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지대

여름, 유령, 인간.

늪지대

넓적한 창문의 연속과 교실과 교실의 연속, 양 벽을 가득 채우는 문의 향연의 바깥에서 이른 아침의 햇살은 산뜻하게 복도를 비췄다. 나른한 온기, 라고 하기에는 제법 애매한 열감은 상대적으로 차가울 아침공기를 충분하게 덥혔다.

이게 무슨 가을이야, 라며. 정말로 더운 공기를 만끽하는 그가 중얼거렸다. 정말로 가을답지 않은 날씨였다. 아니, 사실 가을이 맞긴 한가? 아직도 여름 아니야? 지구온난화 탓에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특색인 나라가 그 특색을 잃어버리고야 마는 사태가 도래했다. 따위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사람 하나 없는 교실의 문 앞에서 열쇠를 찰칵 돌렸다.

드르륵, 탁. 아무도 없는 교실의 문을 조용히 열어젖힌 그는 제 시야에 잡혀드는 것에 그저 가만히 굳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제가 보고 있는 그것은 무척이나 영화의 한 장면인듯 현실성이 없어서. 풍경이 그림에서나 보일 법하게 아름다워서. 

“...멋사?”

그리고, 제 눈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은, 제가 홀린 듯이 중얼거린 저 녀석은, 저 자리에 앉아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저 인간의 형상은. 이미 한차례, 생명을 잃었던 탓에.

“...김만득.”

그래, 목숨을 잃었다. 반년 전에 사고로 죽었다. 그래서 저렇게 태평하게 깨어나 인사를 뱉는, 멋사의 자리 위에는 꽃병이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병의 물을 갈고, 꽂아놓은 꽃이 시들면 꽃을 갈기도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만득은 제 눈 앞에 당도한 일의 너무나도 부족한 현실성에 따라가지 못했다.

멋사가 죽은 날은 제법 커서 방송이 뭐라뭐라 떠들어댔던 것을 기억한다. 네 자리만 멍하니 보고 있던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찍으러 온 사람들. 인간은 이렇게 무례해질 수가 있구나 싶던 순간들. 너도나도 뉴스에 싣던 네 기사와 내 사진이 걸렸을 때, 그때가 이렇게나 생생한데. 그런 내가 이해하기에는 복잡한 광경이라고.

“멋사야.”

제 친한 친구가 죽은 날에 머물러 있던 소년이, 그 죽은 친구의 이름을 다시금 담았다. 확실히 묘한 울림이었다. 비어있는 너를 향한 말과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상대를 향한 말의 울림은 이다지도 달랐나. 분명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을 텐데, 어째서 그 모습을 완전히 직시하자마자 그 말들이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인지. 다시 만나게 된 제 친구는 어느 곳 하나 달라진 점 없이 태평해서, 슬며시 입가에 지는 웃음을 미처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만득아.”

“응?”

“오늘 토요일인데.”

때에 맞춰서 울리는 학교의 종소리, 감상에 젖어있던 정신을 일깨우는 소리에 그제서야 만득은 어째서인지 학생이 한명도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분명 자신이 일찍 등교하는 편이긴 했지만, 그래서 단순히 교실에 앉아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에서 의문을 가졌어야 했는데.

무안해지는 기분에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 그의 몸이 굳었다. 멋사로부터 뻗어나와야 할,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물체라면 응당 가질 그림자가 없어서.

“너…”

“응? 왜 그래, 나는 이미 죽었잖아?”

당연하다는 것을 묻는 사람을 놀리는 것만 같은 목소리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장난스레 내뱉는 그 언사는 언뜻 보기에는 해맑아 보이기만 해서. 그래서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멋사가 벌떡 일어서서 제게 딱밤을 때릴 때까지. 음, 딱밤? ...그래, 딱밤을 때릴 때까지. 되살아난 주제에 그림자가 없어서 형체도 상만 남은 줄 알았던 녀석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그런 이상한 모순에 그저 맞은 부분을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얼떨떨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너,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기는 하냐?”

“글쎄? 모르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림자는 없고, 제 쪽에서 간섭하는건 되어도 이쪽에서 간섭하는건 안되고. 만득 자신의 눈에는 보이면서 다른 사람 눈에 보일지 안보일지 미지수라니. 

지끈 울리는 머리를 꾹, 하고 눌렀다. 하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만득의 인상은 찌푸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밝아 보였다. 한 차례 죽었다가 돌아온 제 친구와의 재회가 그렇게 절절하지는 않았어도 결국 만났다는 사실이 즐거워서. 언제나처럼 틱틱대며 뭇내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감정은 저편에 치워두고서, 현재를 즐기자고. 달큰한 현실에 취해 언젠가 당도할 미래를 잊고자 했다.

