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인어, 인간

철컥 하고, 첨벙 하고. 검은 바다를 헤엄치는 생명은 그런 소리를 냈다. 아가미 대신 달린 필터를 가지고, 다리 대신 달린 지느러미를 가지고. 달이 가려진 밤에 바다를 떠도는 신비 속의 생명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짠 내의 사이에 풍기는 철의 냄새가 있다. 구름에 가려진 달이 비추는 빛 아래서 인간이 상상하던 인간과 물고기의 혼합된 생명은 그렇게 존재했다.

"...인어?"

인어. 굳이 말하자면 인어. 머리가 물고기고 몸통은 남성의 것이라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왕자님을 찾기 위해 뭍으로 올라오는 공주님도 아니었지만. 푸른 비늘을 가지고 있었다, 예쁜 꼬리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었고, 상체에 달라붙은 기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인어였다. 기계장치를 짊어진 인어.

나는 인어를 보았다.

나는, 기계투성이의 인어를 봤어.

1.

인어가 처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날에 세상은 뒤집혔다. 인어, 그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이란 얼마나 굉장한가. 오랜 시간 인간의 상상에 싸여 다루어지길 세계 각국의 설화의 군데군데가 보증하는 역사.

그것이 불러일으킨 소란은 거대했다, 사람들의 기대를 처참히 박살내는 식으로. 그것은 차라리 생명이라기보다 기계와 생명의 혼합이라 보아야 했다. 온전한 생명이라기에도 뭣한, 강철이 덕지덕지 붙은 상체와 물고기의 그것을 가진 존재. 그러나 그것이 뱉어내는 것은 또 다른 환상의 실체, 아틀란티스. 인간이 공상한 가라앉은 유토피아가. 흉한 환상의 입에서 뱉어졌다는 것.

"우리의 낙원을 구원해주세요."

인간과 스스로가 칭하길 기꺼이 인어라 불린, 저를 생명이라 여기는 존재는 그런 부탁을 했다. 인어의 낙원 아틀란티스. 한차례 가라앉아버린 해상의 문명을 구원해달라고. 인간네들이 그렇게 원망하는 낙원을 보여줄 테니 도와달라고. 깨어졌다 해도 환상이 말하고 보증하는 그런 영역의 확실이다, 세상은 광기에 물든 듯이 인어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인어의 요청이 그들의 뜻이었고 세계를 움직였다, 살아있는 환상이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위대한 것이다. 생명이라 부르기에도 뭣하다며 흉본 지상의 생명이 절로 우러러보게 하는 것. 그래서 인류는, 인어에게 매료된 거야.

2.

인어는 희고 파랗구나. 선박의 첨단에서 소녀는 그리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인어는 정말 희고 파랬다. 인간의 손에 살짝만 닿아도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여리고 희었다. 얼핏 보면 창백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리고 어째서인지 눈동자라던지 그런 것들은 선명하게도 파래서. 하늘을 닮은 예쁜 푸름을 머금은 눈동자가 그런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어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계덩어리가 운반하는 푸른 발광물질도 빛나면서.

아틀란티스로 가는 배는 무척 급하게 결정이 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인어 정도 되는 존재가 인간들에게 아틀란티스의 구원을 청하는 정도인데도 배의 수용 인원이나 수용되는 인간조차도 빈약했다. 실험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찌 되든 그에겐 좋은 일이었다. 대충 자원봉사 느낌으로 생각하라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저런 인어와 한 바다에 빠져 죽을 수 있다면 기껍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뭐 어때, 죽기밖에 더 하겠어. 인어의 실재가 증명되었음에도 아틀란티스는 믿지 않았다. 아틀란티스 하면 발전이고 초 고대의 엄청난 문명—게다가 심해에 가라앉기까지 한—따위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고물- 아니, 쓰레기 같은- 큼, 변변찮은 선박으로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었기에.

"지금부터 잠수에 들어갑니다! 갑판의 인원은 모두 배로 들어가 주세요!"

따위의 생각을 하다 기습적으로 확성기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귓가를 찌르는 감각이 싫다,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싫은 소리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나빠지는 날씨가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밀집된 검은 구름이 쌓인 것들을 토해낸다, 세차게 흘러대는 빗줄기가 인간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듯 했다. 너무 확대해석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철컥 하고, 첨벙 하고. 소음이 가득한 검은 바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청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빗소리와 파도소리, 천둥번개가 난리를 치는 판에서도 기이하게 그런 소리는 귀에 걸려선. 그것에 잠시 집중을 하다 균형을 놓쳐버리면 갸우뚱, 휘청이는 선체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바다의 냄새에 본능이 종을 쳤다. 세상을 점멸하는 빛이 있고 소리가 있다, 미쳐버린 빗줄기에 요동치는 바다는 이내 배를 집어삼켜서. 그때에 그는 허공을 날고 있었다. 장점이라면 선내에 있을 누군가들처럼 부딪치거나 하지 않아서 좋았고, 단점이라면.

풍덩!

