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

행크. 마지막이 부르는 소리가 고막에 닿는다. 사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맞는지는 모른다. 그저 조심스럽게 말한 듯 느린 자극이 그를 찔렀을 뿐이니까. 행크! 아, 이번에는 강하다. 제 신체 어딘가를 찰싹 때리는 것 같은 통증도 함께 오는 소음에 행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앞에 보이는 것은 민트색 눈동자, 비니, 그리고 거기에 머리카락까지. …옝? 눈을 부비려는 움직임 사이레 걸리는 미약한 이물감이 있다. 눈가에 닿은 팔랑팔랑하게 얇은 느낌, 옅은 향, 그리고 제 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꽃.

행크의 손에 꽃이 피었다.

실없이 뉴스 소리가 흐른다. 행크는 그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듣는다기보다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 더 옳을까. 제 손가락에 핀 꽃잎을 반대쪽 손으로 슥슥 문질러본다. 부드러운 꽃잎의 질감이다. 그래서 행크는 뭐가 잘 들리지 않았다. 손에 꽃이 피다니 이게 말이 되나? 손가락을 휘적휘적,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줄기와 그에 딸린 꽃은 과한 좌우 움직임으로 꺾이듯이. 오른손을 가만 보던 행크는 왼손으로 꽉 쥐고 뜯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럴수 없었던 이유는.

“행크 그거 가만 놔두라니까.”

너 선수생활 끝나 그러다. 말리는 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겨우 천천히 손을 놓는다. 제 손에 핀 식물의 뿌리가 혈관이나 신경까지 깊게 박혀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우습게도 그 말에 행크는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제가 손을 아예 못 쓰게 되면. 설령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손끝 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감각이 이상해지면. 행크가 손을 꼭 말아 주먹쥐었다. 제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이물감과 어색한 촉감. 이런게 있으면 행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적어도 행크가 하고싶었던 것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옝.”

“왜.”

“내 손 괜찮겠지?”

일상적인 것을 말하는 듯, 덤덤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 끝이 옅게 떨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무심한듯 꾸며내는 목소리가 유지를 못하고 자꾸 떨려서. 나 야구 계속 할 수 있겠지? 하는 그 물음이 정말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애 같아서. 나 이걸로 선수생활 끝나면 어떡하지, 옝. 맏연한 불안. 그건 아마 제가 좀 너무 만져서 뱉은 걱정의 가정으로부터. 옝이 작게 숨을 삼킨다. 행크도 듣지 못할 소리로 작게. 내가 왜 그런 말을 해선….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지 못하고 중얼거리는 말은 이내 서로의 침묵으로. 그런 침묵을 뚫는 것은 대기번호의 알림음. 결제하려 벌떡 일어난 옝이 빠르게 멀어진다. 또 혼자 남겨진 행크는 옝에게 두던 시선을 병원 티비로 옮긴다. 아마 꽃이랑 병이라는 단어가 들려서 그랬던 거 같은데.

“ 사람 몸에 피는 꽃… 처음 보는 상황에 ‘전문가들 모두 당황.’ ”

속보라고. 큼지막한 자막과 함께 나타난 표시는 급하게 소식을 전한다. 서울 병원에서 최초 발견되었니 어쩌니저쩌니. 사실 행크한테는 그런게 중요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적출 수술 중 뿌리가 깊게까지 박힌 것을 확인… 적출 후 후유증으로 국소 감각마비와 움직임 둔화 등등… 운동선수에게 특히 치명적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씨앗이 침투한 것인지는 불명….

가만 받아들이기 아득한 정보들이다. 특히 운동선수에게 치명? 후유증으고 국소적인 감각의 마비? 그러면 나는? 그러면 내 선수생활은. 멍하니 보던 행크가 이내 손을 꽉 쥐었다가 펴는 행위를 반복했다. 손끝의 이질감은 여전하다, 그걸 품은 손바닥도 그렇다. 단단하게 박힌 듯한 손끝의 걸리적거리는 느낌도 선연히. 방금 전 진료까지만 해도 이걸 적출하려고 했는데 이젠 이걸 적출해도 안된단다.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고.

