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장르

사람들은 말했다

새 행성을 찾아야 한다고.

IDV by 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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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여느 때나 다름없을 하루였다. 햇빛은 찬란하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거리를 걷고,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자신들만의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나는 건 한 순간이었다. 태양이 반짝, 빛나는 듯 했다. 하늘에 구멍이 생겼고, 컴퓨터가 일시적으로 먹통이 되었으며, 지구 곳곳에서 이상현상이 관측되었다. 새들은 하늘 저 편을 향하여 무리 지어 이동했고 심해의 생명체들이 해안가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온이 들쑥날쑥 한 분포를 띄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모두 이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사람들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학계를 뒤흔들 하나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시공간이 크게 휘었다,고 이들은 보고했다. 우주공간에 갑자기 생겨난 물체의 파장이 지구에 미치며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파장의 형태가 물행성의 형태를 띈다며 어디에선가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태양계 근처에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아무 근거도 없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지구는 오염되어가고 있었다. 빙하가 녹고 있었고, 평균 온도는 상승하고 있었으며 공기는 매캐했다. 하늘은 공장들이 돌아가며 내뱉는 회백색의 먼지들이 뒤엎어, 맑은 하늘을 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머지않아 아무도 살지 못할 불모지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펼쳐나갈 미래와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감정은 핑계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두려움은 소문의 원동력이 되었고, 소문은 곧 주장이 되어 학설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연구해왔던 자료들을 들고 와서 이야기했다. 이 넓은 우주 공간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이 지구밖에 없다는 것은 공간의 심한 낭비이며, 이번에 잡힌 파동은 지구가 내뿜는 에너지의 파동과 유사한 형태를 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공간을 갈망하고 있었다.

우주 항공국에서는 특별팀이 꾸려졌다. 뉴 플래닛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여진 이 팀은 우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의 목표는 시공간이 뒤틀린 그 공간으로 향해, 주변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는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지를 조사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후원과 정부의 지원으로 우주선 또한 빠르게 출발을 위한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하루 빨리 이들이 그 곳으로 향해야 한다고 외쳤다. 전 세계에서는 이것은 세상이 뒤흔들릴 일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모두의 기대 속에, 어느새 대망의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 인원은 총 8명이었다. 과학의 각 분야에서 각광받는 수재들로 꾸려진 이 팀은, 그 근처의 환경과 여러 가지를 연구하기 위해 합류하게 되었다. 스스로 원해서 오게 된 이들도, 반 강제적으로 오게 된 이들도 있었다. 반은 기대감을, 반은 두려움을 안은 채 그들은 우주선 위에 올랐다.

그들을 향해 사람들은 환호하며 손을 흔들었다. 영웅이라며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새로운 시작, 또 다른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져 인류가 문명의 계단을 한 칸 더 오르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신나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은 한 끝 차이였다.

1.

핑맨은 그동안 그들이 새로운 행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공간을 조사한 자료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모든 이들이 예상했던 공간은, 도달한 좌표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행성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몇몇의 작은 암석 덩어리들이 길을 잃은 채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 곳은 무언가가 이상했다. 공허한 주변과는 달리, 우주선의 물체 탐지기에서는 강력한 중력장이 탐지된다는 강력한 수신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자료 통계치로만 보았을 때, 그것은 과학자들이 지구와 비슷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행성의 것과 매우 흡사했다. 기계는 아무리 두드리고, 시스템을 다시 세팅해도 공허한 공간에서 홀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중력은 울려퍼지는 수신음에 어딘가 또 오류가 생긴 것인지, 어떻게 고쳐야 할 지를 고민하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순 말도 안되는 것 투성이였다, 애초에 자료 하나만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 곳에서는 더욱 더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변에 조사할 것이 없다고 해도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주선 안의 인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라도 알아가자고 했고 각자의 분야에서 맡은 일을 수행하였다. 신호가 강하게 느껴지는 공간 근처의 중력 분포를, 에너지의 왜곡 현상을, 또한 시공간의 휨 현상을 추적하며 행성이 느껴짐에도 다가갈 수 없는 이유를 추적해 나갔고,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그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대로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만득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우리를 비난할지 궁금하다며 한숨지었다.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찾지 못해서, 돌아가는 날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지 두렵다는 게 만득의 말이었다. 사실, 전원이 그랬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연구한 자료들을 가지고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구에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수신해오지 않았다. 오류가 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었는지, 핑맨은 후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고민했다. 자신들이 이야기를 나눈 내용까지 보고해야 했던 것인지. 말이 몇 번 오간 후에, 그 내용은 직접 돌아가 전달해야 할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아무래도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끌어낸 과학적인 것이 아니었기도 하고, 그들이 직접 회의하며 이끌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그들은 일단 자신들의 속에만 품어두기로 결정했다. 

