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솔부]별과 바다

“결혼식도 여기서 하자.”

 

별과 바다

Star and Sea

 

 

 

 

 

“또 그 책 읽어?”

 

한솔이 다른 손으로 굴리고 있던 것을 급하게 허벅지 밑으로 밀어 넣는다. 눈에 담기고는 있었던 문자의 나열에서 고개를 들자 이젠 신기해하는 눈빛이 보였다. 한솔은 책을 덮고는, 들키지 않았다는 걸 깨닫자마자 약간 멋쩍은 표정을 한다. 잠깐 시간 때우려고.

 

석민의 지프가 진흙 구덩이에 처박혔다. 심지어 어제 봤던 수상한 딱정벌레 군집지의 위치만 확인하기 위해 가볍게 갔던 거라 진흙을 퍼낼 마땅한 도구도 없었다. 석민은 가지고 있던 출입증 카드로 진흙을 파보려다 카드가 부러져서 털레털레 혼자 기지까지 돌아왔다. 미안하다고 시무룩해 하는 생태학자에게 크루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진흙이 가득 묻은 장화를 워셔에 넣은 승관이 어깨를 돌리며 그나마 승철이 형이 뒤늦게 와줘서 살았다는 말을 주워 올린다.

 

크레인으로 당기니까 그제야 올라오더라. 오후 늦게까지 민규를 도와 밭갈이 쪽을 도와주고 있었던 한솔은 저도 갈 걸 그랬다고 눈썹을 구긴다. 됐어, 너 있었어도 생고생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을 뿐이겠지. 네가 무슨 초인도 아니고. 1인용 침대에 풀썩 주저앉은 승관이 멋대로 한솔에게 등을 기댄다. 어깨에 머리를 올리고 거꾸로 쳐다보는 얼굴이 동그랬다. 너야말로 헤비토마토 모종은 어땠어? 자랄 것 같아?

 

N-17 기지는 오늘로 168일째 지상 탐사 임무를 수행 중이다. 지상 탐사 임무라고는 해도, 실제로 그 임무가 진행되기 시작한 건 만 두 달 정도쯤이었다. 꼬박 100일 정도를 기지를 설치하고 기본적인 배급로를 정하는 것에 할애했다. 예정보다 20일은 더 걸린 일이었지만, 어쨌든 끝마친 것만 해도 대단히 복합적인 행운이 작용한 결과였다. 기지의 설치 포인트까지 가는 중에 야생동물에게 습격당할 가능성은 60% 정도였고, 진화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할 가능성은 87% 정도였으니까. 무수한 불행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온 현재. N-17 크루들은 조금씩 조금씩 보고서를 채워나가는 중이었다. 다른 기지들과 마찬가지로.

 

서기 4026년. 승관과 한솔이 있는 곳은 휴식기의 끝을 맞는 지구다.

 

2000년대 후반, 우주 바깥에 정착할 수 있게 된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별에게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농사를 하면서 땅의 지력을 소모시키지 않기 위해 논이나 밭에 휴식기를 주는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지구가 망가지는 원인은 인간 때문이니, 인간이 발을 빼주자는 주장이었다. 전부가 옮겨갈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게 크나큰 문제였지만― 그래도 88%에 달하는 인구가 서서히 우주의 여러 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지구상에 남아있는 인간의 영역은 지난 1000년 동안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다시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러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냥, 별장 같은 걸 짓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준비를. 승관과 한솔은 그 사전 조사를 위해 파견된 크루의 일원이다. 고고학과 대기화학의 전문인력으로.

 

“아니, 6번 샘플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던걸.”

 

그래도 pH 비료를 뿌린 곳은 기적적으로 뭐가 올라와 있더라고. 토마토는 아니었지만.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질렀을 민규의 반응이 훤해서 승관이 웃어버리는 동안, 한솔이 허벅지 밑에 들어간 물체를 좀 더 교묘하게 밀어 넣었다.

 

pH 비료는 고가라서, 거기에서 무언가가 난다고 해서 윗분들이 제대로 공을 치하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개량품종 씨앗 자체가 토양에 적응해야만 하는 건데, 이론과는 다르게 영 성과가 나오지가 않는 게 문제다. 교신을 통해 다른 기지들에게 정보를 받을 때마다 민규는 물구나무를 섰다. 여기만 안 되는 거면 자기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는 반증이라도 되는데 그런 게 아니라서. 이제 민규의 목표는 식물학자의 위대한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운동선수의 것과 가까워졌다. 내가 절대로 싹을 내고 만다. 1000년 동안 떠나있던 지구 토양과 1:1 승부, 뭐 그런 분위기로.

 

‘현지’와 이야기하면 좀 더 빨리 풀릴지도 모르는데. 그러려면 일단 교섭을 하러 간 정한과 지수가 성과를 들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제도 메세지를 받았으니 빠른 시일 내에 목이 붙어있는 채로 돌아오기는 하겠지만, 아마 민규가 애타게 기다리는 보고서를 받으려면 그것보다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슨 얘기냐면,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 헬프 요청에 시달리던 둘에게 드디어 계속 미뤄왔던 데이트를 할 만한 시간이 생겼다는 뜻이다.

 

한솔이 그때까지도 들고 있던 책이 침대 옆의 탁자에 놓였다. 표지를 힐끔 쳐다보자 자세를 바꿔 승관을 뒤에서 안듯이 끌어온 한솔이 저녁 식사 여부에 대해 묻는다. 끌어안긴 승관은 입을 비뚤게 했다. 대체 무슨 책이길래 틈만 나면 저렇게 읽고 있지. 되게 수상하다는걸 알고나 있을지.

 

많은 갈피와 밑줄이 그어져서 너덜너덜한 책의 표지에는 승관은 읽기 힘든 고대어가 쓰여있다. 아마 공용어가 등장하기 전의 문자 같았는데, 저번에 물어봤더니 한솔은 무슨 일인지 그 제목을 읽어주는 걸 난감해했다. 학술지라기보다는 흥미본위로 읽는 책이라나. 그런 것치고는 그가 그 책을 끼고 있는 시간이 길었다. 읽은 부분을 다시 읽고, 메모도 하고, 뭐 그러는 것 같았다. 꽤나 진지하게.

 

고고학자이니 고대어가 적힌 책을 읽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메모를 하거나 반복해서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알고는 있지만― 어쨌든 태도였다. 지구에 도착한 뒤부터 이 우주인은 승관 몰래 하는 일이 늘어났다. 뭘 만지고 있다가 숨기거나, 비장한 얼굴로 허공을 노려보거나, 크루들과 쑥덕대다 승관이 가까이 오면 무슨 구두 밑창을 먹고 사는 지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척을 하거나. 아니. 작작 수상해야지. 사실은 티 내고 싶은 게 아닐까 싶을 수준이다.

 

책이라고 해도 그랬다. 언젠가는 훔쳐서 읽어보려고 했었는데, 한솔은 노련하게도 메모조차 고대어로 써놓은 데다 글씨체가 너무 나빠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되어있는 낙서 중에 알아본 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래서 승관은 그 책이 고대의 종교에 관한 내용이겠거니 넘겨짚고 있다. 잔뜩 부산스럽게 굴면서 왜 고대의 종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책은 상관없나?

 

“너랑 안 먹었는데 무슨 저녁을 먹어.”

