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예지몽

미래를 꿨어. 봄아.

건물이 부서진다. 높은 빌딩을 부수는 것은 저 멀리서 날아온 사람의 몸이 건물에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충격량이라. 건물에 깊게 파고든 사람의 몸, 벽을 다 뚫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폭발. 몸에 관통된 그 위치에 있을 가로선을 모두 지워버릴 심산으로 터지는 불꽃은 금세 큼지막한 화재가 된다.건물 전체가 불에 타기 쉬운 소재가 된 것처럼 번지지는 않으나 전부 삼켜버릴 듯 타오르는 붉은 것이 보여서. 건물이 품은 열기가 하늘을 달궜다. 태양이 스러질 시간도 아닌데 새파란 하늘이 건물에 붙어버린 불로 홧홧하게 달구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마냥 허무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히어로도.

길러서 묶었던 머리는 조금 타거나 끈이 사라져서 볼품없는 모양새고, 항상 품에 넣고 다니던 담배사탕은 부서져서 가루가 된 지 오래고, 화상의 상처와 다 찢어져서 생긴 피만 그대로 흘렀더란다. 초유현은 지금 제가 왜 이런 상황인지도 잘 몰랐다. 그냥 눈을 떠보니까 자신은 날아가고 있는데, 하필 자신은 이동계열 능력자도 아니라서 어떻게 피할 수가 없다. 건물을 들이박을 때는 아팠다, 폭발이 터질 때도 그랬고. 한평생 입어본 적 없는 화상도 그렇고 날려져서 건물을 부수어버린 것도. 다만 알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부르던 그 목소리였다는 것이다. 히어로, 하고. 제게 부르던 그 목소리. 자신은 한낱 히어로 지망생이었을 뿐인데. 그럼 자신은 자신이 아닌가? 그것은 또 아니라서.

아, 하고 벌린 입에서는 욕설도 되지 못한 소리가 났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나오는 것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비명같은 것이라서. 더욱이 그가 겁에 질려있다는 것 또한 한 몫 했을 테다. 갑자기 깨어나서, 갑자기 던져져서, 갑자기 아팠다. 현재 초유현이 겪는 고통은 모두 갑작스러운 종류의 것이었다. 아픈데 놀라고 놀라는데 아프다. 서로의 이유로 저를 괴롭히는 것이 마치 둘 중에 어느 하나가 더 심하다고 자꾸만 주장을 해오고 있었다.

‘아, 봄이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연봄. 제 둘도 없는 친구는 지금 자신이 이렇게 맞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있잖아 봄아, 나 진짜 뒤질 것 같다. 살려주라. 나 이렇게 죽기는 싫은데. 나 아직 19살인데. 있잖아 봄아. 나 좀—

“그놈의 봄아, 봄아. 너 뭐하냐?”

어? 갑작스레 들려 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기도 잠시, 초유현은 제 손을 천천히 쥐었다가 폈다. 제 뺨도 만져 보고, 다리도, 목도, 배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천천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미친놈처럼 방방 뛰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봄은 얘가 미쳤나 싶었다. 갑자기 자다가 제 이름을 막 부르지를 않나, 끙끙 앓지를 않나, 그러다가 깨고 나니 저런 지랄 염병을. 현아 너 미쳤냐? 하고, 그런 소리를 무심코 내뱉어버린 것도 아마 제 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누가 순식간에 저런 감정기복을 보여주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갑자기 서서 가만 침묵해버리는 현의 모습이 어색했다. 얘 진짜 꿈을 잘못 꿨나, 상태가 왜이래.

툭툭, 쳐도 딱히 반응이 없이 그냥 가만히 있는 상태 그대로. 몇번 말을 걸어도 응답도 없이. 그 상태가 지속되자 조금 무서워져서 다시금 현을 건드리려는 때에 들리는 봄아, 하고 건네오는 목소리가. 봄은 애써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쟤가 대체 무슨 말을 할까, 하고. 현은 봄을 응시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현아, 내가.

꿈을 꿨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없어지는 꿈.