데이터를 전달받은 지구의 사람들은, 일 년만에 수신받은 자료들을 해석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그런 행성은 역시 존재할 리가 없었다며 허망함을 비추는 이들이 있던 반면, 파동이 불안정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며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는 부류 또한 존재했다. 만득이 걱정하던 일은 거의 없었다. 간혹 자신들이 지원한 비용은 어디에 쓰인 것이냐 분노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지구는 잠시 물행성에 대한 화젯거리는 접어두고, 직면한 위험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 더 일찍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었다. 근 몇년 간,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의 일원들이 지구를 떠난 후 지구의 환경은 더욱 급속화되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이 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행성은 죽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먼저 막아야만 했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는 잠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듯했다.

2.

우주선 차창 밖으로 별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항상 같은 풍경이라 이제는 지겹다며 중얼대는 동료를 뒤로 하고, 중력은 기지개를 펴며 운전석으로 향하다 한 구석에 쓰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 누군가 대충 써 갈긴듯한 숫자는 지구, 자신들의 고향에서 출발한 이후 경과된 날들을 뜻했다. 중력의 옆에서 앉아 무언가를 뒤적거리던 핑맨은 중력의 시선이 멈춘 곳을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벌써 3년이나 됐어? 우리 출발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임무 수행하다 보니 벌써 이렇게 됐네요. 시간 개념 다 잃어버렸어요."

"뭐, 이 공간에서 시간이라는 게 그리 중요한가? 해도 안 뜨고, 하루를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그건 그래요. 이러다 돌아가면 적응 못할 것 같아서 좀 두렵네요."

계기판의 단추를 몇 개 두드리며 무심코 꺼낸 중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네, 핑맨은 웃으며 덧붙였다.

"그 말, 출발하기 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첫날에 제일 잘 자던 사람이 누구더라?"

"아이, 그래도 사람이 잠은 자야 살죠, 게다가 저는 조종해야 하니까 컨디션 조절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누누이 말했잖아요. 아, 어디 가세요 또?"

너 시끄러워서 다른 애들 어디 있나 찾으러 간다, 라며 저를 부르는 중력을 뒤로 한 채 핑맨은 문을 열고 식당으로 향했다. 누군가 있나 싶어 문 틈으로 머리를 넣어보자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 멋사와 만득이 보였다. 멋사는 손에 든 것을 뜯으려 하고 있었다. 적막을 깨고 울려퍼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만득은 머리를 짚었다.

"야, 오멋사. 내가 너 간식 몰래 뜯지 말랬지. 언제 또 꺼냈어?"

"몰래 뜯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뜯고 있는 거야. 그러는 너도 오늘 이거 하나 먹었잖아."

의자를 돌리며 만득은 멋사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그건 내 저녁이었거든? 니가 배고파서 식사 시간 외에 몰래 뜯는 간식을 내 식사랑 비교하면 어떡해? 그런 만득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멋사는 웃으며 봉지에서 과자를 꺼내 입으로 넣었다. 만득은 자연스럽게 그런 멋사의 간식에 손을 뻗어, 자신도 하나를 꺼내 먹었다. 맛있네, 중얼거리는 만득을 보며 멋사는 킥킥대며 말했다.

"너 왜 내 꺼 뺏어먹어? 아까는 몰래 먹지 말라며? 너 나보다 많이 먹는 것 같아."