 

조금 꾸물대서 좀 더 안기기 쉬운 자세가 된 승관이 폭 소리가 나게 등을 기댄다. 어쨌든 의심암귀를 기르기에는 기지에서의 생활이 녹록치 않다. 새초롬해진 얼굴에 웃음이 터진 한솔이 돌아오자마자 씻느라 물기가 덜 마른 머리를 장난치듯 손으로 흐트러뜨린다. 밖에서 먹고 들어왔나 했지. 오후 1시에 다 같이 나가서, 들어올 때가 되어서는 6시가 꼴깍 넘어가고 있었으니까.

 

같이 나가기로 했잖아. 설마 잊은 거냐면서 눈을 세모꼴로 뜨기에, 한솔이 그럴리가 있겠냐는 듯 눈썹을 내린다. 다 식당으로 직행했는데 나만 온 거라고. 약속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일주일 동안 승관에게 긴급업무가 쏟아져서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었던 약속이다. 분명 저녁 약속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물론 그냥 나가서 먹자는데 지나치게 긴장한 얼굴을 했던 걸 기억해보면 뭔가 다른 게 있는 제안이었겠지만. 한솔은 침음을 흘린다.

 

"아니야? 난 당연히 먹는 약속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솔이 변명을 생각하듯 눈을 굴린다. 너 눈 뭐야? 설마 먹었냐고 치켜떠지는 눈에 한솔이 결국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삼켰다. 4시쯤에. 근데 완전 더 먹을 수 있어.

 

“4시?”

“민규 형이 먹어야 한다고 우겨서― 저번에 명호 형이랑 지훈이 형이 밖에서 구해온 이상한 코코넛 비슷한 거 있었잖아. 그거.”

 

먹어본 결과, 그 ‘이상한 코코넛 비슷한 것’은 코코넛인걸로 판명되었다. 샘플을 보냈더니 기지를 세운 지 이제 2년이 되어가는 S-5 기지(북반구는 N, 남반구의 기지는 S를 쓴다)에서 식용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승관이 그냥 코코넛이라고 말해줬던 것 같은데. 영 민규가 아는 것과도, 한솔이 아는 것과도 다르게 생겨서 불신했더랬다. 명호와 지훈은 원숭이가 깨 먹고 있는 걸 발견해서 연구용으로 몇 개 들고 왔던 것에 불과하지만, 민규는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거면 먹어봐야 한다고 우겼다. 배탈 나면 내가 책임질게. 비장하게 그렇게 말하며 칼을 들길래 거부하기가 껄끄러웠다. 그래도 승관과 먹을 저녁이 들어갈 배는 남겨뒀다. 아니, 정말로.

 

그럼에도 한솔의 애인은 삐뚜름한 얼굴을 했다. 코코넛을 어떻게 먹었는데. 눈치를 보던 한솔은 그냥 볶음밥에 넣었다는 말을 흐렸다. 아니, 코코넛을 왜 거기다 넣어? 승관은 경악할 일이었지만 한솔은 안되냐는 얼굴이었다. 적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평범하게 그랬다고 해서. 그건 몇천 년 전 이야기냐는 말에 질타가 들어있어 고고학자가 머쓱해진다. 그보다 몇 천 년 전 사람들도 평범하게 즙으로 먹었을걸. 하여간에, 이래서 우주인들은.

 

‘지구인’의 입장에서, 코코넛을 볶음밥에 넣어 먹는다는 건― 모르겠다. 적어도 승관은 그런 식으로 코코넛을 먹어 본 적은 없다. 오일을 낸 것도 아니고 과육을 썰어서? 별맛도 없었을 텐데. 그래도 한솔은 리플리케이터로 만든 코코넛 과육이랑 맛은 비슷했다고 말했다. 좀 더… 싱겁고, 이게 바로 자연의 맛이구나 싶게 슴슴했지만. 승관이 고개를 젓는다.

 

어쨌든, 우주인들은 리플리케이터로 만든 인공 음식 대신 진짜 음식을 먹어보는 것에 지나친 로망을 갖고 있다. 농축산업으로 행성을 한 번 망가뜨린 인간들이 분자 단위로 물질을 재정립해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발명한 대신, 지력과 자연을 착취하는 ‘진짜’ 농축산물의 가격을 미친 듯이 올린 지 몇백 년이 흘러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승관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겨우 코코넛 볶음밥 따위를 만들어 먹겠다고 칼을 들고 설치는 우주인들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일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기본으로 배치되어있는 리플리케이터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느꼈던 문화충격을 생각하면 더더욱이었다. 염도와 당도에서 감칠맛까지 조절할 수 있는 신비의 기계를 놔두고 성공확률이 왔다 갔다 하는 진짜 요리 따위를 먹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뭘까.

 

뭐, 민규는 식물학자고, 한솔은 고고학자니까. 지구의 코코넛이 궁금할 수도 있지. 말했듯이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런 건 지구인들과 우주인들의 문화차이 같은 것이었다. 우주인은 지구인들을 부러워하고, 지구인들은 우주인들을 부러워하고, 기타 등등.

 

“그럼 대충 캡슐이나 먹고 말자.”

 

팔을 풀고 침대에서 내려가는 승관의 얼굴이 아주 냉랭하다. 한솔은 기겁해서 턱을 집어넣었다. 이런. 안 되는데.

 

한솔은 정말 배가 아직 안 찼다고 나름대로 불쌍한 목소리를 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즙을 대충 먹어본 것도 아니고 볶음밥? 이건 배신이다. 같이 밖에서 먹을 저녁이 미뤄진 지 일주일인데. 둘은 어쨌든 지구에 놀러 온 것이 아니었고, 오지를 탐사하는 임무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 와중에 드물게 무슨 각오 같은 걸 세운 얼굴로 나가자고 하길래 승관도 미뤄진 일주일 동안 별생각을 다 했었는데. 막상 나갈 수 있게 된 날에 앞질러서 배를 채우다니, 애인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고 어쩌고저쩌고.

 

이제 7주년이다. 날짜를 세어가며 설레할 만한 기간은 지났지만, 아직 이런 일에 대놓고 삐질만한 연차는 되었다. 혹시 아닌가? 승관은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한 성정이라 툭하면 삐지고 분노를 터뜨려 제 애인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런 제 성향 때문에 특히 주눅이 들어있던 적도 있었으나 그런 고비는 사랑의 이름으로 전부 넘어온 다음이었다. 정말로 약통 케이스를 열어서 대체 캡슐을 찾는 승관의 뒤에서 한솔이 안절부절못한다. 승관은 입꼬리를 제어하려고 입 안쪽을 살짝 깨물다가도, 태도에 약간 의문을 품었다. 특히 더 저러네. 역시 뭔가 있나.

 

지상 탐사 임무 같은 것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을 때도 뭔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지구에 발붙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평소보다 5배는 더 가시가 돋아있는 승관을 배려해 평소보다 얌전하게 굴던 한솔이다. 승관이 보기에는 그건, 아마 정당한 행위였다. 한솔이 아니었다면 승관이 고향 행성으로 되돌아올 수도 없었을 테니.