“있잖아 옝, 나 이거 적출하지 말까?”

“미쳤어? 너 그 꽃 핀 손으로 어떡하려고.”

“줄기만 잘라내면 되는거 아니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너만 맞춰주면 아무도 모를텐데.”

나 이거 적출하면 진짜 선수생활 끝날지도 몰라, 옝. 옝의 눈동자에 검은색 눈동자가 들어찬다. 나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아. 그렇게 덧붙이는 행크의 눈가가 살짝 촉촉했다. 찔끔, 눈 아랫가를 조금만 적실 정도로만. 아마 그런 눈을 보고도 닥치고 수술 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놈은 없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할 놈이라면 그렇게 하겠다만, 적어도 옝은 그걸 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문제 생길거같으면 진짜 수술 해라. 계속 안할수는 없어.”

사실상의 유예. 다만 행크는 그것만이라도 좋았다. 조금만 더 할 수 있으면. 그러면.

땅을 박차고 뛴다. 그 행위가 언제부터 좋았더라?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원체 운동을 싫어하지 않았으니 그저 달리기도 좋아했던 것이리라. 그걸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까지 했던 것은 아마 그것의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목표가 좋았을지도. 비록 지금은 육상부에서 건너 넘어와 야구부를 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행크는 달리기가 여전히 좋았다는 말이다.

달리기와 야구는 쓰는 근육이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를 위한 트레이닝 때문에 아마 행크는 야구에 목숨을 더 걸 수 밖에 없었으리라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기 위해 야구시절 잡아놓은 근육을 좀 뺀다던가 하는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다시 특화로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얼마가 걸릴지 모르고. 그리고 그렇게 재활해서 뛰는 달리기가 경쟁력이 있을 수 있나? 양자택일에서 떨어진 달리기 때문에라도 행크는 야구를 계속 해야만 한다. 그런 집념이 계속 그를 볼을 던지고, 배트로 치고 달리는 것을 반복하게끔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행크는 그냥 계속 달리기를 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딴 식물이 자라는 것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제대로 적출하고 그래서 문제가 없었어야 했다.

꽃이 피었다.

이번에는 행크의 무릎에.

“행크 미친놈아! 너 내가 수술 하라고 했어 안했어!”

거친 소리다. 냅다 멱살이 틀어잡힌 행크는 슬쩍 시선을 피하려다 욕만 먹고 하늘색 눈동자와 눈이 맞았다. 저를 죽어라 노려보는 눈. 흥분했는지 조금 크게 뜨여서 저를 죽일 듯 마주하는 새파란 하늘이 굳은 얼굴의 행크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옝의 눈 안의 저와 제가 눈을 맞춘 것 같았다.

“대답 안하냐?”

“…미안.”

사과에도 수그러지지 않는 눈이다. 정말로 화나서 행크의 앞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씩씩대기만 하다가 틀어쥔 손에 힘을 빼고 그의 가슴팍을 탁, 밀친다. 조금 쎈 힘이 실린 밀치기에 주춤하는 것도 잠시. 행크는 제 앞에 나타난 사진을 보고 굳었다. 그 위에 있는 글자가 상황을 조금 이해하게 했고. 옝이 보여준 것은 기사였다. 두어 달 전에 발견된 사람 몸에 피는 꽃이 가득 피어서 죽은 첫 사례의 사진. 모자이크가 되어있긴 하지만 손과 같은 부위의 일부는 선명히 보여서. 너 그러다가 죽을지도 몰라 씨발. 센 말이다. 그런데 목소리 자체의 힘은 좀 죽은.

“이번 대회까지만 뛰고 수술할게.”

“너 진짜 미쳤냐?”

“갑자기 내가 빠지면 팀원들은 어떡해?”

“그러다 니가 죽으면 나는 친구잃은 새끼 되는건데?”

슬픔인지 분노인지, 악에 받쳐서 강해진 세기의 목소리가 행크를 향해서. 그럼 씨발 나는. 나는 친구가 죽는걸 그냥 봐야 해? 다시 한번 더. 행크는 말이 없었다. 그냥 어느새 다시 핀 손끝의 꽃 줄기를 가위로 싹둑 자르면서. 그럼 다음주 경기까지만. 하고. 어차피 오늘은 금요일이고 다음주 경기는 화요일이다. 고작 4일만 지나면 된다. 더도말고 덜도 아닌 4일. 그 뒤에 행크는 스스로 수술을 받겠노라고.

