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입력한다

박홍챠님 글 리퀘스트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내가 증오한 너는 나의 손에 스러졌고 더는 깨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 그것은 죽음뿐만 아니라 복수. 달콤하기 짝이 없는 복수였다.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이 너의 손에 스러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가족이라 불러도 좋을 이들과 친구라 불러야 마땅할 이들. 그 달콤한 나날들을 한 번에 깨뜨려 산산이 부서지게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였다. 현실을 직시하자마자 나의 머리는 차갑게 굳어졌고 사고의 흐름이 불처럼 빠르게 번져갔다. 내가 원망해야 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였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을 뻔했다.

흔히들 복수가 끝나고 나면 허무하다고 한다. 처음엔 정말 그랬다. 복수란 삶의 이유를 전부 잃고 간신히 성립한 목적이었다. 그 목적이 달성된 순간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사랑을 찾고 싶지도 않았으며 다른 이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오직 너를, 너만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기를 원했다.

가능하다는 건 어느 회사의 직원 모집 공고를 보고서야 알았다.

사람의 인격이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부모님의 성향, 어린 시절 즐겨 본 영화,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 깨달음을 주는 글귀. 다르게 말해 볼까, 그 수많은 요인을 데이터로 바꾸어 입력하면 데이터로 된 인격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반평생에 걸쳐 추적한 너라는 사람. 그 과정에서 모은 너의 파편들. 아, 너는 인제야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나는 너를 입력한다.

죽지 않는 시뮬레이션, 끊임없이 부활할 너의 인격, 영원할 너의 파편들. 인제야 너는 온전히 너를 위한 고문실에 갇히게 되었다. 끝나지 않을 복수, 허무하지 않을 인생, 역겨운 자업자득. 나의 새로운 목적과 새로운 쾌락은 너에 의해 다시 쓰인다. 버튼을 누르면 너의 삶에 시련이 닥칠 것이고, 다른 버튼을 누르면 행복이 찾아왔다가 모든 전원을 끄는 순간 끔찍하게 죽어 나갈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죽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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