 

승관의 애인은 하여튼 지구라면 환장을 하니 지상 탐사 임무를 받은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만난 첫날에 거의 다 고친 줄 알았던 억양을 듣고 지구 출신이냐고 묻는 바람에 호감도가 마이너스 6천을 찍었던 사람다운 일이랄까. 내밀어진 캡슐을 받는 대신 필사적으로 불쌍한 얼굴을 한 지구 전문가 우주인이 손을 잡아 온다. 밖에서 샌드위치 먹으면 안 될까? 진짜 멋있는 벼랑이 있다던데.

 

진짜 멋있는 벼랑이라니. 입꼬리를 제어하는 것에 실패한 승관이 또 어떤 벼랑이냐고 실실대는 소리를 내고 만다. 연애 초기에 비하면 애교 따위가 늘어난 건 맞는 일이지만, 방금 것은 확실히 뭔가 노리는 것이 있는 말투였다. 순영이 형이 저번에 산책 나갔다가 봤대. 바다가 보인대서, 승관이 본격적으로 입꼬리를 내린다. 바다?

 

그 와중에 눈이 참 초롱초롱한 게 지구의 고대 드라마 얘기를 할 때보다도 간절해 보였다. 어느 정도 기지가 자리잡히자 꽤나 망아지마냥 근처를 돌아다녔다는 건 알았는데.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나. …그나저나. 바다라.

 

“얼마나 걸어야 하는데?”

“찬이가 지프 써도 된대.”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는 데 지프를 쓰자고? 각을 그리는 눈썹에 한솔이 더 불쌍한 눈을 한다. 아니, 이런 걸 대체 어디에서 배워가지고. 물론 출처가 자신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승관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솔직히 배고프다. 진흙을 삽으로 퍼내다가 구호에 맞춰 차를 미는 일을 몇 시간 동안 했으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상태였다. 뭐라도 빠르게 먹고 싶지만……. 눈을 돌리자 여전히 되도 않게 팔자눈썹을 하는 애인을 들여다보던 승관이 그냥 선심을 쓰기로 했다. ―그래 뭐. 가고 싶으면.

 

“아싸. 완전 사랑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아싸 같은 말을― 아니, 됐다. 샌드위치 만들러 가자.”

 

아까 남은 코코넛을 써도 되녜서, 리플리케이터로 만들 거라고 못을 박은 승관이 먼저 몸을 돌린다. 언제 그걸 까서 썰고 앉았어. 배고프다는 성질에 업고 뛰어도 된대서 어깨를 찰싹 친다. 승관이 성질을 부리면 한솔은 덤덤하게 주책을 부린다. 그런 사랑스러운 패턴 하나하나가 유지된 지 7년이 되었다니. 승관은 그게 요즘 들어  새삼스럽고, 그럴수록. 사실은 바다를 마주하는 게 두렵다.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승관은 한솔이 슬쩍 주머니에 챙기는 물건을 보지 못했다. 빨리 가자는 듯 손을 잡아끄는 것에 웃음을 터뜨렸을 뿐.

 

 

 

 

 

***

 

 

 

 

 

지구의 바닷물은 짜다. 승관은 새삼스럽게 공기 중의 염분을 들이쉬었다.

 

샌드위치는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해치웠다. 지프를 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차로 거의 30분가량을 달렸다. 순영이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발견했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는 위치였다. 차라리 지질학자인 승철이 벼랑의 단면을 기록하려고 애써 찾아냈거나, 한솔이 본업을 하려고 돌아다닐 때 발견했다고 하는 게 더 그럴듯했다. 굳이 그럴듯하지 않아도 아마 100% 후자겠지만. 진실대로 말했다간 승관이 거리를 짐작하고 발을 뺄 걸 걱정했던 거겠지. 덕분에 승관은 굶어 죽을 뻔 했다. 과장이지만.

 

그래도 바다는 좋았다. 너무 좋을까 봐 좀 두려웠던 과거가 정당했을 만큼.

 

이런 느긋한 마음으로 지구의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승관의 고향은 지구인들의 거주지가 대부분 그렇듯 온대 기후인 곳이라서, 이런 적도에 가까운 열대지방의 바다는 처음이기는 하다. 같은 행성인데, 이곳의 바다는 특별히 더 푸른 것처럼 보였다. 달빛이 특히나 환하다. 한솔이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승관을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승관처럼 순식간에 먹어 치우지는 않았지만, 한솔도 제 몫의 샌드위치는 해결했다. 볶음밥이라고 해봤자 한 그릇을 먹었을 뿐이니 정말로 승관과 함께 먹을 양 정도는 남아있었다. 일부러 샌드위치를 도합 4개나 만들었더니 만드는 당시에는 승관이 눈을 흘기긴 했지만, 어쨌든 한솔은 디저트가 들어갈 공간까지 여유롭게 남겼다. 네 소화 기간이 언제까지나 10대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한마디를 한 승관이 벼랑의 끝에 걸터앉는다. 오지의 절벽에는 울타리조차 없었다. 눈을 감으니 고향의 바람이 머리를 쓸고 지나간다.

 

“어쩌다가 이런 데까지 온 거야?”

 

질문은 새삼스럽다. 이미 지프 안에서 어디까지 가는 거냐고 서른 번 정도 물어본 다음이니까. 혹시 납치하는 거야? 20분을 넘어서서는 진지하게 그렇게 물었을 정도이니, 어쩌다가 이런 곳까지 당도했는지 묻는 건 온당한 일이었다. 겁도 없이 옆자리를 꿰어 앉은 한솔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그냥. 근처에 볼 게 있었거든.

 

이런 오지의 벼랑에 '볼 것'이 있었다니. 직업을 생각하면 정말 수상하기 짝이 없다. 승관은 손을 깍지 껴서 단단히 잡고는 습관처럼 어깨에 몸을 기댔다. 추궁하며 싸우기에는 바다가 아름답다. 단지 인간이 몇백 년을 떠난 것으로 천천히 자가 치료를 하는, 천혜의 별.

 

넌 꼭 바다를 닮았어. 감상에 잠기자, 어느 날에 들었던 고백이 떠오른다.

 

승관은 저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봐서야 진심을 알았다. 그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좀 두려워하는 목소리였다. 관계의 변동을 두려워하는 우주인이, 예민한 지구인에게 사랑을 전하는 법이란 얼마나.

 

“넘어가면 네 고향이 있을까?”

 

한솔이 불쑥 말을 꺼낸다. 역시 습관처럼 어깨에 기댄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손이 익숙했다. 기분이 좋아서 눈을 감았더니, 뾰족한 말 대신 저도 놀랄 만큼 다정한 목소리가 나간다. 바다니까. 가다 보면 나올지도 모르지.

 

아마 나오지 않을 것이다. 위치상 바다를 갈라서 승관의 고향까지 가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항해를 해야만 한다. 전송 기술로 가면 되는데 뭐 하러 바다를 가르냐는 문제도 있고. 그렇지만 한솔은 발언에 신경 쓰고 있고, 승관은 점점 파도 소리가 주는 어떠한 감상에 조심스레 발을 담그고 있었다. 파도의 냄새가 과거를 부른다. 승관은 어렸을 때, 바다로 나가면 어디든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새로운 곳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단다. 그러니 우주에 갈 필요는 없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지 말아라.

 

“정한이랑 지수 형, 내일이면 올까?”