"그러는 오멋사, 네가 악어님 몰래 먹은 간식은 셀 수 없이 많은 거 알고 있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깐죽대며 말하는 멋사를 보며 만득은 뒷목을 잡았다. 얘는 나이만 성인이지, 그냥 보면은 영락없는 애라니까. 고개를 절레 흔들던 만득은 무심코 식당 문을 바라보았고, 핑맨과 눈을 마주쳤다. 헉, 큰일 났다. 아직도 저를 놀리고 있는 멋사를 보며 만득은 급하게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숨기라고 손짓을 했지만,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 멋사는 멋도 모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보다 못한 만득은 입 모양을 이용해 말을 꺼냈다. 핑맨님, 뒤에, 있다고. 멋사는 그런 만득의 말을 듣기는커녕 놀리지 말라며 만득의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뒤를 돌아 나가려던 순간, 식당으로 뚜벅 걸어 들어오는 핑맨의 모습에 멋사는 흠칫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딸꾹, 놀라 말도 꺼내지 못하는 멋사의 머리에 핑맨은 그대로 딱밤을 먹였고, 고통에 바닥에서 구르는 멋사를 바라보며 만득은 조용히 웃음지었다.

"너 다 들었다, 악어님 몰래 봉지를 몇 개나 뜯었다고? 그 양이 많다고?"

"아니, 핑맨님, 그건 만득이가 오해..!"

"애꿎은 만득이 끌어들이지 마, 넌 이따 나 좀 보자."

그나저나 악어님은 어디에 계셔? 묻는 핑맨의 말에 만득은 대답했다. 아마도 주무시고 계실 거에요, 어제 하루 종일 보고서 올리느라 한숨도 못 주무셔서요. 대신 전해드릴까요? 아마도 일어나실 때 쯤이면 핑맨님이 잠들어계실 것 같으니까요, 라는 게 만득의 말이었다. 곧 복귀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본부에 보낼 서류들이 많았고, 그 일을 총괄하는 것이 악어였기 때문에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편이었다.  

"아냐, 괜찮아.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럼 전 얘 좀 데리고 들어가볼게요, 핑맨님도 좀 쉬세요. 요즘 별로 안 주무시던데."

"난 원래 잠 잘 안자는 거 알잖아. 걱정 말고 오멋사 관리나 잘 해. 사고칠 까봐 걱정되니까."

제가 뭔 사고를 치냐며 마지막 말에 잠깐 발끈한 멋사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금세 입을 다물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 문이 닫히고, 핑맨은 홀로 식당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우주 속, 저희들의 고향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들과 빛나는 태양 사이 떠있는 지구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떠나온 지 시간이 꽤나 흘렀기에, 우주선 안의 이들은 하루 빨리 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말없이 지구를 바라보던 그 또한 저의 방으로 향했다.

3.

악어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오래 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동안 잠을 도통 못 잤으니까, 한 10시간 정도는 잤겠지 생각하며 반쯤 뜬 눈으로 그는 관리실로 향했다. 그 곳에는 너불이 앉아 있었다. 중력과 조종 일을 교대한 후, 너불은 할 일이 없어 창 밖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오늘도 평화롭네, 개미 한 마리 없고. 하긴 우주 공간에 무슨 개미가 있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가만히 있는 너불이었다.

너불이 하룻동안 하는 일이라고는, 우주선의 자동비행장치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방벽을 수리하는 것이었다. 자잘한 운석덩어리들이 우주선에 입힐 수 있는 피해는 별로 없었지만, 그것들이 누적되면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주기적으로 너불과 중력은 교대로 밖에 나가 방어벽을 수리했다. 이번 주는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였으니 몰래 넘어가야지, 생각하던 그는 악어가 옆에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와악, 깜짝이야! 악어님 왜 여기 계세요?"

"왜 이렇게 놀라? 사람 무안하게."

갑자기 튀어나오셔서 그래요, 별 일 아니에요. 다행히도 들키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너불은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고 악어를 바라보았다. 잠은 푹 주무셨냐, 어제까지는 눈 밑이 퀭해 보였는데 지금은 밝아 보여서 다행이라며 너불은 말했다. 악어는 그런 너불을 보며 웃다가 할 일도 없는데 여기 있어야겠다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던 도중, 레이더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의 흔적에 악어는 벌떡 일어나 그 앞으로 다가갔다. 조그만 빨간 점은 몇 번 깜박거리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악어는 계기판을 두드려보았다. 레이더에 무언가 잡힌 것도 같았는데, 착각인가 싶었다. 이내 돌아와 의자에 앉는 악어를 보며 너불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거기에 뭐 있어요?"

"아니, 뭐 잘못 봤나 봐. 붉은 점 하나 봤던 것 같기도 한데."

