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철
촤밤님 글 리퀘스트
평야, 복잡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땅이죠. 풀을 뜯어 먹는 일로 목숨을 부지하는 어린양이든, 자신보다 나약한 이들의 살점으로 내일을 이어갈 위안을 얻는 사자든, 우리는 그곳의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물론이죠, 가끔 우리는 단순한 군것질로도 생명을 앗아가는걸요.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지켜볼 이는 필요에 의해 식사하므로,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낫다고 봐도 좋겠죠.
여기 평야의 아이가 있습니다. 우선은 제2라고 불러둘까요. 그의 주식은 평야 위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생명들입니다. 바람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이 강인한 영혼은 신선한 살코기를 언제나 갈망합니다. 그럼 우리는 느긋하게 앉아 오늘 제2의 점심 메뉴가 무엇일지 지켜보도록 할까요.
땅 위를 통통 튀어 다니는 작은 몬스터들? 아니에요. 저건 한 입 거리도 안 될 겁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풀들? 글쎄, 다이어트 중이었다면 나쁘지 않았을지도요. 제2의 몸속에서 빠르게 약동하는 심장을 충족시키려면 조금 더 거칠고 튼튼한 녀석이 필요합니다. 일테면 잔근육으로 다져진 돌연변이 늑대 같은 것 말이죠. 좋아요, 오늘은 저 녀석으로 정했습니다. 자, 제2. 본격적인 사냥에 앞서 한 말씀만 해주시겠어요?
"너무 사나우면 재미없는데, 좀 진정해 봐!"
그렇다고 합니다. 하긴 재미있는 식사를 하려면 예절이 필수죠.
제2가 날개를 쭈욱 펴고 높이 뛰어올랐습니다. 길게 뻗은 손톱은 간단하게 돌연변이 늑대의 살갗에 깊은 생채기를 냅니다. 와, 제2, 조심해요. 들판에 퍼진 야생 돌연변이 늑대의 피가 다른 몬스터들을 불러올지도 모르잖아요!
"풀 코스네."
하긴 철저한 제2가 그런 사실을 잊었을 리 없죠. 다음 몬스터는 구불구불한 줄기가 돋보이는, 식충식물을 닮은 녀석입니다. 곁들여 먹으려는 건가요? 돌연변이 늑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볍게 몸을 돌립니다. 날카롭게 선 날개의 끝부분이 줄기를 단박에 잘라버렸습니다. 샐러드에 고기까지, 오늘은 꽤 푸짐하겠는걸요.
줄기는 조금만 챙겼습니다. 돌연변이 늑대의 고기가 주이기 때문이죠. 다른 괴물들이 몰려오기 전에 잽싸게 그 자리를 뜹니다. 아마 뒤늦게 찾아온 녀석들은 피 묻은 콩나물을 배불리 먹게 될 겁니다.
평야의 한구석으로 가는 데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괴물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배가 고픕니다. 불은 약하게 피우고 수분이 많은 잎사귀로 덮었습니다. 연기로 그을릴 생각인가 봅니다. 조금 전 가져온 줄기의 속을 파내고, 고깃덩이를 넣어서 훈연하면, 아, 바로 이거죠! 제2, 맛이 어때요?
"끝내주는데!"
저도 한 입 먹고 싶어지네요.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 되어 버렸지만, 연기에 이끌릴 만한 몬스터들이 없는 곳을 찾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끝내주는' 식사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죠.
우리는 그럼 이제 제2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 볼까 합니다. 아함, 배부르게 먹었으니, 오늘 밤은 따뜻하겠어요.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