 

파도 소리가 벼랑에 부딪혀 둘을 떨리게 한다. 승관은 모래로 이루어진 바다도,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기체가 만들어내는 비슷한 소리도 경험했지만. 모든 것이 지구의 바다와는 전혀 똑같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영혼에 새겨진 것처럼 맴도는 물과 기포소리. 한솔은 그런 승관을 내려다보다가, 낯선 바다의 어드메를 본다. 아마도.

 

현지는 N-17 기지의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더 넓혀도 좋았다. ‘지구인’은, ‘우주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조들을 버린 배신자들은 원했던 대로 우주에서 먼지가 되면 된다. 어떻게 감히 이곳을 고향이라 부르는가.

 

시대는 점점 바뀌고, 따라서 교류가 꽤나 원활해졌지만. 아직 고지식하신 연로한 분들이나, 극단적인 사람들은 지구 곳곳에 있는 이런 기지들에게 일종의 테러를 하기도 한다. 정한과 지수 같은 특사는 그들과 기술 교류나 거래를 통해 프로젝트의 안정을 꾀하는 역할을 맡았다. 기지들의 목적은 원시로 천천히 시간을 되감은 곳들을 조사하는 것이니 지구인들이 사는 도시들하고는 거리가 있어서, 한 번 나가면 꽤나 돌아오지 않지만.

 

우주로 가는 것은 돈이 드는 일이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고 들었다. 파도 소리를 듣느라 감겼던 승관의 눈이 열린다.

 

대이동 시대에 지구에 남겨져 버린 사람들은 척박하고 망가져 버린 별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남아야만 했다. 우주개발에 바쁜 인간들은 그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그들을 덜떨어진 야만인 취급했다. 도망친 자신들은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여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이고,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별을 계속 망가뜨리는 해충이다. 인력은 우주와 지구 둘 모두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양쪽의 싸움은 처절했다. 편 가르기, 프로파간다, 악마화, 정치질― 모두 인간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하이라이트였다. 승관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과서를 읽고 자랐다. 서로 등을 돌린 인간들.

 

우주에 나와서 본 역사는 좀 달랐다. 초반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갈수록 이주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있었고, 우주에서는 끊임없이 교류를 시도했으며,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승관은 우주인이 되고 싶어 지구를 떠났는데도 그 문장들이 가소롭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런 회유를 한다고 해서 이미 버려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무슨 보상이 된다는 말인가? 기만질을 해놓고 참 당당하게도 찌끄려놨구나 생각했지만, 아마 우주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과서를 읽고 자랐겠지. 그리고 지구인들은 고집불통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승관이 우주인들은 오만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어디까지가 왜곡되었고 밝혀졌는지 그저 추측만 해야 하는 먼 이야기였다. 기록이 남아있어도 그것은 글자일 뿐이다. 맥락과 의견에 따라 잘라서 갖다 붙이면 되는.

 

“별일 없을 거야.”

 

한솔은 무심하게 그런 말을 툭 내놓았다. 승관은 지구인들을 안다. 그는 우주인이 되고 싶었지만 지구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냥 우주인보다 배신한 지구인의 쪽이 선입견이 심할 수 있어 특사 역할은 하지 못했다. 혹시 현지인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정한과 지수는 수완이 좋고 이미 몇 번 교류를 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거 알지만― 그리고 자신이 지구 안에서도 특히 극단적인 성향의 공동체에서 자랐고, 오랫동안 이어진 변화의 바람으로 이제 웬만한 곳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알지만. 소금 바다의 냄새를 맡으면.

 

손등을 쓰는 엄지가 생각을 가라앉힌다. 웃기는 일이다. 그런 제스처 하나로 평생 되찾지 못할 것 같았던 안정감이 든다는 것은.

 

“진짜 왜 여기까지 왔어?”

 

졸려졌다. 불안함은 예민함의 기초 같은 것이다. 승관은 자신의 성격도 성향도 지나치게 잘 알아서 문제인 사람이었다. 그의 불안은 늘상 함께하고 또한 과장되어 있다. 신경 써봤자 손해였다. 바다 대신 졸려서 감기는 눈을 보던 한솔이 헛기침을 한다. 물어보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에 잠이 깬다.

 

좀 가면 동굴이 있어. 돌려 말하는 대신 나온 진실에 승관이 기대어있던 몸을 일으켰다. 동굴? 진실이라고 해도 영 뜬금없는 단어였다. 고고학자가 동쪽의 어느 곳을 가리키자, 그곳에 밧줄이 있었다. 반중력 말뚝에 메어져 벼랑 아래로 늘어뜨려진.

 

그걸 얼마간 보던 승관은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뿐이니 너무 늦게 들어가면 수색대가 편성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고단한데 그런 수고를 끼칠 수는 없었다. 거리도 꽤 되니까 한 시간 안에 출발하지 않으면 아주 큰 민폐를 끼치게 될 테고, 이 이상한 부분에서 낭만적인 고고학자가 준비한 게 무엇인지 아직도 감이 안 온다. ―하지만 동굴이라니?

 

한솔은 승관을 잘 알았다. 한 번 뭔가가 신경 쓰이면 확인하고야 만다. 바쁘게 돌아가는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의 머리를 지켜보던 7년 차 애인이 다시 엄지로 손등을 쓸었다. 가볼래? 얼마 안 걸릴 거야.

 

“하지만… 해도 다 졌는데.”

“지프에 부유등 있으니까.”

 

찾으러 나올 게 불안하면 연락 넣어놓고 가자. 입을 비뚤게 틀었던 승관은 다시 바다를 본다. 파도 소리는 끈덕졌다. 멀리 달아나고 싶었지만 떠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언젠가의 셔틀 정거장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게.

 

위험하지는 않냐는 말에 훈련받은 대로만 하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지구의 중력에 적응하기 위해 클라이밍과 하이킹 훈련을 기본적으로 받았다. 여담이지만, 인간 거주 구역들은 모두 기준 중력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 중력의 기준은 지구에 맞춘 것이니 다들 이런 걸 굳이 왜 하는지 싶어 했다. 오직 승관과 한솔만이 꽤 진지하게 그 훈련에 임했다. 승관은 우주선에서 한 발자국을 내딛었던 순간을 잊지 못했고, 한솔은… 승관에게서 들었으니까.

 

기준 중력 같은 건 허무맹랑한 단어다. 소수점 서른 자리까지 조정한 인공 중력은 인간 과학 역사의 수치였다. 다들 지구에 도착하고서야 선조들의 별이 가진 추상적인 '느낌'을 체험했다. 신중했던 승관을 제외한 모두가 내린 순간 휘청대고 거꾸러졌다. 심지어는 한솔마저.

 

어쨌든, 그런 연유로 하이킹 훈련을 열심히 받은 승관이 밧줄에 의지해 벼랑을 내려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안전하게 내려가려면 아예 간이 중력 발판을 꺼내는 게 낫겠지만,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지구의 자연에 무슨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너무 최신의 기술들은 자제해야 한다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러나저러나 벼랑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은 10분도 걸리지 않을 터다. 이미 아래로 내려가 본 한솔이 도와주면 더 빠를 수도 있고.

 

“동굴 안에 뭐가 있는데?”