"가끔 돌덩이들 레이더에 잡히더라고요. 카이퍼대에서 작은 놈들 날아오는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그냥 운석이라는 거지, 별 타격 없는? 악어는 레이더에 새로 올라온 정보를 읽으며 말했다. 미등록 소행성 971013, 너불의 말 그대로 작은 운석이었다. 요즘 날아오는 운석들의 수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우주선에 타격을 입힐 정도로 크지 않다는 것이 너불의 대답이었다. 그렇기에 큰 문제도 생기지 않고 해서 밖에 나갈 일이 많지 않아 기쁘다며, 그는 웃었다.

우주선 밖은 마냥 낭만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우주복을 갖춰 입지 않으면 절대로 나갈 수 없었고, 가끔씩 날아오는 우주의 돌멩이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균형을 잡을 수 없는 공간에서 맡은 일을 수행하기란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기에 너불과 중력은 서로에게 항상 우주 밖으로 나가야 하는 점검 일을 양보하는 편이었다.

 그런 너불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던 악어는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공간이잖아, 라고 흘리듯 말하며 우주의 모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악어의 눈 속에는 수만 개의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후에 기회가 된다면 우주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너불은 그런 악어를 보며 동의는 않는, 가벼운 끄덕임과 함께 다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생각 속에 빠져든 이들을 태운 우주선은 지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4. 

덜컹, 만득은 심한 흔들림에 잠에서 깼다. 바라본 창문 밖은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래도 무언가와 우주선이 크게 충돌해, 엔진이 멈춘 것 같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바라본 멋사는 그 와중에도 잘만 자고 있었다. 이 녀석은 누가 업어가도 눈치 못 챌것 같단 말이야, 생각하며 만득은 간단히 겉옷을 챙겨입고 멋사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방에서 나와 엔진실로 향했다. 구석에 앉아 몇 번 기계를 두드리고, 자판을 누르던 만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크게 고장난 부분은 없는 것 같네, 전기가 나간 건가? 엔진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 운행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대체 그 큰 충돌은 뭐였지, 고민하며 만득은 전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중력이 전선을 수리하는 중이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에요?"
"자동운행 켜놓고 자다가 운석이랑 좀 크게 충돌하면서 전기가 나갔어. 엔진에 전원 공급이 안 돼서."
"우주선 본체는 괜찮은 거죠?"

스쳐지나가는 불길한 예감에 만득은 재빨리 물었고, 중력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벽 내가 평소에 잘 관리해서, 우주선 본체에는 문제 없더라."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는 또..."
"악어님이랑 핑맨님도 일어나셨더라고. 충돌이 꽤 커가지고. 아마 식당에 계실걸? 먼저 가 봐. 난 이거 끝내고 가야겠다."

오래 앉아있으니까 허리가 좀 아프네, 라며 몸을 움직이던 중력은 다시 수리를 시작했고, 만득은 그의 말대로 식당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자기는 무리일 것 같았으니, 차라리 식당에 가서 멤버들을 만나 이야기나 나눠야겠다 싶었다. 

식당 문을 열자, 악어와 핑맨 뿐만 아니라 전원이 모여 있었다. 멋사는 언제 일어난 거지, 의아해하던 만득은 멋사의 옆으로 다가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식당을 돌아다니던 너불은 레이더를 다시 한번 봐야겠다며 식당을 나섰고, 악어는 자기도 같이 가보겠다며 너불의 뒤를 따랐다. 핑맨은 피곤한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중력님이 별 일 아니라고 하셨는데, 왜 저러시지, 중얼거리던 만득 또한 잠시 뒤ㅇ 두 사람을 뒤따라 조종실로 향했다. 

조종실 안에는 너불과 악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저 앞의 커다란 위성에서 떨어져 나온거란 말이지? 묻는 악어에, 너불은 고개를 끄덕였다. 빗겨가서 다행이지, 제대로 맞았으면 정말 우주 미아 될 뻔했어요. 너불의 말에 따르면, 우주선과 충돌한 운석은 특정한 궤도가 없는 거대한 운석의 파편이었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양계 안으로 들어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고, 너불은 그런 운석의 성분 등을 분석하기 위해 우주선을 그것의 궤도 근처에 위치시켜 놓았었다. 이렇게 큰 파편이 떨어져 나올 건 예상 못했지만 말이에요, 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너불을 보며 악어는 한숨쉬었다.