다음날. 행크의 몸에 꽃이 피었다. 이번엔 팔꿈치였다. 속보로 들어온 뉴스에서는 이제 꽃이 전신에 돋아서 죽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수십명을 돌파했단다. 행크는 조금 두려웠다. 지금이야 아프지 않지만 전신에 꽃이 핀다는 건 그래도 제 몸 안에 식물이 뿌리를 내린다는 거니까. 꽉 차서 죽는건 조금 아프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내가 미쳤지, 연습이나 하자.

또 다음날. 행크의 몸에 꽃이 조금 더 많이 피었다. 뉴스에선 이 현상을 어떤 팬데믹 같은 것으로 규정했다. 국내에서도 이제 모두 격리되느니 어쩌니 할 것이란다. 슬슬 아슬아슬해진다. 그냥 지금이라도 수술 받을까.

또 꽃이 피었다. 이번엔 조금 더 많이. 뉴스에서는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댔다. 오랜만에 찾아온 옝이 진짜 저를 죽일 것 처럼 욕을 했다. 행크는 그날 끌려가서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제와서 수술하는게 괜찮아지나. 그런 회의적인 생각과 함께.

꽃이 피었다. 수술이 성공했는데도 그랬다.

“야 행크.”

“옝.”

시선을 돌린 끝에는 옝이 있었다. 민트색 머리, 눈동자. 평소에 쓰던 비니는 없었다. 특이사항이라면 좀 새카맣게 입고 온 정도일까? 머리에 나서 쳐져 시야를 가리는 새로 돋아난 꽃을 능숙하게 가위로 자르면서, 행크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그때 네 말 들을걸, 하는 말은 이제와서 하기엔 너무 늦었다. 뱉었다간 저주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죽기 좀 무서워? 이건 오히려 그를 자극할 테다. 괜찮아, 이것도 마찬가지고.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서 행크는 말을 골랐다. 그러다가 그냥.

미안.

미안, 하는 사과에 반응하듯. 옝의 눈동자가 행크를 담는다. 어떻게 피었는지 옷 위로 뚫고 자라난 저 꽃들이 가증스러운 것도 가증스럽지만 그것에 덮인 행크가 퍽이나 보기가 싫었다. 운동도 잘하고 그냥 야구선수 생활만 좀 포기했으면 됐을 놈. 애초에 프로 구단이라기보다 그냥 고교야구 뭐 그런거 아니었나. 프로야구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라지만 그걸 밟아보려고 하다가 죽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스포츠가 워낙 한순간의 반짝임같은 거라지만, 프로를 향해 뛰는건 부나방같은 거라지만. 그걸 잘 알지만 네가 그 부나방이 되기를 바란 적은 없었어. 행크.

“…느낌은 어떤데.”

“오히려 아무런 느낌도 없어. 얘네가 몸에 박히면서 뭐 이상한 신경물징이라도 뿜는건가.”

우스갯소리로 할 게 있고 안 할게 있지. 한대 치려다가도 또 조심스러워서 옝의 손은 그냥 행크의 이마를 딱 쳤다. 아팠다. 행크가 돌머리인건지 그냥 지금 제 마음이 아파서 그런건지. 확실한 건 손가락의 통증이 없진 않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죽으면 장례식에 꽃은 따로 지참 안해도 되겠네.”

이게 진짜 미쳤나? 어떻게 하는 농이 다 사람을 박박 긁어버리는지. 하필 그런 짜증도 내다가 쟤가 픽 가버릴 것 같아서 못하겠고. 더 이상 옝은 행크의 앞에서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가만 침묵하다가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은 행크가 되었고 그럴 때마다 적당히 맞장구치고. 그러다 피곤한 듯한 걔가 잠깐 눈을 감고 나면. 옝은 문 밖을 나서서.

툭. 국화가 문 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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