 

승관은 이미 일어났다. 한솔은 뒤늦게 일어나서는 앞장서서 지프로 걸었다. 대답 대신 침음이 있고, 트렁크에서 장비가 꺼내진다. 근처 수풀에서 야생동물이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한솔은 지질학자나 환경학자가 아니다. 이 지구에서 최한솔이 일부러 찾아다닐 만한 동굴이란 안에 무언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배웠던 벽화 같은 게 있으려나? 아니면 무언가의 뼈라든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야. 대이동 시대 전후의 것이래서 승관의 입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 추측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알고. 말하면 재미없어진다며 허리에 꼼꼼하게 고정대를 둘러준 한솔이 부유등도 꺼내고는 로프를 고정시킨 곳까지 걸었다. 승관은 그냥 등을 따라가고.

 

벽화나 유골이 아니라면 뭐가 있다는 거지? 둘이 현재 있는 곳은 코스타리카라고 불렸던 열대기후의 중앙아메리카고, 한솔은 비는 시간이 있으면 틈틈이 대이동 시대 이전 문화양식의 잔재를 찾을 거라고 했다. 열대우림 지역은 환경재앙에 직격탄을 맞아 이르게 인간들의 발길이 끊긴 곳이라 아이러니하게도 보존된 유적이 많다. 그럼 아래에 있다던 동굴도 그런 종류려나. 그래도 동굴 안에 뭐가 있다는 건지. 그때쯤에는 인간들이 굳이 동굴에서 뭔가 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하강은 빨랐다. 딱히 한솔이 도와줄 필요도 없었을 정도였다. 승관은 알아서 고정대에서 로프를 풀어내고는 새삼스럽게 절벽을 올려다봤다. 생각보다 높아서, 어떻게 올라갈지가 걱정되어 그런 거였는데. 한솔이 내려오는걸 보고 있자니 그런 걱정은 쏙 들어갔다. 자기도 똑같이 했던 것 같은데 잘생겨서 그런지 오래된 고전을 떠올리게 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미남이라.

 

“좀 걸어야 해. 미안하지만.”

 

연락은 승관 했다. 데이트 잘하고 오라는 답장을 받았는데, 새삼스레 부끄러워서 플립패드를 일부러 소리나게 닫아버렸다. 그런게 부끄러울 연차는 절대 아니었지만, 아마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 거겠지. 원우의 말도 놀리는 게 아니라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냥 일로 만난 사람들이긴 했지만, 구성원들이 좋은 사람들인 건 행운이었다. 제가 지구에 돌아와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정해져 있던 승관이 꽤나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까.

 

파도 소리가 훨씬 가까워졌다. 가볍게 신고 왔던 신발에 모래가 흘러들어오자 승관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그에 반해 한솔은 승관이 하는 것을 보아서야 신발을 털어대는 걸 멈추고 저도 그걸 벗어들었다. 인간이 사용한 플라스틱들이 곱게 갈아진 모래들은 꼭 극지방의 오로라 같은 색을 낸다.

 

승관의 고향에도 이런 해변이 있었다. '있었다'기보다는, 이런 해변 자체가 고향이었다고 봐도 좋았다. 오랜만의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녹은 푸른색에 새가 섞이고, 바람만이 그들을 띄우네…….

 

지구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건, 지금 생각하면 그저 사춘기의 반항이었을지 모른다.

 

그때는 제 결정이 모두 옳은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이야 다들 그렇지 않나. 승관이 나고 자란 마을은 우주와 우주인들에게 모두 지나치게 배타적이었고, 지금에서야 지구의 모든 곳에서 브로드캐스트되는 은하 방송조차 들을 수 없었다. 어린 승관은 해적 방송을 훔쳐 들으며 작은 지구와 너무나 큰 우주에 대해 상상하고는 했다. 승관에게 어른들은 그 커다란 가능성에서 저를 떼어놓는 무뢰한들이었고, 저는 그 무뢰한들에게 맞서는 혁명가였다. 모두가 우주에 나가면 지구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했다. 정확히는 그럴 생각도 하지 말라고. 승관은 차라리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절 가둬두었던 감옥에 제가 뭐 하러 돌아오고 싶겠어.

 

몰래 쳤던 아카데미 시험에서 합격통지가 날아오고, 짐을 꾸려 또 몰래 고향을 떠나올 때마저 승관은 희망에만 부풀었다. 이제 저는 우주인이 되는 것이다. 작고 볼품없고 촌스러운 시골의 지구인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더 크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우주인이. 저는 이제 바다가 아니라 별이 된다. 그것이 마치 성장이라도 되는 것 마냥.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그 결정에 대해, 승관이 어떻게 생각하냐면.

 

"손 잡을까?"

 

그냥 잡으면 되지. 굳이 물어보는 것이 한솔의 낭만적인 부분이라는 걸 안다. 승관은 마치 싫은데 너를 봐서 허락한다는 듯 새침하게 손을 내밀었다. 동굴이 있을 만한 것처럼 보이는 곳은 승관의 눈에도 보였지만, 한솔이 사과했듯이 좀 더 걸어야 한다.

 

저보다 조금 더 큰 손이 얹히자 승관은 앞서가던 걸음을 조금 늦췄다. 한솔은 보폭이 큰데도 맞춰 걸으려면 승관의 입장에서는 한참이나 느리게 걸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맞추는 것에 조금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빨랐던 걸음이 평소에도 충분히 느려진 걸 알 수 있다. 맨발 네 개가 속도를 맞춘다.

 

우리 처음 데이트 했을 때 생각난다. 일부러 파도가 닿을듯한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걸으며 승관이 이야기를 꺼낸다. 한솔의 웃음은 어딘가 울리는 곳이 있었다. 뭘 웃어? 첫 데이트를 완전 망쳐놓고.

 

“몇 번 말했지만. 난 망쳤다고 생각 안 하는데.”

“지구인을 지구 박물관에 데려가서 파도 체험 같은 걸 보게 했잖아.”

 

하긴, 울었던 건 나니까. 망친 건 네가 아니라 난가. 가벼운 목소리에 한솔은 일부러 손을 좀 더 힘주어 잡았다. 승관은 그걸 모르는 척 하고는 새삼스러운 목소리를 입에 담는다. 그게 벌써 7년 전이라니. 진짜 이상하다.

 

만나자마자 무슨 기류가 흘렀던 건 아니다. 승관은 처음부터 저에게 지구인이냐는 망발을 했던 한솔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한솔은 오해를 무마하려고 했지만 천성 상 그런 것에 서툴렀다. 관계가 개선된 덕은 반반 정도 있었다. 서툴렀지만 최선을 다한 한솔이랑, 싫었지만 그렇게 묵묵히 관심을 추구하는 애를 무시하지 못했던 승관. 50대 50.

 

길게 친구로 지냈지만. 졸업할 때쯤에 고백을 받았다. 승관은 한솔과 지내는 동안 자신이 드디어 우주에 적응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가, 졸업 직전에 혼자 다녀왔던 우주여행에서 그것이 어이없는 착각이었다는걸 깨달았다. 한솔이 없는 우주는 그저 거북할 정도로 낯설고 두려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발붙이지 못한 낯선 중력은 아카데미에 도착했던 첫날처럼 여전히 승관의 발밑에 존재했다. 단지… 자신의 주위에 다른 별이 있었으므로, 그 새로운 중력에 편안함을 느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은 승관이 자신의 별에게, 한솔에게로 돌아오고 나자 더더욱 확실해졌다. 누가 먼저 고백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말을 한 건 한솔이지만, 승관이 먼저 보챘었던 것도 맞다. 승관은 그냥……. 제가 보챈 건 맞았지만. 사실 그런 문장을 고백으로 고를 줄은 몰랐다. 첫 데이트 때 가게 됐던 박물관도 마찬가지였고.