그렇게 원래라면 가지 않았을 놀이공원에 즉흥적으로 갔다가 허탕만 치고 오기도, 노래방에서 시간을 때워보기도, 식당에서 먹지 못하는 멋사를 놀리기도 하고. 야 너 근데 어떻게 지평좌표계를 고정했냐? 그게 뭔데. 나도 몰라. 뭐야. 따위의, 실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는 흘러갔다. 

이윽고 다음 날도 흘러갔다. 

다음 날의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일주일을 넘기고 보름을 넘기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멋사는 언제나 그의 곁에서 있었다. 

여름이었다.


언제부터였더라, 만득은 제 앞에 서서 그렇게 바라보는 멋사를 응시하면서 생각했다. 그러니까 대략 일주일 전 즈음 이었던가. 멋사는 한 달을 넘긴 그 순간부터, 그저 허공에 둥둥 떠서 어색하게 장난을 걸고 장난을 받아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유령인데도 컨디션에 문제가 있나 싶었지만, 유령인데 그런 상태에 영향을 받을 리도 없어서.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으면 잡념에 빠져있기라도 한 것인지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한다. 그것은, 분명히 제가 아는 멋사와 달랐다. 제삼자가 본다고 해도 어색함을 느낄 정도로. 애초에 저만 볼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야, 오멋사.”

“응, 응?”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안그래도 점점 날씨 추워져서 짜증나는데.”

만득이 그 말을 내뱉고부터 공기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대답을 촉구하는 시선은 짜증스레 제 앞의 친구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녀석은 또 움찔하고, 그렇게 침묵을 지켜내다가.

“그, 진정하고 들어. 만득아.”

그렇게 괴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어서, 전한 진실이란.

“…뭐?”

그건 무엇이 되었든 절대 알고 싶지 않았을 빨간 약이라고.

만득은, 순간 제가 무엇을 들었는가 귀를 의심했다. 제가 들은 그것이 정녕 진실인가 싶어서.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반문하는 말을 뱉었다. 떨리는 눈동자가 제 친구를 향하면, 제 친구였던 것을 향하면, 그저 제 앞에 선 유령은 슬프게도 고개를 떨구어서.

여름이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가을이라는 이름 아래에 여름의 열감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었던 계절이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를 둘러싸던 거짓말이 찬찬히, 깨져나가는 순간이었다.

계절도 온도도 환경도, 그리고 친구도. 가을치고 유난히도 여름다웠던 향기가 빠르게 퇴색했다. 소나기가 그친 뒤에 남는 여름의 향기가 물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계절마냥 제 친구와도 멀어지고 있었다.

"만득아, 나는⸻"

여름이었다.

그저 여름의 태를 쓰고 그 분위기를 따라가려 노력하는 거짓된 계절이었다.

그 계절감에 실려 또다른 무언가를 흉내내던 흉내쟁이가 까발려버린 진실이었다.

"멋사가 아니야."

"⋯뭐?"

너는 멋사야,

내 앞에 있었던 너는,

그때 그 교실에서 마주친 너는,

실없이 웃었던 너는,

개소리를 하던 너는,

내게 장난을 치던 너는,

나에게만 보이던 너는.

"⋯장난이지? 구라치지마."

"⋯⋯"

"지랄하지 말라고."

너는,

너는,

너는,

그런 너는!

유령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난 너는, 멋사가 아닐리 없다고.

부정하면서도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김만득이라는 인간은, 멋사가 할법하면서 멋사가 아닌 저 존재가 고하는 잔인하고 슬픈 진실을.

그래서 도망쳤다. 듣고싶지 않아서 그랬다.

저 멋사가 진짜라고, 너무나도 믿고 싶엇던 탓에.

도망을 선택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렇게, 계속, 방 안에 틀어박혀서 농성을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면 저기 저 바깥의 그가, 사실 전부 농담이었다고 말하며 웃어주기를 바라서.

사실은, 그럴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헛된 희망에 기대어보고자 했다.


한달의 시간이 지난 뒤에 열리는 문의 뒤에는 만득이 서 있었다. 이 정도면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한달 간 이어진 등교거부의 농성 끝에 너는 결국 인정해버리고야 말 것이라고. 충격적인 진실을 알아버린 그가 가지는 묘한 자신감은.

“안녕, 만득아.”

그날의 학교에서 그렇게. 무너져내려서.

“왜, 네가 멋사가 아닌 걸 밝혔어? 왜, 그저 그렇게 있어주지 못했어? 그냥 차라리, 내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뭐야?”

“말했잖아, 내가 그렇게 바랐다고.”

그렇게 고개를 들면, 멋사가 있어서.

그저 그렇게, 다른 유령을 통해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친구의 소망을 들어버려서.

거짓말쟁이와 속은 사람은 그저.

그저.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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