뽀그르르르르⋯

이 요동치는 바다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미친듯이 몰아치는 파도가 갖는 물리력은 연약한 인간의 육체가 견디기 힘들었다, 물살에 잔뜩 치이다 보면 철컥, 첨벙. 인어가 헤엄을 치는 소리였다. 아, 나는 지금 인어와 가까이 있구나. 무어라 형용하지 못할 감각이 한계까지 당겨진 육체의 긴장을 놓는다, 세찬 격류에 휩싸여 연약한 몸은 천천히 바다에 빠졌다. 느릿하게, 그렇지만 깊게. 깨어나지 않는 의식이 깨어날 때까지, 그 여린 몸은 바다의 끝으로 가고 있었다.

3.

호흡을 하며 튀어나오는 물거품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그리고 저를 감싸는 무언가의 감각도. 그러다가 툭, 멀어지는 느낌이 났다. 허공을 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무언가 디딜 것 하나 없는 공간에서 눈을 떴다. 온통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빛이 없으면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 그것을 자각하기 무섭게 저 위에서 푸른빛은 점멸했다. 깜박거리다가, 이내 지속된다. 그런 파랑을 본 적이 있었다. 인어가 품은 눈의 파랑이 그러했고, 인어가 단 금속 안에 찬 파랑이 그러했다. 그러니까 지금 드는 의문은, 어째서 그것이 제 근처—인지는 모르겠지만—에서 발하는가.

"..........."

물거품소리가 흘렀다. 물거품소리, 그것이 부르는 의미는 단 하나. 자신은 아직 바다에 잠겨 있었다. 표면에서 얽히다 못해 가라앉은 채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 여린 몸은 그 수압을 감당하고 있는 것인지, 어째서 이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제 위에서 반짝이는 청색형광. 설마하니 저는 인어가 되어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몸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리도 벌릴 수 있고 배배 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물속에서 변변찮은 무언가 없이 눈을 뜰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소리가 났다, 물거품소리가. 검은색 사이에서 빛나는 파랑이 있다. 그 곳에서 물거품소리는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홀려버린 듯 헤엄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뭐가 있을 줄 알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 어느새 다가선 그 푸른빛의 중심에서는 물거품이 흐르고 있었다. 인어가 물에 잠겨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인어가 물거품이 되어 죽는다. 인간을 사랑했다 죽은 공주의 말로를 보는 것만 같았다. 감히 다리를 얻어 육지에 갔다가 죽은 인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인어가 죽으면 물거품이 된다, 적어도 제가 직관한 인어의 말로는 그랬다. 깜박, 깜박. 눈꺼풀이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가 내는 빛은 점멸했다, 물거품이 흐르고 파랑은 깜박였다. 인어의 신체가 무너져 간다, 그러면서 인어가 품은 파랑도 꺼져간다.

이유도 몰랐지만 살려야 한다고 믿었다, 어떻게든 이 곳에서 나가 수면 위로 부상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옮기기는커녕 올라가다 지쳐버려서. 인어는 물거품이 되어 죽었다, 기계장치 하나만을 달랑 남기고 죽어버렸다. 그때, 푸른 빛이 있었다. 예쁜 물색이 반짝거리며 달라붙었다. 철컥, 철컥. 금속음이 들렸다, 상체에 달라붙어가는 은빛의 금속이 시끄러운 소리를 뱉었다.

결국 인어가 말한 아틀란티스는 이 심해에 없었다.

처음부터 이곳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데려왔으면 한 번 쯤 모습을 드러내 줘도 좋은 거잖아.

이내 푸른 빛이 돈다, 인어의 몸에 달라붙었던 관 안의 그것이 순환하듯 제 몸에 달라붙은 관 안의 것도 순환했다. 체내에 들어왔다가 관으로 나가고, 그것이 다시 체내로 들어가고. 푸른 물질이 순환한다, 그때 처음으로 그는 제 몸을 봤다. 물색의 예쁜 비늘이 있고, 고래형 꼬리지느러미가 있고. 상체에는 푸른 물질이 흐르는 강철이 덕지덕지 달린. 자신은 인어였다, 기계투성이의 인어. 제가 본 인어는 이것으로 둘이 된다, 제가 본 인어들은 하나같이 기계투성이였다.

나를 인어라고 부르자, 기계가 덕지덕지 붙은 몸을 인어라고 부르자. 그래, 인어가 된다. 자신은 이제부터 인어였다. 심해에 가라앉아서, 물거품이 된 인어를 대신해 인어가 된. 인간 세상에 이야기를 하자, 인간이 심해에 가면 인어가 된다. 인어가 바다에 빠져 죽으면 물거품이 된다. 마치 동화 같은 이야기이고, 어쩌면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세상에 말을 전달하고 인어를 찾자, 제가 본 두 인어를 제외한 다른 인어를 찾자. 순식간에 올라가서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인어의 몸은 물리 법칙을 위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제가 그랬으니 분명 그랬다. 그래서 잠시 튀어 올랐다가. 철컥 하고, 풍덩 하고. 기계투성이의 인어는 그런 소리를 냈다. 그런 소음을 내며 바다에 빠졌다.

풍덩,

철썩,

뽀그르르르⋯

철썩,

철썩,

철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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