 

그 데이트에서 인공 파도를 앞에 둔 승관은 저도 모르게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화장도 공들여하고 머리 세팅도 2시간이 걸렸었는데 전부 흉해졌다. 그리고 한솔은, 그 흉한 얼굴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노래 계속 불러줘."

 

맨발이 빠지는 오로라 빛 모래에 발자국이 남았다. 승관은 제 애인을 흘기는 대신 그냥 혀 끝으로 나오는 가사를 더듬었다. 잘 기억나지 않아서 거의 허밍뿐이었지만. 한솔은 길을 안다는 이유로 눈을 감았다. 파도에 섞이는 이 음색을 듣기 위해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가. 지구의 노래는 고고학 자료에 있던 것들보다 훨씬 생생하고 아름답다. 객관적으로도 그런지, 제가 그걸 담아내는 목소리를 사랑해서 그런 건지. 솔직히 구분은 안 되지만.

 

동굴이 가까워진다. 절벽이 깎여 만들어진 해안 동굴은 안쪽까지 바다가 들어차 있었다. 한솔은 바지를 걷고 들어갔는데, 승관은 눈을 가늘게 하고는 좀 망설였다. 젖는 거 싫어? 가볍게 물었더니 승관은 그게 아니라, 하고 말을 떼었다.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바다 앞에서 사는 지구인들은 바다에 대해 철저하게 배운다. 천혜의 자연이 인간들을 밀어내는 데에 전력을 다하게 된 것이 채 1000년이 안 된 이야기였다. 여기는 인간들이 살지도 않는 오지라 관리도 안 했을 텐데. 바다 거머리라고 알아? 웃어버린 한솔이 등을 돌린다. 그럼 업히자. 7년 된 애인의 주책에 눈이 더 가늘어진 승관이 그냥 바지를 걷는다. 진심이었는데. 눈썹을 까딱이자 맨발이 소금물에 잠겼다. 됐으니까 가.

 

찰박이는 물소리가 동굴 벽을 따라 울린다. 얼마간 들어가자 한솔이 켜서 띄운 부유등이 뒤에서 둘을 따라왔다. 20m쯤 들어가자 다리가 나온다. 정확히는 물을 안 밟을 수 있도록 설치해놓은 길이.

 

"여기서부터 유적 취급해야 하니까, 되도록 뭐 부수지 말고 가자."

 

내가 우주문어냐? 그냥 걷는데 뭘 부수게. 투덜대면서도 한솔을 따라 판자에 올라가는 발이 조심스럽다. 몇 년 전 유적인 거지? 그냥 '대이동 시대 전후'라고 하기에는 너무 범위가 넓다. 확실히 벽화나 동물 뼈가 있는 곳으로 보이지 않기는 했다. 너 여기 보고서 썼어? 어차피 눈으로 보고 설명해줄 테지만, 보고서를 썼다면 나중에 읽어볼 생각으로 물어본건데. 한솔이 침음을 냈다. 아직 연구 더 해야 해. 내가 발견한 게 아니라서.

 

이 논문도 나왔고 연구도 활발하게 되고있는 유적이라, 한솔이 뭔가 쓰려면 좀 더 공을 들여서 이것저것 봐야 한다. 무슨 유적이길래 이미 연구가 활발하게 돼? 평범한 해안동굴에 고고학자들이 그리 관심이 많을 줄 몰랐다. 한솔은 웃긴 이야기라도 들은 듯이 깔깔댔다. 평범한 해안동굴이라니.

 

앞쪽에 길이 끊긴다. 승관은 동굴 벽을 깎아낸 통로 앞에서 안쪽을 기웃댔다. 부유등이 뒤쪽에 있어서 그림자가 지는 바람에 더 보이지가 않는다. 잔잔한 웃음을 띤 한솔이 쇼맨십이라도 보여주듯 부유등을 조작해 앞으로 보냈다. 저희보다 앞서서 뽈뽈대며 이동하기 시작한 부유등이 비추는 통로에 승관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뭐야?"

"뭘까."

 

아까 업히라고 했을 때 풀렸던 손을 다시 잡은 한솔이 이끌듯이 먼저 걸음을 옮긴다. 부유등이 비추는 통로의 사방에서 벽화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뭐야, 진짜 보석들이야? 눈이 돌아가게 화려한 그림들 때문에 정신없이 시선을 돌리던 승관이 아예 비상용으로 가져온 손전등을 꺼낸다. 제가 비춘 그림들이랑, 앞선 부유등이 비추는 그림들을 보던 승관이 문득 그림들의 정체에 대해 깨달았다. 아.

 

"인공 오존층이 생기기 직전에 만들어진 곳이야."

 

직전이라고는 해도 100년쯤 간격을 두기는 하지만. 갉아 먹히다 못해 지나치게 얇아진 오존층 때문에 인간들이 태양 빛을 피해야만 했을 시절의 이야기다. 거대한 돔을 짓고 모두가 차단막을 쓰고, 피부암이 만연하던 시대.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필요불가결한 시설들을 그늘로 대피시키기에 여념이 없던.

 

통로가 끝나자 거대한 공간이 나온다. 승관은 부유등이 비추는 거대한 십자가와, 그곳에 매달린 가여운 인간을 바라봤다. 부유등의 빛을 반사하는 수많은 스테인드글라스.

 

"동굴교회?"

 

아카데미에서는 전공이 무엇이든 역사는 필수교양으로 들어야 한다. 승관도 당연히 2800년대에 유행했던 그 문화양식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동굴교회의 '동굴'은 자연적인 게 아니라 대부분 인공적인 건물을 태양 빛이 안 닿는 굴처럼 만든 것들이지, 이런 식으로 진짜 해안동굴 안을 파서 만들었다는 의미가.

 

그래서 특별한 거야. 한솔이 걸음을 옮겨 입구의 벽에 있는 스위치를 올린다. 깜박대며 켜지는 전구들이 쌓인 먼지 때문에 뿌연 빛을 내는데도 교회 안을 전부 비추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일부러 태양 빛과 유사하게 만든 조명이 마치 동굴 천장에서 빛이 내려오는 듯한 장관을 연출했다. 승관은 천년이 넘는 시간을 지내고도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는 신앙의 공간에서 멍하니 서 있다. 이건 그러니까… 정말 예상 못했네.

 

"원래는 발굴팀이 시기마다 와서 작업하는 곳인데. 랜딩지 위치를 보냈더니 들러서 봐달라고 하더라고."

 

곧 있으면 우기라서 발굴팀은 모두 빠졌다. 둘이 들어왔던 통로는 말하자면 뒷문 같은 곳이라, 자재들과 후처리를 해놓은 입구는 다른 쪽에 있었다. 물론 그 화려한 성화(聖畵)들을 보존시키느라 고생해놓은 흔적들도 있었지만. 한솔이 오며가며 좀 정리했다. 목적이 끝나고 나면 다시 수고스럽게 돌려놓을 생각으로.

 

"교회를 보여주고 싶어서 온 거야?"