"나도 동의한 일이었으니까 할 말이 없네. 어쩔 수 없지, 큰 사고 안 나서 다행이다. 근데 그 운석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잘 안보이는데."
"아마 우주선 근처에 있을 텐데, 이 위치에서는 가려져서 안 보이나 봐요."
"저런 게 지구에 떨어지면 인류 문명은 몰살되고도 남겠다. 그치?"

끔찍한 소리 말라며 질색하는 너불을 보고, 악어는 웃었다. 만득은 안으로 들어가도 되나, 고민하다 아무래도 그냥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제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가는 통로는 길었고, 그 옆으로 비추는 별들은 만득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제 옆을 스치는 커다란 운석 하나 또한. 

"....!"

우주선이 다시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위성의 중력에 휩쓸려 중심을 잡지 못하던 우주선은 그것이 조금 멀어지고 나서야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 만득은 굳은 표정으로 그것이 지나간 자취를 눈으로 좆았다. 지구, 태양계. 상상력이 너무 뛰어나도 탈이라니까, 중얼거리며 만득은 통로에서 그것이 시야에서 흐려질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운석이 태양계 근처로 다가온다는 우주항공국에서의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것이 지구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 주장했지만, 늘 그렇듯이 그런 뜬소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운석이 지구에 충돌한다, 라는 이야기는 인류가 우주를 관측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수백 번이고 있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믿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애초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과학자들 또한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궤도가 없는 이 위성이 지구와 가까워진다고 해도 거리상 태양의 중력이 더 크기 때문에, 그것에 더 큰 영향을 받아 그 쪽으로 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것은 많았고, 그들에게 지구의 멸망이란 멀고 먼 이야기였다. 어제와 같은 평범한 하루가 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내일도 그럴 것이었고, 이 생활은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그들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5.

헤프닝이 일어난 이후 한 달이 흘렀다. 그 이후 순조롭게 항해를 진행하던 이들은 다시 한번, 지구로 향하는 길을 이탈해 조사를 강행하기로 했다. 주변의 소행성대와 탐사선으로는 잘 관측되지 않는 여러가지의 것들을 조사해가기 위해서였다. 너무 위험한 곳이었기에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방어벽만 친 채 기계들을 이용해 조사를 행하기로 그들은 결정했다. 

그들은 지금 화성과 목성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 사이의 소행성대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이 주장해오던 유로파라는 목성의 위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침 그들이 소행성대를 지날 때쯤 그것이 우주선의 옆을 스칠 것이라는 계산 결과를 받았기에 그것이라도 확실히 조사해 가자고 그들은 말했다. 아무 수확이 없다는 질타를 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멋사는 벽에 달린 달력에 빨간 펜으로 칸을 하나 하나 지웠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중얼거리는 멋사는 머리를 긁적거리다 의자 뒤로 몸을 젖혔다. 가뜩이나 많이 남은 날짜들은 저를 애타게 만들었으며 거기에 지금 하고 있는 탐사까지 마치면 적어도 세 달 뒤에나 지구에 돌아갈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이왕 온 거 자료 더 찾아가는 게 지금에나 나중에나 좋을 거라며 애써 자기 위안을 하던 멋사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멋사는 이제 시야에 꽤나 들어오는 지구와, 그 주위를 도는 달과 주변의 부속물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태어난 곳이자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푸른 빛을 내뿜는 행성은 너무나도 황홀했고 멀리 존재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닿지 못하는 거리에 있네, 혼잣말을 내뱉으며 그는 다시 기계의 계기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질량, 대기 성분, 밀도와 지각의 구성 원소를 하나하나 측정하다 그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풍경에 다시 한번 지구를 바라보았다. 멋사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본 듯한 그 커다란 운석이, 지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까지. 멋사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운석의 궤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옆을 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잖아? 버튼을 누르고 띠링 소리와 함께 화면에 뜬 결과창에 멋사는 경악을 멈추지 못했다. 쿠당탕, 의자에서 떨어진 그는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문을 박차고 동료들을 찾았다. 쉬이 진정하지 못하는 멋사의 모습을 먼저 본 것은 핑맨이었다. 무슨 일이냐며 멋사를 데리고 운전석으로 향한 핑맨 또한 멋사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화면에 뜬 그것의 경로와, 그것이 지구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제 눈에도 똑똑히 보이는 운석을 핑맨은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구의 운명을 그는 바라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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