주게 먹어."

 

 내 마지막 말과 함께 다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서하야. 나 진짜 안 아파."

 

 다연의 말투가 평소와 다르게 딱딱하다. 아픈 게 아니면 뭐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연의 모습에 약간은 놀랐다.

 

 "아니, 그게. 미안. 먼저 가야겠다."

 

 짧은 한숨을 쉬며 말하는 다연의 모습은 내가 다연의 심기를 건드려 버린 건지 생각하게 했다.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서 달아나는 다연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대체 왜? 뭐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다연을 저렇게 만들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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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연이 그날 왜 그랬는지는 풀리지 않은 채로 바다를 가게 되었다. 다연은 다음날부터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해도 약간은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그 모습의 이유가 풀리지 않았다.

 

 "숙소 체크인 먼저 하고 가자."

 "응. 짐 풀고 움직이는 게 편할 것 같아."

 

 이번 여행의 계획은 다연이 세운다고 하여 나는 다연의 계획에 따르기로 했다. 다연은 나에게 계획을 알려주지도 않고 그저 다연을 따라다니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며 믿으라고 했다.

 

 다연이 잡은 숙소는 바다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이었다. 심지어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는 발코니도 있었다.

 

 "숙소 잘 잡았다."

 "그렇지? 내가 또 한다면 하는 여자잖아."

 

 다연의 장난 가득 섞인 말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번 계획은 향수 공방이야."

 "향수 공방?"

 "응. 서로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 향수 만들어주기는 하자."

 

 내 취미 중에 향수 만들기가 있었기에 가끔 다연이 와 함께 향수 공방에 가기도 했다. 항상 내가 가자고 했는데, 다연인가 먼저 제안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향수 공방의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다. 향수 공방에 오는 것은 오랜만이다. 다연이 먼저 제안하지 않았다면 더 오랜 시간 동안 향수 공방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엔 서로에게 어울릴만한 향수 만들어주는 거 어때?"

 

 오래전부터 향수 공방에 올 때마다 과일 향 비슷하게 만들기 등 어떤 주제를 잡고 만드는 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이번 주제는 다연이 먼저 만들어냈다.

 

 "좋아. 전부터 생각했던 거 만들어야겠다."

 "뭐야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다연은 약간 기쁜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대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기대하는데,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항상 생각나는 건 있으니까."

 

 다연의 밝고 붕 뜬 성격과는 달리 묵직한 향기도 잘 어우러져서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화이트 머스크 비슷한 향을 만들어 볼까.

 

 향수를 만드는 일 말고도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다연의 얼굴을 보는 일도 굉장히 재미있다. 좋아하는 향을 맡았을 땐 눈이 동그래져서는 곧바로 메모한다. 반대로 싫은 향을 맡았을 땐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빠르게 제자리로 갖다 둔다. 그런 다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동안 집중하여 향수를 다 만든 후 서로에게 그 향수를 주었다. 다연이 준 향수를 바로 열어 맡아보니 신기하게도 내가 만든 향수와 향이 비슷했다.

 

 "뭐야? 우리 만든게 비슷한데?"

 "그러게. 신기하다."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둘 다 신기하다며 향을 계속 맡았다. 서로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던 걸까.

 

 다연의 계획은 평소에 우리끼리만 가던 장소들이었다. 향수 공방이나 우리만 알던 맛집이라던가 밥을 먹고 난 후 바다에서 밤 산책을 한다거나. 오래전부터 이 근처 바다에 꾸준히 오면서 생긴 좋아하는 장소들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여유로우면서도 꽉 찬 계획을 실행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포근한 침대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준비해 온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힘들진 않았어?"

 "응. 너 계획 잘 짠다."

 "이거 며칠 동안 머리 뜯으면서 짠 거야."

 

 말과는 달리 진지해 보이는 다연의 표정에 빵 터졌다.

 

 "왜 웃어. 진심인데."

 

 다연도 본인이 한 말이 웃기는지 웃음을 참다 포기하고 같이 웃었다. 말없이 웃다가 어느샌가 정적이 흘렀다. 깊은 정적 사이에서 다년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서하야. 나 너 너무 좋아하나 봐."

 

 뭐? 정적을 깨고 나온 다연의 말은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다연을 쳐다보니 다연은 눈을 감고 있었다.

 

 "다연아? 자?"

 

 잠깐 다연은 조용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안 잔다는 것을 표현했다.

 

 "저번 주 주말에, 수행평가 할 때 송규현이랑 뭐 했어?"

 

 나는 다연의 저 한마디 때문에 뇌가 터질 것 같은데, 갑자기 송규현은 왜 부르는 건지. 다연의 말을 해석하기를 포기하고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진짜 딱 수행평가만 했어."

 "시연? 걔랑은?"

 

 하시연이랑은 뭘 한 게 없는데. 아, 옷 빌려줬던 일.

 

 "전에 얘기했던 게 끝이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어. 아무리 여름이라도 옷 젖으면 감기 걸리니까."

 "네 겉옷 준거면 너는?"

 "여름이니까, 괜찮았어."

 "근데 송규현이 너한테 옷을 왜 줘."

 

 약간 날카로운 다연의 목소리에 다년을 쳐다보니 언제 눈을 뜬 건지 다연은 이미 나를 보고 있었다. 다연은 다시 자세를 고쳐 천장을 보더니 심호흡 같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러는 것도 이상한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우리가 서로에게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자꾸 너한테 친한 사람이 생기니까 질투 나."

 

 아. 친구로서의 애정과 질투. 다연의 말을 듣고 곧장 뛰어나갈 것 같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실망 아닌 실망이 맴돌았다.

 

 "그리고 너 원래 안 그랬는데 요즘 따라 오만 애들한테 다 끼 부리고 다니…. 아니야."

 

 끼?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끼를 부리고 다닌다니. 다연을 째려보니 다연은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부여잡고 나와 눈을 안 마주치기 위해 노력했다.

 

 "나 왜 이러지. 잠 와서 그런가, 별 소릴 다 한다."

 

 본인도 황당한지 머쓱하다는 듯이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내가 뭘 해서 다연의 질투심을 유발한 건지 대체 뭐가 끼를 부렸다는 건지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니, 다연이 잠이 온다는 건 정말이었나 보다. 어느새 다연의 숨소리가 조용해졌다.

 

 "다연아, 나도 너 아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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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야 일어나야지."

 

 다연의 다정한 목소리에 눈떠보니 밝은 아침이었다. 다연은 나보다 먼저 깨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연은 내가 깬 것을 확인하고는 커튼을 걷어 발코니로 나갔다. 나도 다연을 따라 잠에서 덜 깬 몸으로 발코니로 나섰다.

 

 "오늘 날씨 진짜 좋다."

 

 다연은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기지개를 켰다.

 

 "지금 몇 시야?"

 "11시. 더 일찍 깨우려고 했는데, 너무 잘 자서 깨울 수가 있었어야지."

 

 나도 내가 이렇게 많이 잘 줄은 몰랐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다연의 옆이면 편하게 푹 자곤 했다. 다연이 편하게 만들어줘서일까.

 

 "어제는 맛보기고, 오늘이 진짜니까 기대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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