 

승관은 새삼스럽게 예배 공간을 채우고 있는 낡은 의자들과 대리석 바닥, 손상이 가지 않게 위에 유리를 덮어놓은 붉은 카펫들을 봤다. 보고 있으려니 한솔이 내내 읽던 그 수상한 책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던 게 생각난다. 여기 때문에 보고 있었나? 하긴, 이런 화려한 유적지는 좀 서프라이즈로 보여주고 싶을 만도 했다.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된 느낌이었는데. 한솔은 애매하게 침음을 낸다.

 

빛을 받는 마리아상이 교회의 중앙에서 자애로운 얼굴로 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인간들이 우주로 끝없이 뻗어나간 시대에도 신앙은 있었다. 몇천 년 전 사람들은 과학의 등장에 의해 종교가 빠르게 쇠퇴할 거라고 보기도 했다지만, 종교는 고난과 함께한다. 교양강의를 하던 교수는 인류가 제대로 된 안주라는 걸 찾기 전까지 신앙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승관도 어느 정도 동의했고.

 

그러나 이 교회가 지어졌을 때에 비하면 기독교가 쇠퇴한 건 맞는 말이라, 보통 인식으로 이런 교회들을 찾아다니는 건 옛 종교를 공부하는 고고학자들 정도였다. 지프로 30분만 가면 이런 곳이 있다는 걸 한솔을 제외한 기지의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았을 정도로. 조각을 만지자 위압감을 주는 서늘함이 손끝을 태운다.

 

그러고 보면 따로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향에서.

 

이렇게 화려하게 사치를 부린 곳은 전혀 아니었지만. 동네 외곽에 낡은 건물이 있었다.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라 몰래 우주에서 쏘아지는 해적방송을 들으려고 숨어들거나 했던. 낡은 연단의 뒤에 숨어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별에 대한 뉴스가 흘러들어오고는 했었다. 당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붕 첨탑에 십자가가 있었다. 인간들이 불가능한 소원을 빌던 곳.

 

매끈한 표면에 새겨진 주름을 만지작대는데, 한솔이 헛기침을 했다. 교회를 보여주고 싶은 건 맞았는데. 음.

 

"맞았는데?"

"저기. 승관아. 우리 만난 지 벌써 7년이잖아."

 

갑작스러운 서두에 승관의 눈이 단박에 가늘어진다. 한솔은 마른침을 삼키고. ―7년인데?

 

원래는 더 일찍 말하려고 했는데. 도착하고 나니까 너무 바빠서. 너도 나도 정신없었고. 적응이 덜 됐는데 나가자고 말하는 것도 좀 조심스럽기도 했고. 이런 식으로 서두가 길어지는 것은 최한솔답지 않은 일이었다. 의심스러운 승관의 얼굴에 비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긴장했다는 걸 알만하기는 했지만.

 

진짜 잠깐만. 승관이 한솔이 참담한 얼굴로 심호흡을 정리하는 동안 다시 마리아상을 본다. 장기임무라도 맡아서 가야 하나. 고고학자라고 무조건 발굴작업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되었을 때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끝나면 우주로 나가지 않고 다른 발굴 작업 같은 것에 참가하기 용이하려고 지원했나 하고. 우주에서 지구로 오는 건 절차가 복잡하니까.

 

지상 탐사 임무는 승관도 따라올 수 있었지만, 사실 본격적으로 발굴작업을 하는 현장에 승관이 따라가서 할만한 일은 없다. 승관도 승관의 일이 있어서 탐사가 끝나면 사실 우주에 있는 연구소로 돌아가야 하고. 만약 그런 걸 맡으려면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하겠지. 별로 달갑지는 않지만…….

 

이런 서프라이즈까지 하면서 저를 풀어놓고 할 만한 말이 많지는 않으니 그렇게 생각했던건데. 마리아상에서 눈을 돌리자 보이는 것에 승관의 뇌가 멈춘다.

 

"좀… 많이 생각했었거든."

 

근데 아무래도 여기가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쩍쩍 갈라진 목소리를 어떻게든 수습한 언어가 나온다. 마리아상 앞에 서 있으니, 둘 모두 천장에서 내려오는 광원을 받고 있어 그림자가 짙게 졌다. 한솔의 손에는 한솔의 속눈썹의 그림자가 보이고 있다. 그 그늘의 바깥으로 빛을 반사하는 금속이.

 

이게 뭔…….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이 귀에 들어오자 승관이 제 입을 막는다. 한솔은 오히려 그것으로 긴장을 풀어버렸다. 놀라게 해서 미안.

 

동공이 다 떨리는 게 지척에서 보일 수준이었다. ―힌트가 없었나? 아니, 힌트는 차고 넘쳤다. 지원할 건데 인원이 모자라대. 면접은 보겠지만 아마 같이 갈 수 있을 거야. 승관은 그러니까, 그게 제 향수병을 한솔이 신경 쓰고 있어서 했던 말인 줄 알았다. 거절하고 싶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결국 같이 가는 일이 되었다.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귀향선에서 승관은 혹시라도 고향 사람들이 저를 알아볼까, 알아보면 돌팔매질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노이로제에 빠졌고, 한솔은 그걸 케어해주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아니. 사실 그것 때문에 성심성의껏 승관에게 붙어있던 게 아니었나? 그게 아니라 올 때부터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이거 기독교에서 나온 풍습이라.”

 

승관의 손을 가져온 한솔이 꼭 맞춘 듯한 반지를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준다. 승관은 그 장면을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고 보고 있었다. 기독교.

 

그 책! 비명처럼 나온 소리에 한솔의 어깨가 놀라서 튀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낙서로 들어있던 그 책. 설마 그걸 읽고 있던 이유가. 그럼 그 고대어들이. 어쩌면 종교에 관한 게 아니라. 출처가 없는 어떤 배신감의 소용돌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얼굴을 보던 한솔이 머슥하게 뺨을 긁는다. 음, 그게.

 

청혼이다. 고대랑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어떤 풍습들은 관습화되어서 꾸준히 인간 문명에 남아있고는 한다. 프로포즈를. 지구에서. 교회에서. 마리아상 앞에서.

 

“이 교회, 현지인들은 iglesia junto al mar라고 한대.”

 

바다의 교회라는 뜻인데. 사료에 따르면 실제로 이 안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고는 했나 봐. 염도 높은 물에서 이 대리석들을 어떻게 부식시키지 않고 유지했을지가 미스테리지만. 로스트 테크놀러지랄까.

 

고고학자가 주절대는 쓸데없는 정보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승관은 아직도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있었다. 큐빅도 없이 매끄러운 금속. 손으로 반지를 감싸 승관의 시선을 돌려받은 한솔이 조금 웃는다. 운석으로 만든 거야. 혹시 무슨 반지인지 궁금하다면.

 

별의 조각으로 만든 반지. 드디어 승관의 입술이 제 앞니에 먹힌다.

 

“사실은 네 고향에서 주고 싶었어.”

 

하도 펜을 많이 쥐어서 마디가 툭 불거진 손을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럽다. 한솔은 사정만 허락한다면 정말로 그러고 싶어서 온갖 곳에 컨택을 넣어가며 방법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허가가 나거나 소원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몇 년이나 질질 늘어지기도 했고. 그런 폐쇄적인 공동체는 지구 안에서도 접근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상대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거라면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게 지상 탐사 프로젝트다. 적어도 지구에서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바다 앞에서. 승관이 멍하게 제 애인을 올려다본다.