초유현이 입을 다물었다. 그 미친 감정기복을 보이다가 뭐라도 말 할 것처럼 굴더니. 결국에는 말을 하지도 않고. 사이에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의 공백은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채웠다. 먼저 어색하게 일어나서 야 가자, 하고 말을 한 것은 봄이었다. 그래놓고 또 막상 할 말이 없어질 것 같아서 먼저 떠났지만.

드르륵, 탁. 미닫이문의 소리가 난 뒤에, 종소리도 끝나고 다시금 찾아온 적막 속에서 초유현은 계속 보건실 침대 위에서 앉아 있었다. 차마 제가 본 것이 제 미래라고 하진 않겠다만은—그러면서도 어쩌면 그것이 맞으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그래도 그건 조금. 그렇지 않나. 며칠 전에 봄이랑 같이 히어로 하자고 떠들었는데 이게 뭐야. 중얼거라는 목소리는 대체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초유현은 지금 능력을 하나 더 각성했다. 이건 예지몽이었다. 제가 죽는 날을 추체험한. 지금의 저로서 바라보는.. 그런 미래의 꿈.

제가 언제 죽는지 자신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먼 미래는 아닐 테다. 죽음이 갑자기 훅, 불어온 느낌이었다. 하필 봄이도 없었네, 고독하게. 죽음은 원래 고독한 것이라지만, 근데 그러면 걔는. 갑자기 내가 죽으면 걔는.

초유현은 죽고싶지 않았다. 그것이 알량한 자기보신의 마음이건, 혼자 남겨질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건.

.

야 봄아, 우리 히어로 그냥 하지 말까? 너는 그런 말을 무슨 자퇴신청하는 도중에 하냐. 그,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그런가야. 서로가 실없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대화를 하면서 떠올리는 것은 단연컨대 봄과 현에게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라서. 모두가 같은 것을 떠올리는만큼 뻔하다면 뻔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으나 봄은 어떤 추궁조차 하지 않았다. 현을 가만 보다가 그럼 그럴까, 하고 서류들을 저 멀리 치워버렸다. 차마 찢어버리지 않은 것은 어쩌면 현이 제게 번복을 번복하자고 말할 것 같았기 때문인지 아닌지. 봄이 서류를 휙 던져버렸음에도 그의 눈치를 슬쩍슬쩍 보는 현의 모습을 가만 보다가 뭐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화들짝 놀라서. 할 말 있으면 해.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있잖아 봄아. 만약에 니가 하려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위험을 불러온다면 어떻게 하고싶어?”

말 돌리기인가 싶었으나 눈은 진지해서, 이거 단순한 말 돌리기가 아니구나, 하고. 잠깐 고민했으나 봄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적어도 그렇게까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해야지. 그렇게 단정지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애초에 어떤 위험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지금 이 맥락에서 튀어나오는 질문이 이것이고 저번의 그 일도 생각해보면 현도 저와 생각이 같아서 물어본 것일 테다. 그렇지만 가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은 어디에서나 있고, 봄은 적어도 지금이 그 때라고 생각했다.

“쫄았냐?”

“뭐?”

“그 일이 불러올 위험이 커?”

“좀 커.”

“못 막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러면 뭐가 문제야. 하고 싶었고, 계획도 있고, 어쩌면 막을 수도 있잖아. 무언가 더 말하려는 현의 입보다 빨리 열려서 내뱉은 말은 그랬다. 사실 그들이 학교를 자퇴하려고 했던 것은 히어로 활동 때문이었으니 분명 불러올 위험의 종류는 뻔했다, 누가 죽거나 다치거나 사고가 날 것이라고. 말을 내뱉으면서 어렴풋이 확신한 그 사실에 봄은 잠깐 다시 철회할까 고민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아마 걱정에는 이유가 없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그럼에도 하고자 했다면 그것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까지 끌어들였으면 나락을 가도 우리 같이 가야지.

봄이 말했고 현이 들었다. 마치 히어로를 하자고 이야기 꺼낸 것이 현이 아니라 봄이었던 것처럼. 입장을 바꿔서 무모한 생각이라고 내심 여겼던 그때처럼.

“현아, 우리 히어로나 할까.”

봄이 물었고

“그러자, 그러면.”

현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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