 

“왜?”

 

내가 지구를 그리워해서? 청혼 같은 건… 특별한 곳에서 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굳이 지구까지 내려올 건 없다. 지상 탐사 프로젝트에 참가라도 안 하는 이상 우주인이 지구까지 들어오려면 들여야 하는 품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지구 박물관에서라도 하지. 첫 데이트 장소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반지를 끼워주는 것 보다는 훨씬 사정도 좋았을 텐데.

 

반지를 만져보는 하얀 손이 조심스러웠다. 그냥… 그리워해도 괜찮으니까. 그거 말해주려고.

 

항상 생각하던 것이 있다. 인공 파도의 앞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얼굴을 본 이후로. 정확히는 그 추억을 ‘실패한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승관을 보고 나서. 한솔이 숨을 들이킨다.

 

“네가 우주에 나온 게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거 알아.”

 

무언가가 내려앉듯 몸이 움찔 떨린다. 한솔은 좀 더 손을 꽉 쥐었다. 우주에 나온 게.

 

어렸을 때의 오기로 엄청난 짓을 했고. 그 결과로 승관은 지구를 잃었다.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하는 걸 알았지만, 특히 제가 나온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한솔의 앞에서는 더더욱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 걸 알았지만. 그는 지구를 그리워한다. 바다는 제가 발붙이고 있던 원시의 중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새 중력이 생겼어도 항상.

 

그게 한솔보다 지구가 더 좋다느니, 그런 유치한 결론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승관은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될까 봐 항상 조심했다. 한솔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고. 만약 지구를 버리지 않고 그곳에서 쭉 살아서, 한솔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면 어떻게 됐을 까라던지, 그런걸 생각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오해받기 쉬운 면이라는 것 또한 알았던 것이다. 승관은 한솔이 그걸 알면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워했다. 지상 탐사 미션에 대해 말했을 때조차 승관은 마지막까지 대답을 미뤘다. 갔다가 들켜서 돌팔매질 맞으면 어떡해. 투덜거리듯 말했지만 그가 항상 덧붙이는 말도 있었다. 나 거기 별로 안 좋아했어. 안 그리워. 안 가도 돼. 그런 말들.

 

“물론 나는 네가 실수를 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일 때문에 지구로 왔더라도 못 만났었을 테니까. 승관을 만나지 않았던 세계라니. 한솔에게는 재해와도 같은 일이다. 승관도 똑같이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비록 그런 확신을 얻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게 사랑이라는거 아닐까? 절대적인 어느 부분 만큼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확인하는 일.

 

이건 제가 확신하고 있다는걸 표현하는 행위기도 했다. 반지를 손가락으로 돌려보던 한솔이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눈은 너무 오래 깜빡이지 않아서 가장자리가 충혈되어 있다.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이어도 상관없어.”

 

지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도. 사실은 우주에 있는 매초가 두려운 사람이라도. 저보다 고향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라도. 한솔은 아무 상관없다. 모든 것이 그저 승관이라면.

 

한솔은 지구를 좋아하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고대의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들을 좋아해서, 그런 것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문화가 궁금해져 걷게 된 길이지만. 아카데미에서 승관을 만나고 나서는 제가 알고 있는 지구가 정말 지구가 맞는 것인지 궁금해지고는 했다. 전공이 고고학인데도 가본 적도 없고 그저 글과 영상으로만 접하는 선조들의 땅. 땅의 8할을 덮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결을 가진 별. ―가보게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끊임없이 울렁대는 그 파도를 보고 있으면, 그러면. 제가 이 아이에게 느끼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될지.

 

 

말한 적 없지만. 한솔은 지상 탐사 임무로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혼자 바다를 보러 갔었다. 벼랑을 내려가 해변에 서서는 첫 데이트 때 눈물을 보이던 연인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소금물을 보며 드디어 납득 한 것이다. 자신의 패배를.

 

그렇다고 포기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반지가 가지는 의미는 처음 샀을 때보다는 조금 변색됐지만.

 

“계속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옆에 있었으면 해. 지구의 바다가 아닌 나의 바다로. 내 인력을 따라 흐르는 물결로서. 비록 승관이 이 고향을 평생 포기하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아직 마리아상이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 년쯤 전에도 비슷한 일을 주관했던 것처럼.

 

“너는… 정말 어이가 없는 애다.”

 

보통은 그냥. 좀 질투하고 마는거 아닌가. 절 사랑하는 것보다 향수병이 더 커서, 너를 만나게 해준 일조차 후회한다고 한다면. 그런데 너는 냅다 청혼을 하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웃음이 돌아올 뿐이다. 내가 좀 끈질기잖아.

 

황당함 같은 건 정말 느끼는 것을 살짝 가리는 역할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눈을 감으니 파도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멀리, 동굴과 예수의 탄생을 형상화한 그림과 대리석 바닥을 지났는데도. 이곳은 지구였다. 가고 싶었던 우주가 저에게 찾아온, 승관의.

 

“받아주기 싫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음. 난감해지는 낯빛을 실컷 즐긴 승관이 한솔의 손에서 다른 반지를 가져온다. 네 번째 손가락에 얇은 링을 통과시키는 그림은, 어쩌면 승관도 요 몇 년 새에 항상 생각하던 것일지도 몰랐다. 다만 고백을 보챘듯이 한솔이 먼저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그야 승관은 겁쟁이고. 그 어떤 것보다 이 아이를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있지. 부정은 안 할게.”

 

승관은 지구가 그립다. 지독한 향수병이 평생 나을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지상 탐사 임무가 끝나고 돌아가면 더 심해질 수도 있겠지. 결국에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누가 사랑 두 가지를 꼭 저울에 놓아야 한다고 말한단 말인가. 승관은 다만 고향을 사랑하고, 한솔도 사랑하니. 가장 원하는 그림은 그 고향 속에 한솔이 함께 있는 것뿐이다. 어쩌면 평생.

 

손을 들어 인공조명에 반지를 비추자 반사되는 빛이 눈에 머물렀다. 웃는 얼굴 때문에, 한솔은 또다시 마음에 파도가 치고.

 

“결혼식도 여기서 하자.”

 

딱 맞는 것 같아. 원래 기독교 풍습이라며. 기지 사람들밖에 못 불러서 아쉽겠지만, 다른 사람들 초대는 뭐. 영상으로 하면 되니까.

 

Oh. 그건 아마 엄청나게 여러 가지 절차랑 허가랑 기타 등등이 필요할 텐데. 여기는 유적이라. 잘못하면 곰팡이 때문에 하객의 절반 정도는 알레르기성 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 고고학자의 발을 밟은 승관이 새침하게 손을 잡았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나랑 결혼하고 싶으면. 한솔은 그제서야 다시 웃어버리고. 그래 뭐. 뭔들 못하겠어.

 

가벼운 웃음이 멎으면 잠깐의 침묵이 있다. 그 사이조차 바다와 별의 소리가 메우고 있었다. 지구가 될 수 없는 별과 별이 되지 못한 바다. 마주본 얼굴이 녹아가는 과정이 선명하게.

 

눈을 감자 인력이 바다를 파도치게 했다. 점점 더 크게, 별을 향한 마음으로. 이어진 미래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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